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s never die. 전설은 죽지 않는다. 이번 롤드컵 메인 테마이자, 주제곡의 이름이었다.

정말 전설은 죽지 않았다. 2017년 11월 4일, 삼성 갤럭시의 '앰비션' 강찬용은 프로게이머에게 적지 않은 시간인 7년이라는 세월 만에 소환사 컵을 들어 올렸다. '앰비션' 뿐만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전설들이 매년, 매 순간 전설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앰비션'이 소환사 컵을 들어 올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11월 28일에 한 명의 전설이 떠났다. LoL 최고의 빅 타임 플레이어이자 SKT T1의 수호자 같은 존재였던 '벵기' 배성웅이 선수의 자리에서 물러나 SKT의 코치가 됐다. 전설과의 이별은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뒤를 이어, 12월 5일에는 아주부(CJ의 전신) 시절부터 현재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탑 라이너 '샤이' 박상면이 은퇴를 선언했다.

'아쉽다...'. 많은 이들이 같은 감정이지 않을까.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을 그들에게 아쉬움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The Jungle '벵기' 배성웅


■ 수상 경력(주요 대회)

*HOT6 Champions Summer 2013 우승
*PANDORA TV Champions Winter 2013-2014 우승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 3 월드 챔피언십 우승
*리그 오브 레전드 올스타 2014/인비테이셔널 우승
*2015 SBENU LOL Champions Korea Spring 우승
*2015 SBENU LOL Champions Korea Summer 우승
*리그 오브 레전드 2015 시즌 월드 챔피언십 우승
*2016 꼬깔콘 LOL Champions Korea Spring 우승
*2016 Mid-Season Invitational 우승
*리그 오브 레전드 2016 시즌 월드 챔피언십 우승


솔로 랭크 전사들 총집합, 완성형 정글의 가능성


세계 최고의 팀에서 활약하면서 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공식 경기 데뷔전은 2013년 4월 6일 CJ 엔투스 블레이즈와의 경기였다.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그의 첫인상이 뚜렷하지는 않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당시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였던 '앰비션'을 무너트린 '페이커'에게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벵기'는 이후 경기들을 통해 빠르고 단순하게 '벵기'라는 두 글자를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올림푸스 롤챔스 스프링 2013 시즌 3위에 올랐고, MVP 포인트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93년생으로 지금도 매우 어린 나이이지만, 당시에 '벵기'는 싱싱한 활어 같았다. 피지컬이 좋은 선수였다. 뿐만 아니라 자르반, 리 신, 나서스, 볼리베어, 이블린 등 다양한 챔피언을 선보이며 공격적인 플레이는 물론 수비적인 플레이까지 모두 해냈다. 완성형 정글러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곧바로 그다음 시즌부터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HOT6 롤챔스 섬머에서 첫 우승을 따냈다. '빅 타임 플레이어'라는 수식어는 이때부터 시작됐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정규 시즌보다는 토너먼트에서 더욱 빛이 났다. 삼성 오존을 4강에서 만나, 상대 정글러인 '댄디' 최인규에 우위를 점해 이전 시즌의 복수를 했다. 결승에서는 '카카오'를 만났다. 시작은 패-패였지만, 이후부터는 세트 MVP도 따내며 우월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때마다 꺼내든 필승 카드 바이는 단연 인상적이었다. 당시 결승에서 가장 주목받은 쪽은 '페이커'의 제드였지만, 뒤에는 '벵기'가 있었다.


'클템' 이현우, "완벽한 정글"

이후에는 탄탄대로였다. 처음으로 진출한 2013 롤드컵에서 리 신을 활용해 8승 1패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승했고, 이어진 판도라TV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글러로써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팀의 모든 라인이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기에, 이때부터 더욱 역갱과 커버에 힘을 실었다. SKT는 해당 시즌에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완벽한 시즌을 보냈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벵기'의 평가는 엇갈렸다. 잘하는 라이너들에게 묻어간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클템' 이현우는 방송에서 '벵기'를 "완벽한 정글러"라고 평가다. '벵기' 스스로 경기를 통해 이를 증명하기도 했다. 필요 때마다 팀을 캐리하며 엇갈렸던 평가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악의 한 해 '2014'


SKT의 LCK 연승 기록이 스프링 개막전부터 깨졌다. SKT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서포터 '푸만두'가 휴식을 선언하며 팀이 흔들렸다. 팀 부진에는 '벵기'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벵기'는 개막전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쭉 하락세를 걸었다.

완벽한 정글러라는 평을 들었지만, 실제로 '벵기'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라이너를 보좌하는 스타일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너들의 전반적인 폼이 떨어지니, '벵기' 또한 헤맸다.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패배의 원인이 되는 큰 실수를 종종 범하기도 했다. 이블린, 리 신, 카직스을 주로 사용하며 공격적인 정글러를 기용했으나 날카로운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공격적인 정글 메타에 적합했던 당시 최상위 정글러 '댄디'와 '카카오'와의 매치업에서 열세였다. '벵기'는 맞불 작전이 힘들자, '댄디'와의 8강 경기에서는 누누를 사용하며 우회 작전을 선택하기도 했다. 한 세트를 따내며 시작은 좋았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댄디'가 연속된 누누 픽을 리 신으로 무너트렸다. 좋지 않은 분위기가 롤드컵 선발전에도 이어져, SKT는 롤드컵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모든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The Jungle

2015년에는 시장이 급변하고, 라이엇이 '단일팀'을 외치면서 LCK 상위권 팀들의 로스터가 대격변을 맞았다. '댄디'와 '카카오' 같은 당시 최상급 정글러들이 모두 해외로 떠났다. '벵기'의 반등이 예상됐다. 하지만, '벵기'의 경기력은 여전히 예전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 우디르 장인으로 유명했던 '톰'이 SKT의 선발 정글러로 활약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렇게 잊혀지는 줄만 알았던 '벵기'의 존재감은 중요한 순간에 드러났다. 톰톰벵벵벵. SKT는 CJ 엔투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0:2로 지고 있었다. '벵기'는 3세트부터 '톰'을 대신해서 출전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3연승을 만들어내며 팀을 지옥에서 꺼내왔다. '벵기'가 결승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2015 SBENU 롤챔스 스프링 우승은 결국 SKT가 차지했다.

이후 2015년 내내 '벵기'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벵기'가 곧 정글 그 자체임을 뜻하는 The Jungle이라는 그의 수식어도 이때부터 널리 퍼졌다. 2015 스베누 롤챔스 섬머, 2015 롤드컵에서 '벵기'는 정글러가 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줬다. SKT는 MSI를 제외하고 모든 주요 대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수호신, 빅 타임 플레이어


2016년 소환사 협곡의 정글이 크게 바뀌었다. 간단히 말해, 그 어떤 때보다도 '정글 캐리' 메타였다. 당시 유행했던 챔피언이 킨드레드와 그레이브즈였다. 당시 상황이 금방 떠올려질 것이다. '벵기'는 선수 생활 제2의 위기를 겪었다. 간혹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경기력이 일정하지 못했다. 완연한 하락세였다.

결국, '블랭크' 강선구가 '벵기'를 대신해 출전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팀은 2016 스프링 시즌과 2016 MSI에서 우여곡절 끝에 우승했지만, '벵기'의 출전 기회는 거의 없었다. MSI에서는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섬머 시즌, 메타가 바뀌어도 어려운 상황은 계속됐다. 시즌 초반에는 무난히 승수를 쌓으며 회복세였지만, 시즌 막바지에는 연패의 늪에 빠졌다. 포스트 시즌에는 출전도 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전설은 롤드컵에서 다시 깨어났다. 당시 SKT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스멥' 송경호를 필두로 한 락스 타이거즈의 우승을 점쳤다. 그러나 '벵기'가 살아나면서 SKT는 롤드컵 기간 내에 모든 위기를 넘겼다. 락스와의 4강 경기는 단연 최고였다. 벵블블벵벵. 출전한 모든 경기에 승리하며 팀을 결승에 올렸다. 그동안 사용을 꺼렸던 니달리를 사용해 위기의 4세트를 따냈던 장면은 LoL 역사에 길이 남을만 했다. '벵기'의 기세는 결승전에도 이어져, SKT는 롤드컵 2회 연속 우승이라는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

중요 순간에 영웅 같은 플레이를 펼쳤지만, SKT와 재계약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지훈이 소속된 중국의 VG로 이적했다. 중국에서 최악의 커리어를 보냈다. VG의 구단주가 '벵기'를 비난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 시즌 만에 VG에 나와 야인이 됐다. 그리고 11월 28일 SKT의 코치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제 플레이 스타일은 상관이 없어요. 비록 제가 저평가를 받는다고 해도요. 결국, 프로게이머에게 남는 것은 승리와 커리어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인벤과의 인터뷰 중



This Is Shy '샤이' 박상면


■ 수상 경력(주요 대회)

*Azubu the Champions Summer 2012 우승
*OLYMPUS Champions Winter 2012-2013 준우승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 2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


부족했던 로열로더


한국을 대표하는 탑 라이너 중 한 명이지만, 그에 비해 우승 경력이 화려하지는 않다. '샤이'에 대한 기억은 대표 챔피언인 잭스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날렵하지만, 단단했고, 우직하지만, 유연했다.

'샤이'는 선수 인생 초반에 많은 타이틀을 따냈다. 오래되지 않은 LoL 게임 경력이었지만, 잭스 장인으로 LoL 프로 씬에 입문했다. 그의 데뷔 시즌이었던 아주부 롤챔스 섬머 2012에는 신인의 단점이 드러났다. 일단, 잭스를 제외하고 다른 챔피언에 대한 숙련도가 높지 않았다. 또, 프로 경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운영이나 한타에서 아쉬운 모습이 나왔다.

그럼에도 아주부(CJ의 전신) 프로스트가 결승에서 대혈전을 뚫고 패패승승승으로 CLG EU를 꺾었다. 3세트에서 '샤이'가 잭스를 잡아 제 몫을 해줬던 점도 주요했지만,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3세트부터 연신 슈퍼 플레이를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첫 LCK 대회부터 우승을 차지한 것이지만, 우승 팀의 탑 라이너로써 만족스러운 기량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탑 라이너로 거듭나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은 감춰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시즌2 롤드컵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당시 그의 챔피언 폭을 보면 그저 놀랍다. 잭스, 신지드, 제이스, 이렐리아, 블라디미르까지 순식간에 숙련도를 높여 챔피언 폭을 늘렸다. 이때부터 '샤이'라는 아이디가 전 세계 LoL 팬들에게 각인됐다.

아주부 프로스트는 '샤이'의 성장에 힘입어 한국 팀 역사상 최초로 롤드컵 결승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샤이'는 결승에서 다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 '클템' 이현우가 TPA에게 막히자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오히려 다소 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떨어졌던 평가는 곧바로 다시 올라갔다. 롤드컵 이후에 형제 팀인 블레이즈 소속으로 출전한 MLG에서 전형적인 탑 캐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세계적인 탑 라이너였던 '막눈' 윤하운을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던 점도 높이 평가받았다.


한결같았던 최고, 그러나 멀었던 우승


올림푸스 롤챔스 윈터 2012-2013부터 꾸준히 최고의 탑 라이너다운 기량을 유지했다. 먼저, 못하는 챔피언이 거의 없었다. 본래부터 장기였던 브루저 스타일의 챔피언은 물론 제이스와 럼블까지, 당시에 출현하는 탑 챔피언은 대부분 소화했다. 또 라인전이 강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스노우볼 운영에 선두였다. 가장 이상적인 탑 라이너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결승 혹은 4강전과 같이 우승에 근접했을 때, 아쉬운 경기를 보였다. 특히, 윈터 결승 무대가 그랬다. '클템'이 무너지자, '샤이' 또한 상대 탑과 정글러인 '막눈-와치' 조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3경기 연속 이렐리아를 선택하는 등 넓은 챔피언 폭을 활용하지 못한 점이 결과적으로 아쉬웠다.


동료 이상의 존재, '클템'과의 작별

'샤이'의 기량은 여전했지만, SKT와 삼성의 등장으로 CJ 엔투스는 더이상 우승을 두고 경쟁할 저력이 있는 팀이 아니었다. '클템'이 팀에 남아 있던 2013년도까지는 그래도 4강권에 들어갔지만, 우승권 팀들과의 실력 격차를 체감해야만 했다. 결국, '클템'은 한계에 부딪혀 2013년 섬머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현우 형은 저에게 단순한 동료 선수 이상의 존재였어요."'샤이'는 '클템'이 떠날 때 많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클템의 은퇴로 '샤이'의 선수 인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팀의 구심점이었던 '클템'이 떠나니 CJ 엔투스가 크게 흔들렸다. 그만큼 '클템'의 존재는 '샤이' 뿐 아니라 CJ 엔투스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했다. 흔들리는 팀에서 '샤이'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혼자 다 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자, 스스로도 조급해지며 예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발목 잡은 부상, 그래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This Is Shy'


더이상 예전만큼 라인전이 강한 선수도, 챔피언 폭이 넓은 선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직하고 단단한 맛이 있었다. 2015년은 CJ 엔투스에게도, '샤이'에게도 반등의 해였다. 문도, 룰루, 럼블을 두루 사용하며 안정적인 플레이로 팀을 도왔다. '클템' 해설이 'This Is Shy'를 외친 경기도 늘어났다. 2015년에 CJ 엔투스는 정규 시즌 성적으로 스프링, 섬머에서 3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5 케스파컵 이후에 부상으로 신음했다. 이전에도 목 디스크로 고생을 했지만, 이때부터는 프로게이머에게 치명적인 손목 부상이었다.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16 섬머 시즌이었던 6월 25일에서야 복귀전을 치렀다. LCK에서는 312일 만의 출전이었다. 늘 했던 대로 최소한 자기 몫은 해줬다. 그의 게임 센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샤이'의 복귀에도 CJ 엔투스의 하락세는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샤이'가 출전한 경기의 패턴은 거의 비슷했다. '샤이'가 안정적으로 최소 1인분을 해주지만, 다른 라인이 휘청휘청하며 패배하는 그림.

"당시 강등이라는 결과가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와서 LoL이란 게임 자체를 거들떠보기도 싫은 상태였어요. 한동안 정말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아요." 졸전을 거듭했던 CJ 엔투스는 결국 2016년을 끝으로 강등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

'샤이'는 2017년부터 락스 타이거즈로 소속팀을 옮겼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락스에서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부었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 부상 문제도 있었고, 처음부터 플레잉코치로 팀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농이 익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렇게 마지막을 활활 태운 '샤이'는 12월 5일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LoL e스포츠가 걸어온 역사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팬분들 기억에 남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습니다"-인벤과의 인터뷰 중


그동안 수고해준 두 전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