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이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파월 연준 의장 간 충돌을 1970년대와 비교하는 이유는, 당시 정치권의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가 어떻게 대인플레이션이라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교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경험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정치적 압력이 통화정책을 왜곡할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닉슨-번즈 시대: 정치적 압력의 시작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서 번즈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중앙은행 독립성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닉슨은 번즈 취임식에서 “나는 그의 독립성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그가 내 견해를 따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노골적인 압박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파월 의장에게 가하는 압력과 유사한 양상입니다.


닉슨 행정부가 공개한 백악관 녹음 테이프는 대통령이 어떻게 연준 의장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972년 재선을 앞두고 닉슨은 번즈에게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습니다. 번즈는 1970년 1월 6.0%였던 할인율을 1972년까지 4.5%로 낮췄고, 연방기금금리는 4% 이상 하락했습니다. 이러한 확장적 통화정책은 1970년 11월 경기침체가 끝난 후 이미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인 환경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정치적 개입의 메커니즘
닉슨이 번즈에게 압력을 가한 방식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했습니다. 1972년 2월 대화에서 닉슨은 번즈에게 “4월까지만 [확장적 정책을] 유지하면 그 이후에는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선거 전까지만 경제를 부양하면 된다는 노골적인 정치적 동기를 드러냅니다. 번즈는 장기적으로 연준 의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번즈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없다며 임금·물가 통제와 같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가 확장적 통화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71년 8월 닉슨이 임금·물가 통제를 도입하자, 번즈는 인플레이션 걱정을 덜고 경기 부양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통화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지 못했고, 통제가 실패하면서 1973년 인플레이션율은 9.6%, 1974년에는 11.8%로 치솟았습니다.


인플레이션 악순환의 구조
1970년대 초반 확장적 통화정책은 1973년 석유 파동과 결합되면서 파괴적인 인플레이션 스파이럴을 촉발했습니다. 1972년 선거 이후 연준은 뒤늦게 긴축으로 전환했지만, 이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경제 전반에 고착화된 상태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기업들은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임금-물가 악순환이 형성되었습니다.


번즈는 1978년까지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침체 우려가 나타나면 다시 낮추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반복은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볼커의 독립성 회복과 그 대가
1979년 8월 폴 볼커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며 따라서 중앙은행의 책임”이라는 원칙을 받아들이고,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서는 화폐 공급 증가율을 늦춰야 한다는 통화주의 원칙을 채택했습니다. 그는 취임 한 달 후 의회에서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다루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볼커의 전략은 금리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었습니다. 1980-81년 연방기금금리는 20%를 넘었고, 10년물 국채금리는 15% 이상,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18% 이상, 우대금리는 21.5%에 달했습니다. 이는 1930년대 이후 가장 깊은 경기침체를 초래했으며, 실업률이 급등했습니다.


볼커는 닉슨 시대 번즈가 직면했던 것과 유사한 정치적 압력에 직면했습니다. 건축업자들은 연준에 사용하지 못한 목재를 보내고, 자동차 딜러들은 팔지 못한 차 열쇠를 우편으로 보내며,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연준 건물 주변을 시위했습니다.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은 연준의 독립성을 제한하고 금리를 낮추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비밀 회의에서 볼커에게 1984년 선거 전까지 금리를 올리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볼커는 이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확고한 의지는 연준이 마침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진지하다는 것을 시장에 증명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은 1983년 4%로 급락했고, 이후 금리도 하락하면서 1990년 7월까지 지속된 경제 회복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 이후 인플레이션은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현재 상황과의 유사성
경제학자들이 현재를 1970년대와 비교하는 이유는 구조적 유사성 때문입니다. 첫째, 행정부가 중앙은행 의장에게 정치적 목적으로 통화정책을 변경하라고 압박한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월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는 닉슨이 번즈에게 가했던 압력과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입니다.

둘째, 단기적 경제 이득을 위해 장기적 물가 안정을 희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 닉슨은 재선을 위해 경제를 부양하려 했고, 이는 결국 10년 이상의 고인플레이션을 초래했습니다. 미시간대 저스틴 울퍼스 교수가 “하이퍼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패턴에 근거합니다.

셋째,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면 회복이 극도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번즈 시대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볼커는 심각한 경기침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예일대 마사 김벨 박사가 “신뢰는 서서히 잠식되며, 일단 훼손되면 회복이 극도로 어렵다”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반영합니다.

제도적 독립성의 중요성
1970년대 경험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단순히 법적·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장기적 경제 안정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부양할 수 있지만, 중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금리와 더 깊은 경기침체를 요구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볼커의 성공은 정책 수단의 변화뿐만 아니라 연준이 인플레이션 통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압력에 저항할 의지를 보여준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레짐의 변화는 절차의 변화보다 더 근본적이고 지속적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는 제도적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만 효과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전직 연준 의장들과 경제학자들이 파월 의장 수사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1970년대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개입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악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경제 전체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 번즈의 실패와 1980년대 볼커의 고통스러운 성공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왜 협상 불가능한 원칙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https://www.aeaweb.org/articles?id=10.1257%2Fjep.20.4.177&utm
https://www.bbc.com/news/business-42302771
이외 41개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474063?cds=news_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