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목금토일 이때쯤 본캐들 파밍과 헤딩을 하고 월화수는 그동안 흘린 넴드들을 시간 나면 주워가는 날이죠. 월화수에 던전을 처음부터 가는 팟은 대개 초보자들이 모여서 가는 헤딩팟입니다. 

이번주에 부캐 죽기를 만렙 찍고 모구샨 금고에 탱으로 가봤습니다. 전탱님은 처음이라고 하시고, 저도 탱으로는 처음이고, 공장님도 공장 처음 잡아보는 것이었고, 다른 공대원들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3넴 잡고 시간이 늦어서 쫑냈습니다. 애초에 시작한 시간도 빠른 시간이 아니었고, 이정도면 할만큼 했다 싶었어요. 3넴 헤딩이 길어져서 다른 사람들 장비를 살펴보기 했는데, 장비만 봐도 드라마가 펼쳐지더군요.


일단 전탱님
몽땅 영던 상급 파템 이상 두르고 계셨습니다. 전 투구랑 다리가 아무리 해도 안 나와서 그냥 딜템에 보석만 탱커용 박고 재연마 해서 쓰는데 이분은 그런거 없음. 몽땅 탱킹셋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어깨랑 가슴이 무작 공찾에서 먹은 에픽이예요. 
우와 이 사람 운 댑따 좋구나 하고 다른 장비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대니...

맥주 장신구를 차고 있는겁니다.

즉, 이 분은 가을축제 당시 이미 만렙이었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오늘, 모구샨 금고 일반에 처음 오신겁니다.
평판도 황금 연꽃, 음영파, 천신회 중심으로 열심히 올리셨어요...

가을축제가 끝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죠. 약 1달 반 전이었던가요? 그때 이분은 만렙을 찍고, 다른 사람들 레이드 뛰는 동안 자기는 경험이 없으니까 자신이 없어서 스펙 쌓는데 집중했습니다. 
영던을 신청하고, 돌고, 돌고, 또 돕니다. 
탱템이 나왔습니다. 기쁜 마음에 입찰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파티 진행에 누가 될까, 자기 템 안 나온 다른 파티원들 기분이라도 혹시 상할까 기쁨을 애써 감추며 진행을 서두르는 찰나,

듣보잡 판금딜러 파티원 A가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졸라 안 나오는 탱템]

전사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저 템을 보기 위해 인고했던 나날을 돌이켜 봅니다.
처음 봤던 니우짜오 1넴 다리, 그리고 그걸 가져가면서 헤죽헤죽 웃고 있던 파티원...
그 이름모를 파티원 얼굴이 지금 저 판금딜러에게 겹쳐보입니다.
애써 싫은 기억을 떨쳐내려, 전사님은 파티를 성공적으로 이끌 임무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그저 조용히 담배를 한 개피 꺼내 뭅니다.
이러한 좌절, 그분은 수도 없이 맛보았을겁니다.

그리고 무작위 던전-모구샨 금고.
탱으로 신청하면 정말 기본 대기시간이 1시간, 2시간이죠. 
다른 탱커들은 지인 힐러 꼬셔서 무작 신청하자마자 빠밤~ 소리와 함께 프리패스 받고 입장합니다. 
하지만 이 분은 그런거 몰라요. 우직하게 기다립니다. 
하염없이...한시간...두시간...
그렇게 해서 5주동안 돌아서 맞춘 템이 그 어깨와 가슴이예요. 
다시 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발을 디뎌볼 레이드, 그 맨 앞에서 파티원들을 지키는 자신을 꿈꾸며 그는 매일 부지런히 일퀘를 했을겁니다. 황금연꽃, 클락시, 그리고 나중에는 음영파천신회... 꿈에 그리는 그날 먹을 채소를 캐기 위해 농사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하루 2시간씩, 5주 동안요. 강태공 연합과 운룡단은 스펙업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평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나마 그것이 그저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날,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그날을 위해, 파티원들 앞에 당당히 설 그날을 위해 공략을 공부합니다. 무작에서 야매택틱은 숙지했습니다. 넴드가 사용하는 스킬도 외울 정도로 읽었습니다. 택틱도 충분히 암기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경험--------.

하지만 파티 채널에서는 다들 경험자를 찾습니다. 하드팟을 모아요. 불쌍한 전탱은 용기가 없어 손 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자기 스펙을 탓하며, 전탱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부족할세라 평작을 하고, 골드를 법니다. 힐러들이 자신을 살리는데 한치의 불편함도 없게,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막아낼 수 있게 스펙을 쌓습니다. 황금연꽃 반지를 사고, 클락시 목걸이를 사고...문턱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용기도 없고 조금의 뻔뻔함도 없이 우직하기만 한 우리 전탱님은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창에 그렇게 목이 타들어가게 갈망하던 초보자 파티가 생겼고, 전탱은 주저주저 하다가 과감한 한발을 디뎠습니다. 그게 저희 팟이었죠.

그렇게 힘들게 찾은 초보자팟, 1넴부터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전탱은 잘 했습니다. 공략은 완벽했고 파티원들의 잔실수도 본인이 메꿔가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한명이 아무리 잘 한들, 초보자 10인에게 모구샨의 벽은 높았고 전멸이 이어집니다.
전탱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무엇이 그리도 미안한지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닥을 조금 오래 밟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도발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어지는 전멸, 네임드의 광폭화.
모니터를 바라보는 전탱의 눈에는 조용히 눈물이 흐릅니다.

그렇게 해서 새벽 1시반, 
모구샨 금고의 3번째 네임드를 잡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첫 레이드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어휴 너무 길다
나머지 파티원들 도적, 신기, 흑마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