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힘도 없고 뛰어내려야 하는 절망적 순간이었어요. 그 때 헬멧 쓴 神이 나타나 구해줬습니다.”

9일 오전 울산 남구 삼산동 한 호텔 로비. 환자복을 입고 손에 붕대를 감은 이모(20)씨가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은 분이 있다”며 취재진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씨는 전날 오후 11시7분쯤 화재가 난 남구 신정동 주상복합건물 아르누보의 맨꼭대기 층에 거주하는 입주민이다. 화재 직후 다른 주민 52가구 155명 이웃들과 함께 이날 새벽쯤 호텔로 대피했다. 이씨와 그의 모친, 그리고 이모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화재 직후 이들 모녀와 이모는 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이미 연기로 자욱했다. 이들은 다시 현관문을 닫고 안방으로 피했다.

이씨는 “워낙 신고 전화가 많은지 119는 연결이 되지 않아 112에 구조요청을 했다”며 “경찰에서는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대피하라’고 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세 명의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문 창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민 채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는 것 외엔 없었다.

오랜 시간 창문을 잡고 고개를 내밀고 있던 세 사람은 점점 힘이 빠졌다. 이씨는 “처음엔 ‘조금만 있으면 누군가 구조하러 오겠지’ 했는데, 점점 시간은 흐르고 절망적으로 변했다”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약 1시간 정도 흘렀던 것 같다”고 길었던 공포의 시간을 떠올렸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현관문을 부수고 누군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이씨는 “'헬멧을 쓴 신(神)인가'하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소방대원분께서 저를 업고 3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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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0100914362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