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재탕 해보았습니다.

 

 

한비자 예찬 - 한탐정, 2015-05-31 19:20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762&name=subject&keyword=%C7%D1%BA%F1%C0%DA%20%BF%B9%C2%F9&sterm=9627395&iskin=webzine&l=384116

 

 

 

지금으로부터 2천 여년 전.. 중국 대륙에 조조라는 패자가 있었다.

 

찬탈자란 오명을 쓰기도 하였고 반대세력, 자신이 중히 쓰던 인재까지 비정하고 잔혹하게 죽인 흠이 있으나

결국 중원을 재패하고 많은 백성을 평안케 한 그는 확실히 전무후무한 영웅이었다.

 

조조는 피폐해진 토지를 정비하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둔전제 등 여러 법령을 발효하여 전쟁의 후유증을 최소화시키고 복구하였다.

 

조조의 후대 황제들이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죽음을 맞이할때까지 많은 것을 누린것도, 사마염이 천하통일을 이룩한 것도 결국 조조가 이룩한 기반위에서의 성과였다.

 

 

[중원의 패자, 조조 맹덕]

 

 

그리고 중원 저 먼 남서쪽에.. 유비를 도와 기적같은 성과를 이끌어낸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제갈량 공명.

 

한(漢)을 정통으로 여기는 그는 충성심, 공명정대함, 뛰어난 정치적 식견, 놀라운 병법적 재능, 탁월한 외교능력과 용인술을 두루 갖춘 당대 최고의 인재였다.

 

그는, 아무런 비전도 힘도 없는 유랑집단에 불과한 유비군의 체제를 정비하고, 외교술과 병법 등을 유효 적절히 활용하여 결국 유비를 한중왕에 거처 촉의 황제로 세웠다.

 

이후 촉한의 승상이 된 제갈량은 제도를 정비하고 법령을 바로 세워 촉한의 모든 백성들을 평안케 함과 아울러, 한나라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6배가 넘는 국력을 가진 위나라에 도전하였다.

 

제갈량은 청렴결백하고 충심이 가득한 인물로, 실권을 쥐고 있었음에도 국가 찬탈은 꿈에도 꾸지 않았고

그의 출사표에 나온 바에 의하면 제갈량 사망 당시 뽕나무 오백그루와 밭 쉰뙈기 만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한 국가의 최고 실권자로써, 그러한 청렴결백함은 전이든 후이든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한승상 무향후 제갈량 공명]

 

 

당대의 뛰어난 영웅과 인재, 조조와 제갈량은 서로 적이었으나, 이 둘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정신적 스승'이 같았다는 점이다.

 

조조도, 제갈량도 법치주의에 입각한 국가통치를 이상향으로 두었고 그것을 실제로 실현시켰으며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정치철학은 바로 그들의 정신적 스승, 한비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韓非子. 그는 제자백가 법치주의를 집대성한 뛰어난 학자로,

그의 정치철학은 놀라울만큼 예리하게 인성의 약점과 인간 심리를 꿰뚫었다.

 

공과사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요 군주와 신하간의 관계의 요체, 즉 신하된 자의 이익과 내면의 심리, 군주로써 얻어야할것과 버려야 할 것 등을 이성적으로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한 한비자의 철학과 정신은 후대에 계속 이어져 조조, 제갈량 같은 당대의 천재들에게 영향을 주고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게 한 것이다.

 

이 외에도 한비자에 대한 일화는 숱하게 많다.

한비자는 단순히 법치주의 사상가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성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약점과 욕망을 파해치고 지적하였다.

 

위대한 선비 한비자.

 

그리고..

 

중국에 한비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탐정이 있다.

 

한탐정은 한비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후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뛰어난 영웅이다.

푸하하! 나를 따르라~ ㅋㅋㅋㅋ

 

심심해서 써봤어요.

모두 한비자를 읽읍시다! ㅋ

 

 

 

[마초 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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