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라 하면 누구나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하얀 물보라, 파란 바
다, 파란 하늘, 새 하얀 등대, 흰 갈매기들, 아
름다운 바위 언덕, 그리고 등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쓸쓸하고 고독한 등대지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이미지도 윤석이의 얘
기를 듣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김씨는 오늘도 바라보기만 해도 신물이 나
는 등대에 올라 렌즈를 점검하고 있다. 매일
해 오는 일이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번거럽게
느껴졌다.
김씨는 벌써 15년째 미도(微島)에서 등대를
지켜오고 있다. 미도는 이름 그대로 아주 작은
섬으로, 충무에서 배를 타고 3시간 반 정도 걸
리는 남해의 끄트러미에 위치하고 있다. 미도
의 거주자라곤 부인 이씨, 그리고 개 한 마리
가 전부이다. 건물이라곤 등대 하나와 작은 집
한 채가 있을 뿐 무인도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
지 않는 외로운 섬이다.
“여보, 식사해요!”
김씨는 부인의 외침을 듣고, 등대 렌즈에 불
을 켜는 스위치를 올렸다.
“얼른요! 국 식어요!”
“아, 알았어!”
김씨는 밑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
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김씨는 저 멀리 어둠
속에 움크리고 있는 육지를 바라보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제기랄! 하긴 해야겠군. 그때 술만 안 취했
더라도.
문제의 발단은 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네
달 전이었다. 보름마다 한 번씩 오는 정기 연
락선을 타고 김씨는 오랫만에 충무로 나갔다.
거의 육 개월 만에 오른 뭍이라 김씨는 감회가
새로웠다.
김씨는 항만청에 들렀고 그곳 직원들과 인
사를 나눈 뒤 술자리를 가졌다. 오랜 만에 찾
아온 김씨를 위한 자리였다. 김씨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따라 주는 대로 술을 마셨고 이내
취했다.
사람들은 김씨를 그대로 놓아 주지 않았다.
한번 입에 술을 댔다 하면 끝장을 보고 마는
사람들인지라 그들은 김씨를 끌고 술집을 전
전했다. 처음에는 많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떨
어져 나가 일행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항만청 최 계장과 둘만 남자 최 계장은
4차를 가자면서 김씨를 살롱으로 데려갔다.
최 계장은 어디서 짭짤한 수입이 생겼는지 아
가씨를 불러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김씨는 비록 취하기는 했지만 정신은 남아
있어서 무슨 아가씨냐고 손을 저어 만류했다.
하지만 최 계장은 고집을 부렸고 결국 두 아가
씨가 들어왔다.
김씨의 파트너는 서울에서 왔다는 미스 정
이었다. 그녀는 김씨가 등대지기라는 사실에
대해 무척 신기해했다. 15년 동안 바다를 지킨
등대지기라는 최 계장의 말에 그녀는 무슨 생
각을 했는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매일매일 마주치는 사람이라고는 자신의 왼
팔처럼 익숙한 마누라뿐이었는데 오랜 만에
여자를 대하니 김씨의 마음은 설 다.미스 정
은 그 동안 많이 외로웠겠다면서 김씨에게 갖
은 서비스를 베풀었다. 정에 굶주린 김씨는 미
스 정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 주는 것을 느꼈다.
새벽 두시쯤 되어서 만취한 김씨는 술집을
나섰다. 미스 정이 여관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따라나왔다. 김씨는 어떻게 여관에 도착했는
지 기억할 수 없었다. 김씨는 대신 그날 밤 꿈
을 꾸었다.
어린 시절 동산에 불던 봄바람 같은 것이 김
씨의 전신을 에워쌌다. 김씨는 꽃밭에서 알몸
으로 동무와 함께 뒹굴었다. 서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간지럼도 태우면서. 참으로 오랜 만
에 느끼는 포근함이었다.
김씨는 머리가 아파 눈을 떴다. 옆자리에 낯
선 아가씨가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살롱에서
보았던 미스 정이었다. 그녀는 뒤채다 눈을 떴다.
“냉수 떠다 드릴까요?”
김씨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 정
은 스스럼없이 이부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알
몸이었다. 김씨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홑치마와 겉옷을 대충 걸치고 그녀는 밖으
로 나갔다. 김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내려
다보았다. 역시 알몸이었다. 김씨는 서둘러서
옷을 입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부자리에 누워
있으니 미스 정이 바가지에 물을 가득 떠 가지
고 들어왔다. 냉수를 들이키고 나니 그제서야
갈증이 멎었다. 미스 정은 다시 옷을 모조리
벗고 김씨 옆에 누웠다.
김씨는 미스 정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도
로 가는 연락선은 오후에 뜨기로 이미 약조가
되어 있었다. 김씨는 이불을 푹 뒤짚어쓰고 누
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미스 정이 신경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자요?”
미스 정이 담배를 붙이며 말을 붙였다.
“잠이 안 오네요. 전에는 잠이 많았는데 이
곳에 온 뒤론 파도소리 때문인지 잠을 이룰 수
가 없어요.”
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스 정은
묻지도 않은 말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열여섯에 집을 나왔어요. 서울로 올라왔지
만 마땅히 갈 데도 없더라고요. 집을 나올 때
가지고 있던 돈은 다 썼으니 집에 다시 들어갔
다가는 아버지한테 맞아 죽겠고 그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공장에 취직했어요.”
김씨는 돌아누운 채 미스 정의 이야기에 귀
를 기울였다. 그녀는 힘 들었던 공장시절, 친
구의 꼬임에 넘어가 술집에서 하던 아르바이
트, 그러다 이 손님 저 손님에게 몸을 주기 시
작했고, 이왕 버린 몸이란 생각이 들어 화끈하
게 돈이나 벌 욕심으로 진출했던 요정, 돈은
제법 모았는데 제비를 만나 모두 털리고 룸살
롱으로 티켓 다방으로 전전하던 고달픈 나날
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휴우. 두 번 사랑에 실패하다 나니 남은 건
주름살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바다나 실컷
보고 나서 자살할 생각으로 이곳에 왔어요. 그
런데 죽는 게 쉽지 않대요. 배운 게 도둑질이
라고 다시 술집에 취직해 술을 따르고, 아양을
떨고 노래를 부르고.”
김씨는 미스 정의 이야기를 들으며‘아, 이
여자도 나처럼 한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구
나. 거센 바람에 시달리면서‘하는 생각을 했다.
미스 정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경계심을 풀고 김씨는 미스 정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김씨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줬다. 그녀는 김씨 품에 살
며시 안겨 왔다.
“저도 이제 이 생활에 지쳤어요. 믿음직한
남자 만나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요. 소도
시로 가서 구멍가게나 하면서 말예요.”
미스 정의 속삭임은 김씨의 가슴속에 파고
들어 태풍이 되었다. 김씨는 자신의 삶을 돌아
보았다. 15년 간의 감금 생활 아닌 감금 생활
을.그 생활에 낭만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
다. 파도소리도, 갈매기 울음소리도, 바닷바람
도 지겹기만 했다. 매일 마주치는 퉁명하고 무
뚝뚝한 아내마저도.
김씨는 언제부턴가 스쳐 지나가는 배들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로 가는 꿈을 꾸곤 했다.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한 소리가 있는 곳, 훈
훈한 인정이 있는 곳, 삶에 변화가 있는 곳으
로.
매일매일 꿈을 꾸면서 사는 동안 김씨의 가
슴속에서 그 꿈은 애드벌륜처럼 부풀어갔다.
그런데 미스 정의 속삭임이 김씨의 가슴속에
떠 있는 애드벌룬을 뒤흔든 것이었다.
김씨는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피가
흐르지 않는 지긋지긋한 등대로 부터, 피도 눈
물로 없는 바다로부터, 지들만 끼리끼리 찧고
까부는 갈매기들로부터, 애정이 식어 버린 지
오래인 아내로부터.
“미스 정 만약 내가 떠나자면 같이 떠나 주
겠어?”
“물론이죠! 아저씨 가슴은 마치 바다 같아
요. 심장에서는 파도소리가 나요.”
미스 정은 콧소리를 섞어 말했다. 김씨는 미
스 정이 같이 떠나자는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 수없이 했을 거란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등대를 떠나고 싶어한
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미스 정을 만
난 뒤부터는 20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이 미워
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뭍으로 나갈 건수를 만
들어 툭하면 뭍으로 나갔다. 통장의 돈을 찾아
서 미스 정이 있는 살롱을 찾았고 술을 마셨
고, 그녀와 몸을 섞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스 정이 여관에서 긴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한 오천만 원만 있으면 모든 걸 정리하고
갈매기처럼 훌훌 떠날 수 있을 텐데. 둘이서 오
붓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휴우. 돈이 문제
예요!”
미스 정을 만날 때마다 듣는 푸념이었건만
그날은 달랐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
섭게 누군가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지 그래? 넌 할 수 있
을 텐데.
김씨는 속삭임을 듣고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김씨에게 오천만 원은 큰돈이었다. 등
대지기가 만질 수 있는 액수는 결코 아니었다.
김씨가 미도에서 15년 동안 생활하면서 쓰
고 남은 돈은 고작 850만 원이었다. 그것도 미
스 정을 만나기 전에 일이었다. 미스 정을 만
나고 나서 조금씩 빼 쓰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통장에는 고작 300여만 원이 남아 있었다.
행복의 대가가 오천만 원이라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야. 잘 생각해 봐. 넌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하면 그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
문득 일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김씨는 머
리를 저었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쉽게 지워
지지 않았다.
김씨가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은 일 년 전이
었다.
패리호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김씨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하나뿐이 없는 딸 미원이었다. 자식이 없
어 고민하는 사촌에게 양육을 부탁한 지 10년
이 지났지만 한시도 있은 적이 없는 김씨였다.
김씨 내외는 천만 원만 모으면 등대지기를
그만두고 뭍으로 나가 미원이와 함께 살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 년 전부터
일 년에 서너 번씩 오던 사촌의 발길이 뚝 끊
어지고 말았다.
미원이를 자기 자식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
이 생긴 걸까. 김씨는 사촌의 소식을, 아니 미
원의 행방을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미원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
다. 당장이라도 미원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김씨는 패리호 사건이 실린 기사를 읽으면
서 미원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
었다. 심한 태풍이 불어오면 아내와 자신이 죽
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 보니 미원이 더없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김씨는 아내와 미원이의 장래에 대한 이야
기를 나누다가 결국 1억원짜리 생명보험을 들
기로 합의했다. 김씨나 아내 중 어느 한 사람
이라도 사고로 죽으면 탈 수 있는.
이제 알겠나? 어떻게 하면 오천만 원을 모
을 수 있는지?
귓가에 음산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 왔
다. 김씨는 한 차례 몸서리를 쳤다. 그리곤 세
차게 머리를 저었다.
다음 날 김씨는 다시 미도로 돌아왔다. 지리
한 섬 생활은 다시 이어졌다. 김씨는 막막한
수평선을 보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마다 내면 속에서 은밀한 속삭임이 들려
왔다.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시간이 지나
면서 김씨는 차츰차츰 그 속삭임에 길들여졌
다. 미스 정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꾸려 나가
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은 치러야 한다는
속삭임에 세뇌당해 갔다.
“여보! 어서 내려와요!”
다시 아내의 짜증 섞인 음성이 들려 왔다.
김씨는 담배를 눌러 끄고 나서 천천히 섬을
둘러보았다. 섬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때문
인지 더욱 더 황량하게만 느껴졌다.
육지와의 통신 수단은 오직 단파 무전기 한
대뿐인 고도(孤島). TV도 날씨가 좋을 때만
KBS1만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문명에 따돌림
당한 섬. 15일마다 음식품과 보급품, 편지, 식
수 나부랑이를 싣고 찾아오는 연락선이 통신
수단의 전부일 정도로 철저하게 차단당한 섬
이었다. 간혹 다른 섬으로 가는 배들이나 낚시
배가 들리곤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였다.
이러한 섬의 특징을 잘 이용해야 해, 알겠지?
김씨는 은밀한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와 마주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김씨는‘그
일’을 내일 실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텔레비전을 켜 보았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끄고 밖으
로 나갔다. 바닷 바람이 제법 무서웠다. 태풍
이 북상중이라는 일기 예보가 오전에 들은 김
씨이기에 그 영향이려니 생각했다. 태풍의 예
상 진로는 동해를 거쳐 일본으로 간다니 그리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병신 같은 년!”
시커먼 밤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김씨는 아내
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다. 사촌이 찾아와서 미
원을 훌륭하게 키워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거
절하지 못한 아내가 더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오 년 전에 보았던 딸아이의 칭얼대는 얼굴
이 떠올랐다. 미원은 오랜 만에 만난 김씨의
품에 안기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다. 김씨는 목
젖을 드러내고 우는 미원의 모습이 더없이 사
랑스럽게만 느껴져 눈시울을 몰래 적셔야 했
었다.
“다 지난 일이야.”
김씨는 남은 미련을 훌훌 바다 위에 띄워 보
냈다. 그리곤 순두부처럼 뽀얀 미스 정의 속살
을 떠올렸다.
“다시 시삭하는 거야, 이 놈의 지겨운 바다
를 떠나.”
김씨는 어둠 속에서 뒤채는 바다를 바라보
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드러누워 있었
다. 김씨는 아내의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밤은 깊어 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바닷바
람이 문고리를 요란스럽게 흔들어 댔다. 겁 많
은 개 워리가 시끄럽게 짖어 댔다.
쌍놈의 바람!
이부자락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오늘 밤만
지나면 이 섬과도 마지막이라는 위안을 하며
김씨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었
다. 비는 간간이 뿌렸지만 파도는 잔잔한 편이
었다.
김씨는 일어나자마자 등대로 올라가 등대불
을 껐다. 망원경으로 바다를 한번 천천히 둘러
보고 내려오니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오늘은 어째 날씨가 음산하네요.”
아내는 평상시처럼 밥상머리에 앉아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김씨는 들은 척도 안 하
고 분주히 수저를 놀렸다. 둘 사이에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됐기에 아내 역시 그런 김씨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김씨가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사이에 아내
는 상을 치웠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워리가
탐욕스럽게 밥그릇을 핥고 있을 뿐 아내는 보
이지 않았다.
마당 뒤로 돌아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잔뜩 웅크리고 앉아 고무
마를 캐는 아내의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김씨
가 말을 붙였다.
“여보, 오늘 오후에는 등대 청소 좀 해야겠
소. 어제 올라가 보니 렌즈가 너무 지저분하더
라고. 특별히 오후에 할 일 없지?”
“꼬딱지 만한 섬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
겠어요.”
아내가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김씨는 점심을 먹고 나서 설거지하는 아내
를 놔 두고 등대로 먼저 올라갔다. 혼자서 머
릿속으로 수없이 해 본‘그 일’의 과정을 되씹
고 있는데 아내가 올라왔다.
“바깥 유리부터 닦아야겠어.”
김씨는 아내와 함께 등대 베란다로 나갔다.
맨 끝쪽에서부터 김씨는 유리를 닦아 나갔
다. 아내가 그 옆에서 열심히 물묻는 걸레를
문질러 댔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졌다. 김씨는 슬쩍 밑을
내려다보았다. 등대의 높이는 15미터 정도였
다. 하지만 밑은 날카로운 바위가 깔려 있어
떨어지게 되면 즉사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빤
했다.
김씨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걸레질을
하는 아내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았다. 아내는
이제 고작 마흔둘이었지만 바닷 바람에 시달
려 얼굴 가득 주름살로 뒤덮여 있었다. 순간적
으로 아내에 대한 연민이 치솟았다. 그 순간,
귓가에서 예의 속삭임이 들려 왔다.
인생을 이 섬에서 종치고 싶은 거야? 뭘 망
설여!
김씨는 흩어지려는 의식을 하나로 모았다.
김씨는 떨리는 손으로 창틀을 잡았다. 유리문
을 열려고 하는데 안 열려서 허공을 헛친 것처
럼, 아내의 가슴팍을 팔꿈치로 힘껏 밀었다.
“으흑!”
아내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김씨는
눈을 감았다. 이미 머릿속으로 수없이 해 본
연습대로라면 아내는 난간에 다리가 걸려 머
리부터 등대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퍽’하는 소리가 들려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데 아내의 다급한 음성이 날아왔다.
“여보, 살려 줘요!”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급히 돌아보니
아내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기 , 기다려!”
순간적으로 당황한 김씨는 아내에게 다가갔
다. 그리곤 손을 내미어 난간을 잡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아내를 위로 끌어올리는데 눈
이 부딪혔다. 죽음을 눈치챈 걸까. 한 순간, 아
내의 눈에서 원망과 공포의 빛이 서렸다.
김씨는 끌어올리는 척하다가 아내를 거세게
뒤로 밀어 버렸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아내의
머리부터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마네킹처럼 떨어져 내렸고 이어서
‘퍽’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김씨는 붉은 피를
흩뿌린 채 누워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잘 했어! 이제 다 끝난 거야.
속삭임이 다시 귓가에 들려 왔다. 김씨는 아
내의 마지막 눈빛을 떠올리며 담배를 물었다.
가슴이 무거웠다. 담배연기에 죄의식을 실어
서 멀리 날려 버리고서 등대를 내려갔다.
아내는 사망 여부를 확인할 것도 없이 확실
하게 죽어 있었다. 머리부터 떨어졌는지 한쪽
머리가 완전히 으깨어져 있었다. 검은 머리카
락 사이로 뇌수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쪽 눈
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가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가고 있었다. 김
씨는 아내를 들쳐 멨다. 그리곤 집으로 달려갔다.
마루에다 아내를 내려놓은 뒤에 충무 해운
항만청으로 급히 무전을 쳤다. 부인이 등대에
서 발을 잘못 디뎌 떨어졌으니 급히 배를 보내
달라고.
긴급 구조 요청을 받은 담당 직원은 당장 배
를 보내겠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무전기를 내
려 놓은 김씨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앞으로 길어도 3시간 반이면 모든 것이 끝나
겠지.
김씨는 다시 한 번 보험회사 쪽 입장에서 천
천히 되짚어 보았다.
일단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보리라. 하
지만 살인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지 않
은가? 추락 직후에 당황스런 목소리로 신고를
했으니 완벽하지 않은가? 그럼 이번에는 아내
를 잃은 자상한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내가 등대에서 추락해 떨어졌다. 당황해서
일단 구조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할까? 그렇지! 치료를 해야지!
김씨는 참혹한 모습으로 마루에 쓰러져 있
는 아내를 내려다보다가 방으로 신발을 신은
채 뛰어 들어갔다. 담요를 꺼내서 죽은 아내의
몸을 감쌌다. 그리곤 구급약품통을 가지고 와
서 붕대를 꺼냈다.
일단 뭉개진 머리를 붕대로 감았다. 남은 한
쪽 눈이 빤히 쳐다보았다. 애써 외면하고 서둘
러 붕대를 감는데 왼쪽 순에 물컹한 것이 잡혔
다. 붕대를 감다 말고 쳐다보니 빠져 나온 한
쪽 눈알이었다. 한쪽 눈알이 뚫어지게 김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악!”
김씨는 질겁을 해서 눈알을 마당에 던져 버
렸다. 그리고서는 서둘러 붕대를 마저 감았다.
피 묻는 붕대를 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흉
측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창고에 집어 넣어
두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달려올 걸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내를 방 안으로 옮겼다. 살아 있을 때는
같잖게만 보이더니 죽고 나니 웬지 모르게 무
섭게 느껴졌다. 붕대를 감아 놓고 나니 마치
살아 있는 시체처럼 으시시했다. 얼굴을 반대
편으로 돌려놓고 쾌속정 엔진소리가 들려 오
기만을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은데 배는 오지 않았
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가고 있었다. 김씨
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방
에 길게 누웠다.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쉽게 분간이 안 갔다. 김씨
는 누워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았
다. 김씨는 숨을 죽이고 있으니 아내가 김씨를
내려다보았다. 하나만 남은 눈으로. 파란 눈동
자에서 붉은 실핏줄이 꿈틀거렸다.
아내가 두 손을 김씨를 향해 뻗었다. 김씨는
물러서고 싶었지만 뒤는 방바닥이었다. 아내
의 피묻는 두 손이 점점 다가왔다.
“아악!”
김씨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무전기 소리가 들려 왔다. 벌떡 일어난
김씨는 옆자리의 아내를 살폈다. 아내는 담요
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휴우 꿈이구나!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무전기를 향해 무릎걸
음으로 다가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
었다. 핸드폰을 끼고서 송신기를 들었다. 시끄
러운 기계음과 함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 왔다.
“아아 여기는 해안경찰 초소, 해안경찰 초
소 미도에서 보낸 신고는 접수했으나, 갑자기
파도가 높아져서 도저히 항해가 불가능하다.
파도가 잔잔해지는 대로 즉시 출동하겠다, 오버”
“여기는 미도, 여기는 미도! 아내는 벌써 죽
은 것 같다. 빨리 와 달라, 오버”
“여기는 행안경찰 초소 여기는 해안경찰 초
소 파도가 사오 미터 높이로 솟구쳐서 항해
불가능 찌찌찌찌찌직!”
“여기는 미도다! 여기는 미도 내 말 들리는
가?”
김씨는 송신기에 대로 고함을 질렀다. 끊어
진 줄 알았던 무전기에서 드문드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풍의 영향 남해 전지역에 폭풍 주의보 모
든 배들이 항구로 돌아오고 있다. 현재 항해
불가능 이상, 통신 끝 찌찌찌찌찌직!”
김씨는 멍히 앉아 있다가 마당으로 뛰어나
갔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예사
태풍이 아니었다. 살인에만 신경쓰느라고 바
람이 점점 거세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경험에 의하면 바람이 이 정도라면 A급 태
풍이 분명했다. A급 태풍이 멀리서 북상하고
있는 중이라면 앞으로 이삼 일은 배가 못 뜰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무섭게 일렁거리는 파도를 보고 있는데 뭔
가가 잡아끌었다. 질겁을 해서 돌아보니 워리
였다. 워리가 꼬랑지를 흔들며 바지가랑이를
물고 있었다.
“저리 가!”
김씨는 달라붙는 워리를 거칠게 뿌리쳤다.
빈 방안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공포가 느껴졌
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곤 개 한마리와 자기밖
에 없는 섬에서 시체와 함께 이삼 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음산한 공포감이 전신을 에
워쌌다.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을 죽은
아내와 함께 지샐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김씨
는 방으로 들어가 아내를 들쳐 맸다. 서둘러서
시체를 발전기가 있는 창고로 옮겼다.
김씨는 창고 문을 닫은 다음에 등대로 올라
갔다. 등대의 불을 켜고 집으로 들어갔다. 손
에 묻은 피를 닦고서 옷을 새로 갈아입었다.
텔레비전을 켜 보았지만 불통이었다. 라디
오도 마찬가지였다. 요란한 파도소리와 함께
어둠이 조금씩 밀려 들어왔다. 바다가 표호하
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 왔다. 십오 년을 바다
에서 살아왔지만 바다가 이처럼 무섭게 느껴
지기는 처음이었다.
밤 아홉시쯤 되어서 갑자기 집안의 불이 모
조리 꺼지고 암흑 천지가 되었다. 좀처럼 없는
현상이었다. 김씨는 손전등을 켜들고 밖으로
나가 봤다. 등대의 불은 그대로 켜져 있었다.
집으로 연결된 두꺼집의 퓨즈가 나간 모양이
었다.
김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발전기가 있는 창
고로 갔다. 비바람이 새차게 불어왔다. 창고의
문을 여니 피비린내가 났다. 벽을 더듬어 스위
치를 올렸지만 창고의 불도 나갔는지 불이 들
어오지 않았다.
아내가 누워 있는 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다. 어둠 속에서 담요가 설핏 비쳤다. 용
기를 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 보았다. 아
내는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다.
두꺼비집을 열고 퓨즈를 살피다 보니 등 뒤
에서 섬칫한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이 창고문
을 요란하게 흔들어 댔다. 갑자기‘덜컹’하며
창고문이 열렸다. 이윽고 거센 바람이 불어 왔
다.
김씨는 문을 닫고 오려고 걸음을 옮겼다. 문
을 닫으려는데 천둥번개가 쳤다. 무심코 문을
닫고 나니 희끗희끗한 것이 문 밖에 서 있었다
는 느낌이 들었다. 무섬증이 일었지만 용기를
내서 문을 살짝 열었다.
아내였다! 아내가 하얀 소복을 입고 문 밖에
서 있었다. 천둥이 번쩍거릴 때마다 붕대를 감
은 한쪽 눈이 드러났다. 김씨는 심장이 얼어붙
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문을 닫았다. 벽에 등
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헛 것을 본 걸 거야.맞아, 내가 잘못 보았겠
지. 아내는 여기에 누워 있는데.”
김씨는 중얼거리면서 플래쉬로 아내가 있는
곳을 비춰 보았다. 허전했다. 다시 플래쉬를
그 옆으로 이동했지만 아내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김씨는 창고 안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두꺼
비집이 있는 곳을 비춰 보니 아내를 감쌌던 빨
간 담요가 서 있었다.
저게 뭐지? 왜 시체가 저기에 서 있는 거지?
김씨는 용기를 내서 천천히 다가갔다. 담요
에 슬그머니 손을 얹어 보았다. 허전했다. 이
상한 기분이 들어서 담요를 확 잡아당겼다. 빈
담요였다.
“나를 찾나?”
등 뒤에서 음산한 음성이 들려 왔다. 고개를
돌렸다. 아내였다. 붕대를 푼 아내가 노려
보고 있었다. 한쪽 눈알이 빠져 나간 자리에서
시뻘건 불길이 너울너울 타오르고 있었다.
“아악!”
김씨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꿈이었다.
방 안은 어둑컴컴했다.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
다. 김씨는 소켓트 스위치를 돌려 봤지만 불이
나갔는지 들어오지 않았다.
요의를 느끼고 김씨는 일어났다. 그 순간,
발 아래 뭐가 누워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윗
목을 더듬어 플래쉬를 찾았다. 그리곤 플래쉬
로 밑을 비워 보았다.
시커먼 물체는 놀랍게도 아내였다! 아내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붕대는 풀어져
있었다. 퀭한 눈을 보고 있으니 가위에 눌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김씨는 털썩 주저앉
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제정신을 차린 김
씨는 시체가 어떻게 해서 방으로 다시 돌아오
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체를 창
고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다시 시체를 들쳐 멨다. 주룩주룩 쏟
아지는 비를 맞으며 창고로 갔다. 창고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문을 열고서 그대로
시체를 창고 안으로 던졌다. 문을 꼭 닫은 뒤
에 자물쇠로 창고문을 잠갔다.
방으로 돌아온 김씨는 방문을 잠갔다. 촛불
을 켜놓고 자리에 누웠다. 비로소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김씨는 공포로부터 달아나기 위
해 미스 정의 부드러운 속살을 떠올렸다. 정신
집중이 안 됐지만 최대한 미스 정만을 떠올리
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김씨는 미스 정과 정사하는 꿈을 꿨다. 미스
정이 김씨의 몸 위에서 활처럼 몸을 꺾었다.
김씨는 미스 정의 전신을 더듬다가 이상한 기
분이 들어 눈을 떴다.
“아악!”
김씨는 몸 위에 있는 시커먼 물체를 밀쳤다.
아, 아내였다. 죽은 아내가 김씨의 몸 위에 누
워 있었다.
방문을 보았다. 문은 잠들기 전처럼 분명 잠
겨 있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머
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김씨는 아내를 다시 들쳐 메고 창고로 뛰었
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김씨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흐느
끼면서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문을 열려고 하니 자물쇠가 채워져 있
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깨에 메고 있
는 것을 내려놓았다. 빨간 담요는 있는데 아내
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쳤다. 김씨는 누군간 옆
에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깜짝 놀
라 고개를 돌렸다. 아내였다! 입가에 붉은 피
를 흘리며 아내가 미소를 띄웠다.
“저, 저리 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눈을 떠 보니 방 안이
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는 여
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날은 훤히 밝아 있었다.
다급히 무전기에 달라붙어 무전을 쳐 보았
지만 불통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정도로
봐서는 오늘도 배가 뜨기는 틀린 것 같았다.
김씨는 불통이 된 무전기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잠깐 잠잠해졌던 비바람이 거
세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 오자 전
깃불이 나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밤도 전깃불 없이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김씨는 망설이다가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창고로 갔다.
창고문을 굳게 잠겨 있었다. 창고 문을 열자
제일 먼저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어제
저녁에 던져 놓은 그 자세 그대로 엎어져 있었
다. 김씨는 시체를 외면하고 두꺼비집을 살폈다.
퓨즈는 이상이 없었다. 발전기 자체에도 이
상은 없어 보였다. 아무리 눈을 뒤집고 찾아보
았지만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한 시간 가량 살펴 본 김씨는 집으로 연결된
전깃줄이 중간에서 끊어졌다고 결론을 내렸
다. 전깃줄을 갈면 말끔히 문제는 해결되리라.
하지만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 어둠이 짙게 깔
리고 있으니 작업은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어둑어둑해진 창고를 나섰다. 창고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자물쇠를 채웠다. 집으
로 돌아와 손을 씻으려는데 오른쪽 어깨에 피
가 묻어 있었다. 깜짝 놀라 옷을 벗어 보았다.
잠자기 전에 새옷으로 갈아입었던 기억이 났다.
기분이 찜찜해 물로 핏자국을 씻어냈다. 밖
으로 나오니 워리가 마루 밑에서 뭔가를 혓바
닥으로 핥고 있었다. 뭔가 유심히 살폈더니 아
내의 빠진 눈이었다. 김씨는 질겁을 해서 워리
에게 달려들어 눈알을 뺐었다. 그리곤 멀리 던
져 버렸다.
방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그 동안 한
끼도 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
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서 빨리 태풍이
지나가고 구조대가 섬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촛불을 켜고 방문을 잠갔다. 잠이 들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이부자리에 누워서 무협지를 펼쳤
다. 벌써 서너 번 읽은 무협지였지만 김씨는 밤
새도록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 볼셈이었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가 창
고문을 열고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지도 모
른다는 망상이 들었다. 김씨는 무협지를 읽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잡념을 쉽게 사라지
지 않았다. 김씨는 정신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이마를 책에다 대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고 다시 책을 읽으
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났다.
김씨는 천천히 일어나서 피비린내가 나는
곳으로 촛불을 들고 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워리였다. 워리는 목이 참혹하게 잘려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으흐흐흐!”
공포로 벌렁거리는 심장을 짓누르며 김씨는
뒷걸음질 쳤다. 벽 쪽으로 가다 보니 발 아래
뭔가 걸렸다.
“허억!”
천천히 돌아보니 아내였다. 아내는 방 아랫
목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방문을 보았다.
문고리는 분명 잠겨져 있었다. 김씨는 이 모든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급히 몸을 돌려 무전기로 달려갔다. 그리
곤 무전기를 켜고서 빠른 목소리로 절규했다.
“여기는 미도 제발 나를 이 지옥에서 빼내
줘! 시체가 살아나 나를 쫓아다녀. 구해 줘! 난
죽기 싫어 빨리! 흐흑!”
아무리 절규해도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응답
이 없었다. 김씨는 무전기 앞에서 오열하다가
도끼를 발견했다. 김씨는 아내와 도끼를 번갈
아 쳐다보다가 한순간 미소를 띄웠다.
이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
것뿐이었다. 김씨는 도끼를 힘껏 움켜쥐고 아
내에게 다가갔다.
“흐흑 제발 나를 쫓아다니지 마! 알았어? 흐
흑! 무섭단 말야!”
김씨는 공포에 질려 엉엉 울면서 도끼를 휘
둘렀다. 김씨가 휘두르는 도끼에 의해 아내의
시체는 여러 조각으로 잘리워져 갔다. 머리,
몸통, 두 손, 두 다리
시체가 여섯 토막이 나자 김씨는 도끼질을
멈췄다. 그리곤 시체 여섯 토막을 쌀자루에 넣
었다. 시체를 메고 섬을 돌아다니며 김씨는 곡
괭이로 땅을 파서, 시체를 한 부위씩 묻었다.
이제 김씨에게 보험금이나 완전범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내의 시체만 다시 보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했다. 좁은 바위섬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여섯 곳에다 아내의 시체를
모두 묻었다.
천둥 번개가 쳤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번개가 자신에게 쳐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해
도 하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
다. 김씨에게 다가온 공포는 죽음보다 더한 것
이었다.
곡괭이를 메고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방안으
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벽장을 더듬어 아내가
담가 놓은 자두주를 꺼내서 마시기 시작했다.
유리잔에 가득 자두주를 채웠다. 촛불에 비
춰 보니 술이 아니라 피 같았다. 김씨는 피를
마셨다. 문이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아내가 춥
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
았다.
김씨는 서둘러서 술잔을 비웠다. 커다란 유
리 항아리에 담가 놓은 술을 모조리 비우고 나
니 머리가 멍했다.
세상 만사가 하찮게 느껴졌다. 태풍도 죽음
도 두렵지 않았다. 김씨는 방 한가운에 벌렁
누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
팠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갔는지 창문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김씨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방안에 널린 핏자국과 방 한구석
에 세워져 있는 흙 묻은 곡괭이를 보니 어젯밤
의 일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목이 말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뭔가 물컹한 것이 짚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내, 토막난 아내가
흙을 잔뜩 뒤집어쓴 채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퀭한 아내의 눈에는 김씨가 멀리 내던졌던 눈
알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 옆에 목 잘린 개의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아아악!”
김씨는 비명을 지르며 방안을 뛰쳐 나갔다.
멀리서 쾌속정이 물살을 가르고 달려오는 소
리가 들려 왔다.
보험 사정원인 태수가 충무에 내려온 것은
미도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뒤였다. 태수는
경찰서를 둘러보고, 현장인 미도를 둘러보고
등대지기 김씨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까지
둘러보았지만 김씨 아내인 문자의 죽음이 실
족사인지 타살인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김씨가 친 첫번째 무전에 의하면 문자의 죽
음은 실족사임이 분명했다. 부검 결과도 두개
골 함몰인 걸로 봐서는 등대에서 실족해서 죽
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왜 김씨는 자신의 아내를 토막냈
을까? 태수가 아무리 풀려고 안간힘을 써도
풀어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김씨는 마지막으
로 보낸 무전에서 죽은 아내의 시체가 살아나
자신을 쫓아다닌다고 절규하고 있었다. 그렇
다면 단순한 공포심 때문에 아내를 토막내서
묻어 버린 걸까? 그렇다면 육시를 낸 아내의
시체를 왜 다시 파냈을까?
해양 경찰인 박 경장은 태풍에 멎어 미도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끔찍하더군요. 차마 인간의
소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광
경이었어요. 아내의 시체는 토막난 채 널려 있
고. 우리는 김씨를 찾아 섬을 뒤졌죠. 김씨는
등대 위에 숨어 있더군요. 부들부들 떨면서. 도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 말
도 없더군요. 자세히 봤더니 이상하더라고요.
눈동자는 완전히 풀어져 있고 침은 질질 흘
리는데 마치 광견병에 걸린 것 같더군요.”
태수는 광견병에 걸린 것 같더라는 박 경장
의 말에 혹시나 해서 충무시내의 인근 병원을
뒤져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김씨의 본적지인 남해로 가서 병원을 전전
한 결과 김씨의 병력(病歷)을 캐낼 수 있었다.
김씨는 젊었을 때 한동안 몸유병을 심하게 앓
은 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당시 김
씨의 몽유병은 거의 완치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태수가 병원을 나서려는데 의사가 덧붙였다.
“하지만 몽유병은 심한 스트레스나 강박 관
념이 생기면 재발하는 병입니다.”
태수는 의사의 부언을 듣고서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김씨가 실족사를 가장해서 보험금을 노리고
부인을 죽였다? 막상 부인을 죽이고 나니 죄
의식이 들었다. 결국 그 압박감으로 인해 몽유
병이 재발했다? 그래서 맨정신으로 아내의 시
체를 창고에다 옮겼다가 무의식 중에 다시 방
으로 끌어들였다. 깨어나 보니 너무도 무서워
아내의 시체를 여섯 토막을 냈다. 섬을 돌아다
니면서 아내를 묻었고 무의식 중에 다시 시체
를 파냈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파묻은 아내가
옆에 누워 있고 그래서 결국 미쳤다?
태수는 그 동안 구한 자료를 다시 한 번 면
밀히 검토해 보았다. 최종적으로 태수는 김씨
가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살인이라고 결론
지었다.
태수는 본사에 사건기록에다 의견서를 첨부
해 팩스로 발송한 뒤 다시 충무로 갔다. 사건
해결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박 경장과 뒷이야
기나 하면서 술을 한잔 마시기 위해서였다.
부둣가 선술집에서 준수는 박 경장과 마주
앉아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다 보니 의기가
투합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도 태수의 머리를 떠
나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왜 김씨가 보험금
을 노리고 살인을 했을까? 왜?
분명히 큰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있을 것
인데...
박 경장은 자기가 한 턱 내겠다며 부둣가에
있는 살롱으로 호기 있게 준수를 끌고 갔다.
태수는 술김에 그 의문점을 박경장에게 물어
보았다.
박경장도 술에 취했는지 이상한 대답을 해
주었다.
“그 이유라... 사실 그 사건 이후로 이 마을
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 등대지기 김씨가 홀렸던 서울에서 온 미
스 정이라는 술집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랑 살림을 차리기 위해 그런 살인을
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경찰이 조사하지 못한 이유
가 있었어요...
등대에서 살인이 발생하던 폭풍우 치던 그
날 밤, 부둣가에서 그 미스정이 익사한 시체로
발견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자가
사는 집은 등대로 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
데, 그 여자는 잠옷 바람으로 발견되었어요...
그 여자도 몽유병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얘기도 있었요...
억울하게 죽은 김씨의 부인의 혼령의 복수
라고요...
바닷가에는 이런 이상한 얘기가 항상 많이
떠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