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 대전에 막강 방어력으로 조종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은 전투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보통 하늘의 전차라고 한다면 동부전선에서 독일전차대에게 공포의 사신으로 군림한 소련 공군의 일류신 IL-10 슈트로모비크 공격기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 기체는 문자 그대로 지상 공격에 최적화된 공격기일 뿐 제대로 된 전투기의 요격을 받을 경우 결국 쉽게 격추되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물론 이게 당연하지만..


하지만 미 육군 항공대는 이와 반대로 어지간한 전투기의 기관포와 기관총 난타로도 쉽사리 격추되지 않는 괴물을 투입해 독일 공군을 경악하게 만들었으니 바로 리퍼블릭사의 P-47 썬더볼트 전투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기체를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대전기간 중 이름을 날린 양군의 에이스 조종사가 남긴 증언을 살펴보겠습니다.


"P-47은 외형상으로는 못생겼지만 아돌프 갈론트가 말한 것처럼 강력한 화력과 맷집 때문에 독일군 조종사들이 1:1로는 가장 마주치기 싫어했던 전투기였다. 저고도 공중전에서 BF-109의 기동성을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고공에서는 그 어떤 전투기보다 하강 속도가 우수했다. 덕분에 급강하 교전에서 P-47을 능가하는 전투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제임스 피네건 미 육군 항공대 대위-



▲왼쪽부터 크루핀스키, 바르크호른, 뷔제, 하르트만


"P-47의 약점은 비행속도와 가속력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강하 성능은 아주 우수했고 우리 전투기들의 맹공을 받더라도 하강 비행 중에는 절대로 추락하지 않았다. 마치 너 다음에 다시보자, 그때 누가 나은지 겨루어 보도록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고 그 모습은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발터 크루핀스키 예비역 서독 공군 중장-


▲내구성이 워낙 뛰어나 기체는 엉망이 되었지만

조종사는 멀쩡하게 걸어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2차 셰계대전 유럽 항공전에 있어 큰 획을 그은 이 두 에이스 조종사들의 회고를 통해 봐도 당시 미 육군 항공대와 독일 공군에게 끼친 P-47의 괴력이 어느 정도 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국으로 배치된 이래 P-47은 자신의 못생긴 외모를 강력한 화력과 2,300마력 엔진을 이용한 급강한 성능으로 보완했지만 이 기체의 강점은 죽여도 죽지 않는 맷집이였습니다.



개발 일화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P-47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개발에 착수한 전투기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취임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 파기와 더불어 나날이 군비를 증강해나가는 독일이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전함과 항공모함을 급격히 건조해나가는 일본의 위협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미국 역시 강력한 신형 전투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미군은 리퍼블릭사에게 강력한 화력과 맷집을 갖춘 전투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아래 5가지의 요구사항을 내놓았습니다.



1. 고도25,000피트에서 시간당 400마일의 비행속도를 발휘할



2. 무장으로 최소 6정, 최대 8정의 12.7mm 중기관총을 탑재할 것


3. 조종수석 주변에 충분한 장갑판을 증설할 것


4. 자체 밀봉식 연료탱크를 장비할 것


5. 최소 315 갤런의 연료를 탑재할 것




이처럼 당시에는 불가능한 요구조건을 받아들인 카르트벨리(P-47의 아버지)는 우여곡절 끝에 제식명 P-47Bs로 채용하며 171대를 정식 발주했고 1942년 9월 첫 양산기가 출고되면서 P-47의 시대가 개막됩니다. P-47을 바라본 영국 공군과 미 제8 공군 조종사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실망 및 시큰둥 그 자체였습니다. 일부 조종사들은 과연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거대하기만 한 이 기체가 날 수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우선 단점을 뽑자면 이 착륙 거리가 너무 길고 통상적인 고도에서의 조종성과 기동력이 나빴지만 반면 고고도에서의 기동성은 강력한 기체 강도와 엔진 덕분에 스피트 파이어보다 좋았고 특히 거대한 덩치 덕분에 여유를 확보한 조종석은 많은 조종사들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12.7mm 기관총 8정과 2,300마력의 고출력 엔진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8,8cm FlaK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대공포)에

 직격에 맞고도 살아돌아온 대위


거듭되는 실전을 거치면서 P-47은 급강하시 평균 885km/h에 달하는 것은 물론 음속의 벽 (일명 마하)의 벽도 돌파했다는 조종사도 나왔으니 무겁고 뚱뚱하며 못생긴 멧돼지로 비하하던 제56 전투 비행단의 조종사들의 자신들의 혹평을 깔끔하게 접었습니다. 4월 15일 제4 항공군의 돈 브렉슬리 소령이 첫 격추에 성공한 이후 P-47은 수십~ 수백발의 탄환을 얻어맞으면서도 두려움없이 독일 전투기들에게 달려 들었고 나중에는 아예 정면공격을 감행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1:1로는 절대 P-47을 상대하지 말라는 독일군 지침이 내려올 정도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가급적 대결을 원치 않는 상대였습니다. 항속거리가 좀 짧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막강한 방어력과 화력으로 독일 공군의 활동이 뜸해질 무렵에는 아예 타이푼과 같은 지상 공격에도 참여해 독일군의 전차와 장갑차 방어진지를 초토화시키는데 앞장 섭니다.


또한 1944년 9월부터 프랑스 각지에 비행장이 확보되고 주익 내부에도 연료탱크를 장착함으로써 P-47의 항속거리가 확보되자 더 위협적인 기체가 됩니다. 이렇게 P-47은 데뷔한 이래 전쟁 전 기간 동안 746,000소티를 출격하며 유럽 전선에서 기록한 2,700대를 포함해 총 3,752대의 독일, 일본 전투기를 공중전에서 격추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특히 제56 전투 비행단의 경우 종전 시점까지 총 128대의 P-47을 손실하는 대가로 독일 공군과 8:1의 압도적인 손실 교환비율을 기록하며 677.5회의 공중전 승전과 지상 격파 311대라는 높은 전과를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