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새벽 2시에 만 53세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국 야구의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비록 같은 학교인적은 없지만 같은 나이에 같은 학번으로 한명은 팀 27연승의 신화적 기록의 연세대의 대표투수로... 한명은 주로 많이 졌던 고려대의 한 야구팬으로서 그의 고교시절부터 지켜봤던 입장에서 막상 그의 영면소식을 들으니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던 우리세대의 청춘시절은 완전히 지나갔다는 가슴저린 사실이 차라리 담담하게 받아드려 지네요.

 

우월하게 크거나 강인해 보이는 운동선수가 아니고 명석하고 고집센 부잣집 아이같은 느낌이였던 고최동원님은 사실 야구팬이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압도적인(얍도적인이 아님...) 강속구와 그의 몇십배 강렬한 승부욕으로 같은편이면 대만족, 적이면 최악인 존재였습니다. 그가 경남고를 졸업하던 시절엔 고교야구에 김시진, 김용남이란 동갑내기 투수들과 이만수같은 타자도 또, 1-2년 선후배엔 장효조, 김한근, 김윤환, 강만식등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있어서 실상 고최동원님의 3학년시절엔 정규대회 우승은 못했었고 각대회 우승/준우승팀이 모여서 치른 시즌 마지막 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우승했었죠.

 

그의 대학 진로는 당연 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이였고, 그가 고려대에 가등록했을때만 해도 야구팬으로서 그에 대한 지지와 기대는 가히 무한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등록을 취소하고 다른 학교도 아닌 연세대로 진로를 바꾸자 그에 대한 야구팬으로서의 기대는 그대로였지만 그에 대한 지지는 저주와 원망과 밉상으로 완전 바뀌었던 기억이 나네요. 실상 고최동원님의 대 고려대 성적은 그다지 좋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연세대에 박철순,김봉연,박해종,이광은,양세종등이 활약하던 때라 비록 그의 활약 자체로 진건 아니였지만 아무튼 그의 연세대시절 4년간은 고려대야구팀에겐 악몽이였습니다.

 

이제 그 한명의 천재 야구선수도 세월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영면하게 되었다니 같은 세대의 야구팬으로서 또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남자로서 한없는 아쉬움과 애도를 느낍니다.  비록 세상은 그 없이도 기계바퀴처럼 돌아가겠지만 야구팬이 존재하는 한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영원한 편안함과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