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브 온라인'의 개발사인 'CCP'의 대표 '힐마 페터슨'이 한국을 찾아왔다는 소식. 펄어비스가 CCP를 인수했던 2019년 지스타 현장에서 만난 이후 2년 반 만의 만남. 코로나 판데믹 직전 만났던 사람을 판데믹이 저물어가는 지금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할 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인터뷰 전 들은 사전 정보는 꽤 제한적이었다. 이브 온라인에 웹3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했고, NFT를 발행했다는 것. 그리고 메인 넷으로는 '테조스(Tezos)'를 활용했다는 정도다.

온라인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다는 소식 정도야 숱하게 들리는 이야기이니 그렇다 쳤지만, 의문인 건 그 게임이 다른 수많은 온라인 게임이 아닌 '이브 온라인'이라는 거였다. 이브 온라인의 한국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기 직전이던 2년 반 전, 힐마 페터슨 대표는 이브 온라인의 치밀하게 구성된 경제 시스템과 내부 순환이 가능한 닫힌 경제 생태계에 대해 퍽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굳이 이를 실물 경제와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 와중, 힐마 페터슨 대표의 발언이 미디어를 탔다. 이브 온라인에는 가상 화폐와 NFT의 결합이 없을 거라는 단언. 도무지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새롭게 듣게 될 소식이 많을 거란 짐작만 품은 채, 이른 오전 삼성역 인근의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호텔 로비의 라운지에서, 이전에 비해 꽤 탄탄해진 체격의 힐마 페터슨 대표를 만났다.

▲ CCP 힐마 페터슨(Hilmar Veigar Pétursson) 대표



Q. 2019년 지스타 이후 꽤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COVID-19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락다운을 시행했고, 이에 따라 회사 업무 환경과 일상 생활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 사이 정식 한국어 버전과 모바일 게임인 이브 에코스 출시를 비롯한 여러 업데이트가 이뤄졌고, 바뀐 업무 환경에서 기존의 업무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꾀해야 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 보면 인류에게는 크나큰 시련이었지만, 이브 온라인 한정으로는 긍정적인 기간이었다. 성과만 생각하면 최고의 기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Q. 웹3와 블록체인, 그리고 NFT에 대한 시도까지 적지 않은 새로운 키워드가 이브 IP에 다가왔다. 이와 같은 변화를 꾀한 이유가 무엇인가?

방아쇠가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 판데믹으로 인한 락다운이다. 지난 몇 년을 되짚어 보면, 2017년에 이더리움이 등장했고, 2018년과 2019년의 '크립토 윈터'를 거치며 2020년에는 액시 인피니티가 날아올랐다. P2E라는 개념이 모호한 생각의 파편에서 구체적인 무언가가 되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이를 부정하기보단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일상의 일부분을 포기해야만 했던 락다운 시기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적 변화를 보다 면밀히 관찰하고 고찰하게끔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올해로 19년차를 맞이한 이브 온라인


Q. 얼마 전, 이브 온라인에는 이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았나?

비트코인 블록체인 상의 NFT를 인지한 것은 2015년 부터다. 비트코인을 메인넷으로 삼아도 게임 개발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당시는 적합한 기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관심을 두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2017년 이더리움의 출현 당시에도 이를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이브 온라인과 맞추기엔 기술이 영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작년에 이르러서야 테조스를 메인넷으로 해 이브 온라인에 간단한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저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서구권 게이머들 중 많은 수는 블록체인 기술과 NFT 개념의 도입에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우리 또한 이와 같은 유저 피드백을 이해했다. 때문에 이브 온라인의 메인 글로벌 서버에는 변화를 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Q. 그럼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가?

아직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아예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브'의 IP를 활용하지만, 기존의 이브 온라인은 아니며, 블록체인 기술과 NFT, 가상 화폐 경제 체계 등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Q. 아예 새로운 게임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놓여 있는 것인가?

그렇다. 새로운 게임이라는 건 말할 수 있지만, 그 외에 정보들은 말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Q. 앞서 말한 '이브 온라인'에서의 실험은 정확히 어떻게 이뤄졌나?

게임 내 재화나 실물을 NFT화하는 건 시스템의 제한이나 리스크가 있었기에, 우리가 주최하는 e스포츠 대회의 상품을 NFT로 수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유저 반응은 역시 갈라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정확히 말하면 "핵심 게임 개발에나 집중해라"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말했듯 메인 서버 적용을 하지 않기로 한 건 이와 같은 유저 의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러 데이터와 깨달음은 얻을 수 있었다.

실험은 준비 과정까지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게이머층의 상반된 의견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전부터 준비해온 것들이 있었기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 일부 상품을 NFT로 수여한 16번째 얼라이언스 토너먼트


Q. 지난번 발언을 보니 '지금으로서는' 적용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는데, 본편 게임에 적용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인가?

당연히 여지는 있으며, 나는 지금의 방침을 영구적으로 고수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브 온라인은 게이머들이 주를 이루는 항성 운영 협의체(CSM)과 같은 커뮤니티의 의견들이 게임의 진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브 IP는 활용하되, 본 게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게임 내 경험을 주고, 이 기술에 관심을 가진 게이머들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형태를 취하려고 한다.


Q. 심정적으로는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드는데, 이브 온라인은 이미 게이밍 경제의 전문성을 가진 게임 아닌가? 굳이 실물 경제와의 연동을 생각할 이유가 있었나?

결과적으로는 본 서버에 적용하지 않겠다 밝혔으니 이브 온라인의 경제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다만, CCP에는 게이밍 경제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굉장히 많으며, 가상 화폐 기반 게임 경제 체계에 대한 전문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사실상 없다고 생각한다. 고작해야 2년 된 시장인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좋은 웹3 기반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분명 더 나은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했다. 나아가 게이머들의 인식을 바꿀 계기나 상황이 마련되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또 다른 지평을 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국내외에서 블록체인 게이밍을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봤을때, 그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유 또한 있었다. 힐마 페터슨 대표가 생각하는 미래상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어떻게 확신하는가?

나는 다양한 MMO 게임의 발전 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MMORPG를 만든 나라 중 하나이며, 이후 MMO 게임이 발전해나간 모든 과정을 밟은 국가이니 아마 한국 게이머들이라면 내가 배운 것들에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 그리고 NFT에 대해 지금의 여론은 마치 새 시대에 걸맞는 미래의 모습인 것처럼 말하지만, 난 이 모든 현상들 또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인 모습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게임이 가진 잠재력을 하나씩 개화하는 과정에서 피어날 꽃잎 중 하나라 본다.

내가 가진 확신은 MMO 게임의 최종적인 모습이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닌, 훨씬 진보한 무언가일 것이란 점이며, 지금 이 기술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그 최종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Q. 본편은 당분간 그대로 둔다고 말했는데, '이브 에코스'는 어떤가?

넷이즈와의 협업을 통해 실험 차원에서 플레이어 기반에 대한 접근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세부적인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


Q. 약간 다른 이야길 해 보자면,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개발 중이라면 필연적으로 개발력이 분할되기 마련인데, 본 게임의 업데이트에 지장을 주진 않겠는가?

CCP는 여러 개발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런던과 상하이에 위치한 주요 팀이 개발하고 있는 본편 외에도 다양한 단계의 R&D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웹3 기술 또한 하나의 팀이 맡아 연구하는 중이다.

▲ 본편의 개발 일정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예정


Q. 여러 블록체인 중 '테조스'를 메인넷으로 삼은 이유가 있는가?

테조스의 특징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블록체인이며, 전반적으로 기술적 측면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Q. 지금의 계획처럼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져 런칭된다면, 이 게임이 블록체인 게임들이 지닌 숙원인 '게임을 통한 생계 유지'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CCP가 꿈꾸는 세상 또한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게임을 하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은퇴할 수 있는 세상.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서 이와 같은 사회상이 어떤 모습으로 정립될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아직 알 수 없으며, 웹3 기술 외에도 이 미래로 가는 길은 분명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웹3 기술이 이를 실현하는 열쇠처럼 보이며, 충분히 탐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Q. 앞서 말했듯, 아직 수많은 게이머들은 이 기술들이 게임에 융합되는 것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게임을 기대하는 이들이 아닌, 이처럼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결국, 게임은 경험이 매개체가 되는 미디어이며, 게이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많은 말이 아닌, 단 한번의 게임 경험이다.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도 명확하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케 만드는 훌륭한 게임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 그렇게 된다면, 게이머의 긍정적 반응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라 난 믿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게임, 기대 이상의 게임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