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81&l=66225 

 

쿨타임 돌았죠? 추억팔이에요.

 

 

--

 

 

1편 영던편에 이어서.


시간이 지나고 유저들의 템 스펙이 조금씩 올라갔지만 영던에서의 [몹 징표-메즈-점사-탐-다음 몹 징표] 시스템은 변함이 없었기에 클리어 타임이 다소 빨라질 뿐이였지 시간이 지나도 극적인 시간 단축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상위 던전이 파밍된 딜러가 커버하러 와도 어글이 안잡혔기에 무용지물이였다.





 <녹템이건, 템씹이건 간에 평타 한방이면...!>




쩔탱+쩔딜이여야 그나마 빠르게 돌았지만, 쩔탱들이 무작을 갔나? 탱느님이라 불리던 그 시절엔 알만한 탱커들은 다 지인이랑 갔었고, 이 패러다임이 무너진 건 바퀴가 하이잘 광탱으로 재조명되어 '보박광탱이 영던에서 끝내주더라' 란 인식이 퍼진 확장팩 중후반 이후였다.





1. 월드 오브 월(wall)크래프트



지겹고 높은 난이도의 영던을 조금이라도 빨리 돌기 위해 유저들은 다른 방책(꼼수)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지하수렁으로, 출구와 입구가 붙어있고 고도의 차이만 있었던 점에 착안하여, 은신으로 잡몹을 패스하고 출구앞에서 죽어있는 공대원을 부활시키는 형태의 수렁막직이 대 성행하였다. 은신+부활을 동시에 가진 드루만이 가능하였고, 2분도 안되는 시간에 휘장 2개를 꽁으로 먹을 수 있는 엄청난 강점으로 과장이 아니라 작업이 끝난 드루가 파티에 광고글을 올리면, 마이크로초 단위로 풀파티가 가능했었다. 블리자드는 이를 막기위해 은신감지몹을 세우는 등 추가패치를 감행했지만 의지의 한국인들은 '기계공학' 전문기술을 통해 이를 또 극복하였고 벽타기 자체가 막히기 전까지 수렁막직은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이뭐..


그리고 나타난 대망의 벽타기



/run local p,f,m,t=Minimap,CreateFrame"Frame"m,t=({p:GetChildren()})[49],p:CreateFontString(0,0,"SystemFont")t:SetPoint("TOP",0,-9)f:SetScript("OnUpdate",function()p=360-deg(m:GetFacing());t:SetText(format("%.2f".."˚",p))end)


  <추억의 매크로. 황금각도 89.5~89.99>



벽타기 자체는 사실 오리시절부터 있었지만, 대개 와우를 즐기는 탐험가들이 미공개 지역을 보러 가는 등의 실질적인 이득과는 관계없는 이유로 이용 되었다. 던전의 시작과 끝이 명확히 나눠져있는 오리 인던에선 써먹을 일이 없었기도 했지만, 확장팩이 열리면서 언급한 지하 수렁처럼 길잃음을 방지하는 일자형 코스. 입던 퇴던이 용이하도록 던전이 설계되어 단지 유흥거리였던 벽타기가 부정한 의도로 재발견 되었던 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성루와 용광로가 벽타기 명당이였는데.





  <솔직히 성루는 이해할 수 있다 쳐도.. 용광로는 감탄만 나온다>


시간단위로 소요되었던 영던을 몇십배 단축시키는 벽타기 스킬은, 웃기게도 당시에 '스펙화'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벽타기를 못하면 파티를 못간다는 뜻이였다. 초기 메즈클만 구하던 진입장벽이 무색하게 메즈와는 별개로 '파티가 전멸해도 윤회를 쓸 수 있는 술사' '영혼석+못타는사람 소환이 가능한 흑마' 등 변칙적인 클래스도 선호되었다.


이 후 벽타기의 계보는 영던뿐만 아니라 공격대 던전. 그것도 최상위 레이드중 하나인 '하이잘의 전투' 최종보스인 '아키몬드' 에서 까지 응용되었는데..



 

  <대체 뭐야 이게...> 



불성 아키몬드의 주요 공략은


1. 일정하게 걸리는 공포에 대비하여, 맵 전체에 있는 불길을 밟지 않는다

2. 주기적으로 하늘에 뜰 때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여 낙사를 방지한다


심플하지만 공대원 25명이 칼같이 지켜야 했던 보스로 난이도가 꽤나 있던 편인데

벽타기(나무타기?)의 발견은 공략을 깡그리 무시하고 위험리스크를 제로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탱커를 제외한 24명이 나무를 올라가는것 이랄까?

그야 말로 월드 오브 Wall크래프트 였다. 


벽타기의 종말은 추후 줄아만의 등장으로 종식되었는데,

유저들은 시작 징을 치기 전에 벽을 타 쫄을 정리하는 방법이나, 잔알라이 뒤편 벼랑을 타서 쫄몹을 패스하는 등 타임어택시 보상으로 주는 '아마니 전투곰'을 취하였고, 영던 꽁휘장. 아키 벽타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충격적인 버그성 플레이를 참다 못한 블리자드가 결국 단호한 철퇴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월크래프트는 끝을 맞이하였다.




 <이건 벽타기가 아니라 허공타기 아님?>





2. 불성의 추억 - 탱커편




(1) 전탱의 횡포.. 더이상은 naver.. 


지금와서 생각하면 놀랍게도 당시 탱커라 함은 '방어전사' 외엔 없었다. 

이 원인 역시 시스템적 문제였는데, 레이드 던전의 해골몹은 15% 정도의 확률로 강타를 때렸는데 이게 50%의 추가뎀을 때리는 진심 펀치급이라 방막으로 두 번씩 막는 전탱이 아니면 그야말로 '찍' 싸는게 부지기수였고, 이 거지같은 시스템 덕에 수많은 바퀴와 드루는 강제로 힐러를 타야만 했다.

(당시 조드와 징박이란 클래스는 없었다. 가끔씩 사사게에 출몰할뿐) 


이 외에도 적을 무력화 시킬수 있는 공속저하 스킬이 전사의 천둥벼락 외엔 없었고, 뎀감기인 최후의 저항이나 방벽도 '30분 쿨이지만' 오직 전사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 외 공포를 손쉽게 풀 수 있는 점 등 레이드 보스의 자잘한 패턴들이 전사를 위해 설계되었었다.


이렇게 확고한 지위를 가진 전사였지만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어그로'였다. 있을건 다 있어도 탱커의 기본소양인 어그로와 광탱이 약해 빚 독촉에 시달리듯 공대 흑마들과  끊임없이 어글 싸움을 하며 키보드로 피아노를 쳐야했고, 공략 실패의 원인이 주요 딜러(흑마라던가 혹은 파흑, 또는 악제+돌맞는 암사)의 사망이였던 점으로 봐서, 불완전한 결점을 가졌으면서도 오랫동안 맨탱의 자리를 지킨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이다.




(2) 최고의 부탱. 야드


레이드를 떠나 영던의 경우는 새로 추가된 [짓이기기] 스킬로 무식한 어그로를 먹는 야드가 굉장히 선호됐었다. 여기에 수렁막넴작업을 할수 있는 기공드루라면.. 

야드의 강점으로는 넉넉한 피통과 무식한 방어력. 껌으로 먹는 쉬운 광역어글. 그리고 확고한 '부탱' TO였다. 

당시 특성 스왑을 하려면 귀찮게 대도시의 직업전문가에게 가야 했고, 특성과 단축키도 죄다 다시 세팅하는 귀찮음과, 무엇보다 50골씩 전환비용이 필요했었고, 당시 골드팟 기본가가 50~100정도 인걸 감안하면 꽤나 부담되는 비용이였다. 반면 야드는 템만 바꿔끼면 딜,탱 전환이 다소 자유로웠고 딜링도 강했었고, 몇몇 네임드에서 2 탱커가 필수적인 타임어택형 던전인 줄아만의 대흥행으로 초귀족시대를 맞게되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강타 문제로 야드가 맨탱으로 서는 시점은 태양샘 브루탈루스 이후 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3) 안죽는 바퀴벌레


보호기사는 하이잘 재조명 이전까진 상위공대 템씹의 변태적인 취미 이상이하도 아니였다. 원인은 템 구성의 기형적인 설계 때문이였는데 간단히 말하면. 


1. T6보다 T5+투기장 탄력템이 더 좋음

2. 필요스탯 '주문력'


이게 말이야 방구야..


재밌는 점은 보박의 최종 워너비 잇템은 아키몬드 드랍 '혼돈의 폭풍우' 였는데 윈터칠이 드랍하는 암흑의 비밀기록과 함께 골팟 분배금의 당락을 결정짓는 마스코트 템이였다. (속칭 혼폭암비)

한개가 뜨면 대박이고, 두개가 다 뜨면 쌀먹도 햇반이 아니라 친환경 유기농 고급쌀 위에 너비아니(국내산) 하나 올려도 될 정도로 분배 스케일이 달라지는 프로스트 모운급 도검인데, 아직도 내 기억속엔 당시 최다 인구 수 였던 법사, 흑마들의 신들린 레이싱을 지켜보다 갑자기 9,000골을 부르며 낙찰받은 신성기사님의 닉네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랫동안 힐노예의 삶을 살았던 울분을 표출했던 걸까?






 <오늘은 쌀파티다!>



앞서 말했듯 전탱의 고질적인 광역 어그로 문제와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이잘 웨이브의 공략문제로 신성화 장판 하나로 완벽하게 어그로를 잡을 수 있는 보호특성 기사가 급부상 되었고, 광역탱킹이 절실히 필요했던 으스영던을 시작으로 영던은 대보기 시대를 맞게된다. 위에 단점으로 말했던 T5와 투기템이 T6보다 더 좋다는 단점이 오히려 라이트 유저에겐 파밍상의 이득으로 변하여 장점이 되버린 상황도 한몫하였다.



그래도 전탱이 최고의 맨탱이란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린건, 당시 대부분의 공대장은 맨탱이 보았던 오리시절부터 이어진 관습과, 지금과 비교하면 빈약했던 택틱들 중에서도 '탱커'의 공략중요성이 컸던 점(대표적으로 일리단 불꽃탱). 던전 리딩을 하나부터 끝까지 도 맡아 해야했던 당시의 클래스별 역할분담. 마지막으로 불도저를 연상시키는 T6 맹공셋의 zl전간지와 전경방패의 위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 추억뽕을 너무 맞았나? 아무튼 2부 끝!




 <지금봐도 정말 멋지다>







-


1편에 예상치도 못한 성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