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바나나 이야기했었잖아.

이노므 바나나라는 게 종자생식이 안되고 영양생식만 가능한 고로~

우리가 흔히 먹는 노랗고 큼지막한 바나나는 전 세계 모든 놈들이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무슨 고산바나나 어쩌고 좀 더 맛있는 애들은 사실 재배 방식과 환경의 차이지 품종 차이가 아니라는 거지.

근데 우리가 쳐묵쳐묵하는 바나나 품종은 캐번디쉬라는 애고
그 전에는 그로-미셀이라는 애가 지금의 캐번디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

캐번디쉬는 오래두면 금방 물러지는 반면에 그로-미셀은 껍질은 더 단단하고 과육은 크림같이 부드럽고 아무튼 캐번디쉬보다 훨씬 맛있었다고 해.

근데 이노므 그로-미셀이 파나마병으로 별종해 버린거다.
뭔가 그로-미셀 내부에서도 다양한 변종이 있어서 파나마병에 조금 더 강한 개체 이런 게 있었다면 살려 두었다가 품종 개량을 통해 다시 그로-미셀을 번창시키고 이런 거 없이 그냥 싸그리 다 완전히 멸종해 버린 거야.

근친, 혹은 지역적 고립으로 유전자 풀이 단순해지게 되면 이런 식의 간단한 외부 충격에 싸그리 멸종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야. 물론 그게 1,2대 정도로 바로 나타나지는 않겠지. 하지만 누적이 된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각 문화권에는 족외혼에 대한 풍습이 여러가지 형태로 남아있어.

스텝이나 혹한지역에 사는 유목민이나 사냥민족의 경우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아내나 딸과의 잠자리를 주선(이라고 쓰고 반 강요)하는 관습이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선 여러 부족이 모여 단체 맞선 행사를 갖는다.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원래 약탈혼이라는 관습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