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5는 역대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예상과는 다른 결과 때문일 것이다. 시즌3와 시즌4는 한국 팀의 기량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SKT T1 K와 삼성 화이트의 선전에 기분은 좋았지만, 순수하게 보는 재미로만 따졌을 때는 이번 시즌이 단연코 최고다.

대회 최약체 중 하나로 꼽히던 클라우드9(이하 C9)이 3승 0패로 조 1위에 등극했고, 유럽의 오리젠은 한국의 kt 롤스터를 스플릿 '운영'으로 꺾었다. 이 치열한 경쟁을 보고 있자니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혼란 속에서 포지션 별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선수는 누구인지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살펴보자.


■ 압도적인 클래스를 보여준 '마린' 장경환


한국의 탑 라이너는 유독 다른 지역에 보다 우수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번 롤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평은 유지됐다. 한국의 탑 라이너를 막을 수 있는 선수들은 같은 한국인인 '후니' 허승훈과 '에이콘' 최천주 그리고 중국의 '어메이징J' 정도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각 포지션 별로 다른 지역 선수들이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과연 한국의 탑 라이너가 그 격차를 이번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마린' 장경환은 그걸 입증해냈다. SKT T1과 H2K의 경기에서는 불리한 한타 상황을 피오라로 전광석화 같은 진입으로 전세를 역전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마린' 이라는 두 글자에 '세체탑'이라는 접두사를 붙여도 되겠다는 인상을 심어준 경기는 MSI에서 SKT T1에게 준우승을 선사한 EDG와의 경기에서 나왔다.

장경환은 '어메이징J'의 다리우스를 상대로 레넥톤을 꺼내 들었다. EDG는 SKT T1과 다른 드래곤 중심의 초반 운영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EDG의 선택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탑 라이너 간의 성장 격차가 났고, 경기 끝까지 이 격차를 EDG는 좁히지 못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탑에서 게임이 끝났다. 이 경기로 장경환은 '세체탑'이라는 칭호에 가장 가까워진 선수가 됐다.




■ 백전노장 '엑스페케'


현재까지 활동하는 1세대 프로 게이머는 많지 않다. 거기에다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예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기량을 뽐내는 1세대 프로 게이머는 더욱 적다. 그런데 그 신예들에게 피지컬로는 전혀 꿀리지 않으면서, 운영과 노련미에서는 압도적인 기량을 뽐낸 선수가 있다.

오리젠의 미드 라이너 '엑스페케'가 그 주인공이다. 롤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최고의 미드 라이너는 '페이커' 이상혁, '루키' 송의진, 중국의 '갓브이'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북미와 유럽 지역의 미드 라이너의 수준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한-중 미드 라이너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그네' 김상문은 '엑스페케'에게 압도당했다. LGD의 'GODV'는 '엑스페케'의 오리아나와 비교당해 'GOLDV'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얻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페케 대장군'이라고 불리는 그는 이번 대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미드 라이너임이 틀림없다.




■ 정글왕을 노리는 Clou D. '하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이변을 많이 발생시킨 팀은 역시 C9이다. 롤드컵 선발전부터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본선에서 계속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라이엇에서 각 지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총합해 매긴 팀 파워 랭킹은 진출 가능성이 희박한 D.

그러나 메인 오더인 '하이'가 정글러로 돌아온 C9은 8강 진출뿐만이 아니라 4강을 넘어 우승까지 노려볼만한 팀이다. C9의 두뇌이자 심장인 '하이'는 "지고 있어도 이기는 팀의 생각으로 오더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바론 판단이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날카롭게 들어가는 리 신의 이니시에이팅은 전성기의 '인섹' 최인석을 보는 것처럼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롤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카카오' 이병권과 '클리어러브' 그리고 '벵기' 배성웅이 '세체정'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하이'가 보여준 모습은 그들과 비교해 절대 밀리지 않는다.


■ '하이'의 오른 팔 '스니키'


롤드컵 객원 해설로 참가한 WE의 정글러 '스피릿' 이다윤은 "롤은 딜러가 잘해야 이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아무리 이니시에이팅과 앞 라인에서 잘 버텨줘도, 딜러들이 한 번 삐끗한다면 한타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C9이 약진할 수 있는 이유 중에는 '하이'의 활약도 있으나 제 역할을 수행 하는 딜러가 있기 때문이다.

1주 전까지만 해도 '임프' 구승빈, '데프트' 김혁규, '뱅' 배준식이 원거리 딜러 3대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세계 리그의 강약의 기준이 무너진 이상 기존의 예측은 모두 소용없다. 그리고 C9의 원거리 딜러 '스니키'가 보여준 기량은 3대장에게 밀리지 않는다. 주력 챔피언인 트리스타나로 안정적인 성장은 물론 한타에서 쉬지 않고 딜을 퍼붓는다. 프나틱을 잡아낼 때 보여준 사거리 계산은 클래스를 입증하는 단적인 예 중 하나다.

C9의 캡틴 '하이'와 그의 오른팔 '스니키' 그의 왼팔 '인카네이션'이 있는 이상. 그들의 연승은 계속될 전망이다.




■ '탐켄치'로 팀을 캐리한 '대체폿' 알비스


MSI에서 대만의 위상을 ahq e스포츠 클럽(이하 ahq)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피즈와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장인 '웨스트도어'다. 그러나 이번 롤드컵에서 그 대표 선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LoL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뛰어난 실력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스타가 되기엔 부족하다.

ahq의 서포터 '알비스'의 기존까지의 인상은 이니시에이팅을 잘하는 서포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한 번의 경기로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롤드컵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챔피언 탐켄치로 프나틱을 꺾고 팀에게 1승을 선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C9에게 패배해 기세가 좋지 않은 ahq가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인 프나틱에게 승리 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적을 것이다.

정말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상황에서 ahq는 탐켄치라는 전략적인 픽으로 유럽의 맹주 프나틱을 꺾었다. 그리고 '알비스'는 상대 올라프와 다리우스에게서 징크스를 완벽하게 보호해냈고, 스타가 될 발판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