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옷링크(http://game.daum.net/bridge/?url=http%3A%2F%2Fdho.game.daum.net%2Fsailor%2Fscreenshot%2FBbsContentView.asp%3Fseq%3D8763387%26pageno%3D470%26searchstring%3D%26searchstringoptionval%3D1%26searchmonth%3D3%26choice%3D0%26cateid%3D0)


작성자- 에이레네 서버 베디비어,일본 A서버 Valencia

곰에 대해서 약간의 미화? 같은게 되고있는거 같아서 곰에 대한 실제 사건을 통해 곰의 위험을 알기위해서 한번 작성해보겠습니다.

곰은 사실 푸우처럼 말랑하지도 않고 코카콜라 곰처럼 포근하지도 않은 친구들입니다.

또 지리산등에 요즘 반달가슴곰(? 무슨 종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등을 풀어서 키운다고 하는데 혹시나 여러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한번 글을 작성해봅니다



=밑의 글들은 나무위키에서 퍼왔으며 가독성을 위해서 약간의 편집과 사진추가를 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습격 사건

이 사건은 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아주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970년 7월,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1] 학생 5명은 홋카이도의 히다카 산맥 종주를 목표로 7월 12일 오전 9시경 하카타역을 출발하여 이틀 뒤 14일 신토쿠역(新得駅)에 도착, 메무로타케(芽室岳)에 입산하여 페테가리다케(ペテガリ岳)[2]로 향하는 종주 계획을 세웠다.

구성원은 리더인 타케스에 카즈토시(竹末一敏, 당시 20세), 서브 리더 타키 슌지(滝俊二, 당시 22세), 코오로기 모리오(興梠盛男, 당시 19세), 니시이 요시하루(西井義春, 당시 19세), 카와하라 요시타카(河原吉孝, 당시 18세)이며 그들은 신토쿠의 파출서에 등산계획서를 제출하고 이 날 오후 등산을 떠났다.

25일 중간 지점인 카무이에쿠우치카우시산(カムイエクウチカウシ山,'곰이 굴러떨어질 정도로 가파른 봉우리'라는 뜻) 아래 마루노자와 분지(九ノ沢カール)에 텐트를 친 부원들은 불과 6~7m 앞에 나타난 불곰과 마주쳤다.

부원들은 곰을 보기 힘든 큐슈에서 왔기때문에 처음엔 겁을 먹지 않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고 한참동안 관찰하는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이윽고 곰이 텐트 밖에 내놓은 등산용 배낭의 음식들을 뒤졌기 때문에 곰이 흥미를 잃었을 때 재빨리 배낭을 회수한 뒤 불을 피우고 식기를 두들기거나 라디오를 틀어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곰을 쫒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밤 9시경 취침 중에 무언가의 콧김을 느끼고 깨어난 그들은 그 무언가가 텐트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어놓고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 일로 신변의 위험을 느껴 2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서는 방법으로 망을 섰고 이 날은 더이상 곰이 나타나지 않았다.

26일 오전 3시경, 공포에 휩싸여 한 명도 잠들지 못해 일찍 기상한 부원들은 1시간 반뒤인 오전 4시반경, 또 다시 나타난 불곰에게 습격을 당했다. 곰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려하자 부원들은 텐트 지지대를 붙잡고 버텼고, 곰이 5분간 텐트를 집요하게 끌어당기고, 텐트를 쓰려뜨려 배낭을 마구 뒤지는 사이 짐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 후 리더인 타케스에는 서브리더인 타키 슌지와 카와하라 요시타카에게 산림청에 연락해 구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고 하산하던 두 사람은 다른 대학생 그룹인 홋카이도 학우회(北海岳友会)[3] 18명과 조우한다. 마침 불곰의 습격을 받고 내려가던 도중이던 홋카이도 학우회 학생들은 타키와 카와하라에게 함께 하산하는 것을 권유했지만 두 사람은 남은 동료들과 같이 가겠다고 말하며 도움 요청을 전달하고 식료품, 지도, 가솔린 등을 건네받은 뒤 산에 남아있는 나머지 3명을 구하러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다시 돌아간 두 사람은 도중에 돗토리 대학과 츄오 철도 대학원생 그룹과 마주쳤고 불곰이 나타났다는 등의 정보를 교환한 뒤 오후 1시경 남아있던 3명과 합류. 그 후 능선 위가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그곳에서 수리한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었고 잠을 청하려던 그들에게 오후 4시반경 어김없이 불곰이 나타났다. 곰은 1시간 가량이나 텐트 옆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곳에 계속 있기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원들은 아까 만난 돗토리 대학 그룹 텐트에 합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돗토리 대학 그룹도 곰의 습격을 피해 이미 하산한 뒤였고 어쩔수없이 깜깜해진 산길을 계속 내려갔다.

오후 6시경, 능선에서 60~70m정도 내려가고있을 무렵 니시이가 불현듯 뒤를 돌아봤을 때 바로 앞까지 불곰이 쫒아온 것을 목격. 공포에 휩싸인 5명은 미친듯이 달아났으나 곰은 제일 막내였던 카와하라를 쫒았고 도망치던 그들은 암흑 속에서 "젠장!"이라고 외치는 카와하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리더인 타케스에가 불곰에게 습격당하고 사투 끝에 다리를 끌며 도망치는 카와하라를 목격한 것이 카와하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타케스에, 타키, 니시이 3명은 돗토리 대학 그룹과 조우해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호루라기를 불며 위치를 알렸다. 이윽고 돗토리 대학생들과 헤어진 3명은 암벽에 올라 그곳에서 밤을 지샜다. 그들은 카와하라가 무사하길 빌었고 도망치던 와중 나머지와 떨어진 코오로기의 이름을 계속 불렀지만 다른 장소에서 몸을 숨기던 그는 딱 한번 대답했을 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7일 이른 새벽 3명은 산 속의 깊은 안개로 시야가 5m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라진 나머지 2명을 찾거나 불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그들은 오전 8시까지 나머지 2명을 찾았으나 응답이 없어 일단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하산 도중 제일 앞에서 걷고있던 타케스에가 아랫쪽 2~3m에 불곰이 있는 것을 발견, 곰은 도망치는 타케스에를 쫒았고 타케스에는 결국 사망했다.

가까스로 도망친 타키와 니시이는 고노자와(五ノ沢)의 댐 공사현장에 도착해 지나가는 자동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때가 오후 1시경이었으며 그 후 나카사츠(中札) 내 주재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

28일 멤버들을 찾으러 나간 구조대가 산에서 발견한 것은 형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타케스에, 카와하라, 코오로기 3명의 시체였다. 옷은 찢겨져나가 맨 몸에 허리 벨트만 감겨져있는 상태였으며 얼굴 반쪽은 사라져있었고 코, 귀가 전부 뜯겨있었으며 복부에서 창자가 튀어 나와있었다. 얼굴, 목, 고간 세 부근에 치명상을 입은 3명의 사인은 경추골절경동맥 절단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피해자들은 뒤에서부터 둔부를 공격당해 엎어져 쓰러진 자세로 둔부, 항문부가 물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에서는 동료들과 떨어져 다른 곳에 몸을 숨겼던 코오로기가 텐트에 일단 돌아와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쓴 걸로 보이는 메모가 남겨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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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5시, 저녁 식사 후 곰이 나타나 텐트 탈출.
돗토리 대학 WV가 있는 곳에 가서 구조를 요청하러 카무이에쿠 아래 분지로 내려갔다.
17:30 곰이 우리를 쫒아왔다. 카와하라가 당한 것 같다.
내 5m 옆, 위치는 공터 낭떠러지를 내려가는 소나무 지대에 진입하고나서 20m 아래 지점.
그 후 나도 당할 것 같아서 소나무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낭떠러지 윗 쪽에 (곰이)있었기때문에 낭떠러지 중간 지점에 숨을 참고 있었더니
타케스에 선배가 소리치며 돗토리 대학 그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아랫쪽 상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곰이 내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타케스에 선배가 뭔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전혀 들리지않았고 곰의 위치도 알 수 없다.

(중략) 27일 4:00 눈을 떴다. 밖이 신경쓰이지만 무서워서 8시까지 텐트 안에 있기로 했다.
텐트 안을 둘러보니 가방이 있어 안을 보니 밥이 있었다. 이걸로 조금 안심이 된다.
윗 쪽엔 가스가 끼어있어 조금 기분이 나쁘다.

이제 5:20이다. 곰이 또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다시 침낭에 기어들어갔다.
아아 빨리 하카타에 돌아가고싶다.

7:00 강을 내려가기로 했다. 주먹밥을 만들고 텐트 속에 있던 셔츠와 양말을 빌렸다.
텐트를 나와보니 5m 위에 역시 곰이 있었다. 도저히 나갈 수 없어 이대로 텐트에 있기로 한다.

8:00까지...(판독불능) 그러나...(판독불능)을 지나가지 않는다. 다른 멤버들은 벌써 하산한걸까.
돗토리 대학 사람들은 연락을 해줬을까. 언제 구조하러 올건지 모든게 불안하고 두렵다...또 가스냄새가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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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모는 26일 오후 5시부터 27일 오전 8시까지의 기록이 남아있었고 후반부엔 굉장한 두려움 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써내려간 흔적이 보였다. 군데군데 내용을 알 수없는 글이 있을 정도였다. 이 후 정확히 언제인진 알 수 없으나 혼자 텐트 안에 있던 코오로기는 결국 불곰에게 습격당해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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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 대해서 뭐 많이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곰이 나타나면 뭐 죽은척을 해라 아니다 죽은척을 하면 툭툭치는데 이걸로 팔다리가 찢겨나간다 이런식으로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실제로 곰의 습성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맨 처음 불곰이 뒤져놓은 짐들을 다시 빼앗은 것.

일행들은 식량이 바닥날 것을 우려해 불곰이 뒤져서 먹으려던 가방을 다시 빼앗았지만 은 집착이 매우 강한 동물이기때문에 곰의 소유물이 된 물건을 다시 회수한 것은 매우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 가방의 식료품들은 적은 양이라 생명과도 연결되었고 가방 안에 귀중품도 들어있었기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곰이 몇번이고 다시 텐트에 나타났으며, 일행들을 끝없이 추적한것을 통해서 알수있듯이 곰은 매우 집착이 강한 성격입니다 만약 곰이 당신의 물건에 흥미를 가진다면 빠르게 포기하시는고 하산하시는게 좋을것입니다. 당신에게 흥미를 보인다면...?(웅녀?)


  • 불곰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쳐서는 안된다.

불곰은 처럼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것을 쫒아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곰을 만났을 경우 도망치는 것보다 팔을 크고 둥굴게 만들어 몸을 크게 만들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또한 인간의 단체 행동을 두려워하는 곰에게 대응하기보다 각자 흩어져 도망친 것도 습격당하는데 좋은 조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이것들은 약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불곰이 계속 습격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피지컬 즉 육체능력은 곰과 인간이 상대가 안됩니다 무기(엽총과 같은 화약무기일지라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것이 인간입니다




영화 레버넌트를 보셨다면 정말 숙련된 사냥꾼인 디카프리오 아저씨가 곰한테 얼마나 살벌하게 얻어터지는지 알 수 있을것입니다 


  • 불곰을 마주쳤을 때 바로 하산하지 않았던 것.

사건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으로, 여러번 하산할 기회가 있었지만 바로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 최대의 실수이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카무이에쿠산은 그들이 이전부터 매우 가고싶어했던, 꿈이자 목표로 여겼던 산이었기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정상에 오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하고 있다.


제발 도망치세요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건 진짜 이상한겁니다 스스로의 기분을 믿으세요!


여러분들의 목숨은 스스로가 지킨다는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운동을 많이하신분들 괜히 쌘척하고 하시는데 제발 그러지 마세요 무언가에 대해서 조금 아시는분들 조금 아실때가 제일 자존심, 자신감 높을때라는 점을 인지하세요 짧은 지식이 목숨을 빼았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무언가를 하실때 제발 제대로된 지식을 습득해주세요







사건 현장 사진과 유류품. 산에서 찍은 사진이 남겨진 필름은 1년뒤 하치노자와 분지에서 발견되었다.

29일 대학생들을 노린 불곰은 곰 사냥꾼 10명에 의해 사살되었다. 3명을 죽인 불곰은 4살 암컷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그다지 크지않았다. 보통 불곰은 2살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불곰은 교미를 한 흔적은 없었다.[5] 사살 후 곰의 위 안을 살펴봤으나 사람을 먹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곰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종의 놀이, 또는 적을 쫒는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

불곰은 곰 사냥꾼들의 관습에 의해 곰고기가 되었고,나머지 부분은 박제되어 히다카 산맥 산악센터에 보관되어 있다. 훨씬 오래전부터 곰에 의한 습격이 잦았던 히다카 산맥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로 40년이 넘게 곰에 의한 사상 사건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전의 습격은 사살된 동일 개체가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악천후에 의해 3명의 시체를 아래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여 하치노자와에서 화장한 유골이 가족에게 전달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하치노자와에는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고 비석엔 '고산(高山)에 잠든 영혼이 편히 잠든 만가(挽歌)도 서글픈 하치노자와( 高山に眠れる御霊安かれと挽歌も悲し八の沢)라는 글귀가 쓰여져있다.






이상 호피를 411개 바다에 쏟아버리고 넋두리하는 대항해시대 유저였습니다...



내용의 대부분 약 98%정도는 나무위키에서 퍼왔으며 이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생각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