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리] 힐러 부족 사태와 [클래식] 탱커 부족 사태

오리 때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상당한 탱커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드 등쌀에 주로 인던 뺑뺑이로 폐광부터 나락까지 수 백번 인던을 돌았지만 힐러가 부족해서 못 간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반대로 4명이 모였는데 탱커가 없어서 못 간적은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오직 탱커들에게만 귓말까지 보내 초대하고 있다.



2. [클래식] 성기사의 급격한 위상 변화

인구 통계상으로 전사 비중이 전혀 낮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탱커 부족 사태는 모두 누구나 고스펙 안전빵으로 필드보다도 편하고 널널하게 던전을 돌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오리때 기억을 돌이켜보면 파티장이 필드 사냥도 다 포기하고 스톰이나 아포에서 1시간씩 목 놓아 파티원들을 모집하다보니 어느 정도 스펙만 맞아도 같이 갈 수 밖에 없었고 더욱이 신비로웠던 만능맨 성기사의 비밀이 데미지 및 어그로 미터기에 의해 낱낱히 폭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성기사들이 탱커로도 많이 갔었다.

클래식 버전에서는 성기사가 드루, 흑마 다음으로 적은 10~11%에 불과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오리 때 성기사는 얼라를 선택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도적 다음으로 많았다.

지금은 완전 소중해진 전사를 초대하려고 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혹시 성기사도 있나요?" 부터 물어보고 시작하지만 오리 때는 성기사가 1~2명 정도 없는 파티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종종 성기사가 3명씩 가는 파티도 여러 번 있었다. 자기들끼리 방구 뿡뿡 끼며 마치 법사 수준의 광역 스킬인 것처럼 행동해도 "성기사는 정말 대단하구나!" 하면서 넘어갔다.

심지어 오리 때는 학카르나 나락 갈때도 길 잘 아는 성기사가 있으면 성기사가 탱커하고 전사가 양손도끼질하면서 딜링하는 것이 그냥 일상이었다.

그 때는 던전 가서 1파티 몹 3마리도 도적이 기절 시키고 법사가 양변하면서 진행했고 어그로 튀어서 죽거나 전멸 당해도 던전은 원래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녔다. 반면 클래식에서는 2파티 정도 애드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처리하고 3파티 정도는 애드 되야 약간 애드 됐구나 느낌이 든다.

(나는 일부러 스릴을 느끼기 위해 다른 파티보다 2렙씩 낮춰서 모집을 하는데도 조금은 느리지만 여전히 쉽고 안정적으로 클리어하고 있다. 지금은 오직 만렙들만 모집하는 스트라솔름이나 스칼도 오리 때는 딜러들은 57렙 정도, 힐러였던 나는 56렙부터 다녔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그때는 성기사들이 얼라는 내가 지킨다, 성기사는 얼라의 시그니쳐다 하는 자부심도 굉장히 셌고 던전에서도 사제의 엠통과 상관없이 자신들도 마나만 있으면 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사보다 훨씬 더 힐러들에게 거칠게 대해서 좀 꼴보기 싫었지만, 클래식의 성기사들 보면 또 패기도 없고 주눅이 든 것 같이 다들 조용히 5분마다 축이나 돌리는 모습을 보면 썩 유쾌하지많은 않다.

오리 때 아라시 전장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한가운데 있는 대장간은 언제나 가장 큰 요충지였고 개전부터 끝까지 대규모 한타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양 옆으로 두 명의 성기사가 크게 벌려져서 힐을 하는 데 호드들은 성기사를 점사할 수도 그렇다고 성기사 힐받고 돌진하는 전사들을 팰 수도 없어 우왕좌왕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나는 아직도 그 때 대장간의 커다란 두 기둥처럼 든든하게 얼라들을 지켜주던 성기사 분들이 생각 많이 난다.



3. [클래식] 아주 낮아진 던전 난이도 + 파티 찾기 채널의 엄청난 시너지

오리때 시작해서 불성, 리분까지 하다가 한동안 접고 대격변 패치했다고 해서 복귀해보니 서버 통합 파티 찾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순식간에 사제, 드루, 주술사, 성기사까지 힐 클래스를 모두 80렙이던가? 하여간 만렙을 다 찍었는데 30레벨 놈리건부터는 단 한번도 필드퀘를 하지 않고 쉬지 않고 던전 플레이만 했었다. 파티 신청해놓으면 불과 몇 분 안에 어느 서버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모여 던전 돌고 또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파티로 또 던전 가고 정말 필드에 나갈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대격변이었다.

내가 그 때 느꼇던 가장 큰 문제는 LOL의 봇전을 하는 반복 노가다 하는 느낌만 들었고 같이 하는 파티원들과도 아무런 추억도 기억도 나지 않으며 심지어 다시 만날 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4개 만렙 찍은 기념으로 드디어 온 동네방네를 날아다니며 호드 쪼렙 사냥을 나갔는데 유일한 축섭이었던 1서버 아즈사랴의 전 지역을 피크 타임때 이 잡듯이 다 뒤져도 개미 새끼 한마리 없었다. 다들 나처럼 쉬지 않고 던전 플레이 노가다로 레벨업 찍느라 굳이 필드퀘하러 이봉주 온라인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반대로 오리 때는 1시간씩 파티원 모으고 드디어 출발해도 배 타고 그리폰 타고 오다보니 최소 30여분씩 모이는 시간이 있었고 오는 도중 호드에게 죽어서 더 지연되는 경우는 그냥 일상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얼라가 보이면 무조건 죽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상위 던전부터는 전멸을 자주 했기 때문에 공략하다가 도중에 네탓 내탓하며 싸운 적도 많았고 2번 정도 전멸하면 슬그머니 중간에 파탈하고 되돌아가는 분도 꽤나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지금 클래식에서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있지만, 오리 때는 단 한번도 전멸하지 않고 원활하게 클리어하면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고 또 그 파티원들끼리 서로 친구 추가해서 다음에도 모여서 가곤 했다.

지금과는 달리 흑마의 영혼 보존의 비중이 정말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생명석 받아도 먹을 일이 없지만 그때는 흑마가 던전 시작 전에 생명석 돌리면 자못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기까지 했었다.

"이제 우리 모험을 떠나야 할 시간인가? 살아서 돌아올 수는 있겠지?"하면서 말이다.

불편해서 본섭보다 더 재미있다는 클래식, 마찬가지로 더 힘들고 자주 전멸해서 재미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파티원들과 같이 어려움을 겪고 종종 무사히 귀환할 때 얻는 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클래식과는 달리 더 울고 웃겨준다고나 할까?

솔직히 지금 클래식의 던전은 호드의 방해없이 잘 차려놓은 밥상을 편안하고 배불리 잘 대접받고 가는 느낌뿐이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a키와 d키만 연타하다가 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파티 찾기 채널이 편하고 좋지만, 왠지 대격변에서 느꼈던 파티 찾는 시스템을 보는 것 같아 차라리 더 불편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4. 파티장 = 도적이라는 공식도 깨진 클래식. 안드로메다에서 다시 귀환한 드루의 라이징!!

성기사 인구의 급감뿐 아니라 도닥붕, 돚거로 천민 취급 받았던,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파티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매일매일 아포에서 목 놓아 파티원을 모으던 도적의 모습은 이젠 전혀 볼 수가 없다,

비록 성기사처럼 팍 줄지는 않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비율이 굉장히 낮아 졌다, 

지금 파티 찾는 채널에서 모으는 클래스들 보면 도적이 거의 없다. 물론 도적이 모을 때도 있지만 인구 비율을 감안했을 때 딱 그 정도 수준이다.

또한 도적이 다른 클래스가 모으는 파티에 잘 취업이 안되는 문제도 전혀 없다. 오히려 요즘 가장 취업이 어려운 클래스는 성기사다. 성기사 인구가 그렇게 적은데도 유독 성기사 파티장이 많은 이유다.

그러다보니 드루가 가죽템 먹을까봐 절대 끼워주지 않았던 도적 파티장의 갑질(?)도 완전히 사라졌다. 야성 드루의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도적들이 눈치 줘서 정말 필요 4대 인던의 어둠 추적자 같은 민첩 세트를 정작 못 먹고 자연의 정수나 세나리온 세트같이 지능이나 붙은 힐템만 먹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안퀴라즈의 드루 전용템들을 파밍하기 전까지는 거대한 템 공백이 있었다.

심지어 포인트 화심/검둥 공대에 가서도 일단 아무도 먹지 않는 세나리온 세트만 마이너스 포인트로 어쩔 수 없이 먹고 싶지 않아도 원활한 공략을 위해 쳐묵쳐묵 했다가 두어 달 동안 열심히 출석하고 비약같은 것 기부해서 마이너스 포인트 다 갚고 포인트를 쌓아도 수많은 도적들이 레이드 민첩 세트를 다 먹을 때까지, 사실상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는 먹을 수 없었다.

그때도 이것이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불합리 하다고 느꼈지만 40인 공대에 드루는 달랑 나 혼자고 도적은 굉장히 많다보니 불가항력 이었고, 완전히 염전 노비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매일 공략하는데 나는 영원히 세나리온 힐 세트에서 벗어날 수 없다니 하는 큰 좌절이 왔었다,

그래서 슬슬 정식 공대는 게을리 할 수 밖에 없었고 줄구릅 막공이나 전장템을 파밍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때는 골드 팟이 조금씩 생겨나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주 간혹 줄구릅 골드 파티를 사장님들 모시고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주사위 파티였다.)

그 과정에서 드루는 정말 하늘의 별이 되어 대부분 지구를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전장템과 줄구릅템을 다 모은 나도 끝내 더 이상은 버티질 못핶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도적이 없는 파티도 많고, 드루가 도적이 같이 간다고 해서 어둠추적자같은 민첩 세트를 입찰 하지 못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게다가 레이드도 이미 골드 파티나 그에 준하는 보다 합리적인 루팅 룻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더 이상 염전 노비같이 몇 달씩 묵묵히 무료 봉사할 드루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5. 주마간산으로 스쳐지나 가는 추억 속의 필드들

꼼꼼히 퀘스트를 하면서도 항상 퀘스트가 없어서 다음 레벨때까지 닥사를 해서 메울 정도였던 오리 때와는 달리 클래식에서는 워낙 인던 뺑뺑이를 돌다보니 - 이건 필드에 워낙 호드들도 많고 얼라분들도 많아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몇몇 맵은 아예 통째로 건너뛰기도 하고 필드퀘를 하더라도 레벨 차이가 이미 꽤 벌어진 퀘스트들 처리하기도 바쁘다보니 혼자하기 힘들거나 동선이 베베 꼬인 퀘는 왠만하면 다 패스해버리고 각 맵의 굵직한 퀘스트나 다음 던전과 연관된 퀘스트만 하기도 바쁘다.

다들 아시다시피 와우는 어떤 rpg 보다 구석구석 맵을 꼼꼼히 만들어 놓았고 그것을 지역 퀘스트와 연결해 그 구석구석까지 가보게 함으로써 이끌어 주는데 이런 퀘스트들을 상당수 패스하다보니 각 맵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느끼던 일체감이 굉장히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이런 일체감은 내가 정말 이 와우 세계에 실존하고 있다는 몰입감과 그대로 연관되기 때문에 정말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6. 막강해진 애드온 효과 - 이젠 고속도로를 달리며 같은 풍경을 본다

이 밖에도 비록 버전은 같지만 더 강력해진 애드온 덕분에 왠지 퀘스트 하기도 너무 편하고 난이도도 많이 낮아진 느낌이다. 각 던전마다 어떤 보스가 무슨 템을 주는 지도 정확하게 알다보니 막연하게 이 던전 돌다보면 나한테도 필요한 템이 드롭되겠지 하면서 쓸데없이 도는 경우도 팍 줄었다.

직업 상급자를 찾기 위해 무법항까지 물어물어 가고 같이 하면 됐었을 지역 퀘스트를 보고하고 되돌아와서 또 했던 동선 낭비를 급격하게 줄여주다보니 역시 더 불편하기 때문에 헤매던 기억에 남고 감사한 추억이 됐던 같은 버전이지만 또 오리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든다.

마치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똑같지만 그때는 비포장 도로였는데 지금은 시원하게 고속도로가 뻥 뚫린 그런 기분이랄까. 거침없이 막힘없이 만렙을 향해 대진격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그때의 뚝배기 장맛같은 그런 구수한 느낌이 아니라 마트에서 산 비비고 된장찌개를 손 쉽게 사먹는 그런 간편한 느낌이 든다.

단지 불편해서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 잘 풀렸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나, 몇 시간씩 주변을 맴돌며 npc를 못 찾아 헤맬 때 파티에 초대해서 같이 가면서 길을 알려주던 인간과 인간이 비록 게임 내이지만 봇처럼 존재하는, 그냥 이 인간은 나를 힐해주는 봇이고 얘는 그냥 탱커해주는 봇이고 또 그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그냥 화가 나는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진짜 판타지 세계 속에서 인간들이 존재하고 또 그들을 그런 식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감정까지는 들지 않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7.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10년만에 제대로 복귀해서 - 비록 대격변때도 잠시 왔었지만 그땐 워낙 던전만 돌았기 때문에 - 북적북적한 엘윈숲과 서부몰락 지대에서 남들보다 몹 한마리 더 잡겠다고 경쟁하고 폐광에 가서 세월은 흘러도 여전히 데피아즈단을 이끄는 벤클리프와 쿠키를 만나니 주체할 수 없는 향수와 추억 돋는 것이 사실이다.

이왕 이렇게 기대를 훨씬 상회할 정도로 클래식 버전이 좋은 출발을 했으니 블리자드에서도 좀 더 각성해서 단순히 불성이나 리분 같은 확장팩들을 시간에 맞춰 업데이트 하는데 그치지 말고 클래식은 새로운 제2의 와우 프로젝트로 인식해서 굵직한 업데이트는 그대로 가되 15년동안 운영하면서 불거졌던 수많은 문제점들을 보완하면서 또 다른 와우로 멋지게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