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원피스를 본 독자라면 이 사진 속에 나오는 배를 "밀짚모자 일행의 배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배가 정말로 "밀짚모자 일행의 배"일까?



이 배도 밀짚모자 일행의 배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 두 배 중 밀짚모자 일행의 배는 어떤 배인가" 라고 묻는다면,

어느 배가 밀짚모자 일행의 배라고 말할 것인가? 참고로 두 배가 나오는 분량은 비슷하다.

분명히 다른 배이고, 다른 시간대에 등장한다. 하지만 두 배 모두 밀짚모자 일행의 배라고 말할 수 있다.

테세우스의 배는 형이상학적으로 보았을때 난제에 가깝다 . 막연히 정답이라고 칭할만한 게 없다.

































루스카는 카인의 누나이다. 그리고 그런 누나를 카인은 아낀다.

카인의 스토리 끝에서, 루스카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지운다.

루스카가 카인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들을 한다면, 카인은 그런 루스카를 처단할 수 있을까?

그런 고뇌 이전에, 기억을 지운 루스카는 카인이 알던 그가 아끼는 친육인 루스카라고 할 수 있을까?

닥터 Y는 강제로 루스카의 기억을 지우지도 않았고, 그것은 오롯이 루스카의 선택이었다.

그런 루스카를 과연 카인이 죽일 수 없는 혈육이리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타인에 불과하지 않을까?

만약 루스카가 아니라 닥터 Y가 만들어낸 루스카를 똑같이 닮은 생체 안드로이드라 말한다면 카인은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억만 다를뿐 똑같은 사람이니 카인이 루스카를 해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은 사람의 기준이나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봉인석을 몸에 품은 대적자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플레이어)은 스스로가 대적자라고 불리어지길 선택하지 않았다.

당신이 대적자를 처음으로 대적자라고 칭한 존재는 당신의 적인 검은 마법사이고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대적자라고 하였기에 타인이 당신을 대적자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당신이 봉인석을 품었기에 당신이 대적자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닌 시그너스 여제가 봉인석을 품었다면 그녀가 대적자일 것이고

지그문트가 봉인석을 품었다면 지그문트가 대적자였을 것이다.


대적자는 운명을 대적하는 존재이다. 그럴까?

대적자는 봉인석을 품은 존재를 칭하는 말이다. 봉인석이 무엇인가?

봉인석은 오버시어가 만들어낸 고대신에게 맞서기 위한 신의 창이다.

다만 검은 마법사가 오버시어에게 반기를 들었기에, 고대신에게 쓰여야 할 봉인석이

초월적인 존재인 검은 마법사에게 쓰였을 뿐이다.

플레이어, 당신이 대적자라고 불리우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대적자가 된 것은 블랙헤븐에서의 폭발에 휘말려 죽기 직전인 당신에게 시그너스가 봉인석을 당신의 몸이 품게 했기 때문이고

검은 마법사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에스페라에서 타나를 살렸기 때문인데

그 선택은 제른 다르모어의 수하 멜랑기오르가 타나의 과거를 당신에게 보여줌으로서

과거의 크리티아스에서 죽고자 했었던 타나가 사실은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루스카가 적어도 자신이 스스로 기억을 지우길 선택했다면, 플레이어는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어를 대적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멸칭에 가깝다.

주어진 것에 대한 의심도 하지 않는,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 

운명이라고 포장되는 계획에 복종하는 노예.

자신이 구원자라고 착각하는 오버시어가 움직이는 줄에 매달린 인형.

그것이 대적자라고 할 수 있다.

























세르니움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장소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을 정의한다.

누군가는 신을 네로타라고, 또다른 누군가는 스피사라고, 누군가는 신을 미트라라고 칭한다.

세르니움에 하이레프가 침공했을 때, 그들은 간절히 신의 이름을 부르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은 팔마에 있다. 라는 말의 진의를 깨닫고 신성검 아소르로 하보크를 무찌른 세렌이지만

그런 그녀의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채 신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몸에 현신하고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그녀가 믿는 신은 그녀가 아닌 자신의 숙원, 대적자가 품은 봉인석에 대한 복수를 행한다.


세르니움에서, 대적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좌절감을 경험한다.

모두가 그를 신, 검은 마법사를 무찌른 자라고 찬양하고 예의를 갖추지만

그, 그녀 혼자서는 그 어떠한 것도 해낼 수 없고 봉인석의 강력한 힘을 다룰 수도 없다.

신학자 애런의 추측대로 봉인석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필요하니까.

결국 대적자라고 불리우는 존재는 허우대에 불과하고, "위대한 자"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게 대적자는 숙적 제른 다르모어에 의해 몸에 품은 봉인석을 잃게 된다.

이를 절망적인 상황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기회라고 불러야 할까?

대적자를 봉인석을 품은 자 라고 설명한다면 이제 당신(플레이어)은 대적자가 아니다.

리멘의 끝에서 하얀 마법사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당신을 처음으로 '대적자'라고 불렀던 존재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되새겨준다.

직업마다 다른 하얀 마법사의 스크립트는, 당신의 매몰되었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제 당신은 대적자가 아니다. 대적자란 봉인석을 품고 운명에 대적하는 자이니까.

하지만 봉인석이 없으면 운명에 대적할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봉인석이 없다고 하여 그동안의 당신이 행해온 일들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일 뿐, '대적자'같은 단어 따위로는 당신, 플레이어를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봉인석이라는 당신을 도구로 만들면서도 힘을 부여하던 족쇄는 사라졌지만, 제른 다르모어라는 존재는 검은 마법사에게 견줄만큼 강대해 보이기만 한다.







































그런 당신의 앞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지의 힘,

그 힘을 다루는 초월적 존재들에게 향하는 탑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