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플레이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수양록 1편처럼 초반 격전지로 향했다가 무기를 줍지 못한 채 허무할 정도로 일찍 게임을 마치게 되는가 하면, 2편에 수록된 영상들처럼 스쿼드를 거의 혼자 캐리하는 역할도 왕왕 해낸다. 지금 보니 둘 다 내가 직접 했던 플레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두 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잘했던 플레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무기 운이 없어 일찍 전사하는 장면들을 모았던 기사에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사람들 참... 하여간 남 잘되는 걸 못 본다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내가 죽는 장면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허무하고 어이없게 전사해서 헛웃음이 나올 법한 장면들 말이다. 유명 개그맨이 개인방송에서 배그를 플레이할 때 자주 당하는, 그런 식의 죽음들. 소위 말하는 '데스 아티스트'에 도전장을 내밀 만한 장면들을 모아봤다.


데스 아티스트
웃긴 리액션은 없지만, 황당한 죽음은 있었다


'데스 아티스트'라는 단어는 참 오묘한 단어다. 일단 단어를 하나씩 떼어 해석해보자. 데스는 죽음, 아티스트는 예술가다. 그럼 데스 아티스트는 죽음의 예술가란 말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회자되는 살인마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을 죽음으로 예술을 하는 예술가라고 과대포장해서 표현했으니까. 그냥 사람을 죽인 범죄자 주제에.

하지만 최근 이 단어는 완전히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 게임 상에서 유저의 캐릭터가 정말 획기적이고 황당하게, 그래서 그게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죽음을 당했을 때 데스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쓰인다. 어찌 되었건 죽음으로 예술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으니 꽤 알맞은 표현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유명 개그맨이 개인방송을 통해 배그를 플레이하면 어김없이 저 표현이 따라 붙는다. 나도 몇 번 그 방송을 봤는데 그의 캐릭터는 정말 예술에 가까운 경지로 죽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죽을 수가 있을까. 일부러 유저들이랑 짜고 저렇게 죽는건가 싶을 정도였다. 조작된 죽음 장면이 아니라면, 저 개그맨은 배그로 웃기기 위해 태어났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떠올려보면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죽었던 경우가 많았다. 개인방송을 켜고 이상하게 죽을 때마다 재미있는 리액션과 함께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풀어내지 않았을 뿐. 하긴 나는 심각한 '노잼' 스타일이라 획기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해도 외마디 비명 혹은 기타 재미없는 리액션만 보였을 것 같긴 하다. 원래 '데스 아티스트'라는 별명은 쉽게 붙는게 아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걸 마무리짓는 과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리액션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데스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나랑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스스로 위안거리를 삼자면 나도 꽤 황당하고 이상하게 죽은 적이 많았다. 그럼 나도 반 정도는 데스 아티스트 아닐까.


데스 아트 4종 세트
억울한 죽음 두 번, 자해에 조작 실수까지


가장 먼저 소개할 죽음은 배그 정식 출시와 함께 등장했던 파쿠르와 관련된 것이다. 과거 점프 키와 앉기 키를 거의 동시에 눌러 활용됐던 '슈퍼 점프'를 대신해 배그에 정식으로 등장한 기술로, 일반 점프로는 넘을 수 없던 각종 지형지물을 넘게 해주는 기능이다.

나도 일반 유저들처럼 새롭게 추가된 파쿠르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냥 점프로 충분히 넘을 수 있는 곳도 파쿠르로 넘어다니는 등 시도때도 없이 파쿠르를 시전했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파쿠르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수양록 2편에서 치킨을 뜯었던 스쿼드 멤버들과 다시 우승을 위해 모였다. 하지만 그 날은 생각처럼 게임이 풀리지 않았고 우리는 스쿼드 모드 우승이라는 목표와 점점 멀어졌다. 슬슬 지치던 순간에 나는 파쿠르와 관련된 억울한 죽음을 경험했고, 난 전의를 모두 상실한 채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다.

미라마의 페카도에 내려 무기를 수급하던 우리는 상당히 많은 스쿼드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됐다. 늘상 겪는 일에 그러려니 하면서 잘 풀리지 않던 그 날 게임의 분위기를 뒤집고자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페카도 모텔 쪽에 내리자마자 M16A4를 발견했다. 내가 이 총과 그리 좋은 궁합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페카도 초반 파밍 중에 이게 무슨 횡재인가. '오예'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때 나와 팀원 한 명이 함께 파밍 중이던 모텔 쪽으로 낯선 이가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정신없이 창문 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파밍을 했던 만큼 상대도 분명히 우리의 존재를 파악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 주변에서 상대의 발소리가 멈췄고 우리는 대치를 시작했다. 나는 건물 밖에서, 같이 있던 팀원은 건물 안에서 상대를 발견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리가 잡담에 가까운 브리핑을 주고받는 사이에 발소리를 잔뜩 죽인 상대가 팀원 쪽으로 붙었다. 그래도 2:1 상황이었기에 우리에게 승산이 있었다. 나는 팀원을 돕기 위해 재빨리 계단을 타고 이동했다. 그 순간 팀원이 쓰러졌다. 다급해진 나는 창문을 파쿠르로 넘으려 했다. 조금만 더 옆으로 가면 문이 있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파쿠르를 시전했다. 한 번의 실패 이후 두 번째 시도 끝에 파쿠르 성공. 하지만 상대는 딱 내가 창틀에 손을 짚는 순간 고개를 내밀었고, 우리 두 명은 황당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 하필...


파쿠르를 하다가 상대에게 발견되어 저항조차 못하고 쓰러진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저것만큼 다들 겪어봤을 법한 장면을 공유하고자 한다.

배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초반 파밍이나 중반 이후 '인간 파밍'을 통한 각종 아이템 수급, 안전지대의 위치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차량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넓은 맵을 빠르고 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량 보유 여부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오락가락하는 기분이다. 처음 내린 곳에 차량이 없어 우울하게 뛰어다니다가 저 멀리 차량을 발견했을 때만큼 배그에서 기쁜 적도 드물다.

하지만 그 차량이 뒤집히거나 어떠한 이유로 폭발하면 그때처럼 억울한 경우도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건 자신의 차량에 기절하거나 죽을 때다.

이제는 고정 멤버가 되어버린 듯한 나와 세 명의 팀원은 이동 중에 차량을 획득하고 안전지대 쪽으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이미 그쪽에 자리잡고 있던 상대와 마주쳤다. 재빨리 차량에서 내려 대응사격을 하던 중에 나는 2편에서 밝혔던 것처럼 팀원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차량을 타고 조금 더 상대가 잘 보일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격발하는 상대를 발견해 차량에서 급하게 뛰어내렸다.

그때였다. 차량을 급하게 멈추느라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른 탓에 내가 타고 왔던 픽업 트럭은 빠르게 뒤로 굴러와서 나를 덮쳤다. 차량을 세운 곳의 지형 또한 내 차량을 뒤로 움직이기 편하게 해줬다. 나는 순식간에 차량에 치어 기절했다. 하아... 난 차량의 속도를 빨리 줄이기 위해 뒤로 가는 버튼을 살짝 눌렀다가 바로 하차했는데 그게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게임 상에서 내가 자해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 픽업 트럭... 너도냐...?


3인칭 화면 구도의 장난으로 억울하게 사망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친동생과 함께 듀오를 즐길 때였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승전고를 울리면서 킬 포인트를 빠르게 쌓았다. 어느덧 맵에는 몇 명 남지 않았고, 우리는 '인간 파밍'을 많이 해서 아이템의 상태도 좋았다. 소위 '치킨 각'이었다.

심지어 안전 지대로 가던 길에 우리를 보지 못하고 앞으로 뛰어가는 상대를 발견했다. 또 '인간 파밍'이라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너무 방심했던 나머지 에임에 집중하지 못해 상대를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상대가 한 명 뿐이라고 확신한 우리는 그쪽으로 혼을 빼고 달려갔다. 그 순간, 전혀 보지 못했던 상대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둘을 쓰러뜨렸다. 영상을 확인해보니, 3인칭 시점 때문에 우리를 죽였던 상대가 내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 그러니 우리 모두 3인칭 모드를 멀리하고 1인칭 모드를 즐깁시다


다급한 나머지 키 조작 실수를 범해 치킨을 뜯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늘상 모이는 스쿼드 멤버가 절치부심해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상대의 위치도 대략 소리로 파악해뒀다. 3:1로 수적 우위였던 만큼 못 이기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내고 말았다. 팀원 한 명이 먼저 쓰러졌고, 나는 그쪽으로 붙어 상대를 마무리해 팀 우승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앞으로 튀어가던 중에 나에게 격발하는 상대와 마주쳤다. 1:1이라면 자신있었던 나. 하지만 다급했던 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체력이 크게 줄어 구급상자를 사용 중이던 나는 속으로 '상대 위치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으니 수류탄을 던져 위협을 가해야지' 라고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상대를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5번 키에 손을 대고 말았던 것이다.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위대함이 새삼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꺼내든 것은 수류탄도 아닌 연막탄이었다. 허무하게 에이스(?)마저 잃은 우리 스쿼드는 상대 한 명에게 몰살당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이했다.

▲ 연막탄이 왜 거기서 나와...?


내가 황당하게 기절하거나 죽음을 맞이했던 장면을 다 공유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도 나름 데스 아티스트 까지는 아니더라도 헛웃음이라도 지어보일 수 있는 장면들로 기사를 채운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특히, 저 장면들을 일부러 연출하진 않았다는 점이 그랬다.

사실 우리 모두는 데스 아티스트에 근접한 사람들일 것이다. 배그를 플레이하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유저들도 이에 못지 않는 죽음을 자주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뜬금없는 순간에 이상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기 쉬운 것이 배그니까.

여러분은 배그를 플레이하다가 어떤 황당한 죽음을 경험했는지 궁금하다. 분명 유명 개그맨이나 나 못지 않게 예술적으로 쓰러진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서로 공유하고 즐기는 것도 재미있는 시간 떼우기 정도의 일이 될 것 같다. 혹시 아나. 서로 자신이 더 재미있게 죽었다고 경쟁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