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플레이, 경기 시청? 많은 팬들이 보통은 이런 방법을 이용하지만, 현재의 스포츠는 분석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프로 스포츠와 분석은 한배를 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로화됐고, 프로 스포츠가 되고 나서는 '분석'이라는 녀석이 등장했다. 분석의 등장으로 프로 스포츠는 더욱 전문화되는 길을 걸어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팬들은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얻고 활용할 수 있었다.

LoL e스포츠도 동일한 과정을 걸었지만, 현재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지표'다. 분석은 객관성을 떠나면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걸친 전문가들은 분석의 객관성을 위해 수치화되고 계량화된 '지표'들을 만들어왔다. 지표 또한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완벽한 객관성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현재까지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 중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표는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편의성까지 제공한다.

LoL에서도 이런 객관성과 편의성을 위해 여러 숫자가 제공되어 왔다. 단순하게는 킬, 데스, 어시스트가 현재 제공되는 지표들이다. 그런데 이런 '지표'들이 수준이 높아진 LoL e스포츠계에 합당한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죽인 선수가 숫자 그대로 가장 잘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나? 가장 많이 죽은 선수가 숫자 그대로 가장 못 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단편적인 지표들 말고도 KDA, 분당 CS, 딜량 등이 마찬가지로 높아진 우리의 눈을 충족시켜 주는 지표인가?



현재 지표의 문제



■ 숫자부터 부족

객관성에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숫자 자체도 부족하다. 현재 LoL e스포츠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되고 있는 지표는 총 9개이다. 그중에서 경기력과 밀접하게 연관된 지표는 6개다(게임 수, 게임 시간, 총 CS 제외). 물론, 아래와 같이 매 경기 제공되는 지표들이 있기는 하다.

▲ 경기마다 제공되는 스탯 보드

하지만, 이 수치들이 모두 묶여 합산이나 평균으로 제공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지표는 킬, 데스, 어시스트, KDA, 킬 관여율, 분당 CS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킬, 데스, 어시스트가 발전해서 만들어진 것이 KDA이기 때문에 사실상 단 3개의 지표만이 공신력 있게 쓸 수 있는 지표다. 전문가들과 팬들이 유의미한 지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딜량 수치도 제공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 가장 큰 문제, 객관성의 부족

단 3개의 지표만으로도 객관성이 충분하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객관성이 있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는 오래전부터 대다수의 사람이 동의한 중론처럼 나와 있는 대답이다. 경기가 고차원화 된 지금 어디에도 전문가와 팬들을 충분히 만족하게 해줄 만한 공식적인 지표는 없다.

일단 대표적인 지표인 KDA부터 살펴보자. 과거 롤챔스 초창기, KDA라는 신박한 지표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이전까지는 적게 죽고 킬을 많이 기록한 선수만 주목을 받았지만, 어시스트까지 포함된 KDA는 훨씬 세련되고 객관적인 지표로 보였다.

당시라면 KDA가 충분히 영향력이 있는 지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LoL 프로팀의 기량이 말 그대로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을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운영, 시야 장악, 심리전 등이 빠진 KDA는 객관성을 잃었다. 예전부터 해설자들도 방송에서 "KDA가 그렇게 중요한 지표는 아니지만..." 이라는 단서를 자주 서두로 달곤 했다.

▲ LCK 섬머 정규 시즌 KDA 내림차순

이 표를 보면 그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다. 대부분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몇몇 꺼림칙한 부분이 바로 보인다. '애로우' 노동현이 좋은 원거리 딜러기는 하지만, 수치에서만큼이나 '프레이' 김종인보다 뛰어날까? 사실 더 눈에 띄는 선수는 '파일럿' 나우형이다. 근소한 차이지만 '페이커' 이상혁보다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파일럿'은 섬머 시즌 고평가를 받은 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 섬머 시즌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은 '스맵' 송경호도 여기서는 7위에 불과하다.

또 한가지, 서포터는 '고릴라' 강범현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KDA는 주로 딜 포지션을 맞고 있는 미드라이너와 원거리 딜러에게만 치중된 지표다. 확인해본 결과, 이러한 문제들은 킬 관여율과 분당 CS도 더했으면 더했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LCK 섬머 정규 시즌 KDA 킬 관여율 내림차순


▲ LCK 섬머 정규 시즌 분당 CS 내림차순




1차 지표의 진화, 2차 지표



■ 가능성이 있는 2차 지표

앞서 얘기한 현재 지표들의 문제는 2차 지표를 통해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하다. 2차 지표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객관적인 경기력을 측정해준다 데 있다. 2차 지표는 다양한 1차 지표(득점, 실점, 어시스트, 안타 등)를 가공해서 만들어지는 지표다.

2차 지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스포츠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장 통용되는 곳은 프로 농구와 야구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MLB(미국 프로 야구)와 NBA(미국 프로 농구)인데, 2차 지표를 1차 지표만큼이나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에서는 보정 On Base Plus Slugging(OPS), 농구는 Player Efficiency Rating(PER)이다.

PER의 창시자인 홀린져는 "PER는 어떤 선수가 나타낸 긍정적인 성취들을 더하고, 부정적인 성취들을 뺀 이후에 시간보정을 해준 생산성을 나타내는 스탯이다"라고 얘기했다. 여기서 긍정적인 성취는 득점, 스틸, 블락,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이고 부정적인 성취는 슛 실패, 실책, 파울 등이다.

단순 몇 개의 1차 지표가 아닌 여러 1차 지표를 경기력의 근거로 사용하니 당연히 객관성이 높아진다. 득점만 잘하는 평균 득점 30점인 A선수가 1차 지표만 보면 매우 잘하는 듯 보이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슛 실패, 실책, 파울 등 다양한 부정적인 지표까지 더한 2차 지표에서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포지션 혹은 역할 때문에 손해를 봤던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는 1차 지표가 포함된 2차 지표에서는 좋은 수치를 얻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B선수는 역할상 득점보다는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그래서 딱히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리바운드, 수비 등에 좋은 1차 지표를 얻어 생각보다 높은 2차 지표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 PER 공식

게다가 1차 스탯의 비(非)객관성이 보정이 된다는 게 중요하다. 먼저, 앞서 말한 긍정적, 부정적 성취들은 중요도를 두고 보정이 된다. 예를 들어, 득점은 가장 중요한 수치로 계산된다. 또한, 1차 지표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값이 보정된다. factor, VOP, DRB%에 들어가는 산식이 선수의 스텟을 리그 평균 수치에 맞추어 다른 값들을 보정한다. 출장 시간 대비 생산성 또한 마찬가지로 보정을 거친다(농구 종목 특성상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uPER에다가 리그 평균 경기 속도 대비 팀 경기 속도를 곱해주고(uPER*(lgPACE/tmPACE), 리그 PER의 평균을 15로 설정해 주는식(15/lguPER)을 곱해주면 시대, 팀 경기 속도, 생산성 등 많은 부분 보정을 받은 2차 지표 PER이 완성된다.

보정에 대해 LoL로 단편적인 예를 들면, 라인 스왑 메타와 라인전 메타에서 생산되는 1차 지표가 확연히 다르게 산출된다고 가정 해보자. 그럼에도 2차 지표는 보정 수치를 활용하여 비교적 메타에 상관없이 선수들의 경기력 지표를 산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즌이 끝난 후, 선수들이 얻은 PER 수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보기 쉽게 평가된다.

우주 최고의 선수 : 35
리그 MVP : 30
올스타: 25
팀 2번째 에이스: 20
리그 평균 : 15

PER은 단순한 예일 뿐이다. LoL 2차 지표를 도입한다면 전혀 다른 방식과 산식을 대입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만약 공신력 있는 2차 지표가 만들어진다면 e스포츠가 더욱 전문화되고 풍성해지는 것은 물론, 팬들의 즐거움까지 한층 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2차 지표도 한계는 있다

그러나 2차 지표가 완벽한 지표는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2차 지표도 1차 지표로 만들어 내는 것이고,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또한, 여러 산식들은 당연히 만든 이의 주관적인 생각이 투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방증으로 같은 종목에서도 다양한 2차 지표들이 존재한다.

e스포츠 2차 지표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수명의 한계를 꼬집어 2차 지표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e스포츠 종목은 수명이 짧기에 만들어 봤자 얼마 쓰지 못한다는 게 근거다.

분명 일리가 있고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섣부른 판단이다. 일단, 하나의 게임이 수명을 다한다고 해도 다음 게임이 등장할 것이고, 그러면 이전 게임에 사용하던 2차 지표가 새로운 게임의 지표를 만드는 데 유용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LoL의 수명이 몇 년 안에 끝날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 게임들은 주기적인 패치가 진행되고 LoL은 그 부분에 있어서라면(잘하고 아니고 의 여부는 차치하고) 앞서는 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10년 혹은 그 이상의 수명을 유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끝으로

그동안 2차 지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엇이 '캐리 레이팅'이라는 지표를 만들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급하고 허술하게 만들어낸 지표라, 대다수의 쓴소리로 인해 금세 사라졌다. 또한, 최근에는 한 인벤 유저가 발명한 '빠잉지표'라는 챔피언 간의 우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있었다. 그러나 개인이 임의로 만든 지표이기에 검증이 필요하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나타내는 수치는 아니었다.

이제는 라이엇과 개인뿐만 아니라, 매체, 전문가, 통계 전문가 등 지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들이 함께 머리를 싸매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