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 레메디 엔터테인먼트 ⊙장르 : TPS
⊙플랫폼 :
PC, XBOX ONE ⊙발매일 : 2016년 4월 5일


처음 '앨런 웨이크'를 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당시 기자는 한창 글쓰기를 공부 하던 대학생이었고, 온갖 B급 호러 소설을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은 그 게임에 아주 쉽게 매료됐죠. 스티븐 킹과 데이빗 핀처 같은 이름에 홀려있는, 미국 드라마와 소설에 반해있는 게임 팬들에게 '앨런 웨이크'는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왕좌의 게임' 같은 미국 드라마는 이제 우리가 매주 영화관에서 보는 헐리우드의 영화 만큼이나 친숙한 엔터테인먼트가 됐습니다. 다양한 공식 경로를 통해 매일 새로운 드라마가 우리에게 선보여지고 있죠. 영화나 소설, 그래픽 노벨 또한 그렇습니다. 점점 더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게임들은 이런 엔터테인먼트들을 한데 묶으려고 시도해왔죠.


게임이 발전하면서,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은 "게임이 다른 장르에 비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게임 개발사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대답을 해왔죠. '라스트 오브 어스'나 '바이오쇼크'처럼 성공한 것도 있었고, '디오더 1886'처럼 실패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개발사가 그 질문에 답을 내왔습니다. 바로 우리 레메디가 말이죠.



게임 만이 가능한 스토리텔링은 무엇인가에 대한 레메디의 해답


'퀀텀 브레이크'의 소재는, 사실 크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낯설다기 보다는 몇 번 씩 마주쳤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것에 가깝죠. 시간여행, 그리고 그 시간에 걸쳐진 사건들을 고쳐나가고자 하는 주인공은 이미 여러 번 다루어진 소재입니다.

▲ 실사 영상의 퀄리티는 영화 직전 미드 이상 급입니다

묘사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태초부터 영화는 편집된 영상이라는 절대적인 강점을 통해서 다른 매체들, 이를테면 소설이나 그림, 조각, 연극이 해내지 못한 고유의 서사를 해냈고, 그게 절대적인 강점이었습니다. 각종 카메라 워크는 그 무엇도 흉내내지 못했죠. 하지만 게임이 등장했고, 게임은 영화를 따라하는 것에서부터 그 서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게임들은 하나씩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한 서사'를 개척해나가고 있죠.

'퀀텀 브레이크' 이전의 예 중 하나는 바로 작년의 '아캄나이트' 입니다. 우리가 배트맨이라는 한 개인이 되어서 대리 체험을 한다는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한 특성을 이용해, '아캄나이트'는 각종 시점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통한 인격 변화의 묘사를 해냈습니다. 정말로 그건 게임에서만 가능했죠.

▲ '리틀핑거' 혹은 'CIA' 에이단 길렌은 역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퀀텀 브레이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시간 여행이란, 그저 평면적인 시각 효과에 의존했습니다. 오직 한 방향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대로의 효과를 봐야했죠. 하지만 이 게임에서 우리는 정지된, 혹은 불안정한 시간의 흐름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시간이 모두 정지하는 '스터터' 속에서 우리는 공중에서 멈춰버린 총알이나 죽어서도 쓰러지지 못하는 적들, 파국이 일어나기 직전인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스터터'가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공포와 고독감을 직접 깨닫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오직 한 명 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새로운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걸 이용하는 방식이 상당히 좋습니다. 이 게임의 플레이는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적과 싸우는 부분, 하나는 간단한 파쿠르와 시간능력을 활용한 맵퍼즐을 푸는 부분, 하나는 스터터 상태에서 정보를 모으는 부분이죠.

▲ 전투가 아닌 맵퍼즐을 푸는데도 능력이 사용됩니다

대체로 적과 싸우는 전투나 맵퍼즐을 푸는 로밍은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고, 각자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 스터터 상태가 교묘하게 치고 들어와 두 파트의 간극을 메웁니다. 사실 게임을 하다보면 이 전환이 계산되어 있는 느낌이나 부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겁니다. 스토리상에서 꽤 중요한 요소를 잘 끌어다 쓴 것이니까요.

스토리텔링을 위해 '보는' 재미 위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하면, "설마 또 퀵타임이벤트(QTE) 떡칠인거 아냐?" 라고 걱정하실 분도 있을겁니다. 일단은, '퀀텀 브레이크'는 단 한 개의 QTE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나 '드라마' 를 표방하며 만들어진 스토리텔링 위주의 게임들은 '퀀텀 브레이크'처럼 만들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 게임들과 '퀀텀 브레이크'의 차이는 조율에 있습니다. 다양한 서사 방식을 넣고, 그 방식끼리 얼마나 잘 어우러져 있는가 말이죠.



전투는 장식이 아닙니다. 요즘 분들은 그걸 몰라요


만약 레메디의 전작 '앨런 웨이크'를 생각하거나, 또 이 게임 자체가 드라마 같은 스토리텔링을 내세웠다는 점만을 보고 그 외의 요소가 장식이라 생각 한다면, 큰 반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우리가 레메디에 대해 한가지 더 기억할게 있으니, 바로 이들이 '맥스 페인' 시리즈를 만든 이들이라는 것이죠.

▲ 적을 정지시킨 다음, 즉석 처형대를 만들고 있는 중

'퀀텀 브레이크'의 전투는 무척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뭐, 그동안 무기와 특수능력을 조합해서 싸우는 방식의 게임은 정말 많았죠. 하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기술을 집어넣거나, 기술의 심화 정도가 심해서 어느 정도 투자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거나, 또는 무기와 능력의 조화가 전혀 맞지 않는 등 이걸 완벽히 해낸 게임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이런 복합 전투의 복잡도, 응용성, 스타일리시함 '다크 메시아: 마이트앤매직' 입니다. 처음 '다크 메시아'에서 선보인 다양한 마법들과 지형을 활용한 상호작용 전투는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었죠. 그리고 이 이상적인 전투 시스템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 되었는데, 바로 '퀀텀 브레이크'가 그렇기 때문이죠.

▲ 이러한 특수 적은 또다시 전투 패턴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세가지 종류의 권총, 샷건, DMR, 기관총 등 다양한 총기가 있지만 선택에 어려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퀀텀 브레이크'에서 무기와 특수능력의 관계는 아주 명확하거든요. 특수능력이 밑바탕을 깔면, 무기로 마무리 짓습니다. 모든 능력이 그러합니다. 순간 대쉬로 측면을 파고 들어 샷건으로 적을 날리고, 적을 멈춰 총알을 미리 박아놓고 일격 일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전투가 굉장히 리드미컬 합니다.

잭 조이스는 딱 우리네 만큼의 사격 실력과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군필 예비군이라면 말입니다), 총기들을 쓸데없이 더 세분화하거나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진짜로 시간 능력을 가졌다면 이렇게 싸웠을 것 같은' 방식으로, 매우 직관적이고 세련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매 전투가 끝날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고 굉장히 멋진 일을 해낸 것 같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보스전인데, 보스전에 섞여있는 트릭들이 그렇게 직관적이지 않고, 꼭 몇 번의 삽질을 거쳐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깨닫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퀀텀 브레이크'의 전투는 상당히 직관적이고, 빠르고, 신이 납니다.

▲ 첫 등장시엔 가장 무섭고, 나중에는 우스운 친구들

혹자는 오히려 이게 너무 단순한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복잡한 무장과 능력들을 조합한 게임들은, 항상 버려지고 쓰이지 않는 것들이, 또 너무 강해서 고착화되고 마는 것들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퀀텀 브레이크'의 모든 능력, 무기들은 그 조합 하나하나가 다 최선입니다. 긴박한 전투 중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능력을 쓰고 콤보를 넣으면 언제나 끝내주게 멋진 전투씬이 만들어집니다.



현세대 콘솔들의 고군분투, 선봉에 선 레메디


한국어 로컬라이징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평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가끔씩 나오는 지나친 의역으로 인해서 바로 알아듣기 힘든 문장이 나오지만, 게임 전체를 통틀어 대여섯 번을 제외하면 모든 대사는 깔끔하게 잘 처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틴 해치 같은 독특한 캐릭터성을 지닌 인물의 대사 번역은 그야말로 적절하지요.


'퀀텀 브레이크'의 성능 부분에 대해서 말하자고 하면 모순된 두 가지를 동시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굉장히 멋진 연출을 해내면서도, 하드웨어 상의 한계로 인한 부족한 부분이 확실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엑스박스 원 버전의 '퀀텀 브레이크'가 720p 해상도의 이미지 소스를 사용한다는 것은 대부분 아실겁니다. 물론 레메디가 직접 밝힌만큼, 720p의 이미지 소스를 사용하면서도 렌더링 후처리는 1080p의 해상도로 하기 때문에 720p라는 느낌이 확 티가 나는 수준은 아닙니다.


실제로 게임 내 사용된 다양한 광원 효과 덕분에 '퀀텀 브레이크'는 유저를 눈호강 시키는 경우가 많은 게임입니다. 특히 스터터 상태에서 정지한 세상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왜곡된 광원과 다채로운 효과로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려고 한 시도는 굉장히 칭찬받을만 합니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와는 관계없이 말이죠.

하지만, 시간에 대한 표현인지, 아니면 부족한 성능에 대한 고육책인지 게임 그래픽은 어딘가 흐릿한 블러가 입혀진 것처럼 불투명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아웃포커싱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초점이 조금 엇나간 느낌이랄까요? 잭 조이스를 보고 있을 때, 배경은 적당히 아웃포커싱이 되어 있지만, 조이스 역시 흐릿할 때가 많습니다.

약간의 흐릿함만 뺀다면...

'퀀텀 브레이크'는 하드웨어의 한계를 기술과 연출로 극복해내려고 한 레메디의 사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PC 그래픽 성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유저들이 GPU에 쓰는 비용이 점점 증가하면서 현세대 콘솔에 와서 이런 시각효과의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고 있죠. 이런 하드웨어 상의 한계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결국 개개인의 차이입니다.



'세련된 드라마'를 만드는 서사의 방법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퀀텀 브레이크'는 여전히 게임입니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본다면, '퀀텀 브레이크'는 드라마입니다.

▲ 주인공 잭 조이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이 매력을 뽐냅니다

'퀀텀 브레이크' 에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들어가 있습니다. 실사 기반 드라마 영상,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게임플레이, 컷씬과 인게임 플레이의 자연스러운 연계, 곳곳에 숨겨진 다이얼로그... 게임 전반에 깔려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퀀텀 브레이크'가 처음 사용한 요소는 아니란 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 공통점은, '퀀텀 브레이크'가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한 요소들이란 것이죠.

누군가 저에게 '퀀텀 브레이크'에 대한 감상을 단 한 줄로 정리해보라고 한다면, '정말 오랜만에 게임 속 다이얼로그를 정독한 게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스토리텔링, 서사에 있어 수많은 중요한 점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세련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또 신선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 그래픽 퀄리티를 고려해도, 게임 플레이와 영상은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5개의 챕터 사이엔 총 4개의 20~30분 길이 드라마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됐습니다. 게임을 한창 즐기고 있는 한복판에 실사 영상을, 그것도 드라마 한편 분이나 되는 긴 길이의 영상을 끼워넣는다는 것은, 잘못하면 유저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모두 합쳐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다 보고나면 '아, 더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스토리보드, 연출, 편집 모두 굉장해서, 요즘 인기있는 어지간한 미국 드라마들에 밀리지 않는 퀄리티에요. 특히 기존에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에이단 길렌이나 랜스 레딕이 연기하는 악역은 특히 엄청난 카리스마를 선보입니다. 솔직히 이 영상들만 모아놓아 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 전미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퀀텀 브레이크'의 서사는 이런 각각의 매체와 수단을 모두 고려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챕터에서 챕터로 이어지는 각 분기, 그 분기 뒤에 따라오는 드라마 영상은 잘 배열된 장면들처럼 서로를 보완합니다. 챕터 내에서 우리는 주인공인 잭 조이스를 조종합니다. 분기 시퀀스에서는 폴 새런을 조종하지요. 그리고 실사 영상에서는 이 둘을 제외한 보다 광범위한 드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뭐랄까,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는 온갖 종류의 장치와 방법들이 있는데, 이 게임은 그 모든걸 적재적소에 배치해 버무린 느낌입니다. 기존에 이런 장치들을 남발하는 게임들은 그저 뷔페 같은 느낌으로, 일단 너저분하게 마구 놓아둘테니 알아서 먹어라 태도였다면, 이 게임은 완벽하게 코스 요리를 짤 줄 압니다. 에피타이저에서부터 앙트레, 디저트로 이어지는 모든 코스 속에서 굽고, 찌고, 튀기고, 볶는 등 각각의 재료에 맞는 방법으로 조리해서, 또 앞서 먹은 요리나 뒤에 먹을 요리에 따라 적절한 음식을 내놓습니다.

관건은 그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내놓은 정식 코스의 메뉴가 과연 개인의 취향에 얼마나 들어맞는가죠. 결국은 맛을 봐야 합니다. 제 아무리 복잡한 조리법을 썼고 치밀하게 계산한 코스로 나온다 하더라도, 재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안되겠죠.



'앨런 웨이크' 이후 장족의 발전, 하지만 동일한 숙제


현재로서 '퀀텀 브레이크'는 대체제가 없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사실 그냥 '게임'이라고 부르기엔 기존의 게임과 좀 다릅니다. 그냥 두 시간짜리 영상이 추가되어서가 아닙니다. 게임 내 체험을 비롯해 드라마 영상, 다이얼로그 등 '퀀텀 브레이크' 라는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고 이끌어나가는 것들이 너무나 잘 조율되어 딱 들어맞아 있기 때문입니다. '퀀텀 브레이크'는 아마 지금까지 나온 게임 중 가장 다양한 서사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게임일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꽤나 의견이 분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에 과연 다른 서사장치가 필요하냐 하는 논의는 아마 게임이 완벽한 가상현실이 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는 이런 영상이나 텍스트의 세세한 전달력에 감탄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게 아무리 잘 만들어져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일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만약 '둠' 같은 게임을 원하는 유저라면 이 게임은 "전투가 재미있긴 한데 너무 빨리 질리고 필요 없는 이야기가 많은 게임" 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애초에 그런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퀀텀 브레이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텔링을 위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에 극찬을 하면서도 '퀀텀 브레이크'에 만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몇가지 한계들을 비롯해, 이 스토리의 결론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게임의 마지막 10분을 제가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몇 번 쯤 수정을 시도해볼 것 같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풀리지 않은 떡밥이 남았고, 좋게 말하면 여운이 남습니다. 이런 '결론'의 모호함은 '앨런 웨이크'에서도 있었죠.

▲ 정말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떡밥이 남아있는 캐릭터 마틴 해치

사실 레메디가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내세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소설가에 빗대자면, 레메디는 자기가 잘하는걸 깨닫고 방향을 잡고 써나가기 시작하는 루키처럼 느껴집니다. 분명히 자기가 뭘 잘하는지도 알고, 어떤게 사람들에게 효과적인지도 압니다. 다만 그들이 더 알아내야 하는건 바로 작품 자체의 종결성이고 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이는 한 단어로 '주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는 성공했고, '디오더 1886'에서는 실패한 그것 말이죠.

이 게임, 레메디의 신작은 기존의 AAA급 게임과는 노선이 다릅니다. 이 '다름'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집니다. 이런 철저한 스토리텔링 위주의 구조와 그 스토리를 중시하고, 또 마음에 든다면 굉장히 좋은 게임이 되며, 아니라면 그저 그런 수준으로 전락합니다. 저는 이 시도가 비록 전에 없이 혁신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앨런 웨이크' 같은 레메디의 전작을 재미있게 했거나, 액션이 가미된 흥미로운 소재의 미국식 드라마에 익숙한 유저라면 이 게임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