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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격아 확팩은 끝이 어떨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데, 이것저것 생각해 본 결과 결국엔 항상 돌아오는 원점은 실바나스 윈드러너가 머릿속에 무엇을 담고 격아의 전쟁을 시작했는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좀 정리해 보려고 썼습니다.

저는 대족장님이 격아 전쟁을 일으킨 동기를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진영 수장으로서 얼라이언스에 대한 승리이고,

둘째는 신적 존재들과의 문제이고,

셋째는 자기 개인 혹은 포세이큰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중 동시에 두 개, 혹은 전부 다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실바나스의 격아 개전 동기에 대한 가장 단순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실바나스가 정말로 얼라이언스를 꺾고 호드의 대족장으로서 아제로스를 제패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며, 격아 내내 있던 잡음들은 모두 호드의 최종 승리를 위한 부차적인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호드는 칼림도어의 오랜 숙적 나이트엘프를 몰락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로데론 공격병력을 역병으로 학살했으며, 얼라의 다자알로 반격도 이번 나즈자타 건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데렉의 부활과 바인의 숙청도 어쨌든 호드 대족장으로서 내릴 수는 있는 명령이고 포세이큰의 방식이 도덕적이냐를 떠나서 호드 내에서 위법하다고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가로쉬와의 차이점은 가로쉬는 트롤을 몰아내고 언데드를 고기방패로 쓰고 고블린을 털고 마지막에는 코르크론 빼고는 다 반역자로 몰아세웠는데, 실바나스는 역병통을 던지긴 해도 호드 내부에서 어느 세력을 직접적으로 하대하거나 적대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근거지였던 언더시티를 전략적 미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오공때와 달리 로르테마르는 실바나스가 대 고대신 진영통합의 걸림돌이라는 데에는 제이나와 합의했지만, 블엘이 자신을 지지할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레이드 이후 대사)

바인 구출 시네마틱에서 스랄이 썬더블러프가 불탈 것이라 하는데, 타우렌 전체가 바인을 지지할지 그리고 실바나스가 그런 타우렌들을 전부 적대할지는 지켜볼 부분입니다.

사실 스랄의 추측을 실바나스가 행동에 옮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봅니다. 바인이 대놓고 오그리마를 선공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썬더블러프에 전력을 투입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 같고, 어쩌면 진짜 목적지를 가리기 위한 미끼 용도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텔드랏실 방화의 명분도 그리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실바나스의 목적이 단순히 진영 전쟁의 승리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가시의 전쟁에서 이론적으로 꽤 좋은 전략이고 사울팽마저 감동시켰던 텔드랏실 점령 후 얼라이언스 내분 발발 계책을 포기한 것이 결정적입니다. 당시 나왔던 소설 '좋은 전쟁' 과 '비가' 의 묘사를 종합하면, 이 얼라이언스 내분 계책은 애초에 사울팽과 호드를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미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당시에 실바나스의 목표는 어떻게든 나이트 엘프 내지는 얼라이언스의 승전에 대한 희망을 꺾는 것이었다고 추측됩니다. 말퓨리온을 죽이는 것도, 세계수를 점령하는 것도 결국엔 다 상대의 기를 죽여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바는 말퓨를 놓친 상태에서도 텔드랏실 점령 계획은 유지했었지만, 델라린에게 우린 포기 안한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방화범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잔인한 수단으로 희망을 꺾고 기를 죽여 놓는 것은 포세이큰(혹은 스컬지)의 대 필멸자 전쟁에서는 충격과 공포 작전 마냥 그럴듯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드의 대다수는 언데드가 아닙니다. 단순히 공포감 조성을 위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아군의 기조차 동시에 질리게 하고 학살로 얻는 이득을 생각하기보다는 분노한 적의 반격에 대한 걱정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실바나스의 행동은 마치 '희망의 끝' 요그사론이 외치는 '증오와 분노를 마음껏 터뜨리세요!'라는 대사를 연상시킵니다. (델라린이 실바나스보고 이건 '증오이자 분노'라고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대체 왜 호드 지휘부에게 대전략에 관한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요? 말퓨를 죽이는 게 나엘의 의지를 꺾는데 그렇게 중요했다면 확실하게 말을 해 둬야 했습니다. 나타노스조차 실바나스의 그림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웃긴 건 실바나스가 처음에 말퓨리온도 얼라이언스의 내분 주동자로 지목했었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대족장님께 유리하게 설명을 해 보자면, 이런 극단의 어그로 행위로 인해 일단 텔드랏실 - 로데론의 교환비에서 이득을 얻기는 했습니다. 나이트 엘프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로데론에서는 많은 포세이큰 민간인이 미리 대피했고 얼라이언스 병력을 역병으로 많이 죽였습니다.

실바나스가 통상적인 전쟁 수행으로는 정말 승리는 어림도 없고 (사울팽에게 장담한 것과 달리) 텔드랏실 점령을 통한 내분 계책조차도 실제로는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정했을 때, 약간의 승리 가능성이라도 높이기 위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간다면 그 논리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텔드랏실 이후로도, 원래 계획이 뭐였건 간에 실바나스는 도덕적으로 의심 갈 만한 행동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불필요하게 정치적인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호드 안에서 대놓고 파벌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사울팽과 바인이라는 호드 최고의 거물들을 가혹하게 취급했고, 데렉을 되살리고 프라우드무어 가문에 쓸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 공언하면서 자유 언데드라는 포세이큰의 정체성을 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동맹종족 수장들마저 실바나스의 진짜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바나스의 동기를 떠나서 실바나스가 대족장으로서 진영을 이끌 응집력이 있는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실바나스가 필멸자의 이해를 다루는 정치가로서 행동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도 합니다.

결국 8.2 에 이르러서는 제 2의 가로쉬 시나리오를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오공때는 타도의 목표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가로쉬이고 고대신의 힘이 가로쉬를 처치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실바나스가 세계의 적 느조스를 상대할 과정에 장애물이 된 형태입니다.

만약 실바나스가 다른 거 없고 끝까지 호드의 대족장으로서 얼라이언스에 승리하는 것을 바란다면, 혹은 최소한 칼림도어에서의 제한적인 승리를 완성하려 한다면, 양측의 해군 전력이 대폭 감소되어 병력이 바다 건너 파견되기 힘든 기회를 틈타 칼림도어의 나이트엘프를 완전히 밀어버리려고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밤 전사 티란데가 최후의 항전을 기다리고 있겠죠.

혹은 소설에서 여러 번 최종목표로 지목한 것처럼 과감하게 스톰윈드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병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무슨 무기를 써서 스톰윈드를 함락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제국의 단도로 방법을 만들겠지요. 최소한 나즈자타 이후로 얼라이언스 해군도 망가졌으므로 해상에서 요격당할 걱정은 덜었습니다.

어찌 됐든 실바나스는 가로쉬와는 달리 충성주의자 루트가 있으며, 아직은 스스로 모두를 적으로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실바나스가 진영 간 전쟁의 열기를 되살릴수록 호드 내 반란 세력들의 입지는 줄어들고 실바나스는 개전 초기의 타도 얼라이언스 명분을 더 길게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시체도 더 많이 얻고요.



다음으로는 어떤 이유에 의한 신적 존재들과의 결탁 혹은 다툼입니다.

가시의 전쟁에서 실바나스의 목적이 나이트엘프를 괴롭히는 것으로 본래의 대전략과는 상당히 동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더욱이 엘룬이 사울팽을 저지했고 엘룬이 자신의 진정한 목적에 반대하는 이들 중 하나라는 추측을 하면서 실바나스는 어쩌면 나이트 엘프의 주신 엘룬과 모종의 다툼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또한 헬리아를 제외한 영혼의 대주주들 - 리치 왕과 에이르와 브원삼디에게 견제받고 있습니다. 리치 왕에게는 자기 발키르 뺏어간 짜증나는 녀석인데다 균형도 중시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고, 브원삼디도 균형과 대족장 목을 운운하는 등 상당히 적대하고 있습니다. 아예 노예화시키려던 에이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에이르 때문에 오딘이 실바나스를 줘팰 거라는 말이 가끔 보이는데, 실바나스는 에이르를 놓친 후 유저에게 필요하다면 자기가 용맹의 전당까지 가서 깽판칠거라며 화풀이했다는 것입니다.

어둠해안 격전지 이후로 발키르가 세 마리 남았고 따라서 현재 실바나스한테 2목숨이 남아있는데, 이제 발키르 하나를 빼서 시체 일으키러 보낸 동안은 자기가 제때 부활을 못할수도 있기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초조해졌을 겁니다.

발키르는 예전부터 계속 소모되어 왔으니 실바나스는 뭐든 대책을 세워야 하고, 헬리아와 다른 거래를 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묵었을지도 모르는 죽음 진영의 누군가와 거래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죽음 진영은

균형중시- 언데드 반대파(엘룬(?) 브원삼디 리치왕)와

균형무시- 언데드 제작자(실바 오딘 헬리아 ???)

이 두 계열로 파벌이 나눠진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리치왕의 경우 볼바르말고 아서스는 실바나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언데드 숫자를 늘렸으니 누가 자리에 오르냐에 따라 다르긴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헬리아가 제일 큰 문제인데, 실바나스가 에이르도 구속 못하고 자기 등불도 깨먹었는지라 오딘보다도 헬리아가 빚쟁이로서 실바를 추격할 동기가 더 큽니다. 그래서 헬리아가 격퇴당했을때 누구보다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죽은게 아니라고 하니 아직 거래는 청산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격아의 전쟁이 죽음 진영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거대한 제물이었다면 그것도 나름 흥미로운 반전일 것입니다.

또 다른 추측으로 실바나스가 아제로스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런 정황이 없으나,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제로스의 피가 아제라이트이고 그로 인해 파멸적인 전쟁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아제로스를 죽이면 아제라이트도 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들 수 있겠습니다.

혹은 아제로스가 사후세계(가령 에메랄드의 꿈)와 관련해서 뭔가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고대신이 아제로스에 기생 못하게 하려는 생각일수도 있죠.

고대신과 실바나스는 검은 제국의 단도와 함께 8.2 상황에서 가장 의문시되는 관계입니다.

둘이 적대한다는 단서는 세자매 코믹스의 공허와 타락자의 눈의 속삭임, '그녀는 위협이다 그녀를 죽여라' 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실바나스가 공허에 위협이며 고대신을 처리하고 아제로스와 얼호를 구원할거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단 8.2까지 실바나스와 느조스는 적대하기는커녕 서로 큰 도움을 주고받고 있으며, 실바나스는 느조스가 쓰라고 건네준 단도를 길을 열 횃불이라고 좋아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실바나스가 단검의 통제권을 완전히 빼앗지 않는 이상 느조스는 실바나스가 그걸로 자기 카운터치려는 수작을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실바나스가 갑자기 나는 고대신을 대비해 이 모든 일을 일으켰다! 라고 주장하면서 이게 진실이니 받아들여라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스토리진이 구원자 시나리오에 미쳐 있다고 해도 세계관의 다른 영웅들에게 그걸 납득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일리단이야 불성 당시에 아제로스를 먼저 침공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유저뿐 아니라 불군과도 대립하는 모양새로 어느 정도 여지는 남겨두었었지만, 실바나스가 지금까지 벌인 일들은 겉으로 고대신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된 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영웅들이 이 전쟁이 고대신을 상대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었냐고 물을 때 대체 뭘 얘기해야 할까요?

아제라이트로 전쟁을 해서 양 진영의 병기를 강화시켰다? 병기는 그냥 개발해도 됩니다.

양 진영을 싸움붙여서 정예화시켰다? 싸우다 죽은 정예병력이 몇 배는 많을 겁니다. 농민을 징집한다는데요.

말이 되는 주장은 제가 봤을 때 딱 하나입니다. 고대신들은 어차피 부활하게 되어 있는데, 언데드가 아닌 필멸자들은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하니 전쟁으로 시체와 언데드를 늘리는 것이 고대신 막는데는 낫다는 겁니다.

당연하지만 얼라는 물론이요 포세이큰을 제외한 살아있는 호드에게도 씨알도 안 먹힐 주장입니다.
따라서 진짜 이런 '이타적인' 동기가 있었을 경우 남은 패를 다 잃기 직전까지 실바나스가 이 논리로 누굴 설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살리려고 죽인다' 전략이 실효성을 떠나서 진짜라면 그 동기가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 구분하는 것은 본인이 고백하지 않는 이상 어렵긴 합니다. 위의 1번 2번 3번 동기(진영전쟁 승리, 고대신 견제, 안전보장)이 전부 혼합된 형태인데, 대족장님 인성을 생각해 볼 때 남들을 위해서 그랬다기보다 본인 자리와 생존을 위한 동기가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발진 속마음도 통 알 수가 없는데 실바의 속마음이 어떻게 표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이타적 시나리오로는 일부러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서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롬과 이렐이 친구먹는 것 이상의 끔찍한 캐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실바는 국내외적으로 적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진짜 느조스 잡을 생각이었다고 해도 자칫하면 그 전에 가로쉬처럼 뚜드려맞고 쫓겨날 상황입니다. 만년동정처럼 니들이 날 죽이러 오던 말던 나는 개썅마이웨이 느조스만 조진다 이렇게 나올수도 있긴 한데, 대족장님 성격을 볼 때 그닥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다가 2목숨 다 쓰기라도 하면 얄짤없이 사후세계 가서 고통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당장은 느조스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리는 척 하면서, 얼라이언스 및 호드 내 저항을 분쇄한 다음 다시 느조스를 통수치려고 할 확률이 있어 보입니다. 나타노스가 검은 제국의 단검을 들고 나즈자타에서 물 속으로 들어간 이유가 그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즈샤라와 비슷한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고요.

다만 이건 죽음과 고대신들에 관한 실바의 궁극적인 생각이 뭐냐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확실하게 뭐라 하긴 힘든 영역입니다.

근데 사실 상술한 시나리오는 실바를 최대한 잘 쳐 준 거고, 제딴에는 뭔가 있어 보이려고 노력했으나 실제로는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다고 해도 스토리상 별 문제는 없습니다. 잘아타스 단검이야 암사 플레이어한테 들어서 뭐하는 물건인지 알고 있다고 쳐도 실바가 느조스의 그림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는 전혀 밝혀진 게 없습니다. 반면 느조스는 기본적으로 고대신으로서 많은 걸 볼 수 있고 자신의 뜻이 담긴 단검을 실바 진영에 침투시켰습니다. 정보력에서 너무 차이가 납니다.



세 번째의 동기로는 안전보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머지 두 동기는 이것을 위한 밑작업이라고 봅니다.

사로나이트에 한번 파괴된 이후로 실바나스는 포세이큰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아제로스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는데, 문제는 살아 있는 것들은 거의 언데드를 안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든 토벌당하고 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얼음왕관에서 봤던 그 끔찍한 사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1. 언데드가 무리없이 지내는 세상을 만들거나 2. 사후세계를 좀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1번은 일단 호드에 가입함으로써 어느정도 해결하긴 했는데 여전히 얼라이언스라는 위험요소는 강대하고, 호드 내부 시선도 그닥 좋지는 않은데다 아라시고원에서 변절자들이 생기고 로데론 계승자에 빛의 언데드라는 환장할 존재까지 등장했습니다.

때문에 전쟁 그 자체를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시체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어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끔 포세이큰의 세력을 늘리려고 할 수도 있긴 합니다. 의미없는 전쟁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전 세계가 일어난 시체로 가득할 수도 있고요.

리치 왕 아서스가 전 세계를 스컬지로 뒤덮어 악마와 공허로부터 아제로스를 방어하려 했듯이, 실바나스는 그런 문제까진 생각 안하더라도 그냥 '죽음은 우릴 다 데려가지. 근데 그 죽음을 지배하는 게 나네?' 하면서 아서스 실바나스 평행이론에 따라 포세이큰으로 아제로스를 덮는 게 목적일 수 있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주된 명분을 뭘로 대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이건 실바나스가 추구할 모든 동기를 충족하는 제일 좋은 시나리오입니다. 포세이큰이 호드니 어쨌든 호드의 승리고, 죽음의 대주주들에게 갈 영혼을 빼앗으면서 엿먹일 수 있고 또 포세이큰은 아제로스에서 천년만년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또 왜 자신의 마스터플랜을 얼라는 물론이요 호드로부터도 숨겨야 했는지 그 이유가 명백합니다. 다만 게임플레이의 한계상 성공할 수가 없는 비극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2번은 사후세계 창조입니다. 일단 실바나스가 얼음왕관에서 왜 그런 끔찍한 사후세계를 봤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원래 그런 운명이 아닌데 고대신의 피가 장난을 쳤을 수도 있고, 언데드(스컬지 계열)이 죽었을 때의 디폴트 운명이거나, 아니면 최악으로 거의 대부분의 필멸자 영혼이 사후에 자동으로 그런 사후세계로 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바 개인이 지은 죄에 대한 영혼들의 복수 개념으로 고통받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얼음왕관에서 본 사후세계가 어둠땅인지 공허 차원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고대 신들이 어둠땅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서, 혹은 공허 차원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빨면서 사후세계에서도 세력을 불리는 중이라면 자유 언데드를 계속 늘리는 실바나스는 공허에게 큰 눈엣가시입니다. 죽이고 싶어할 만도 합니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공허의 세력이 언데드 자체를 싫어할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어둠달 부족을 보면 공허의 힘으로 언데드를 잘 부리고 다닙니다. 강령술은 빛 계열도 있긴 하나 대개는 암흑마력을 쓰고, 죽기도 스킬 등에서 공허의 힘을 휘두른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그훈의 경우는(혈마법이긴 하지만) 아예 언데드를 대량생산해서 군대로 씁니다.

문제는 자기들이 통제하는 게 불가능한 언데드 수의 증가입니다. 언데드 제작자들은 언데드에 대한 지배권이 강해 고대신들이 간섭하기 힘들고, 특히 실바나스는 자유의지를 가진 언데드 사회의 리더라는 게 가장 눈엣가시일 겁니다.

공허가 악마들만큼이나 영혼을 좋아한다는 것은 고대신들의 온갖 헛소리 대사와 싸움꾼 조합의 영혼 흡수 떡밥으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빛벼림 언데드라는 초유의 개념이 탄생한 것도 이것 때문일지 모릅니다. 느조스는 빛이 모두의 적과 손을 잡았다고 했는데, 공허가 이미 죽음 영역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면 빛은 자유 언데드를 일으켜 세워 공허에게 갈 영혼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공허의 경쟁사였던 불군기업이 소비하는 영혼이 없어져서 빛이 직접 나선 걸 수도 있지만요. 이 영혼 쟁탈전은 앞으로의 와우 로어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주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바나스는 헬리아와 거래하면서 이 사후세계 문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자세히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헬리아 본인이 과거 정령계도 만들고 헬하임도 만들고 하면서 이런 포켓차원 관련 최고 대가이고, 또 동시에 원조 발키르 대장이니 실바나스에게 원하는 사후 관련 안내를 해주고 대책도 상담해 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금 과감하게 추측하면 헬리아가 아예 볼진에게 실바를 대족장 만들도록 귀뜸한 존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첫째 대책은 에이르였고, 실패했습니다. 현재 발키르가 딱 세 개 남았는데, 고드프리 열사의 헤드샷 때 목숨값으로 치룬 게 3개체이니 실바나스의 목숨은 두 개 남았습니다. 두 번 죽으면 얄짤없이 아서스랑 사이좋게 사후세계에서 뒹굴어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 발키르를 더 만들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떠오른 것이 실바나스가 자신만의 사후 차원을 만들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제로스에는 정령계 등 인공 차원이 꽤 있고, 그 중에 사후세계로 볼 수 있는 것이 에메랄드 드림 트로스 헬하임 등 몇 개 존재합니다.

전용 사후세계를 가지면 장점이 많습니다. 죽어도 이상한 데 가서 구를 필요가 없고, 조건만 충족하면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헬리아 같은 경우는 심지어 자기 차원에서 죽어도 안 죽는 모습을 보입니다.

리치왕 볼바르와 브원삼디는 똑같이 균형을 언급하며 실바나스를 견제하고 있는데, 이 둘이(특히 브원삼디가) 살육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영혼수집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걸 생각하면 단순히 실바나스가 전쟁 일으켜 사람 많이 죽였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이 말하는 균형은 자기네들이 정해놓은 죽음의 영역 경계가 뉴비 실바나스의 진입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엘룬도 이런 선상에서 비슷하게 끼워맞춰 볼 수는 있습니다. 엘룬은 에메랄드 꿈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나이트 엘프의 영혼을 이끈다고 알려진 데다 가시의 전쟁에서 사울팽의 결정에 개입해 실바나스의 계획을 방해했다고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자체도 '조화' '균형' 등의 단어와 연관성이 꽤 많습니다.

실바나스가 성공적으로 포세이큰의 사후세계를 만든다면 죽더라도 고통받을 필요 없으며 포세이큰을 계속 늘리고 사후세계에 귀속시켜 인구소모 없이 계속 충직한 백성으로 부릴 수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가면 굳이 필요 이상으로 전쟁을 걸어 시체를 늘리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다만 기존 죽음 영역의 강자들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뺏어가는 경쟁자가 늘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실바나스에게 볼진을 다시 일으킨 자가 누군지는 아직 짐작이 가지 않지만, 아마 이런 죽음의 파벌싸움에 큰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