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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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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D-15 항해일지. {D-8.표류하는 이성.}어제보다는 바람이 잔잔해졌다. 분명 날씨가 점점 좋아질 것이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내일정도면 바로 출발해도 되겠군." 선장이 말한다. 내일이 되서 날씨가 완전히 좋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하지만 우리는 쫓기는 몸이니까. 도망쳐야만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선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중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 속 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그저 방관자, 죽은 인간일 뿐. 그리고 이 일지를 그저 읽어내리기만 하는 사람일 뿐. "출발은 내일 아침 해가 뜨는 즉시. 모두들 오늘은 일찍 자둬. 내일부터는 제대로 자는 일도 거의 없을지 모르니까." 강경책. 최악이 죽음이라면 그에 대한 노력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매달려야 하는 것. 우리들의 생존은 우리의 격렬한 반항에 달려있다. 내일 아침이라. "어느정도 썩었는지 확인해봐." 선장이 식량을 방치해 둔 곳에 시선을 가져갔다. 두명이 뛰어갔다온다. 습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고 해봐야 2일. 2일만에 폭풍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2일만에 식량이 썩어가지는 않는다. 약간의 곰팡이는 생겼지만 말이다. 녀석들이 돌아와 보고를 한다.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비슷한 양만큼 또 식량을 꺼내두고, 그건 조금씩 잘라서 놈에게 던져줘. 물도 조금." 선장의 말이 언제부터 법이 되었던가. 우리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던 모습과 조금은 다르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능숙하게 칼을 들고가서는 식량을 썰고서는 '그 자식' 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식량을 던진다. 물도 한 바가지 정도를 상납하고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사이. "아악!" 비명소리. 시선을 모두 '그 자식' 에게 돌린다. 노려보는 시선에 담긴 분노만으로도 충분히 기를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자식' 은 식량과 물 조금씩, 그리고 인간을 하나 상납받고서는 잠잠해진다. "뭘 원하는거야!" 소리가 울려퍼진다. 당장에 횃불이라도 던져주고 올 것만 같은 기세였다. "뭘 원하는거야." 단 한번 들은 말을 지껄이고 있다. 억양도 살짝 흐지부지한 느낌. 마치 약을 올리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놈. 정말 뭘 원하는 것일까. 식량이 부족한 것일까. 그래도 자그마치 모든 선원이 1일동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한가. 인간을 다 먹을 정도였으니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도대체가... 공존이란 말을 모르는 놈이군." 선장이 중얼거린다. 차갑게 부숴지는 그 말에 우리는 다시금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개같은 일. 그리고, 며칠간 계속 지속될 일. 선장은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쉰다. 모두가 같은 기분이긴 하지만. "아까 죽은 녀석의 짐도, 버려." 선장의 말이 떨어진다. 그리고 죽은 자의 혼령도 함께 떨어진다. 망자가 생전에 쓰던 모든 것이 버려진다. 식량을 세배로 써야 된다며 투덜대는 선장에게는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어차피 이 곳은 바다. 무슨 일이 일어나 사람들이 죽을 지 알 수 없는, 땅으로 도착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표류와 방황의 시기. 그것이 배를 탄다는 것. 그것이 바다라는 것. 모를 리 없으니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한다. 그 다음으로 죽을 놈들도 버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괴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