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도랄지...하드코어를 마무리하며

거의 1년이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하지만 거의 매일 같이 접속 버튼을 눌렀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참 오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절대 죽으면 안된다는 긴장감도, 사소한 실수 하나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던 순간도 끝이 났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은 후련하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쉽게 접속을 끊지 못하던 그 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시원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딱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처음에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내친구 건방진허새만과 함께 만렙만 찍어보자는 가벼운 시작이었다.

같이 퀘를 깨나가고, 죽을 뻔한 순간을 넘기고, 템 토론이며 스킬 토론이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며 레벨을 올렸다.

그 과정이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가장 값진 순간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만렙을 찍던 날.

그 순간의 기쁨은 아직도 선명하다.

친구, 길드원, 모르는 사람들의 귓말 축하까지...



당시 나와 친구의 목표는 단순했다.

4대 인던을 졸업해보는 것.

그게 끝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화심 한 번만 가보고 게임을 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그렇게 발을 들이다 보니, 어느새 더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클래식에서 최고 난이도라고 불리는 사원도 가보고,

낙스까지 발을 들였다.

비록 쑨도, 캘투도 잡아보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그곳까지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처음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위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전부 즐거움만으로 채워져 있던 건 아니었다.

 

약 두 달 전의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맥스나에서 ''''둘기공대''''가 무너졌던 그 날.

우연히 다른 공대에서 먼저 경험했던 기억 하나로,

나는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했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한 번 성공했던 석화 캔슬.

그 한 번이 문제였다.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는데,

나는 그걸 실력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석화캔슬 힐러로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첫 번째 거미줄 뿌리기는 최악의 타이밍으로 실패

두 번째는 어리벙리 하다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이 무너졌다.

그때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제대로 알았더라면

내가 한번만이라도 정확하게 했더라면

어쩌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사과를 해야 했다.

그게 맞았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책임을 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피했다.

비겁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이후로는 달라지려고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네임드를 가기 전에는

공략을 보고, 영상을 보고,

최소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건 단순한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또 터졌다

그리고 또 사상자가 나왔다.

힐러로서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어제 처음 알았다.

상위 던전을 공략한다는 건

단순히 공략을 본다수준이 아니라는 걸.

로그를 분석하고,

다른 공대의 플레이를 보고,

스킬 하나하나의 타이밍까지 계산하는 것.

그게 당연한 기준이었다는 걸.

나는 그걸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내 플레이에는 항상 대충이 섞여 있었다.

적당히 알고적당히 하고적당히 넘어가는 것.

적당함

하드코어라는 환경에서는 누군가의 캐릭터를, 시간을, 노력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걸

어제서야 제대로 체감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이 게임을 계속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

적어도

이 정도의 책임을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그만큼의 열정을 투자하지 못하는 이상

남아 있는 게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도 후회만 남은 건 아니다.

분명히 얻은 것도 있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

그리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큰 책임을 동반하는지도...


이건 게임 밖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제는 접속 버튼을 누르지 않을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보냈던 시간들,

같이 웃고, 긴장하고, 실수하고,

그 모든 순간들은

생각보다 오래 남을 것 같다. 다른 어떤 게임보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