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다수 얘기가 나온 지 꽤 됐다. 대통령이 계속 해온 말이고, 지금 지도부는 아예 그걸 간판으로 걸었다. 진보, 중도, 보수까지 다 끌어안아서 연속 집권할 판을 만들겠다는 건데, 지금 가는 방식으로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3개월 안에 10% 올리겠다던 지지율이 두 달 만에 8%p 빠진 건 다 아는 얘기다.


구조적 다수 하면 늘 나오는 게 미국 뉴딜 연합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자리를 만들고 연금 같은 사회보장을 만드니까 노동자, 농민, 이민자까지 민주당 쪽으로 붙었다. 그렇게 미국 민주당은 30년 넘게 다수당을 했다. 사람을 데려와서 만든 게 아니라 성과를 내니까 알아서 붙은 거다.


우리도 이미 봤다. 올해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67%까지 갔다. 3주 연속 최고치였다. 3월 둘째 주 조사에서는 대구·경북을 빼고 전 지역에서 과반이 나왔고 부울경도 57%였다. 당 지지율도 47%로 정부 출범 후 최고였다. 그때 영입한 사람이 있었나? 아니면 내친 사람이 있었나? 없었다. 지금 목소리 큰 스피커들도 그때는 영향력이 약했다. 무슨 말을 해도 당원 몇몇이 하는 얘기 정도로 느껴졌다. 경제·민생 잘한다고 중도도 붙고 보수도 일부 붙은 거다. 뉴딜처럼 그게 진짜 구조적 다수로 가는 길이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정부는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럼 더 이상하다. 9월 이후 대통령 지지율은 43~44%에서 버티는데 당은 39%에서 33%까지 빠졌다. 정부가 잘하는데 당만 빠진다면 그건 정부 문제가 아니라 당 문제라는 얘기다.

그럼 계파 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계파 갈등은 전당대회 때 극에 달했는데 지도부가 봉합을 못 했다. 오히려 더 벌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그 싸움이 뭘로 붙었나? 지지층부터 단단히 하자는 쪽과 밖으로 넓히자는 쪽이 갈라진 거다. 누굴 빼고 누굴 넣느냐로 싸우는 거다.


여기서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6월 순방 환송식에 당 대표는 빠지고 총리만 나왔을 때부터 정청래 패싱 얘기가 나왔다. 당 대변인 입에서까지 당무 개입 얘기가 나왔다. 전대 내내 한쪽 후보는 대통령 지킬 적임자라고 했고, 대통령이 지방선거 결과에 표정 관리가 안 됐다는 얘기까지 전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당무 개입은 과한 얘기라고만 했지, 대통령 이름이 전대에 오르내리는 건 정리하지 않았다.

논란을 알면서도 그냥 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누구 편을 들라는 얘기가 아니라, 내 이름 팔지 말라고 선만 그었어도 전대가 그렇게까지 갈라지진 않았을 거다. 전대가 끝나고 멸칭 쓰지 말라, 싸우지 말라, 저와 정부의 부족함을 탓해 달라고 했지만 그건 이미 갈라진 다음이다. 그 말대로 대통령 탓을 하자면, 이 갈등에서 제일 큰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제일 먼저 정리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는 거다.

말로는 싸우지 말라면서 정작 지지층이 바라던 건 들어주지 않았다. 초대 중수청장이 대표적이다. 검찰개혁의 상징이 될 첫 자리만큼은 개혁 의지가 분명한 사람을 앉혀달라는 요구가 꾸준했는데, 대통령은 검사 출신 후보를 밀어붙였다. 반대하는 쪽에는 검사 출신이라고 쓰지 말라는 건 중수청을 망치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는 끝까지 설명하지 못했다. 수사 전문성, 개혁 의지 확고, 이 정도 말로는 추천된 네 명 중에 굳이 반발 큰 사람을 고른 이유가 안 된다.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도 찬성은 절반이 안 됐고 셋 중 하나는 판단을 미뤘다. 지지층이 갈라질 걸 알면서도 밀어붙일 만큼 압도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그걸 말했어야 했다. 봉합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나.


요즘은 유시민이 문제다, 아니다 대통령 주변이 문제다, 사람 탓하는 얘기만 넘친다. 누가 맞든 그걸 따지는 사이에 지지율은 계속 빠지고 있다.


사람 탓은 그만하고 대통령이 말한 구조적 다수로 돌아가 보자. 대통령은 저쪽 의원 몇 명 빼다 붙이는 건 쌍팔년도식 정치라고 했다. 구조적 다수는 중도와 합리적 보수의 동의를 받는 거라고. 우리끼리만 뭉치면 소수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동의는 앞에서 본 것처럼 3월에 이미 받고 있었다. 누굴 빼오지도 내치지도 않았을 때다. 정작 구조적 다수를 앞세운 뒤로는 누굴 빼고 누굴 넣느냐로 싸우느라 그 동의도 빠지고 원래 있던 사람도 빠졌다. 말은 동의를 얻자는 건데 실제로 벌어진 건 사람을 빼고 넣는 일이었다. 확장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 방식으로는 확장이 안 된다는 거다.


결국 계산의 문제다. 지금 방식에는 있던 사람이 좀 빠져도 새로 더 많이 들어오면 남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계파 갈등도, 사람 탓하는 싸움도 다 그 계산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계산이 맞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새 질서를 세우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는데, 이유가 이렇다. 옛 질서에서 덕 보던 사람은 다 적이 되고, 새 질서에서 덕 볼 사람은 아직 손에 쥔 게 없으니 미지근하게만 편든다는 거다. 지금이 딱 그 꼴이다. 빠지는 건 확실한데 들어오는 건 아직 기대일 뿐이다.


그래도 어려운 걸 알면서 바꿔야 할 때가 있긴 하다. 바꾸는 쪽이 더 나을 때다. 그럼 따져봐야 한다. 지금 빼고 있는 세력이 붙이려는 세력보다 덜 정의로운가? 덜 이로운가? 나라에 덜 도움이 되는가? 탄핵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 험지에서 당을 지켜온 사람들이 새로 모셔오려는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없다. 더 나은 걸 얻는 것도 아니면서 있는 걸 잃는 거니까.

분란을 안 일으켜도 뺀 세력보다 들어올 세력이 더 크다는 보장도 없고, 협조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스스로 내 세력을 깎아먹고 내치고 다른 세력을 품는다??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간과한 거다. 게임처럼 생각하는 거다. 계산이 틀린 이유가 여기 있다.


정치세력이라는 거, 정당이라는 거 반짝 뜰 수는 있어도 뿌리내리는 건 하루아침에 안 된다. 울산이라는 험지에서 당원 한 명 한 명 늘린 선배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분들을 빼도 되는 숫자로 보는 건 그 고생을 폄하하는 일이기도 하다.


붙이는 것도 힘들지만 정 떼는 것도 한순간에 되는 건 아니다. 지도부가 처음부터 기존 지지층을 밀어낼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는 같다. 사람들이 빠지는 게 보이면 그때는 돌아서야 한다. 그런데 계속 가니까 점점 더 빠지고 있다. 서서히 빠지는 게 느껴지는데도 변화가 없으니 한숨이 나온다.

지금 쓴소리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애정이 남은 사람들이다. 아직 바뀔 거라고 믿으니까 목소리를 내는 거다. 그래서 오히려 소수처럼 보이기 쉽다. 일부가 시끄럽게 구는 걸로 넘기기 딱 좋다. 그런데 그 사람들 뒤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정 있는 사람들은 시끄럽게 안 나간다. 조용히 마음 접고 선거날 안 나온다. 그게 더 무섭다. 목소리 내는 사람마저 지쳐서 입을 닫으면, 그때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진짜 구조적 다수를 위해서라면 우리 세력에다가 다른 세력 중에 올 사람을 서서히 붙여야 진짜다. 내 세력이 쎄야 상대도 존중하고 붙는다. 있는 사람 빼고 없는 사람 기다리는 계산으로는 구조적 다수가 안 나온다. 지금 가는 구조적 다수는 허상이다.


공자가 정치를 묻는 사람에게 그랬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고. 근자열 원자래.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서운하게 해놓고 멀리 있는 사람이 오길 바라는 건 순서가 거꾸로다.


민주진영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치하는 분들이 자기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가 아니라 다 같이 잘 되는 길이 이미 보이지 않나. 3월에 우리가 봤던 그 길이다. 지금이라도 돌아서면 된다. 아직은 빠지고 있는 중이지 다 빠진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