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글은 Achiel (Akkirus) 님의 레이드 이야기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디아블로2 전세계 4번째 99레벨 만렙달성,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에버퀘스트(EQ) 최고의 레이드팀 리더,WOW 국내 최정상공대 GroundZero 의 공격대장,

  오락실 리듬게임의 초고수, 대입수능 만점에 육박했던 수재,

  화려한 게임경력 을 빛내주는 막강한 리더쉽과 카리스마.

  그를 설명할수 있는 많은 수식어들을 생각해보면 게이머로서의 경의를 표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현재 Achiel님은 mmorpg 게임 개발사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

  우리가 WOW에서 즐기는 현재의 레이드 란 PVE 컨텐츠의 대부분의 기초 개념은 에버퀘스트에서

  나온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그로 , 풀링, 레이드에 있어서 역할분담 의 밑그림 , 심지어 정규 공격대의 아이템배분을 위한 포인트 제도

  까지 자잘한 부분들까지 에버퀘스트 를 논하지 않고서는 레이드의 뿌리를 이야기 할수가 없지요.

  

  저의 개인방송에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모습, 성인군자처럼 팀원들을 이끌던 모습을 보며

  '보살공장' '보살님' 등의 닉네임으로도 불리우는 Achiel (Akkirus) 님.

  저는 술자리에서 가끔 들려주는 보살님의 이런 흥미로운 게임이야기들을 글로 정리해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보살님 본인의 역사, 레이드의 작은 역사라고 볼수 있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출처 (Achiel 님의 미니 홈페이지 http://cyworld.nate.com/achiel)

 

시작에 앞서

어느 덧 이런저런 게임에서 레이드라는 컨텐츠를 즐겨온 지도 만으로 9년이 넘었다.

내 20대의 시간의 대부분을 레이드에 투자해왔고 어느 덧 내 지난 기억과 인간관계의 거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기에, 한 번쯤 정리해서 기록해보려는 생각은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입사 준비를 위해서 같이 게임하던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포트폴리리오를 작성하다보니 그 때의 기억들이 다시끔 생각나게 되었고, 이제 짬짬히 지난 시간의 추억들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파멸의 시작- Everquest

2001년 4월의 내 생활은 전형적인 게임 폐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때는 한참 디아블로2를 하던 시기였고, 아시아 렐름에서 4번째로 99레벨을 달성한 후 하드코어 모드로 게임을 하던 때였다.

 

아마 정확히는 4월 2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8레벨 바바리안으로 하드코어 래더 2위였던 그 때 랙으로 인해 사망하고 그 때의 충격으로 디아블로2를 그만 하게 될 결심을 하게 된 날이 말이다.(디아블로 2 하드코어는 한 번이라도 죽으면 그 캐릭으로 다시는 플레이할 수 없다.)

 

뭔가 다른 게임을 해야겠다 하는 차에, 디아2때 같이 게임하던 일당들이 에버퀘스트라는 게임을 시작했다고 같이 하자고 꼬득이기 시작했다. 그 3인의 패거리 중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놈이 미소리라는 닉을 사용하던 놈인데 디아2때 알게 되서 같이 조단 팔러 여기저기 다니면서 친해진 녀석이었다. 그 꼬득임에 넘어가 결국 에버퀘스트 패키지를 구매하고 8.95$를 결제하면서 인생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에버퀘스트는 뭔가 매우 새로우면서 접하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지금 보면 매우 조잡해보이는 3d 그래픽과 영어의 압박은 게임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었지만, 미소리의 꾸준한 꼬득임으로 Rodcet Nife에 우드엘프 레인저 Achiel 캐릭을 만들게 되었다.

 

우드엘프 마을이 나무 위에 있기에 게임 시작하고 10분도 안되서 낙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럴때마다 캐삭과 재생성을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차츰 더러운 인터페이스에도 적응해갈 무렵, 이 게임은 혼자서는 사냥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게임 접속하면 항상 Ranger LFG(Looking for a group)을 외치며 진짜 MMORPG라는 것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시 한인 연합 길드였던 Arirang에 가입하게 되었다. Rodcet Nife 서버에는 3개의 한인 길드가 있었는데 그 길드들이 연합하여 단일 길드로 구성된 것이 Arirang이었다. 길드 가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이 후 Everquest 2까지의 내 레이드의 기반은 이 사람들을 통해 다져지게 된다.

 

길드 리더는 Nashira라는 바바리안 워리어였으며 서버에서 상당한 올드비 축에 속하는 나름 유명세 있는 플레이어였다. 유창한 영어 구사와 온라인 상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그의 언행들은 그를 충분히 멋지게 보이게 만들었다.(물론 실제의 이미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나에게 레이드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과 리더로서의 역활 수행에 대한 개념 등을 알게 해 준 레이드에 있어서 나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며, 최근에는 현실 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분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는 큐티지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5레벨 정도의 일이었을 것이다. 한참 레벨업을 위해 사냥하던 중, 길드원 한명이 PL(Power Leveling, 쫄)을 해준다며 왔다. 48레벨 트롤 샤먼 Richardo였다. 하지만 도와준다던 그 녀석은 스펙터 구경시켜준다며 데려와다가 전멸이나 시키고 온갖 민폐만 다 끼치다가 사라졌다. 그 Richardo가 와우에서 큐티지미인데, EQ 시절에도 온갖 잡질과 병신같은 행동만 일삼다가 게임을 접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결국 만렙은 내가 더 빨리 찍었다.)

 

길드 가입 후 레이드라는 것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었다. 던전 하나를 Raid(박멸)한다는 것이 어원인 레이드는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각자의 역활을 수행하여 모여 잡는 것을 칭하는 말이었다. 얘기를 듣게 된지 얼마 안 되서 길드 오프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림동의 인터쿨 PC방에서 레이드라는 것을 난생 처음 구경하게 된 나는 첫 눈에 레이드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당시의 에버퀘스트는 두 번째 확장팩이 출시된 상태였고, 만렙은 60레벨이었다. 보통 만렙까지는 하루 플레이타임 4~5시간 기준으로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되었고, 혼자 사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레벨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던 요소였다. 레이드를 참여하려면 보통 힐러는 53레벨 이상, 딜러는 거의 60레벨 만렙이어야 가능했지만, 레인저라는 클래스는 너무나 개체수가 적은데다가(일단 매우 꼬졌으므로) 55레벨부터 고유 버프가 존재하였기에 55레벨 부터 참여가 가능했다. 그리고 난 그 55레벨을 향해 열렙을 하기 시작했다.

 

첫 레이드

결국 난 게임 시작한지 3개월만에 55레벨을 달성하고 첫 레이드를 참여하게 된다. 2001년 7월 3일의 일이었다. 레이드에 대한 나의 의지는 하루 15시간씩 레벨업을 하게 만들었고, 이는 디아2 시절의 래더 경쟁에 비하면 가소로운 일이기도 했다.

 

첫 레이드 참여는 Temple of Veeshan의 East Wing이었다. 지금도 많은 유명 레이더들에게 전설의 던전으로 회자되는 ToV는 처음으로 윙 구조를 갖춘 레이드 던전으로 North, West, East로 구성되어 있다. West와 East윙은 각각 1마리의 보스와 세미 보스들, 그리고 수많은 일반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몹들이 와우의 티어셋과 유사한 형태의 토큰을 드랍한다. West와 East의 차이는 평판의 차이이며, East Wing은 용들의 평판인 Skyshrine을 선택한 사람이 파밍하는 곳이다.

 

일반몹이라지만 일반몹의 강함은 와우의 일반몹과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당시 30여명으로 East Wing 파밍을 진행하였는데 풀링 미스로 두 마리가 오게 된다면 그대로 전멸이었다. 와우로 치면 얼왕 일반모드 보스급 수준의 몬스터들을 매 순간 일반몹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풀러의 역량이 중요했으며, EQ는 풀링의 스킬이 필요한 지금까지 유일한 레이드 게임이다.

 

풀링은 FD(Feign Death, 죽척)이 가능한 몽크와 쉐도우나이트가 전담했다. 기본적인 개념은 몹을 여러마리 인식하고 끌고 오다가 FD하면 돌아가는데 약간 순차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를 이용해 여러마리의 몹을 조금씩 나눠서 본진에 감당할 수 있는 수의 몹을 데려오는 것이 풀링이다. 몽크의 경우 풀링에 필요한 많은 방어적인 쿨타임기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풀링에 적합했으며, 메인풀러의 역량은 레이드 리더와 메인탱커의 역량보다도 레이드 진행 속도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첫 레이드에서 난 별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용들의 신전에서 비록 일반몹이라 할 지라도 웜, 드레이크 등을 어렵게 잡아가며 레이드에 대해 차츰 알아가게 되었고, 결국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난 60레벨을 달성하게 되었다. 레벨 캡이 60으로 풀린 지 20여개월이 지난 상황이었고 Rodcet Nife는 매우 오래된 서버였음에도 난 서버에서 45번째로 60레벨 레인저를 달성하게 되었다.

 

에버퀘스트는 51레벨, 55레벨, 60레벨에 직업명칭에만 변경이 오게 된다. 60레벨 Warder Achiel. 2001년 8월 2일의 일이다.

 

EQ의 전반적인 레이드 개념

 

당시 EQ 레이드의 특징을 우선 몇 가지 살펴보자.

우선 인스턴스의 개념이 없었다. 지역이 나눠진 존으로 분류되었을 뿐 기본적으로 모든 지역이 와우의 필드와 다름없었다. 보스 몹은 일주일마다 한 곳에서만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길드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으며 후발 길드가 새로운 보스를 공략할 기회는 매우 적었다. 또한, 상위 길드간에 합의를 통해서 로테이션 등으로 매 주마다 나눠먹기도 했으며, 하위 길드들이 치고 올라올 기회를 막기 위해 레이드 시간이 아님에도 보스 몹이 젠되면 상위길드간의 연합을 통해 공략하기도 했다. 이는 이 후의 인스턴스 타입의 레이드와는 다르게 길드 간의 정치적인 요소 또한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고, 레이드의 또다른 재미 중 하나였다.

 

인스턴스의 개념이 없었기에 당연히 인원 제한도 없었다. 같은 보스를 20명이서 잡건 100명이서 잡건 상관이 없었단 뜻이다. 다만, 적은 인원일 수록 상대적으로 개개인에게 좀 더 많은 룻이 돌아갈 수 있는 뜻이기에 상위 길드들은 적절한 인원의 수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또한, 인원 수로 밀어붙혀서 잡는 것을 Zergling이라 비하하는 추세가 강했기에 소수의 엘리트 집단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이드 구성을 위해 별도의 인터페이스 또한 제공되지 않았다. 따라서, 6인으로 구성된 파티를 처음에 수동적으로 Forming하여야 했으며 그 과정은 1~20분씩 걸렸던 기억이 난다. 편의를 위해 1파티에 탱커와 메인 힐러들로 구성되는 성향은 추후 와우까지 이어졌다.

 

EQ의 시스템 특징 중 하나는 정면에서 Dodge, Parry 외에도 Riposte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면에서 공격할 경우 반격당할 기회가 있고, 보스 몹의 공격력은 딜러들의 경우 한 방에 즉사시킬 수 있을 수준이었기에 근접 딜러들은 무조건 옆이나 뒤를 잡는 것이 강요되었다.

 

이를 좀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몹이 타격에 의해 '밀린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레이드 포메이션으로 탱이 앞에 서고 근접 딜러들이 뒤에 선다면 뒤에서의 타격이 훨씬 많기에 몹이 조금씩 앞으로 밀리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메인탱커가 조금씩 드리블을 하거나 구석을 등지고 탱해서 아예 앞으로 밀릴 공간이 없게끔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레이드 보스를 공략할 때 저런 밀리지 않는 코너가 존재하냐를 찾는 것이 공략 성패의 큰 요소가 될 정도였다.

 

힐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클레릭이 메인탱커 힐을, 다른 힐러들이 같은 파티 멤버들의 힐을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모든 힐은 시야에 상관없이 거리만 나오면 힐이 가능했고, 이는 밑에서 설명할 광역기의 형태에 따라서 자리를 잡는 것이 레이드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끔 하는 요소가 되었다.

 

메인탱커의 힐은 지금으로는 상상치도 못할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Complete Heal이라는 HP를 10000 채우는 스킬을 주력으로 이뤄졌는데 당시 모든 탱커의 만피는 풀버프 5천 가량이 최고였던 시절이다. 따라서 무조건 만피를 채우는 기술인 것이다. 마나 또한 CH는 부담이 매우 적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캐스팅 시간이 10초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러 명의 클레릭이 몹에 따라서 2~4초의 간격으로 CH를 순차적으로 시전해서 로테이션을 맞추는 것이 탱커 힐링 택틱이었다. 이는 길게는 30분이 넘도록 CH만 기계적으로 시전하던 클레릭들에게는 상당히 큰 곤욕이었다. 그리고 저레벨 클레릭이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든 특징들은 차후 새로운 확장팩이 나올때마다 점차 개선되고 사라져서 와우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거의 모든 기틀이 완성되었다

Epic Quest와 Planes

Everquest에는 각 클래스별로 Epic Quest라는 것이 존재했다. 최종 보상 템으로 무기를 얻는 꽤나 긴 내용의 퀘스트였는데, 클래스마다 그 단계와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었고 보통 레이드급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 보상은 Monk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기였다. Monk는 예외적으로 장갑을 보상으로 얻었으며, 클릭 시에 인스턴트 캐스팅의 자체버프가 생기고 무기를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상당한 수준의 맨손 대미지를 얻게끔 하는 아이템이었다. 스탯 또한 장갑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었기에 Monk의 에픽 착용은 필수라 할 수 있었다. Cleric의 에픽 무기는 클릭하면 부활을 시전했고 Enchanter는 클릭 시에 헤이스트 버프를 주었기에 레이드에서 매우 활용도가 높았다. Rogue는 느린 공속에도 불구하고 높은 대미지의 단검을 보상으로 주었기에 Backstab을 위해서 다음 확장팩 이전까지는 에픽 무기 착용이 필수에 가까웠다.

 

Ranger는 Earthcaller와 Swiftwind라는 각각 주무기, 보조무기의 쌍검이 보상이었다. 주무기는 발동으로 슬로우를, 보조무기는 착용효과로 헤이스트와 전투력을 올려주는 컨셉이었다. 무기의 대미지 자체는 당시 레이드에서 얻을 수 있는 무기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보조무기인 Swiftwind만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조차도 최종적으로 가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비교적 퀘스트가 어렵지 않았고 특히 Swiftwind는 Earthcaller보다 먼저 얻을수 있었기에 만레벨 Ranger에게는 교복과도 같은 무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룩에서 나름 간지가 났다. 아래는 레인저 에픽의 모습.

 

 

Monk, Rogue, Druid, Enchanter의 에픽 난이도는 매우 쉬운 편이었기에 만렙 혹은 그 근처에 임박해서는 다들 부담없이 수행하고는 했다. Wizard와 내가 플레이했던 Ranger의 에픽도 비교적 쉬운 편에 속했고 Cleric이나 Bard는 약간 난이도가 있지만 에픽 무기의 활용도가 좋았기에 길드 차원에서 많이들 도와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머지 클래스는 레이드에서 얻을 수 있는 무기보다 성능이 좋지 않은데 반해 그 입수 난이도는 매우 높았기에 다들 꺼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픽 퀘스트는 내가 플레이하던 시절인 The Scars of Velious 확장팩보다 이전 확장팩인 The Ruins of Kunark 시절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퀘스트의 전 과정은 Kunark 시절의 지역과 레이드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Kunark 레이드 중에는 신들의 영역인 Plane이 몇 곳이 있었으며, 거의 모든 에픽 퀘스트는 최소 한 번 정도는 Plane의 레이드를 거쳐야 했다.

 

Ranger 에픽의 가장 어려웠던 점 또한 역시 Plane 파트였다. Plane of Sky는 새로운 확장팩이 나왔음에도 그 난이도에 있어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동 시스템이나 재정비 등에 워낙 제약이 많아서 다들 꺼려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Ranger 파트는 비교적 초반부에 이뤄지긴 했지만 PoS를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Earthcaller를 위해 가야하는 Plane of Hate 그닥 좋지 못한 보상으로 인해 역시 다들 꺼려하는 곳이었다. 또, 그곳의 보스인 Innoruuk이 일정 확률로 드랍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내 에픽 퀘스트는 전적으로 운에 의해 이루어졌다. PoS 파트는 55레벨 때 길드 Magi인 Hananoken님의 에픽 퀘스트를 위해(보통 Magi의 에픽 퀘스트는 그 지옥의 난이도로 인해 거의 해주지 않지만 워낙에 올드비이셨던 분이었기에) 같이 따라갔다가 우연히 획득하게 되었다.  PoH 파트는 Swiftwind를 먼저 만들고 한참동안 Earthcaller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약 반 년이 경과한 후 심심해서 놀러간 Innoruuk이 드랍해줘서 완성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에픽 보상들은 그 활용도가 높지 않지만, 어려운 에픽 퀘스트일 수록 그 상징성은 매우 높았다. 한 사람의 퀘스트를 위해서 별다른 큰 보상도 없는 곳에 레이드 인원이 동원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 잘못되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EQ를 플레이하면서 유저들에 대한 명예와 평판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예시이다

 

Dozekar와 Kael Drakkel

갓 레이드를 시작하고서 아머 파밍을 위해 거의 매일같이 다니던 ToV의 East Wing에는 Dozekar the Cursed라는 보스가 있었다. 당시의 기준으로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며, 당연히 아머 파밍을 위해 잡던 일반몹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최고급 아이템의 제작을 위한 Tear라는 것을 드랍했고, 이 아이템들은 다음 확장팩 까지도 해당 부위에서는 최고의 수준이었던 것들이 많았다.

Dozekar의 대표적인 스킬은 광역 디스펠이었다. 시야 내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대미지와 함께 가장 최근에 들어온 버프 하나를 지우는 광역기를 사용했으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클릭으로 즉시 버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필수적이었다. Monk의 에픽 장갑과 Coldain의 연퀘 반지 8단계 이상(추후에 따로 언급할 계획이다.) 등이 대표적이었고, 이 Insta-click 아이템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파밍을 하기도 했다.

 

내가 속했던 Arirang에서는 이 Dozekar를 내가 레이드를 갓 시작하기 전부터 꾸준히 잡아왔었다. 당시의 보스몹은 죽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후에 젠이 되었으며, 서버 다운 후에는 모든 보스들이 젠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북미 서버였던 관계로 서버 점검은 항상 아시안 시간의 저녁에 이루어졌고, 따라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Dozekar를 선점하고서 다른 길드들이 구경조차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2001년 7월부터 2002년 3월에 보스 젠타이머에 7일+-12시간의 랜덤 타이머가 적용되기 전까지 단 한 번의 젠도 놓치지 않고 서버 다운의 리스폰을 포함해 37번의 Dozeker를 사냥했으니 우리에겐 전력의 강화를 충실하게 도와준 효자몹과도 다름없었다.

 

Kael Drakkel은 당시 자이언트들의 마을이자 레이드 지역이었다. 자이언트 평판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곳을 마을로 이용하였고, 드워프나 드래곤의 평판 작업을 위해서 파티를 구성해 꾸준히 몹을 사냥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ToV에서 나오는 방어구 피스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인 드워프 방어구 피스를 드랍하기도 했기에, 갓 레이드를 시작하던 하위 길드들은 이 곳의 파밍을 꾸준히 했으며, ToV의 North Wing을 레이드 하는 최상위 길드들의 유저들 중 드래곤 평판을 유지하고 싶던 사람들은 매일 레이드가 끝나자마자 이 곳에 와서 자이언트를 잡으며 평판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곳에는 총 4마리의 보스몹이 존재했다. 모두 다 특별한 고유의 스킬 없이 물리 공격이 매우 강한 스타일이었으며, 우리의 밥줄이었던 것 또한 공통점이었다.

 

Derakor the Vindicator는 레이드에 갓 입문한 길드들이 공략하기 좋은 보스였다. 다른 보스들과는 달리 1일의 리스폰 시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꽤 쓸만한 가슴보호구를 드랍했다. 기본적인 평타가 매우 쎄고 Rampage라는 2타겟 공격을 사용했기에 힐 택틱을 연습하는데 도움이 됐으며, 타격에 의해 몹이 밀리는 것에 대비해 드리블을 연습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리고 당시 EQ 레이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3분마다 탱커 인계 연습에 또한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 Arirang이 매우 힘든 시기였을 때에도 적은 인원으로 이 녀석을 상대로 연습하면서 버텨낸 만큼 우리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보스였다.

Derakor the Vindicator

 

The Statue of Rallos Zek은 이름 그대로 전쟁의 신이었던 Rallos Zek의 동상이다. 일주일의 젠 타임을 가지고 있었고, 동상이었기에 당연히 AC가 매우 높아서 대미지가 잘 박히지 않는다. Flurry라는 무식한 수준의 4연타 공격을 사용했지만 공속 감소가 가능햇기에 풀링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어려운 보스는 아니었다. 최상급의 가슴보호구와 쓸만한 무기들을 드랍했다.

King Tormax는 Kael Drakkal의 왕이다. 일반적인 자이언트 평판과는 별개의 평판을 가지고 있으며, 드워프의 왕인 Dain Frostreaver IV의 목을 가져다 주면 Belt of Dwarfslaying으로, 드래곤의 왕인 Lord Yelinak의 목을 가져가면 Gauntlets of Dragonslaying으로 바꿔주는 NPC이기도 하다.(둘 모두 최고 수준의 아이템이다.) 그 자신도 죽으면 목을 드랍템으로 남기며, 이를 Lord Yelinak에게 가져다주면 역시 보상을 준다.

위의 두 마리 보스에 비해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물리 공격을 하며, 풀링 또한 쉬운 편이 아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Rampage를 사용하며, 탱커는 3분 지속의 Defensive Stance가 끝나면 종잇장처럼 지워지곤 했기에 탱 인계를 위한 어그로 작업 또한 매우 중요했다. 난이도에 걸맞게 드랍템 또한 최상급이었다.

마지막은 The Avatar of War이다. 와우 오리지널 낙스라마스의 패치워크 대사를 보면 "Kel'Thuzad made me the avatar of war!"라는 것이 있다. 이는 당시 패치워크의 컨셉이 AoW와 마찬가지로 무식한 수준의 물리 공격을 퍼붓는 타입이었기에 AoW에 대한 오마주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AoW는 당시 시절에는 Legacy of Steel이라는 곳에서 단 한 번만 잡았을 뿐, 본격적인 공략이 가능했던 것은 다음 확장팩이 나온 후 한참이 지나고서였다.

 

AoW는 전쟁의 화신이라는 이름 그대로 무식한 수준의 물리 대미지를 자랑했다. 현재까지 겪어본 모든 게임의 레이드 보스몹 중에서 느낌상 가장 아픈 녀석일만큼 그 인상은 강렬했다. 당시 탱커의 만피가 5천 가량이었는데 무지막지한 Flurry 공격이 10분 쿨 3분 유지의 Defensive Stance를 사용하고서도 1200x4회가 들어오는 수준이었으니 말 다했다. 당연스럽게도 공속 감소는 불가능하며 평타 속도 또한 미친 수준이다. 결국 다음 확장팩 출시 후 AA라 불리우는 와우로 치면 특성 포인트가 생기고서야 공략이 가능했으며, 이 때도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몹 중 하나였다. 드랍템도 다음 확장팩 수준의 드랍템을 떨궜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절대 잡으라고 만들어 둔 몹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AoW의 공략이 더 어려웠던 것은 그 젠 시간이다. 위에서 말한 The Statue of Rallos Zek이 죽은 후 딱 한 시간동안만 젠 되어 있다가 사라져 버린다. 와우에서 볼 수 있었던 초창기 벨라나 알갈론의 칼퇴근 컨셉은 AoW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의 공략시간으로는 저 무식한 녀석을 눕히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Arirang은 2002년 8월에 가서야 AoW의 공략을 성공했다. 이 때의 뽕맛은 내 레이드 경험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Achiel (Akkirus)의 레이드 이야기 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보기 링크 : http://www.gpax.co.kr/service/bbs/gpax/review/view/479

 1편 원문글 링크 http://www.gpax.co.kr/service/bbs/gpax/review/view/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