▲ 독일 개발자, 타이트 와이드만 (Teut Weidemann)

올해 초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를 시작으로 루트박스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게임 관련 매체는 물론이고 종합지까지 게임에 확률을 도입한 루트박스는 커뮤니티와 게이머들의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제한 법률까지 언급되는 등 ‘악’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랜 시간 게임업계에 몸담은 강연자 타이트 와이드만은 현재 다수의 게임사에 컨설턴팅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다양한 게임과 게임사의 성공요인 분석을 진행한 바 있다. 강연자는 이번 강연을 통해 루트박스의 ‘좋은 길’과 ‘나쁜 길’을 살펴보고 어떻게 게임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되돌아봤다. 그것도 '루트박스 - 이 *같은 건 뭐야?(Lootbox - WTF)'이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 루트박스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강연자는 먼저 루트박스의 시작과 게임 속에 루트 박스가 들어가게 된 시점, 그리고 현재까지 이르는 과정을 정리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최초의 루트박스는 야구카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작위로 선수 사진이 들어있는 카드들이 존재했고, 이를 수집하는 개념으로서의 루트박스다. 어떤 카드가 있을지 모르는 무작위성. 그리고 희귀한 카드들의 가치가 재설정 되는 것은 파워풀한 수익 모델이었다. 다만, 수집품이라는 의미가 강하기에 당시에는 게임 쪽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모델이기도 했다.


이후, 해당 모델을 게임에 적용한 사례가 등장한다. ‘매직 더 게더링’은 카드를 모은다는 수집품으로서의 모델과 게임을 접목한 사례다. 강연자를 이를 두고 ‘천재적인’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부스터라는 무작위 봉투가 존재하고, 거기에 희귀도에 따라서 비율을 달리하는 카드 구성은 게임 외적인 가치를 창출했다. TCG라는 단어 그대로, 카드가 거래되기 시작했고 기존 가치보다 더 큰 비용이 책정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모델은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임으로 적용되었긴 했으나, 아직은 수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작위로 나오는 구성물, 등급에 따른 구성이라는 개념은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른다.


이후 시장에 출시된 ‘바하무트’, 부터 ‘퍼즐앤드래곤’, ‘서머너즈 워’에 이르기까지 루트박스는 진화를 거쳤으며, 수많은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퍼즐앤드래곤은 루트박스를 통해서 가장 빨리, 많은 매출을 기록한 게임이 되기도 했다. 또한, 모바일 게임 시장에만 해당 모델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을 PC로 옮겨보면, 모자를 루트박스로 얻을 수 있었던 ‘팀포트리스2’와 문제가 됐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루트박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동시에 플레이어들은 루트박스에 대해서 반대의 의견을 보내고 있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것이었으며, 이미 익숙한 모델로 자리 잡았음에도 말이다. 강연자는 이를 두고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기에 게이머들이 반발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 루트박스, 게임 속에서 살펴보기

그렇다면 루트 박스는 어떠한 형태로 현재 게임들에 마련되어 있을까? 강연자는 대표적인 게임 몇 개를 예로 들어서 현재 게임들의 모습을 분석했다. 강연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일본 모바일 게임의 가챠 시스템이다. 앞서 언급한 퍼즐앤드래곤의 경우, 캐릭터를 획득하는 ‘에그’가 중심이 된다. 애그를 획득하고 진화시키고, 강화하는 것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로 설정되어 있다.

에그는 랜덤으로 드랍되기도 하며, 특정 테마를 진행하거나, 에그를 공짜로 제공하므로, 이를 획득하고 진화·합성하는 것은 시간을 지불하는 일이 된다. 여기서 과금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된다. '시간=돈'이 되며, 루트박스는 시간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과금으로 획득하는 캐릭터는 무료로 얻는 것보다 조금 강하게 설정되어 있다. 강연자는 이것이 '키'를 담당한다고 강조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경우, 무언가를 얻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루팅 테이블이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투자하고, 플레이어 보다 아이템의 수가 적으므로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적은 아이템, 많은 플레이어, 의미 있는 루팅 테이블. 바로 이 지점이 퍼즐앤드래곤과의 차이를 만든다고 봤다.

퍼즐앤드래곤으로 대표되는 가챠 시스템에서는 유료 상품에 매우 많은 아이템이 포함되어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쓸모없는 아이템 또는 캐릭터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획득했을 때 토큰을 지급하여 새로운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설계해뒀다. 동시에 유료 상품에서만 등장하는 고급 상품은 게임 진행을 빠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시간 = 돈이라는 원칙은 적용되지만,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기회와 이득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 착한 박스? 나쁜 박스?

그렇다면 '좋은 루트박스'는 존재할까? 강연자는 이와 관련하여 오버워치와 서머너즈 워, 클래시 로얄과 같은 게임을 예로 들어서 이를 설명했다. 오버워치의 경우, 루트박스에 캐릭터의 성장과 관련된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파워'를 제공하지 않는 형태다. 사전에 게임에 돈을 들였기 때문이긴 하지만, 유료 상품임에도 별다른 혜택이 없다는 부분은 '나쁜 것(Bad thing)'으로 판단했다.

서머너즈 워의 경우, 소환서를 구매하여 소환하는 형태를 예로 들었다. 이러한 부분은 출석 보상이나 이벤트로 얻을 수 있다는 점, 또는 게임 내 포인트를 모아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 = 돈'이라는 공식을 만족한다고 봤다. 여기에 구입 제한에 기간을 두어, 더 많은 소비를 억제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클래시 로얄은 시간을 들여서 루트박스에서 캐릭터 카드를 획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나 부정적 기사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강연자는 이러한 부분에 주목했다. 시간을 기다리면 상자를 열 수 있다는 점.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이 자금을 지불하고 매출 순위권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부정적 반응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사람들이 게임을 공평하게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스스톤의 경우, MTG와 마찬가지로 부스터를 구매해서 새로운 카드를 획득한다. 새로운 확장팩이 나오면 매출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후 시간이 지나면 매출이 급락하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의 이유로는 원하는 카드를 유저들이 제작할 수 있다는 점. 밸런스 패치로 카드의 상성이 바뀌기도 하므로, 일정 카드를 획득한 뒤에는 추가적인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강연자는 '좋은 박스'의 특징을 앞서 언급한 게임들 일부분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돈'이라는 공식과 더불어, 횟수 제한이나, 상품이 중복되었을 때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갖춰두면 커뮤니티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가장 등급이 높은 아이템은 랜덤 드랍이 되지 않도록 설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서 강연자는 '나쁜 박스'의 사례와 특징을 설명했다. 주로 커뮤니티의 반발에 직면하는 사례들이다. 대표적인 것은 '많은 시간을 들인 유저들이 순식간에 따라잡히는 구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루트박스의 구성품의 밸런스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성능이나 낮은 성능의 아이템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로 구성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좋은 박스와 나쁜 박스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경제의 힘(Power of Economy)'를 꼽았다. 루트박스를 중심으로 게임의 시스템이 설계되어야 하며, 루트박스와 게임 내 시스템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이를 중심에 두고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스스톤의 경우 부스터팩이 게임을 즐기기 위한 단계이자,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카드를 제작하는 것도 근원으로는 중복 카드에서 얻는 가루로부터 시작한다. 서머너즈 워는 스크롤을 제작하고 획득, 소환한다는 개념이 게임의 중심으로 설계됐다. 클래시 로얄 또한 상자를 오픈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획득하고 강화하는 개념이 게임 플레이의 중심이 된다.

강연자는 이렇듯 루트박스를 통해서 획득하는 것들이 게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게임의 시스템은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이 이러한 설계를 하지 못한다.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루트박스를 선택의 여지이자 시간을 절약하는 것으로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강연자는 현재 루트박스의 문제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강연자가 바라본 루트박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다.

루트박스에 모든 것을 몰아넣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닛을 설정하기보다 속성을 구분해서 색을 바꾸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많은 유닛을 만드는 리소스를 줄이기 위함이며, 동시에 적은 노력으로 많은 콘텐츠를 편하게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 그래서 루트박스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루트박스의 역사부터 정의, 장단점을 살펴본 강연자는 루트박스에 대한 단호한 해답을 내렸다. '아무도 루트박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루트박스의 대안으로 루트 테이블을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루트 테이블 또한 무작위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같다. 하지만 루트박스보다는 무작위의 폭이 좁다. 어디서 무엇이 드랍되는지 명확하며, 시간을 들이면 원하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스템적인 보완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부여할 수 있다. 포인트나 토큰 시스템을 이용하면 플레이어가 소비한 시간만큼의 보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강연자는 이러한 루트 테이블 대신 루트박스가 자리하는 것은 결국 디자인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그러나 디자인하기 쉬운 것과는 별개로 제대로 서비스하기 어렵다는 맹점을 짚었다. 몇 개의 게임을 제외한 수많은 게임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커뮤니티의 부정적인 반응, 하나로 몰아넣은 시스템으로 말미암은 부정적 영향 등을 모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루트박스는 게임 설계의 안이함에서 나온 결과다. 그렇기에 설계가 허술하게 이루어진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지고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하나에 몰아놓고 서비스를 최적화하기 어렵기에, 강연자는 루트박스의 본질은 시스템의 설계와 최적화의 문제라고 설명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8월 21일 개최되는 게임스컴(GAMESCOM) 최신 소식은 독일 현지에 나가 있는 정필권, 김강욱, 석준규 기자가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