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섭 영국 유저 린드버그입니다.

저번에 로드스 기사단에 대해서 살짝쿵 알아보게 된 이유가 아테네뺑 돌다가 아테네에서 기사단장 공관을 보게 되서였지요.

그 일이 있은후 파마구스타에 동지중해의 명물요리집 뽑으러 뺑퀘 돌아 번 돈들고 뽈뽈 가서 투자하고 피자 파는데 정신이 팔려서 작위 준다는데도 있고 있다가 이벤트 때문에 런던 왕궁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우리 여왕님을 뵙게 되는데...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니, 잉글랜의 여왕이면 도대체 누구야?" 솔직히 역사에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_-;; 모르고 지냈습니다. 마구마구 뒤적거리다가 대충 그 당시의 통치자들을 몇명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대충 항온의 정확한 배경시기를 몰라서요; 일단 1550~1600년쯤으로 잡아 봤습니다.

1. 잉글랜드 왕국 - 엘리자베스 1세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내신 자랑스러운 여왕께서 통치하고 계시고 있는 잉글랜드! 여왕님의 즉위 전까지의 인생도 그다지 순조롭지는 못했나 봅니다;

국교회를 세우고 재정파탄의 위기를 가져온 그녀의 아버지 헨리 8세.

헨리 8세는 6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중 두번째 왕비인 궁녀였던 앤 블린의 딸이 바로 우리 여왕님 입니다. 하지만 앤 블린은 첫째왕비와 같이 아들을 못 낳았고 나중에는 간통혐의로 처형되기 때문에 거의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보는게 절망적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첫째왕비의 딸은 메리로 나중에 엘리자베스와 적지않은 관계를 가질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왕가의 메리 스튜어트와 동명 이인 입니다. 어쨋든 헨리8세는 6명의 부인에게서 고작 에드워드 한명밖에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죽게되고 병약했던 에드워드 6세는 왕위를 받은지 6년만에 병으로 죽고 맙니다.

헨리7세의 증손녀 제인그래이는 즉위 9일만에 귀족들의 손에 쫒겨나고 즉위한것이 바로 헨리8세의 장녀 메리! 메리는 당시 헨리8세가 세웠던 신교성향의 국교회와 구교 가톨릭과의 종교 개혁에 의한 항쟁에서 구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신교를 탄압하게 됩니다.

그녀는 신교를 무시무시하게 탄압해서 "블러디 메리"란 별명을 얻게 될 정도로 피를 보았고 그 결과 많은 신교 신자가 영국을 떠나 대륙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탄압을 벌이던 메리가 즉위하고 얼마되지 않아 "와이엇의 난"이 일어 납니다. 이 반란은 금방 진압 되었지만 "엘리자베스가 관련되있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엘리자베스가 런던 탑에 갖히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런 말을 뱉었던 이 반란의 주동자는 처형되기 직전 엘리자베스의 결백을 증언했으므로 겨우 풀려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에드워드 6세가 즉위했던 짧은 기간에도 반란자 토머스 시모어와 관련되서 붙잡힌 적이 있었지요 블러디 메리는 5년간의 통치 끝에 1558년 11월 17일 사망하였고 의회이 빠른 대처로 1558년 11월 18일 엘리자베스 1세가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즉위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블러디 메리로 불린 메리 1세와는 반대입장을 취해서 영국 국교의 입장을 명확히 국교회로 삼고 종교계에서도 절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 엘리자베스 1세의 왕위 계승을 시기하고 빼앗으려한 무리가 있으니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메리1세의 동명이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 일파 였습니다.

메리와 프랑스의 앙리 2세는 엘리자베스의 즉위를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란 것이 헨리8세의 두번째 왕비였던 앤 블린은 나중에 간통혐의로 이혼 당하고 처형당합니다. 법률 상으로 엘리자베스는 서자인데다 그런 점 까지 작용해서 그에 비해 튜더왕가의 혈통을 정식으로 이어 받은 메리 스튜어트가 영국의 왕위계승권이 있다는 이야기였지요. 

이 이야기는 영국 의회가 엘리자베스를 적자로 인정하면서 마무리 지어지지만 앞으로 있을 논란의 원인이 되게 됩니다.

그녀의 통치 방식은 정말 절묘 하였는데 예를 들어 한 국가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으면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는 척 하면서 사태가 수습되면 동맹은 바로 적당한 이유를 들어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돌려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양날의 검같은 외교였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두의 적이될 이 상황에서 엘리자베스는 특유의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모든것을 해쳐 나갑니다.

특히 그녀는 평생 결혼 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구애한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셋째아들 카를대공,스웨덴의 황태자 에릭, 프랑스의 샤를9세등 쟁쟁한 인물들 이었지만 국교회를 받드는 입장에서 가톨릭국가인 이런 국가들과 혼담이 오갈경우 절대왕권의 약화를 초례하는 일 이었으므로 그녀는 모두 거절해 버립니다.

"저는 영국과 결혼했습니다." 당당한 처녀여왕의 뛰어난 외교수완과 한발 앞까지 보는 뛰어난 정치수완에 우리는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1568년 스코틀랜드의 철없는 여왕 메리는 자신의 남자 문제로 인하여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에 휩싸여 폐위 당하게되고 영국으로 망명오게 됩니다. 가톨릭 교도이자 왕위를 뺏으려 했던 그녀를 처형하면 가톨릭 국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의 메리처형 의견을 받아들이지도 무시할수도 없는 입장에 처한 엘리자베스는 20년간이나 메리스튜어트를 감금하고 그동안에도 메리는 엘리자베스를 암살하여 영국 왕위를 차지하여 스코틀랜드를 수복할 생각을 합니다.

결국 쌓이고 쌓이던 불화는 엘리자베스의 분노가 폭발하며 메리가 단두대로 가게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이걸 기회로 구애를 했던 독실한 가톨릭국가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당신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파견, 해상력을 기르려고 신대륙쪽의 자원과 보물들을 해적질하던 잉글랜드에게 "해가 지지않는 나라"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했듯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해적출신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해군제독으로 임명, 최고의 선과를 올리며 신까지 영국을 돕듯 폭풍우까지 몰아쳐서 무적함대는 사실상 괴멸 해버렸고 영국은 바다의 왕자로 등극하고 에스파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예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러한 업적을 이루었던 엘리자베스는 사실 파산직전의 재정등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고 힘겨운 통치를 이어갑니다.

여왕에게도 로맨스는 있었지만 외국의 왕같은 사람이 아닌 자신의 신하들이었습니다. 첫번째 상대는 동갑내기 귀족 로버트 다드레였고 그가 여왕의 방을 찾는 일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네요..........아.

어쨋든 두번째 로맨스 상대는 웨식스 백작 로버트 데브르로 왕궁에 가면 있는 서식스 백작과 비슷하네요; 그는 헤어진 다드레의 재혼한 아내의 자식이었습니다. 50대의 여왕과 20대의 청년.. 많은 권력을 주었지만 무능했던 이 백작은 금방 영왕에게 버림 받았고 그게 다 간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한 멍청한 백작은 반란을 기도했다가 바로 처형됩니다. 물론 엘리자베스가 처형명령을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철의 여왕은 죽기직전까지 위엄을 흐트리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네요;

그녀의 신하들은 그녀에게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꼭 의사를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무엇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군주에게 쓰는 말은 아닙니다."라며 절대군주로써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결국 1603년 3월 24일 그녀는 숨을 거두고 우연의 일치인지 하늘의 뜻인지 왕위를 계승한 것은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제임스 였다고 합니다.

으아... 역시 여러가지 인터넷 검색등을 활용한거라.. 저도 배우면서 써봤습니다; 다음에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에 대해서 써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