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PC방에서 리니지를 하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데이 한 장을 주워도, 보스를 잡고 아이템 하나를 얻어도 그들은 음료수를 돌렸다.
디지털로 찍힌 조각 하나에 그렇게 기뻐했다.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성을 먹겠다고 모여 앉아 밤을 새우던 그 사람들의 표정을.

계정비만 받던 시절, 게임은 단순했다.
시간을 들이면 강해졌다.
보스를 잡으면 아이템이 떨어졌다.
그 안에는 낭만이 있었다.
노력과 보상이 이어져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나도 그 세계를 사랑했던 게이머였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믿어보았다.
엔씨를.
추억을.
클래식이라는 말을.

그리고 오늘, 미련 없이 접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엔씨는 여전히 엔씨였다.

어느 날부터 밸런스를 건드리는 캐시템이 등장했다.
아인하사드라는 축복이 생겼고, 사지 않으면 성장이 멈췄다.
보스는 아이템을 제대로 떨구지 않았고, 드랍은 파편이 되었다.
그리고 그 파편은 다시 현금이 되었다.

그때도 나는 접었다.

엔씨가 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게이머의 탓에서도 찾는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자의 죄다.
두 번은 어리석음이다.
세 번이면 공범이다.

돈을 쓰는 것이 죄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사는지 모른 채 충성이 되면
시장은 그 방향을 옳다고 기록한다.

린저씨는 멸칭이다.
나는 그 말이 불편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게임 산업이 이 지점까지 온 데에는
팔아도 사주는 소비가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리니지라이크를 혐오한다.
나는 그것을 게이머의 각성이라기보다
소비자의 피로라고 본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다.
그런데 이제 게임은 결과를 산다.
자동사냥이 당연해지고
과정은 지워졌다.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 말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정이 비어 있는 결과는
언젠가 공허해진다.

뒤처질까 두려워 편법을 쓰고
현금을 넣는 것을 합리화한다.
그 구조를 설계한 쪽은 회사다.
그러나 그 구조를 유지한 것은 소비다.

오늘 엔씨는 ‘클래식’이라는 이름 위에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하게
방향을 드러내는 아이템을 올려놓았다.

접을 사람은 접었다.
남을 사람은 남았다.
나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쓸쓸할 뿐이다.

오늘 어떤 유튜버가 울었다.
우스웠고, 동시에 슬펐다.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은 어른의 얼굴이었다.

추억은 복구되지 않는다.
시간은 패치되지 않는다.

임상옥의 말이 떠오른다.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돈은 물과 같아서 고이면 썩는다.

엔씨에게 묻고 싶다.
재미만으로도 지갑을 열던 그 아저씨들,
당신들과 초창기를 함께한 게이머들에게
이 길이 정말 맞는지.

망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는 안 된다는 신호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게임은 결국 재미다.
그 단순한 문장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라도 실천하겠다. 실천은 거대한게 아니다. 안사고 관심을 거두면 된다.


이번만큼은 게이머들이 각성하길바란다.


작은실천이 큰실천으로 그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주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