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서 태어난 자 -13- <판테온의 권좌>




  아스타르는 판테온의 권좌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사령관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일리단 스톰레이지란 악마사냥꾼이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는 차원문에서 나오는 악마 병사들을 능숙하게 처치했다. 그의 실력을 보니 악마사냥꾼은 허울 뿐인 명칭이 아니었다.


  “제가 놈의 머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마그테리돈은 콧김을 내뱉으며 청했다. 아스타르도 그와 일리단 사이의 악연을 잘 알고 있었다. 마그테리돈을 내보내서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일리단을 잡고 싶은 자는 마그테리돈만이 아니었다.


  “아스타르님. 저도 보내주십시오.”


  하메라였다. 전투에 대한 갈망이 강한 그녀는 일리단과 대적할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저도 보내주십시오.”


  이번에는 카드락스가 나섰다. 호승심이 강한 사령관들은 공을 세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그테리돈은 이런 자원이 못마땅했다.


  “일리단은 내 몫이다.”


  “네가 놈에게 어떤 패배를 맛보았든 내 관심사가 아니다.”


  마그테리돈은 카드락스의 말에 당장이라도 한판 붙고 싶다는 듯 콧김을 강하게 내뿜었다. 카드락스도 기죽지 않고 검을 뽑았다.


  “그만.”


  일촉즉발의 상황을 막은 이는 아스타르였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행동을 멈추고 그를 주목했다.


  “놈을 처치하고 싶은 너희의 충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놈은 군단의 배신자다. 군단이 배신자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알려주어야지 않겠느냐? 그러니 산 채로 잡아라. 놈에게 죽음이 자비라는 걸 깨닫게 할 것이다.


  “본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모두 한목소리로 답했다.

 



  일리단은 거대한 아나이힐란이 나타난 것을 느꼈다. 비록 일리단은 두 눈을 잃었지만 살게라스의 힘으로 부여받은 시야 덕분에 그가 마그테리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그테리돈. 설마 네놈이 이것들의 주인이었나?”


  “일리단. 네놈을 짓이길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네놈의 피를 뽑아내서 남김없이 마셔주마.”


  일리단은 미소를 지었다.


  “말은 잘하는구나. 네놈의 자리를 빼앗은 자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것이냐? 오늘 네놈에게 또 패배를 안겨주마.”


  일리단의 눈에서 녹색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마그테리돈은 날개로 몸을 가려서 광선을 가볍게 막았다.


  “고작 그 정도로 패배를 선사할 수 있겠느냐?”


  마그테리돈은 일리단을 향해 돌진했다. 일리단과 마그테리돈 사이에 있던 병사들은 깔리지 않기 위해 재빨리 옆으로 비켰다. 일리단은 마그테리돈의 글레이브를 날아서 피했다. 그와 동시에 전투검으로 마그테리돈의 눈가를 베었다. 마그테리돈의 눈가에서 피가 흘렀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날파리 같은 건 여전하군!


  카드락스는 마그테리돈의 고함을 들으며 둘의 전투를 지켜봤다. 하메라는 병사들에게 차원문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어차피 그들은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병사들이 대피하자 그녀도 카드락스 옆에서 전투를 지켜봤다. 민첩한 일리단이 마그테리돈에게 조금씩 상처를 내고 있었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일리단은 자신을 지켜보는 두 에레다르를 보았다. 둘 중 하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전향했던 쉬바라들이 알려준 정보 덕분에 알고 있는 자였다. 카드락스였다. 하지만 다른 에레다르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저들이 네 새로운 주인인가?”


  “누가 내 주인이란 말이냐? 어리석은 놈. 저것들은 내 주인님이 아니다.”


  일리단의 물음에 마그테리돈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네놈의 부하도 아니다. 난 저것이 아닌 카드락스다.


  카드락스가 말하자 마그테리돈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콧김을 강하게 내뿜었다. 일리단은 잠시 그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놈이 카드락스였군. 지옥불꽃으로 타오르는 마검을 잘 다룬다고 들었다. 악마사냥꾼을 상대로도 그 솜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


  “오래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카드락스는 검을 뽑아들었다. 검에서 녹색 불꽃이 일어나더니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일리단의 시선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에레다르에게 향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지옥마력으로 볼 때 고위 에레다르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느 에레다르와 미묘하게 달랐다. 그녀에게서 미세하게나마 고위 나루 제라의 흔적이 느껴졌다.


  “제라의 졸개가 악마의 길을 선택한 건가?”


  하메라는 제라의 졸개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일리단은 그녀가 제라졸개중 어느 쪽에 불쾌감을 더 느꼈는지 내심 궁금했다. 둘 다일까


  “소개가 늦었군, 일리단 스톰레이지. 난 하메라다.”


  “그런가? 나도 인사가 늦었군. 잘 가거라. 하메라. 이놈들만 처리하면 곧 네가 왔던 곳으로 돌려 보내주마.”


  하메라는 등에 메고 있던 빛의 몰락을 뽑아 들었다. 검에서 붉은 빛과 함께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 일리단은 간만에 적수를 만났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하메라는 일리단이 반푼이 악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처음 검을 맞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좀처럼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강인하면서도 교활했다.


  그는 마그테리돈이 하메라와 카드락스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할 줄 알았다. 거대한 글레이브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하메라와 카드락스는 겨우 몰아세운 일리단이 유유히 빠져나가는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마그테리돈의 성난 소리가 울렸다.


  걸리적거리지 마라!”


  하메라는 마그테리돈을 쏘아봤다. 누가 누구한테 걸리적거리지 말라고 하는 건지 한심했다. 일리단처럼 안광을 쓸 줄 알았으면 저 멍청이부터 불태우고 싶었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놈이군.”


  카드락스도 한숨을 내쉬었다. 일리단은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셋이 하나만도 못한 것 같군.”


  “네깟놈을 처리하는 일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


  마그테리돈이 고함을 지르더니 글레이브로 지옥불꽃을 발사했다. 하메라는 분을 삭이며 뒤로 물러났다. 일리단이 마그테리돈을 죽이게 두는 것이 전투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일리단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옥불꽃을 피하자마자 마그테리돈 대신 하메라를 노렸다. 전투검이 하메라의 목을 향했다. 그녀는 검으로 쳐낸 후 뒤로 물러나 다음 공격을 피했다. 곧바로 자세를 잡은 그녀는 강하게 검을 내려쳤다. 일리단은 두 전투검으로 막았다. 공격이 무겁게 느껴졌는지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착각이었다. 눈을 가린 안대 속에서 녹색 빛이 점점 커졌다. 녹색 광선이 하메라의 얼굴을 향해 분출되었다. 좋은 전략이었다. 여느 악마였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느 악마들과 달랐다. 그녀의 몸을 감싼 보호막은 광선을 여느 마법처럼 간단히 흡수했다.


  일리단의 얼굴에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메라는 빛의 몰락을 더 강하게 휘둘렀다. 그는 이번에도 두 전투검으로 막았지만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일리단은 일어나면서 쓴 미소를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힘든 상대였다. 이 악마들을 처치하려면 악마의 본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는 고통을 억누르며 온몸에 힘을 줬다. 어둠이 그의 몸을 안개처럼 감쌌다. 몸의 근육이 팽창하면서 일리단은 점점 거대해졌다. 그가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면서 날개를 펼치자 완전한 악마가 나타났다. 타오르는 것만 같은 녹색 눈이 하메라를 응시했다.


  하메라는 기다리지 않고 일리단을 향해 돌진했다. 빛의 몰락이 일리단의 머리를 덮쳤다. 하지만 전투검이 공격을 간단히 막았다. 일리단은 곧장 전투검을 이전보다 더 빠르게 휘둘렀다. 하메라의 갑옷으로도 전투검을 완전히 방어할 수 없었다. 갑옷의 틈새로 뜨거운 피가 흘렀다. 


  탈태를 한 일리단은 더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날개를 펼쳐 도약하더니 그대로 하메라를 전투검으로 내리꽂았다. 간발의 차로 공격을 막았지만 이번엔 하메라가 뒤로 밀려나 쓰러졌다.


 이게 전부인가?”


  일리단이 하메라를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 혼돈의 화살이 일리단을 향했다. 녹색 화염이 폭발음과 함께 솟구쳤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일리단의 몸에 불길이 번졌다. 하지만 악마의 화만 더 돋우었을 뿐이었다. 그는 곧장 안광을 카드락스에게 퍼부었다. 녹색광선이 닿기 전에 카드락스는 소환진을 사용해서 피했다.


  마그테리돈은 안광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이전처럼 날개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녹색 광선이 날개를 뚫고 그의 몸으로 쏟아졌다. 마그테리돈은 크게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일리단은 멈추지 않았다. 마그테리돈을 이대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기 전까지 그럴 뻔했다.


  일리단은 안광을 거두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원문 앞에 또 다른 에레다르가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에레드루인도 있었다. 하메라와 카드락스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군.


  “그렇다. 난 아스타르다.”


  일리단은 그 이름을 들어봤다.


  “기만자의 아들?”


  “나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군.”


  악마들에게서 얻은 정보 덕분에 아스타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가 알기로 아스타르는 킬제덴이 가장 총애하는 사령관이자 군단의 원정함대 아스타리의 제독이었다. 아스타리란 이름도 아스타르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네 아비의 복수라도 하려고 찾아왔나?”


  “복수라...? 그것도 좋지.”


  아스타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잡으려는 이유를 굳이 대자면 이것저것 붙일 수 있겠군, 일리단 스톰레이지.”


  이유가 무엇이든 네놈이 날 잡지는 못할 것이다!


  일리단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주운이 아스타르의 앞을 막으려고 했지만 아스타르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아주운은 지시대로 물러났다. 일리단의 눈에서 분출된 광선은 아스타르를 정확히 노렸다. 아스타르는 왼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붉은 광선이 안광을 상쇄했다. 두 악마의 지옥마력은 서로를 삼키려고 했지만 균형을 이루었다.


  아스타르는 카드락스에게 눈짓했다. 그는 곧바로 일리단을 향해 불덩어리를 날렸다. 불덩어리에 맞은 일리단은 고통 때문에 집중이 흔들렸다. 그러자 붉은 광선이 안광을 밀어내면서 나아가더니 일리단을 덮쳤다.


  일리단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고통을 참으면서 힘겹게 일어났다. 아스타르는 하메라와 아주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둘은 일리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주운이 철퇴를 내려 찍자 일리단은 옆으로 피했다. 피함과 동시에 빛의 몰락이 일리단의 측면으로 날아왔다. 전투검으로 쳐내려고 했지만 허리를 베였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피했다.


  그러나 에레드루인도 날 수 있었다. 아주운의 철퇴가 일리단을 후려쳤다. 전투검으로 막았지만 그대로 일리단은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스타르는 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채찍을 만들어 휘둘렀다. 채찍은 일어나려던 일리단의 목을 휘감았다. 그가 당기자 일리단이 그대로 끌려왔다. 아스타르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붉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창이 2개 나타났다. 두 붉은 창은 일리단의 양 허벅지를 꿰뚫었다. 일리단의 입에서 고통이 토해짐과 동시에 허벅지에서 피가 튀었다.


  “애처롭구나, 일리단. 군단의 위대한 사명을 져버리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냐?”


  아스타르는 그를 내려보며 조롱의 미소를 지었다.


  “왜 군단의 필연을 방해한 것이냐?”


  “정녕 몰라서 묻는 건가?”


  일리단은 고통을 억누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내세운 대의는 내 고향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너희만 막는다면 내 고향을 지킬 수 있다.”


  “어리석은 놈.”


  아스타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를 막고 이곳만 지키면 네 고향에 구원이 있을 줄 알았느냐? 고작 우리의 성전을 방해하고 이곳에 틀어박혀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었다고 위안을 느끼다니. 티콘드리우스가 망각의 길로 빠지기 전에 알려주더구나. 네놈에게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에 네놈의 영혼에 표식을 남겨두었다고. 덕분에 그 표식을 좌표로 삼아서 차원문을 열 수 있었다. 이제 알겠느냐? 네놈의 알량한 목적 의식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오직 군단만이 타락의 씨앗을 잠재울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 그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다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넌 군단이 우리 세계에 저지른 짓을 아무것도 모른다.”


  감히 내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느냐?”


  아스타르의 눈에서 분노가 일었다. 그는 채찍을 후려쳐서 일리단을 던져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일리단은 고통에 찬 숨을 내쉬었다.


  “난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성전의 기수로 살아왔다. 수많은 세계를 불태우고, 가치 없는 자들을 잿더미로 만들었지. 네놈의 세상에서 군단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으냐? 설마 내가 그걸 몰라서 네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네놈이야말로 공허의 끝없는 굶주림을 모른다! 당장은 네놈의 세상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그러할까? 백년? 천년? 만년?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이 걸려도 공허가 너희 세상을 탐할 것이다.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친히 네놈의 고향에 놈들이 자리 잡지 못하게 철저히 정화할 것이니.”


  아스타르는 쓰러진 일리단을 뒤로 한 채 살게라스가 봉인된 권좌로 향했다. 살게라스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그만...둬라! 놈을 깨우면...안 돼!”


  아스타르의 뒤에서 절망이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권좌에 지옥마력을 주입했다.

 

 


  지옥마력은 티탄의 봉인을 완전히 뚫지 못했다. 이토록 견고한 봉인은 아스타르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겨우 주입한 마력에 반응한 것인지 정지되었던 살게라스가 깨어났다. 살게라스의 권좌가 진동하자 아스타르는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아스타르. 네가 언젠가 나를 찾으리라 예견했었다.”


  아스타르의 내면에서 살게라스의 음성이 울렸다.


  “타락의 씨앗이 싹틀 틈을 만들지 않는 너라면 날 찾을 줄 알았다.”


  “그리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전에 대한 네 결의는 여전한 것 같구나. 비록 네 아비는 그렇지 못했지만.”


  아스타르는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 하지만 살게라스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지켰다.


  “일리단 스톰레이지를 죽였느냐?”


  “아직 살려두었습니다. 배신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릴 것입니다.”


  아스타르는 쓰러져있는 일리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살게라스는 일리단을 보더니 웃었다.


  “일 처리가 여전히 확실하구나. 놈의 영혼은 내 분노를 직접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나 육신은 온전히 지켜야만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강림할 육신이 필요하노라.”


  “주인님을 이곳에서 해방할 방법은 그것 뿐입니까?”


  “그렇다. 내 형제들은 모든 힘을 써서 나와 함께 정지되었지. 이 구속은 필시 나를 막기 위한 비장의 수였을 것이다. 비록 내 힘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강림 의식만이 내가 자유를 되찾을 방법이다.


  아스타르는 아주운에게 손짓했다.


  “놈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아주운은 일리단을 향해 움직였다. 일리단은 겨우 앉은 채 웃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막을 것이다. 넌 네 아비처럼 실패할 것이다.”


  일리단은 전투검으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옥마력이 흘러넘치지 않는 장소라는 점을 이용해서 죽음으로 도망가다니. 아마도 그의 영혼은 뒤틀린 황천 어딘가로 돌아갔을 것이다. 일리단은 못마땅한 적이지만 기발한 면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놈을 지옥강령술로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메라가 일리단의 배에 박힌 전투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아스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필요한 건 놈의 육신이다.”


  그는 강림 의식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