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이 적은 곳에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이 아닌 길은 참 위험합니다. 무릎까지 자라난 풀과 시선을 가로막는 나뭇가지, 발이 점점 빠지는 늪도 보입니다. 이 방향이 맞는 걸까? 사실 걷고 있는 사람도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이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벌써 3년째 걷고 있습니다.

서든어택 챔피언스 리그 4회 우승, 누적 상금 약 4천만 원, 위기 상황에서 일대다 세이브를 해내는 집중력, 남자 선수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샷감 등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는 이 여성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확실함, 여성 프로게이머를 향한 편견 등을 마주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서든어택의 최강 게임단 '퍼스트 제너레이션'(이하 퍼제) 소속에서 여성부 리그의 양대 산맥인 'MiraGe[FLAME]'으로 자리를 옮긴 우시은입니다. 그녀는 이번 인터뷰에서 솔직한 대답을 통해 여성 프로게이머의 삶과 애환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요?

후덥지근한 여름이 시작되기 전, Zion.T의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선유도 공원에서 프로게이머 우시은을 만났습니다. 첫 단독 인터뷰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걸어온 그녀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함께 근처 커피숍으로 향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든어택 '퍼제'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MiraGe[FLAME]'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시은이에요."첫 인사말이 어색했던지 살짝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녀는 앞에 놓인 카페 라떼 한 잔과 함께 금세 대화에 빠져들었습니다.

"사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여성부 대회가 개최돼서 주변에 마음 맞고 실력 있는 친구들과 참여했는데 하다 보니 우승까지 하게 되었어요. 대회 초반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꾸준히 참가하고 연습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대회 4회 우승을 차지한 '퍼제'의 시작이...우시은의 소속된 프로게임단 '퍼스트 제너레이션'은 여성부뿐만 아니라 일반부(남성)도 대회 7연속 우승을 차지한 서든어택 리그의 명문 게임단입니다. 두 팀 모두 후보 없이 단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있고 무서운 팀워크와 실력을 자랑합니다. 이런 최강 게임단의 시작이 이렇게 평범했다니 무언가 신기했습니다.

"서든어택은 여성부 리그를 일반부 경기와 동등하게 다뤄주고 있어요. 대회가 열리니 참가하게 되고 참가하게 되고 참가하다 보니 실력도 늘게 되었어요. 서로 상승 작용이 된 거에요. 상금도 계속 올려줘서 여성부 리그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여성이 FPS 장르를 즐깁니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AOS 장르도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성이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의 원조는 역시 서든어택입니다. 여성이 유독 FPS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요?

"총 쏘는 게임이라면 남자의 게임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밌는거에요. 서든어택은 다른 게임과 비교해 쉬워서 여성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게임성도 중요하지만, 여자들은 게임 안에서 서로 친해지고 유대감을 쌓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서든어택은 유저가 많아서 같은 여성 유저를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즐기게 됐어요."

여성 유저가 좋아하는 게임의 특징은 뭘까요?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고 같이 즐기기 위해라고 할까요? 여성 유저가 많은 알투비트 같은 경우도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지만, 채팅 문화를 즐길 수 있게 잘 만들어진 게임이에요. 무조건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것보다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으니 불현듯 떠오르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였습니다. 유독 채팅과 관련된 잡음이 많은 게임인데요. 프로게이머 우시은은 이에 대한 질문을 듣고 말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매칭이 자동으로 이루어져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함께 게임을 해서 욕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는 사이면 절대 그렇게 못할 텐데. 아! 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레이디스 리그도 나가봤어요. 서든어택 프로게이머가 참가하는 이벤트 매치가 있었는데요. 제가 캐리했어요. 카직스로(웃음)."

FPS 장르와는 전혀 다른 리그 오브 레전드인데 프로게이머 우시은은 잘했을까요? "사실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골드 티어이고 예전에 대회 참가할 때는 플레티넘 티어였어요. FPS 게임하는 친구들과 가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데 확실히 논타겟 스킬을 잘 맞춰요(웃음). 경기 흐름을 읽는 건 서든어택만큼 안되지만."

플레티넘 티어에 속해봤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역시 프로게이머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시은 선수도 긴장이 많이 풀린 듯 보여 용기를 내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그녀가 느끼는 여성 프로게이머의 삶은 과연 어떨까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만 가지고 사는 건 쉽지 않아요.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성 프로게이머를 향한 시선은 아직 그대로인 것 같아요. 대회 상금 차이도 크게 나고 프로 게임단이 존재하지도 않아요. 대회에 참가하는 동료들은 다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이 일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요. 자기 일 때문에 연습을 제대로 못 하면 팀원에게도 미안하고 여러 고충이 있어요."


프로게이머 우시은은 잠시 망설이다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여성 프로게이머의 실력보다 외모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친구 중에는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애들도 있어요.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대요. 대회에 참가해서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알기 때문이에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하던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때는 기사에 댓글을 전부 보고 너무 놀랐어요. 지금은 댓글은 잘 안읽고 기사만 보는 편이에요. 많이 무뎌지기도 했고, 그만큼 오래돼서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아요. 선물도 받아 봤어요(웃음)."

그녀는 기업 혹은 전문 e스포츠인이 운영하는 게임단 소속이 아닙니다. 프로게이머 직업에 대한 중요성과 소명의식을 배우는 소양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여성 프로게이머로 살아왔고 4번의 우승을 차지할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퍼제'에서 'MiraGe[FLAME]'으로 팀을 옮겼어요. 이유가 뭔가요? "팀의 리더를 맡았던 (고)수진이가 대회를 그만둔다고 말했어요. 환경도 좋지 않아서 계속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나 봐요. (고)수진이는 나이가 저희보다 어렸지만 리더쉽도 있었고 오더도 좋았어요. 그런 역할을 대신할 사람도 없었고 새로 뽑을 수도 없을 것 같아 팀을 해산하기로 했죠. 저나 몇몇 친구는 팀을 옮겼어요."


그렇게 그녀가 새로 들어간 팀은 'MiraGe[FLAME]'입니다. '퍼제'와 함께 여성부 리그에서 한 축을 담당한 강팀이자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서로 우승을 두고 경쟁했던 팀으로 자리를 옮긴 우시은. 과연, 새로운 팀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두 팀이 서로 번갈아가며 우승했기 때문에 라이벌이고 사이가 안좋을 거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근데 'MiraGe[FLAME]'은 여성 팀 중에 '퍼제'와 가장 친한 팀이었어요. '퍼제'시절에 남성팀 하고만 연습을 해서 따로 연습 게임을 하진 않았지만, 교류도 많았고 친하게 지냈어요. 그래서 이 팀을 올 수 있었어요."

새로운 팀인 'MiraGe[FLAME]'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뭔가요? "당연히 우승이죠. 새로운 팀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 우승할 확률은 반반인 것 같아요. 새로운 팀에 들어갔더니 서로 맞춰야 할게 한둘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열심히 맞춰봐야죠."

새로운 팀 소속으로 여전히 우승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여성 프로게이머 우시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의 마무리는 선수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편해졌는지 그녀는 마지막 질문에 이웃집 오빠에게 이야기하듯 말했습니다.

"여성 프로게이머도 외모보다 실력으로 평가해주시고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보시면 많은 응원 부탁해요. 그리고 '퍼제' 친구들 다 잘 지내길 바라고 'MiraGe[FLAME]' 팀원에겐 저에게 맞춰줘서 고맙고 함께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