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 16주기를 맞이하며..
중학교 2학년 때 집이 이사를 해서 전학을 간 적이 있었다. 전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친구도 아직 없어서, 주말에 집안에서 어머니 심부름을 부지런히 하는 중이었다. (열심히 안 하면 국자로 맞았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너는 주말에 만나서 같이 놀 친구 없냐?"라고 하시길래, "이사와서 이 동네는 아직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러냐, 그럼 같이 밖에 좀 나갈까?" 하셨다. 평일에는 밤늦게 오시고 아침에는 우리보다 빨리 출근하시며, 퇴근은 우리가 잘 때 하시는 일이 태반이었다. 게다가 주말에는 거의 잠만 주무시니 사실 좀 많이 서먹해서 쭈뼛거리며 따라나갔다. (여동생이 둘이나 있었는데 나만 따라갔다.)

같이 나가서 향한 곳은 충무로 극장가에 있던, 당시에는 도심에나 몇 군데 있던 전자오락실이었다! 당시는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커다란 부스 같은 기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게임 종류도 '스페이스 인베이더' 딱 한 종류뿐이었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길(회사가 근처임)에 이런 곳이 있길래 무엇을 하는 곳인가 궁금해서 동료들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 혼자 슬쩍 들어와 보고 내린 결론이 '막 전학 와서 아직 친구가 없어 보이는 아들이랑 같이 와야겠다'였던 것 같다.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로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말에 가끔씩 어머니 몰래 아버지랑 같이 전자오락실에 갔던 추억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다. 그 근엄해 보이고 말수 적던 양반이 "음, 이번 판은 내가 이긴 것 같구나" 하실 때의 표정은 어색했던 부자지간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고, 아버지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온 갤러그는 내가 다 이겼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면서, 가족 부양은 돈만 벌어다 주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버지를 보며 느꼈다.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였을지 걱정은 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집 애들은 5분을 못 앉아 있어서 게임을 극혐한다.. 셋 다...)

아버지 덕분에 환갑이 다 된 할배가 게임 커뮤니티에 글도 쓰고, 매주 한두 개씩 스팀 게임도 사며 지금까지 나온 대한민국 PC 온라인 게임의 90%는 찍먹을 해봤다. 제일 좋아하던 와우(WoW)는 이제 피지컬이 떨어져서 유튜브로 대리만족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몇 년 후 완전히 은퇴하면 그 좋아하는 게임을 원 없이 하면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라그로 정착할 계획이지만  원체 깊이 없이 게임을 하다보니 장담은 못할것 같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