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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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의 현장후쿠오카에서 도착한 날 오후 반나절을 지내고 저녁 기차로 향한 곳은 히로시마. 다음날 아침에 바로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입니다. 원폭의 참상을 위주로 한 전시관입니다. 이때가 수학여행 철이었는지 일본의 학생들도 많았고, 역사가 역사여서 그런지 외국인들도 매우 많아서 줄서서 돌아봐야 했습니다. ![]() ![]() ![]() 학생 사망자들이 당시 입고 있던 옷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 아래는 그림자의 벽인가 하는데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은행의 입구 계단과 벽이었을 겁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도중 원폭이 터져서 그대로 사먕(증발)했고, 단지 흔적만 이렇게 색깔을 달리해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 ![]() ![]() 리틀보이와 팻맨의 사이즈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 ![]() 히로시마 원폭 돔이 폭발 후 이렇게 변했다고 합니다. ![]() 원폭의 열로 인해 유리병이 이렇게 변했다고 하네요. ![]() 자료관을 나와 공원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여러개의 위령탑과 기념물들이 군데군데 위치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종이학들이 이런 탑과 기념물들에 많이 있었는데, 종이학은 일본에서 평화의 상징인가 봅니다. ![]() ![]() ![]() ![]() ![]() ![]() ![]()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된 곳입니다. 그런데 안내 문구를 읽어가던 도중 역시나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은 20세기 초반 전쟁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1941년 12월 8일 미국 및 영국과 전쟁을 벌여 태평양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라는 안내문구입니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것, 만주국 설립, 중일 전쟁, 그리고 진주만 기습까지, 모두 다 본인들의 침략과 기습과 선빵인데 '전쟁에 돌입'이라고 무미건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입장은 없이 오로지 원폭으로 인한 참상의 강조에만 집중하는 형세입니다. 그나마 그 다음 안내문에 '반강제적으로 징용되어온 사람들도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긴 했지만, 정말 최소한의 면피성 구절로만 느껴집니다. ![]() ![]() ![]() ![]()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습니다. ![]() ![]() 원폭돔은 평화공원이 아니라 그 옆에 있어서 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당시 청소하는 분들이 몇분 있었는데, 일부가 외국인(아마도 남아시아 계열)이었습니다. 원폭돔까지도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라니, 역시나 비용 절감이란 ... ![]() ![]() 원폭돔 근처의 골목길에 가면, 작은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폭심지입니다. ![]() ![]() ◆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 https://maps.app.goo.gl/YegARPajthycDuhw9 ◆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 https://maps.app.goo.gl/6XpXKKoyqEXKnaT69 ◆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https://maps.app.goo.gl/HovCEmncGv7fwyC27 ◆ 히로시마 원폭희생자 추도평화 기념관: https://maps.app.goo.gl/tMWEC1DX7Q25rPZXA ◆ 히로시마 원폭 폭심지: https://maps.app.goo.gl/gQz3CY5RvpwFCNdh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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