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는 게임과몰입과 관련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2년부터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게임에 대해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2011년 게임문화재단을 만나면서부터 그는 직접 게임 개발에 관여하게 된다. 게임과 의학을 접목해 사람을 치료하는 진정한 '의료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한덕현 교수는 '2016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KGC2016)'에 일환으로 진행된 '제5회 기능성게임포럼'에서 '의학과 게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강연은 게임을 했을 때 뇌의 변화, 실제 기능성 게임 제작 경험과 주의할 점을 다뤘다.



■ 재미있는 의학? 재미없는 게임?

기능성 게임, 특히 의학을 입힌 게임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재미없는 의학과 재미있는 게임이 만나는 모순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물은 재미있는 의학과 재미없는 게임이 합쳐진 형태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의학 측면에서 게임은 의학적 요소가 적고 의미가 없으므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외면받는다. 의학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재미없는 게임의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의학적 방법보다는 부정확하므로 의사나 환자 모두 사용을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게임은 '융합'이라는 아주 좋은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접근법에서 보면 좋아 보이지만, 결국에 상업에서도 학문에서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게임은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학은 변수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원인을 찾고 진단, 치료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원인을 찾고 진단하는 과정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 사이에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반면 게임은 일정한 디자인을 가지고 알고리즘을 통해 변수를 만들어 낸다. 이 변수가 게임의 요소다.

그러므로 기능성 게임은 애초부터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작업이다. 의사에 입장에서 게임은 배, 머리, 팔이 연결되어 있는데 게임은 이를 따로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집단이 만나 미팅을 하면 의사들은 변수부터 파악하자고 하고 게임 디자이너들은 디자인부터 해야 한다고 많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이 같은 일을 줄이고자 한덕현 교수는 일반인도 또는 기능성 게임을 만드는 의사, 변호사들이 실생활을 게임의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분석 모형을 만들었다. 스토리텔링, 인지, 정서, 재미, 메커니즘, 기술 등등으로 게임의 요소를 나눴다. 물론 비전문성으로 인해 게임 업계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현재 이 분석 모형을 기반으로 한 심리검사 도구를 만들어 인지, 정서 장애 환자의 진단에 이용하고 있다.


▲ 게임을 활용해 MDD나 ADHD 등으로 기분장애가 발생하느냐 사고 충동이 발생하느냐를 선별하고 있다.



■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게임을 활용한 분석 도구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덕현 교수는 게임에 대한 뇌 반응을 오랫동안 공부해왔고 2004년 하버드 의과 뇌과학 연구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를 수행한다.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하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할 때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실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보다 병적인 자극이 더 많이 보고된 행위는 게임밖에 없다. 여기서 한 교수는 게임 플레이를 하면 어떤 반응이 있을지 과학적인 실제를 보고 싶었다.

일단 게임을 하면 인간의 시각과 청각이 자극을 받는다. 시각의 경우 대단히 많은 데이터가 한 번에 전송된다. 데이터는 뇌 뒷부분의 시각영역으로 전달되고 이를 다시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으로 전송한다. 뇌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받은 자극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한 행동을 취한다. 시각정보를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전두엽으로 가장 빠르게 보내기 위해 측두엽에 일종에 고속도로를 만든다.


연구하면서 얻은 '사실'은 게임을 할 때 전두엽의 시공간 지각 능력이 향상되고 수행 능력이 활성화된다는 결과였다. '게임을 하면 뇌가 녹는다', '게임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알 수 없다.

아울러 측두엽 고속도로의 에너지원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이 결과로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중독이 된다'는 사실은 알 수 없다. '게임을 하면 I.Q가 상승한다.' 따위 역시 알 수가 없다. 게임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만 알 수 있는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게임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혹은 '바보가 된다'라고 할 수도 있다. 과학은 모든 변수를 놓고 보는 것이지 하나만 보고 결론을 내리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 보기에 따라...



■ 게임은 융합이다

게임은 융합이다. 게임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30개 이상의 직업군이 모여야 하므로 함께 디자인하고 함께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덕현 교수는 '아이 러브 브레스트(I Love Breast)'라는 게임을 통해 의학과 게임을 융합했다. 이 게임은 유방암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발을 위해 2명의 정신과 의사와 3명의 암 전문 의사 그리고 게임 제작사가 힘을 합쳤다. 디자인 미팅만 8번을 하고 11번의 개발 미팅을 했다. 처음에는 의사와 디자이너, 서로의 알고리즘과 디렉터리가 달라 기획서를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네 번째 미팅에 들어와서야 서로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유방암을 선택한 이유는 게임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암의 경우 다른 암과 다르게 주기 변화량 (variation)이 단순하다. 90% 정도가 3주간 똑같은 주기를 보인다. 또한, 복용 약도 6, 7개로 제한되어 있으며 10여 가지의 부작용만 존재하기에 게임에 알맞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변수는 모두 의학적인 요소다. 채혈을 통해 환자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이에 대한 혈액학적 소견과 의학적 소견을 입력한다. 약 역시 실제 환자가 복용하는 약을 게임 내 등장시켜 실제와 동일하게 복용하게 유도한다. 게임 내 아바타는 실제 환자(플레이어)가 한 행동대로 변해 간다.

실제 항암제인 '탁솔'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모자 아이템을 구입해야한다. 모자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게임 내 코인을 얻어야 하는데 코인은 약을 제때 복용하거나 실제 운동을 함으로써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암 환자들은 의사의 처방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려고 한다. 항암 치료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처방전대로 약을 먹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아이 러브 브레스트'는 처방을 따르는 비율을 높여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즉 게임 곳곳에 치료를 유도하거나,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여 스스로 치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게임의 존재 이유이다.




■ 그렇다면 어떤 기능성 게임을 만들어야하는가

가장 좋은 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지버드(G-BIRED)라는 게임은 공격성을 평가하는 게임으로 기존 설문지에 의존하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개발됐다. 교육부와 협력하여 3명의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3명의 선생님 그리고 게임사가 만들었다.

게임은 굉장히 잘 나왔다. 재미도 어느 정도 있었고 반응도 좋았으나, 교장, 교감들의 감수를 받다 보니 게임이 변해버렸다. 감수과정에서 바스트 모핑이 들어있었는데 선정성으로 판단하고 이를 제거할 것을 요청받았다. 치마 길이와 색깔도 감수과정에서 그들의 입맛에 받게 수정해야 했다.

▲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뇌의 반응으로는 스타크래프트가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기존의 게임을 이용해서도 기능성 연구를 할 수 있다. 게임이 뇌에 어떤 부분을 좋게 변화시키는지 알아보는 평가에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를 활용했다. 한 교수는 개인적으로 '왜 스타크래프트가 스타크래프트2보다 재밌다고 생각이 들까?'에 대해 연구하고자 뇌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 결과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2'는 뇌의 시공간 능력 부분이 활성화되는데 반해 '스타크래프트'는 전두엽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전두엽은 다른 연합영역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한다. 즉 전두엽을 개발하는 데에는 '스타크래프트2'보다 '스타크래프트'가 더 적합하다는 의미다.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호두 잉글리시'는 튜닝의 좋은 사례다. 호두 잉글리시는 듣고, 쓰고, 암기하고, 말하는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게임이다. 실제 뇌 영상을 찍어보니 평상시에는 외국어를 들을 때 언어영역 쪽만 활성화되는데 비해 '호두 잉글리시'를 3개월 정도 하면 언어 영역과 전두엽 부분에 연결성이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의 재활뿐만 아니라 게임의 재활도 기능성 게임에서는 눈여겨볼 부분이다. '포키포키'라는 게임은 대중에 관심에 멀어진 게임이다. 의사들은 이를 자폐아의 사회성 훈련 도구로 활용했다. 자폐아는 이 게임에 굉장히 긍정적으로 반응을 했고, 병원에서 사회성 훈련을 받는 것보다 빠르고 저항 없이 사회성 훈련에 임했다.

게임을 꾸준히 즐긴 자폐아는 사람의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이 향상됐다. 게임을 하기 전에는 뇌가 아예 감정에 반응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던 이모티콘도 훈련 이후에는 사용할 수 있었다.

기능성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과연 본인이 만드는 게임이 해당 병의 치료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2014년 지스타에 출품한 기능성 게임의 대부분은 '치매'와 관련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치매 치료 게임이 아닌 치매 환자의 단기 기억력을 위한 보조 도구에 불과한 게임이었다. 애초에 근본적으로 병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어떤 병을 어떤 게임으로 어떤 형식으로 풀지 목표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 자폐아 사회성 훈련에 활용한 '포키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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