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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7 09:14
조회: 5,040
추천: 1
조선 시대 엽전 한 냥의 가치를 계산해 보자.
![]() 주조할 때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뭇잎 엽(葉)을 써서 엽전이라고 부릅니다. 닢이라는 단위도 잎사귀에서 유래된 것이죠. 조선 시대의 화폐 가치와 지금의 화폐 가치를 일률적으로 계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쨌든 지금이든 당시든 물가나 시세는 고정이 아니라 계속 변동되기 때문이죠. 브래턴우즈 체제 같은 고정환율제라면 모를까, 현대는 그런 개념이 없이 수시로 화폐 가치가 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기준점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조선 시대 화폐로는 흔히 생각하는 엽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엽전이라는 화폐가 정착된 건 조선 전체의 역사를 놓고 봐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당장 조선 초에 화폐 제도를 정착시키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모조리 실패했고, 이것이 그나마 구색이라도 갖춘 시점은 조선 역사가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17세기 후반의 일이니까요. 만약 17세기 후반, 구체적으로는 숙종 시대 이전 배경의 사극에서 엽전으로 뭘 사거나 파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건 전부 고증 오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당장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은을 가지고 와서 뭘 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귀금속인 은조차도 시중에서 화폐의 구실을 하지 못했을 정도니까 말 다했죠. 어쨌든 임진왜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화폐라는 개념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되면서, 조선은 한 번 더 화폐 제도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대동법의 시행이죠. 대동법은 단순한 세제 개혁이 아니라, 화폐 가치의 기준점이 '쌀'로 결정되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화폐 가치 계산을 할 때 흔히 나오는 반박 중에 하나가, 작황에 따라 시세 변동폭이 심한 쌀이 아니라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을 기준으로 놓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건 조선 시대가 아니라 현대의 화폐 가치 계산에 있어서 결정적인 단점이 됩니다. 고정 환율제였던 브래턴우즈 체제라면 몰라도, 금이나 은은 이미 태환 가능한 물품으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사치품이고, 따라서 더 이상 정부에서 시세가 '관리'되지도 않습니다. 당장 금 시새만 놓고 봐도, 지난 10년간 최소 3배 이상의 등락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극심한 등락폭을 보이는 물품을 화폐 가치의 기준점으로 삼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에 반해 쌀은, 조선이든 현대의 대한민국 정부든 간에 중점적인 관리 대상이기 때문에 화폐 가치의 기준점으로 삼기에 적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조선은 대동법을 통해 쌀을 화폐 가치의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그 이전에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항상 실패를 반복했던 화폐라는 개념이 조선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기준점이 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조 시기에 마침내 조선통보라는 화폐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반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통보는 또 한번 실패로 돌아갑니다. 왜냐구요? 바로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한번 작살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번 다시 화폐 제도가 실패하고 난 뒤, 다시 화폐 제도가 논의됩니다만... 여기서 또 한번 시도가 좌절됩니다. 바로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기록되는 경신대기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기준점이 되는 쌀 시세가 박살이 났으니, 도저히 화폐 제도를 시행할 여력이 없었던 거죠. 이런 수많은 시도들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내 우리가 흔히 엽전이라고 부르는 상평통보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숙종 시기입니다. 앞서 숙종 이전에 화폐로 뭘 사고 파는 내용이 나오는 사극은 다 고증 오류라고 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상평통보의 상평은 무슨 뜻일까요? '상평(常平)'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준말입니다. 상시평준은 항상 평준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바꿔 말하면 물가 안정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또 바꿔 말하면 상평통보의 발행이 지니는 또 다른 의미가 바로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의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숙종 시기에 상평통보를 발행하면서, 조선 정부는 '행전절목'이라는 서적을 함께 편찬합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서, 시세 기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폐 발행 이전에 그것을 대신하던 다양한 품목의 시세를 일목요연하게 나열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행전절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쌀과 화폐의 교환비입니다. 이전에 화폐 가치의 기준점이었던 쌀 시세를 화폐와 연동시키기 위한 시도였던 셈입니다. 자, 앞서 설명이 굉장히 길었죠? 지식인에서 활동하다 보면 쌀 시세로 화폐 가치를 계산한다고 하면 반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왜 조선 시대 화폐 가치를 계산하는데 쌀이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선 시대에는 대동법의 시행을 통해 화폐 가치의 기준점이 '쌀'이었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기에 타당합니다. 현대에서 그와 같은 기준점이 되기에 적합한 것이 바로 정부가 정한 목표 가격입니다. 목표 가격은 폭등보다는 폭락에 대비해 쌀 재배 농가의 수익을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어쨌든 정부에서 관리하는 쌀 시세의 기준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쌀의 목표 가격은 2013년에 80킬로그램 한 포대당 18만 8천원으로 정해진 이후 2020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윤석열과 한덕수가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괸리법에는 이런 목표 가격을 다시 부활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양곡관리법이 다시 부활하게 되면 쌀의 목표 가격은 20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조선 시대의 화폐 가치를 계산해 봅시다. 일단 행전절목에는 쌀 1섬이 엽전 4냥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 당시에도 쌀 시세는 항상 변동되었습니다만, 어쨌든 기준점은 이와 같습니다. 당시의 쌀 1섬은 현대의 144킬로그램 한 포대와 그 양이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쌀 목표 가격은 80킬로그램 당 20만원입니다. 당연히 이것 또한 품종이나 작황에 따라 실제 소매 가격은 변동이 됩니다만, 행전절목과 마찬가지로 쌀 가격의 기준점으로 보기에 타당합니다. 144 : x = 80 : 200000 -> 80 * x = 200000 * 144 -> x = 360000 즉, 조선 시대 쌀 1섬의 가격은 현대 기준으로 36만원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행전절목에 따라 쌀 한섬은 상평통보 4냥과 같기 때문에 상평통보 1냥은 현대 기준으로 8만원의 가치와 동일합니다. 1냥은 다시 100닢이므로, 엽전 한 닢의 가치는 대략 800원 정도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현대에도 원화 가치가 수시로 변동되는 것처럼 엽전 또한 실생활에 있어서는 그 가치가 계속 변동되었을 겁니다. 다만 상평통보라는 이름에도 나와 있듯이, 조선은 화폐 가치를 유지하여 물가 안정을 하고자 노력했으며 실제 기록을 통해서 살펴 봐도 쌀 1섬의 가격은 엽전 4~5냥 선에서 유지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당백전 발행 이전까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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