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첫째 날은 보통 그렇듯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우리는 기지 구축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담수가 흘러드는 강어귀 가에서 이상적인 장소를 찾아냈다. 근처에 낡고 버려진 부두가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은 예전에 어떤 종족이 거주 하던 곳인 것 같다. 그러나 원래 누가 살던 땅이었는지는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냥 여행을 위해 나는 아제크 루아크 양과 얼가딘 경, 그리고 나의 믿음직한 하인 바닐 스톤팟과 함께 이곳에 왔다. 나는 아제크의 아버지와 함께 얼라이언스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녀가 성장한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무기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쳤다. 활 다루는 솜씨를 보면 그녀의 몸에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얼가딘 경은 인간 귀족 출신이다. 그의 부친 얼가딘 백작은 후덕한 심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2차 대전쟁 이후 스톰윈드 재건이 진행되는 동안 석공 길드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로비를 펼치며 노력한 것도 얼가딘 백작이었다. 스톰윈드가 석공 길드를 배반한 이후 여러 해 동안 얼가딘 경은 왕국 내에서 귀족의 역할에 대해 비판을 가해왔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혈통으로 이어받은 귀족 평의회의 지위를 지킬 마음이 더는 없었다.

여기서 다른 화제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치 논문이나 전기 같은 것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책은 가시덤불 골짜기의 푸른 언덕에서 대단한 사냥을 하던 시절의 내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났고 바닐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제크는 주의가 좀 흐트러진 것 같았다. 오늘은 긴 여행을 해야 하고 사냥 또한 위험할 것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제크는 휴대용 식기를 헹구기 위해 강가에 서 있는 바닐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제크에게 오늘 있을 사냥에 집중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려는 순간, 그녀가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더니 불쌍한 바닐을 향해 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제크가 맞추려 했던 건 바닐이 아니었다. 바닐이 놀라 입을 벌린 채로 옆으로 비켜서자 아제크의 화살이 정확하게 미간 한가운데에 박힌 거대한 민물악어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무성하게 우거진 정글을 헤치고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한 발짝씩 신중히 내딛으며 사냥감을 찾아 무성한 수풀 사이로 천천히 이동했다. 실망스럽게도 오전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골짜기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오후에는 사냥 여행의 긴장이 풀어져 바닐은 이제 야수가 사냥감을 뒤쫓듯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주 마른 잎이나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아 큰 소리를 내며 길을 따라 되는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닐이 한 발짝 발을 헛디디자 얼가딘 경은 그 큰 손으로 바닐의 어깨를 잡았다. 아제크와 나는 그가 다만 부주의한 바닐에게 꼭 필요한 따끔한 질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별생각 없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얼가딘 경을 머리로 천천히 근처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거기엔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송곳니 바로 위로 두 개의 검은 눈이 뚫어질 듯 무섭게 우릴 쏘아보고 있었다.

 

2장

 

그 짐승은 가시덤불호랑이 수컷이었다. 내가 총을 겨누기도 전에 얼가딘 경은 석궁을 들어 그 짐승을 쏘았다. 화살은 빗나갔지만 놈의 왼쪽 옆구리에 큰 상처를 냈다. 호랑이는 도망치려고 헛된 시도를 해보았지만 부상이 너무 치명적인 것이었다. 놈이 잠시 비틀거린 후 바닐이 도끼를 던져 놈을 완전히 처치해 버렸다. 놈의 죽음으로 원정대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바닐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벌꿀술을 따라 주었으나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체를 다시 기지로 보내기 위해 준비하느라 모두 방심하고 있던 중에 끔찍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 것이었다. 내 생애에서 피가 얼어 붙는 것처럼 그렇게 섬뜩한 소리는 다시 들어 보지 못했다. 석양빛에 윤곽이 빛나는 바위 절벽 위에서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고양잇과 사냥감을 발견했다. 나는 내 라이플 총으로 서투르게 한 발 쐈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은 처음보다 더 큰 소리로 한 번 더 으르렁거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소지품을 챙겨 무거운 마음으로 야영지로 돌아왔다.

나는 대원들에게 다음 날은 아제로스 전역에서 모피 수요가 대단히 높은 표범을 사냥할 것이라 약속했다. 얼라이언스를 위해 용감하게 자심의 삶을 희생하고 있는 모든 전문 사냥꾼, 덫사냥꾼, 가죽 상인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수요는 당연한 보상이라 할 수 있다.

아제크와 얼가딘 경은 드워프 라이플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사냥하는 방법을 꼭 배우고 싶어하고 있다. 나는 그 두 인간 친구들에게 그들이 가진 사정 거리가 짧은 무기들을 야영지에 두고 오도록 했다. 바닐과 나는 그들에게 아이언포지의 최상급 소총을 지급했다.

오늘은 새로운 퓨마 흔적을 쫓아 남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밧줄로 만들어진 멋진 다리가 놓인 계곡에 이르렀다. 기술이 낳은 이 경이로운 다리를 보는 순간 나는 이 지역을 묘사한 바닐의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종종 트롤 원주민은 원시적이고 교육 받지 못한 종족이라 생각했지만,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다리를 올려다 보면서 나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뤄낸 트롤 건축가들의 솜씨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제크는 남서쪽으로 표범을 뒤쫓았다. 우리는 언제라도 사냥감을 공격할 수 있도록 사격 태세를 갖추고 조용히 걸어갔다. 근처 숲에서 들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우리는 바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다. 단호한 눈짓 한 번으로 바닐에게 내 뜻을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바닐은 천천히 총을 내렸다. 이번 사냥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 동료들을 위한 것이었다. 셀 수없이 많은 표범들이 이미 우리에게 희생당했다. 이번 사냥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제크와 얼가딘 경은 균형을 잡고 서서 흔들리는 나무 밑에서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거대한 놈에게 총을 겨누었다. 한낮의 태양은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핀을 뒤로 당기는 얼가딘 경의 관자놀이에서 땀 한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식물이 갈라지고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검은 표범이 곧 평원 위에 쓰러졌다.

 

3장

 

우리 인간 친구들은 나무 사이로 숨어 달리는 표범을 쫓으며 눈을 단련했다. 총이 든 통은 서로 잘 묶여 있었다. 바닐은 간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냥은 인간 친구들을 위한 것이지 바닐이나 내가 낄 자리가 아니다. 얼가딘은 요란하게 총을 쐈지만 모두 빗나갔다. 그리고 그는 총격의 심한 반동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총이 반동으로 그의 팔 안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통이 옆으로 떨어져 아제크는 총 아래로 굴러갔다. 아제크는 바로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갑자기 굴러온 통으로 조준이 흐트러져 총알은 뚜렷한 소리를 내며 나무 있는 곳을 향해 발사되고 말았다. 새 떼가 울부짖으며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나뭇가지가 똑바로 떨어져 달아나는 표범의 등을 부러뜨리는 광경을 두려워하며 지켜보았다.

몇 주가 지나면서 표범과 호랑이 가죽이 상당히 많이 모였다. 이제 사냥감의 수준을 좀 더 높여 랩터를 사냥 할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인간 친구들은 바닐과 내가 제공한 훈련에 대해 고마워하긴 했지만 소총을 사용한 사냥은 그만 하기로 결정했다. 아제크는 시위가 팽팽하게 잘 조절된 활을 사용하는 데 훨씬 더 익숙했고, 얼가딘 경은 항상 그의 견고한 석궁을 들고 사냥에 나섰다.

우리는 해가 뜨자마자 트카시 폐허를 지나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바닐은 붉은머리부족과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나는 바닐에게 붉은머리부족은 그들 일족의 숙적인 백골가루부족을 처치하는데 여념이 없을 거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물론 바닐은 전혀 안심하지 않았지만, 나는 장전된 총, 화약을 가득 담은 가방, 그리고 세 명의 뛰어난 사냥꾼이 있어 어떤 적이 습격해 온다 해도 걱정이 없었다.

나는 전장에서 수없이 지옥을 드나들었다. 바로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불타는 군단이라는 지옥의 군대를 그들에 비하면 난폭한 트롤 무리는 던 모로의 언덕을 뛰어다니는 토끼만큼이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트카시 폐허를 지나 왔고 이로써 바닐도 많이 안심하게 되었다. 대해를 향해 서쪽으로 계속 가면서 바로 남쪽에 보이는 줄쿤다의 폐허의 가장자리를 지나쳤다. 높은 해안 절벽을 올라가던 도중에 첫 랩터 사냥감을 발견했다. 그 짐승은 우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놈이 이번에 우리에게 받은 인사라고는 미간에 박힌 총탄뿐이었다. 아제크가 성공을 인정하듯 내게 고개를 끄덕이자 얼가딘 경은 열렬히 만세 외쳤다. 나는 축하의 담배를 한 대 피울 생각으로 파이프를 찾기 위해 짐을 뒤졌다. 바닐은 랩터의 시체를 가져오기 위해 서둘러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운 사냥에 성공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쓰러진 짐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평선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불쌍한 바닐 바로 위 언덕에 몇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망쳐, 바닐! 나는 소리쳤다. 아제크, 얼가딘 경, 그리고 나는 바닐의 뒤를 쫓아오는 랩터들을 향해 일제히 총탄과 화살, 그리고 석궁용 짧은 화살을 계속 쏘아 댔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한 놈을 처치했다. 우리는 재빠른 조준 사격으로 바닐은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언덕 아래로 도망쳐서 우리와 다시 합류했다. 우리는 밀림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포악한 채찍꼬리랩터 무리가 계속 우리를 쫓아왔다.

사냥꾼들이 오히려 사냥감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4장

 

나는 해안가에 랩터로부터 숨을 곳이 있기를 바라면서 동료들을 바다쪽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서둘러 도망쳐 오는 바람에 북쪽으로 너무 멀리 도망쳐 와 위태로운 고지까지 오고 말았다. 이미 실수는 저질러졌고 그건 모두 내 잘못이었다.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 끝에 멈춰 섰고, 랩터들은 겨우 몇 발자국 뒤에 있었다. 난 천천히 총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난 이 용감한 사냥꾼들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고 말았다. 따라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채찍꼬리랩터들은 특히 사나울 뿐 아니라 피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굶주림으로 알려져 있다. 놈들은 수적으로도 우리보다 훨씬 우위였다. 나와 내 동료들이 희생되기 전에 놈들을 처치하지 못하면 나는 저주를 받아 마땅했다. 아제크와 얼가딘 경은 무기를 든 채 내 양 옆에 서 있었고 우리의 등 뒤는 바다였다. 바닐은 한숨을 내쉬며 도끼를 꺼내 들었다. 채찍꼬리랩터들은 우리 바로 앞에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우리가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먹잇감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저쪽에서 우리 쪽으로 커다란 백호의 사나운 포효가 분명하게 들려 왔던 것이다. 많은 숫자에도 랩터들은 몸을 돌려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날쌔게 우리를 지나쳐 랩터 한 마리를 덮쳤는데, 이 모습이 우리에겐 아주 잠깐 뭔가 하얀 것이 섬광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걸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어떤 명령도 필요 없었다. 우리 넷 모두 도망쳐야 할 때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전력을 다해 달려 야영지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는 이상한 운명의 장난 덕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으로 모닥불 주위에 조용히 둘러앉아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위대한 사냥꾼이 겪게 되는 위험이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빠져 나옴으로써 운명의 장난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언젠가 운명의 날카로운 이빨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드워프로서 가시덤불골짜기의 푸른 언덕에서 그러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