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시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야전 의무관 그 이상의 존재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맑은 하늘처럼 빛나는 눈동자에 방글방글 웃는 매력적인 미소, 그리고 모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늘씬한 몸매는 뭇 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외모만큼이나 능력도 뛰어났다. 다재다능했고, 부지런했으며, 윤리 정신도 투철하고 사는 것도 검소했다. 요즘 세상에 어디 하나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이 있겠냐마는,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정말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었다.

 어쨌든 앙겔라 박사의 위상은 무척이나 드높았다. 게다가 자칫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는 오버워치의 이미지가 그녀의 행적을 통해 훨씬 완화되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홍보 책자 따위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실리는 게 그녀의 사진이었으니까……. 무서운 건 그녀의 숨은 팬들 사이에선 그런 사진마저도 고가로 거래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오버워치는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버워치에서 벗어나기엔 너무 많이 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피를 토할 정도로 괴로워한다고 해도, 약이 아니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져 있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오버워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책임감과 윤리 의식이라는 쐐기가 그녀의 두 발등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 상태에 대해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이, 진흙탕에서 멈춰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정작 본인이 그런 자각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무대는 화려하지만, 그 속은 추악하고 더러운 인과 관계에 휩싸여 있는 비극이었다.


***
 

 “치글러 박사님?”
 “네에! 아, 네? 아…아야야!”

 우당탕!

 그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으나,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마치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머그컵이 박살나는 건 덤이었다. 치글러 박사는 자기 앞에 있는 간호사를 향해 맥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머, 어떡해……. 죄송해요. 제가 치울게요. 다음부턴 종이컵에 먹던지 해야겠어요.”
 “치글러 박사님, 피! 손가락 다치셨어요. 만지지 마세요!”

 손을 잘못 짚은 모양인지, 치글러 박사의 손은 처음부터 피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에서 덜 깬 듯, 아니면 약에 취한 듯 멍한 표정으로 피가 철철 나는 손만 볼 뿐이었다. 마치 고장 난 태엽 인형 같았다.

 “그래, 무슨 일이죠? 맥머도 씨가 다시 발작 증세를 보이나요? 아니면 콜버그 씨가 의식을 되찾으셨나요? 아니면…….”
 “아무 일도 없어요, 박사님. 지금 문제가 있는 건 박사님이세요!”
 “저요?” 치글러 박사가 짐짓 놀랐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머, 이런 건 상처 축에도 못 껴요. 일에는 아무 지장도 없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치글러 박사는 척척 응급처지를 했다. 핀셋으로 컵 조각을 다 뽑고, 소독을 한 다음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쌌다. 어찌나 능숙한 손놀림이던지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간호사의 표정엔 질렸다는 걸까, 아니면 끔찍하다는 느낌이 걸려 있었다. 치글러 박사의 행동은 무감각했다. 그것은 치료라기보다는 수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치글러 박사님.” 간호사가 침착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벌써 몇 주째 제대로 잠도 못 주무셨잖아요. 제발 부탁이니 이제 그만 쉬세요.”
 “미안해요. 하지만 전 정말 괜찮아요. 밖에서 우리 요원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뭐라도 안 하면 불안해서 그래요. 게다가 일도 많잖아요, 그렇죠? 제가 빠지면 힘들어 하실 분들이 너무 많아요.”
 “…….”

 간호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불행히도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현재 그들은 오버워치의 전력 중 반 이상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사태에 직면해 있었고, 오버워치 의무팀은 그로 인해 끔찍하게 바빴다. 의무팀장인 치글러 박사의 책임이 무척이나 막중한 시기였다. 그래도 간호사는 걱정스러웠다. 왜냐하면…….

 삑

 [치글러 박사님! 긴급 환자입니다! 빨리 응급실로!]
 “네, 바로 갈게요! 자, 어서 가죠.”
 “……네.”

 치글러 박사는 얼른 백의를 챙겨 입었고, 간호사는 치글러 박사의 차트나 뭐든 하여간 손에 들 수 있는 건 다 자기가 들고 나섰다. 적어도 이것만이라도 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치글러 박사는 미소를 짓고 빠른 걸음으로 나섰다. 사무실의 문을 닫기 직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처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박사의 뒤를 따라갔다.




 치글러 박사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텅텅 빈 신경 안정제 약통이 열 개가 넘게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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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이번에 메르시 멘탈 찢기는 편입니다. 쫙쫙...마나빵처럼요.

1. 새로운 캐릭터가 또 등장할 겁니다.

2. 이번 편은 좀 많이 어두울 겁니다. 진지 한사발 들이켰어요.

3. 앞으로 한 두어 사발 쯤 더 들이켜야 할듯.

4. 이번 편은 메인 스토리에 가깝네요. 가벼운 이야기들은 잔가지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슬슬 페이즈를 진행해야겠네요...페이즈2로.

6.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