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는 빨리 끝나서 좋지만, 시험도 빠르군요. 에라이 인생!

혹시 심심하실까봐 예전에 써두었던 야ㅅ..소설인 프로토타입 멀록 메이드를 올려봅미다 : )




※ 만화판과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 )


※ 설정은 항상 어딘가 엇나가 있습니다. : )


※ Pc 기준으로 작성해서 모바일에선 글이 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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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한번 오지게 맑다.



스톰윈드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한지 어언 일년 정도 지났을까. 아제로스에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탓에 대도시의 군 관련 직종은 항상 자리가 남았다. 원래대로의 기준

이라면 경비병은 커녕 일반 병사조차 제대로 취직하지 못했을 내가 스톰윈드에 정착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상경한 이유였던 긴 전쟁 덕분이었다.



아무튼간에 이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관문에서의 지겨운 업무를 마치고 

난 뒤 해질녘 귀가하니 텅 빈 집이 나를 반긴다. 고향에서 올라온 시간이 문득 길었다는 사실을 

깨닫았을 때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가실 수가 없었다.



특히나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최근 비상사태로 인해 야근하는 일이 길어 적당

히 먹다 내팽개치고 나간 음식에 곰팡이와 날파리가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 방구석에 쌓인 먼

지가 두께를 측정 가능한 레벨에 도달하니 이게 사람 사는 곳인지 호드가 임시로 구축한 전초기

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대론 안된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집이 이 모양이라면 난 순직하기 전에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한 순간,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해 가정부를 고용

하기로 마음 먹었다.



월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술 마시고 책을 사서 읽는 것 외엔 특별한 취미가 없었

던 탓에 일정량을 고향으로 보내고 남겨놓은 생활비가 꽤나 쌓여있었고, 앞으로 최소 몇 개월 간

은 메이드(가사도우미)를 고용할 형편이 되었다.



난 비번인 날 시간을 내어 파출부 센터로 향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탓에 스톰윈드의 

중앙 광장에서 길을 물어 찾아가려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게시판의 전단지에서 운명적인 무언가

를 느꼈다.



[이종족 메이드. 숙식 제공시 월급 2골드]



"세상에 맙소사. 이건 꼭 사야... 가 아니라 계약 해야만 해."



내 월급이 기본 15골드에 세금을 제하고 나면 13골드 40실버 정도가 남았다. 거기에 세금과 월세

에 수돗세, 기타 생활비를 빼고 나면 약 10골드가 남는데 보통 가사도우미의 시급이 10실버는 되

었으므로 주말을 제외하고 생각해도 월 8골드 이상은 계산해야했다.



숙식이야 뭐 맨날 일에 야근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으니 거의 리스크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이

종족? 솔직히 말하자면 언데드만 아니면 상관 없다. 언데드는 어린 시절 할로윈 때 트라우마가 생

긴 이후로 나이를 먹은 지금도 영 께름측해서 웃는 낯으로 맞이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게시판에서 전단지를 뜯어낸 난 적혀있는 약도와 주소지를 따라 발을 옮겼다. 약간 두루뭉술하게 

설명 되어있긴 했지만 작은 키에 공용어에 능통하고 세탁, 다리질 빨래 개기와 설거지 청소 요리 

기타 잡무를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적혀 있었으니 완벽하리만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파출부 소개소에 찾아가니 접수원 아가씨가 영업용 미소로 나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손님. 가정을 깔끔하게! 저희 메이드 전문 회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밖에는 파출부 소개소라고 되어 있는데요."



"요즘 손님들은 가사도우미나 파출부라고 하면 잘 먹히지가 않아서 사장님께서 정책을 바꾸셨거

든요. 사람들은 메이드라는 단어에 묘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까라면 까야죠. 

그래서 어떤 업무로 찾아 오셨나요?"



"아아 그게, 전단지 보고 찾아왔는데요."



내가 전단지를 건네자 접수원 아가씨는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사 이런 좋은 조건에 아

직까지 계약이 체결되었을리 없겠다는 생각에 살짝 체념하며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뭐랄까 인기 없는 막내동생을 만남 주선하는 맏언니의 표정과 같았다.



안내 데스크 옆쪽에 있는 고블린(아마 상사로 보인다)이 헛기침을 하자 접수원 아가씨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영업용 스마일로 전환했다.



"선금 1골드 50실버에 후불로 나머지 50실버를 저희 은행 계좌로 입금하시면 되구요. 여기 계약

서의 인적사항란과 앞면, 뒷면에 정자로 이름을 적고 싸인해주세요. 특별한 사유 없는 단순 변심

으로 인한 계약 파기는 선금을 돌려받을 수 없으시니까 약관을 꼭 확인하시구요."



"아 예."



약관이라고 써 있는게 설마 한 가득 새겨져있는 검은 얼룩을 말하는 것일까. 난 예전부터 이런 

창구에서 하는 업무들에 약했다. 고분고분 공백란을 채워갈 무렵 고블린 상사가 잠시 점포 밖으

로 담배를 피러 나가자 접수원 아가씨가 조심스레 속삭여왔다.



"저기요 손님."



"예? 뭔가 문제라도?"



"그게 아니라요.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단순히 가격때문에 이종족 메이드를 고용하는 거면 별

로 추천드리고 싶지 않아요. 생김새와 신체구조뿐만 아니라 문화나 생활습관까지 차이가 나다보

니까 채 일주일도 못가서 계약 해지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집안 정리라던지 그런 것 때문이라서요. 어차피 평소엔 일때문에 집을 비우

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렇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만약에 해지한다해도 회사에는 남는 장사일텐데요."



"돈이야 남겠지요. ...하지만 상처도 남겠지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접수원 아가씨는 점포의 문이 열리자마자 언제 그랬다는듯이 방실방실 

영업용 스마일을 하고 있다. 땅딸막한 고블린과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가사도우미, 아니 메이드 

들이었다. 인간과 노움, 심지어 나이트 엘프도 있었는데 아까 접수원 아가씨가 메이드가 환상이

라 잘먹힌다는 이야기가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곳의 사장은 천재가 아닐까.



성질머리가 고약해보이는 고블린은 아무리 봐도 '내가 이곳 실세야!'의 오오라를 뿜고 있었는데 

접수원 아가씨에게 다가가선 작게 귓가에 속삭였다. 바깥 소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귀

가 밝은게 내 흔치 않은 장점중 하나였으므로 그리 힘들지 않게 속삭임을 캐치할 수 있었다.



"폭탄 처리는 잘 되었어?"



"예에 주임님."



폭탄이라.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뒤쪽에 있는 메이드 아가씨들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소

리없이 낮게 웃었다. 아무래도 영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계약서에 싸인까지 다 해놓고 갑작스레 

물러달라는 말을 할 배짱이 없었던 탓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럼 손님. 손님께서 지목하신 메이드는 오늘 저녁중에 댁으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귀가해 주십시오."



"예에. 그럼 수고하세요."



혹시라도 진짜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인화성 발화물질을 배송했다간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 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다. 게시판에 이 가사도우미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을 빼곡히 적은 대

자보를 몰래 붙여버려야지.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고 보니 상태가 정말로 개판이었다. 관리를 위해 메이드를 부른다

곤 했지만 이건 글쎄, 양심이 예전 호드 총사령관 수준인지라 진짜로 폭탄을 집어 던져도 할 말

이 없는 비쥬얼이었다. 간단하게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묶어 분리수거하다보니 어느 새 저녁 무

렵이 다 되었다.



노을이 서서히 사라지고 땅거미가 멀리 산등성이에서부터 다가올 무렵에 작은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똑똑



"계세요?"



채 어린 끼가 가시지 않은 맑은 미성이지만 묘하게 갈라진 듯한, 아니 울리는 듯한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낯선 음색이었기에 순간 감기에라도 걸린 건 아닐까 오지랖이 일었다. 앞으로 

한동안 홈 스테이 할 손님을 밖에서 기다리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평상복을 가다

듬고 문을 열었다.



"지금 나갑니다. 누추하지만 어서..."



"...안녕하세요."



이 소설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집으로 온 메이드는 내가 생각한 높이에 없었다. 거기엔 음

... 가시? 이거 가시인가?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무튼 가시비스무리한 무언가가 있었고 조금 아

래에 양서류를 닮은 얼굴이 조심스레 날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 훈련소에서 적으로 상대할 때 어

디를 공략하라! 하고 배웠던 멀록의 캐리커쳐를 둥글둥글하게 데포르메하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

을까 싶은 존재가, 그래 뭘 빙빙 돌려서 말하랴. 



멀록이 있었다.



키는 1미터가 조금 넘을까. 평균적인 멀록보다도 조금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은 언젠가 순찰나가

서 봤었던 야생 멀록과는 다른 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리호리했고 놀랍게도 가게에서 보았던 

다른 메이드들과 같은(약간은 색이 바랜) 풍성한 메이드복을 입은.



음... 역시 멀록이다.



난 난생 처음으로 멀록이 애처로워보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가게엔 제가 어떻게든 잘 말씀드릴 테니까 선

수금은..."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스톰윈드에 상경한 지 얼마 안된지라 멀록을 처음 봐서요! 이런 실

례가 하하! 어서 들어오세요!"



그 때 접수원 아가씨가 걱정했던 건 이런 부분이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컬쳐쇼크랄지, 솔직히 

멀록과 공용어로 대화하는 순간이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고(아옳옳하고만 말하는 줄 알았

다) 이렇게 메이드로 고용하게 될 거라곤 정말 신에게 맹세컨데 사고의 편린조차 없었다.



다만 이대로 손님에게 면박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싶어 그녀(...여자 맞겠지?)를 집 안으로 맞이 

했다. 작은 동물처럼 쭈뼛거리며 어찌 할 줄 모르는 그녀의 손짐을 거실 한 구석에 내려놓게 한 

뒤에 쇼파에 앉으니 어색함이 감돈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천천히 움직이는 초침 소리에 맞춰 눈 앞의 멀록 여자의 안색이 서

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타인이 보기엔 굉장히 무례한 태도겠지

만 변명을 하자면 난 평소 여자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멀록과 대화한 적은 

없었으며 멀록 여자와 대화하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그래, 일단 당연한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를 꺼내자.'



"저, 메이드씨는."



"죄송해요 아직 제 소개를 안드렸네요. 제 이름은 구루아고 높은산 북부해변에서 몇 개월 전에 

스톰윈드로 상경했어요."



"하하 그렇구나 구루아씨."



"네에."



...요즘은 멀록도 비자가 발급 되는 건가. 아니 그전에 멀록에게도 국가라고 부를 만한 단체가 

있었던가, 그보다도 지금 큰일났다. 또 대화가 끊겨버렸다. 쇼파에 앉아있는 구루아씨의 얼굴에 

당혹감이랄지 척 봐도 안절부절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 참 진땀을 흘리던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제법 괜찮은 질문을 꺼낼 수 있었다.



"구루아씨는 어째서 스톰윈드에 오신 건가요?"



"도시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약간 꿈 비슷한게 있었어요."



젠장 둘다 과거형이야! 괜찮은 질문은 무슨 괜찮은 질문이야 빌어 쳐먹을 회백질반죽아! 아무래

도 최근 몇 개월 내에 겪었을 일은 이 작은 멀록 메이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오죽하면 직장에서 폭탄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차라리 공용어가 유창하다던지 무난한 선

택지가 많았을 텐데 어째서 남의 상처를 후벼파는 질문을 꺼낸걸까.



"저기... 괜찮아요. 신경써 주셔서 고마워요."



구루아씨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하곤 쇼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고 힘 없는 동작으로 가방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에게, 웃긴 꼬라지도 정도껏 해야지 더 

이상 자존심이고 나발이고가 어딨나! 난 여자고 멀록이고 그딴 것 다 집어치우고 솔직하게 부딛

히기로 마음 먹었다.



"잠깐만요 구루아씨."



"네?"



"전 오전 7시 30분에 경비대로 출근하니까 오전 식사와 어느정도 집안 정리만 해 주시면 되요. 

점심은 보통 부대 안에서 해결하고 저녁 식사는 근무 시간이 대중 없어서 밖에서 때우는 경우가 

많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시구요."



"네에?"



"빨래는 일주일 동안 몰아서 주말에 한 번에 해결해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땀에 쩔어버리는 경우

가 많아서 주 수요일하고 일요일 두 번에 나눠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대나 날짜는 구루아

씨 편하신 대로 조정하셔도 되니까 부담 갖진 말아주세요."



"네에에?"



"어어... 잠시만요 펜과 종이좀 가져 올게요. 일정표를 적어 볼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전 제가 금방 쫒겨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손 짐이 적었던 건 지금까지의 경험상 오랜 시간을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던 탓에 다시 꾸리는 게 

싫어 정말로 간략하게 해놨던 모양이었다. 애초에 내가 동거인을 원했던 이유는 집안 꼬라지가 

더러워서라거나 그딴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집에 왔을 때 누군가가 맞이해줬으면 했을 뿐 생각

해보면 종족이 멀록이라던지 타우렌이라던지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내 머릿속에서 멀록에 대한 정의가 순식간에 새로 써 지고 있었다. 별 표정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멀록의 얼굴에 별 희안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새로

운 깨닫음을 얻었다는 기쁨... 은 개뿔 나같아도 경계부터 하고 볼 것 같다.



"그럼 아무래도 원룸이라 따로 방을 드리기는 어렵고 제가 쇼파에서 잘 테니 저쪽의 침대를 이용

하시면 되요. 아무래도 남자 혼자 살던 집이라 너저분하긴 하지만 그나마 침대 쪽은 정리가 되어 

있거든요. 맞아 저녁은 드셨나요?"



"네? 네에? 아니 침대가? 그게 아니라!? 아뇨?!"



반 쯤 어거지로 식탁으로 데려가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난 식탁에 앉아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님을 맞이한다는 작자의 저

녁 메뉴가 고작 시장에서 팔던 딱딱한 빵과 데운 야채스프로 빈약한 메뉴라니. 그럼에도 구루아

씨는 오히려 반색하는 기색이었다. 



초면에 남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로, 멀록은 식사를 어떻게 하는 

것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살짝 곁눈질로 바라보았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놀랐다.



얼굴 면적에 비해 입이 큰 편이라 확 집어 삼킬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단단한 빵을 나이프로 

잘게 잘라 스프에 찍어 조심스레 입에 넣고 오물오물 삼키는데 소리는 커녕 동작 하나 하나가 군

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보다 왠지 지는 느낌이 들어 나도 적당히 교양있는 식사를 흉내내어 저녁식사를 마쳤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는 구루아씨를 보면서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움직였다. 그러고보니 저녁식

사를 누군가와 함께 한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이었다. 그것이 짧게 있는 듯 없는 듯 흘겨넘긴 식

사와는 충만감이 다르단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신이 없어서 이번엔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

하지 못했지만 다음번엔 맛있는 것으로 차려야겠다. 생선은 좋아하려나.



"실례지만 뭐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예 물어 보세요."



"어째서 제게 잘 대해주시는 건가요?"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뭐라고 답해야 하는 것일까. 전단지에 저렴한 비용이 적혀 있길래 별 생각없이 계약을 맺

은 것이고 숙식제공이라고 말하기야 했지만 실제로 내 월셋방은 좁아 터졌고 빵에 야채스프는 저

녁식사라기보다 연료보급에 가까운 식단이었을텐데. 오히려 중간에 농간이 있었다곤 할 지라도 

초면인 사람을 괴물 보듯 쳐다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대했더라면 주저없이 화를 냈을 지도 모르는데.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수 많은 단어들이 문장으로 구성되질 않았다. 천천

히 떠뜸떠뜸 말을 내뱉었다.



"미안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놀랐어요. 그냥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는 생각에 반쯤 충동적으로 가정부를 구하려고 했었는데 정말로 멀록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거든요. 고의로 놀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네에?! 어라? 그게 아니라, 으우 왜 사과를 하시는데요..."



"구루아씨한테 그냥 여러가지가 여러모로 미안해서요."



"이상해요."



"아무튼간에 구루아씨 제가 당신을 메이드로 고용하려는 건 값싼 동정심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

라 상경한 지 일년밖에 안 된 제가 느끼기에 아무래도 베테랑 메이드보단 저처럼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함께 하는게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던 멀록 아가씨는 작게 한 숨을 후 내쉰뒤 빙그레 웃었다.



"그냥 구루아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되요. 그리고 메뉴얼 상 전 계약이 만료될 때 까지 당신을 주

인님이라고 부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주인님?"



"예, 아니 응."



"그런데 진짜 잠자리는 어떻게 할까?"



"주인님이 주무셔야죠. 메이드는 메뉴얼 상 그래선 안되요."



"잠은 편하게 자는게 제일인데. 그럼 같이 침대에서 잘까?"



"아옳?!"



아무래도 우리 집에 들어온 멀록 아가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표정이 다채로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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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내 손발...! 오글오글...!

참고로 구루아라는 이름은 크로아상에서 따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