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은 락스 타이거즈에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 시즌이었습니다. 걱정과 우려의 눈길 속에서 시작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엄청난 응원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세트 득실 1점 차이로 말이죠. 말 그대로 한 끗 차이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규 시즌이 마무리된 후, 기자는 그 누구보다도 아쉬움이 클 락스 타이거즈의 강현종 감독을 만났습니다. 스프링 스플릿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차례 큰 숨을 들이 내쉬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강현종 감독은 이내 그 아쉬움을 긍정의 힘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번 패배가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면서 섬머 스플릿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죠.

락스 타이거즈의 성장 스토리는 물론이고, 벌써 8년 차를 맞이한 강현종 감독이 감독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지금 함께 들어보시죠.




Q. 안녕하세요. 먼저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락스 타이거즈 강현종 감독입니다. 이번 시즌에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는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Q. 말씀하신 대로 락스 타이거즈에게는 정말 아쉬운 시즌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감독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시즌이 많아요. 이번 스프링 스플릿도 그 많은 시즌 중 하나죠. 포스트 시즌도 그렇지만, 리프트 라이벌즈에 꼭 가고 싶기도 했거든요. 아쉬움이 정말 커요.


Q. 리프트 라이벌즈를 말씀해 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해외 대회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현장 호응이 다르거든요. 해외 대회는 경기 내용이나 승패에 상관없이 모두 다 즐기는 분위기예요. 아무래도 국내에서만 있다 보면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을 통해 받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선수들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요. 리프트 라이벌즈를 통해서 그런 현장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Q. 말씀을 들으니 지난해에 IEM에 다녀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락스 타이거즈가 떠오르네요. 다시 올해 이야기로 넘어와서, LCK 스프링 스플릿이 시작하기 전에 스크림 성적이 굉장히 부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때 상황은 어땠나요?

어떻게 보면 '클템' 이현우 해설이 방송에서 말하는 바람에 알려지게 된건데요(웃음). 현우가 저희 스크림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정말 못했거든요. 그때는 코치도 없었어요. 제가 3년 만에 밴픽 노트를 잡았죠.

사실 CJ 엔투스가 단일팀이 된 시점부터 저는 백업 포지션으로 빠졌었어요. 밴픽 관련된 부분은 코치들에게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그림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코치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죠. 그러다가 올해 3~4년 만에 메인 밴픽을 하게 된 거에요.

일반적으로 코치들은 예쁘게 지도해요. 반면에 저는 투박하죠. 차려진 밥을 먹어왔던 선수들이 저랑 하면서 자신들이 쌀을 씻고 밥을 해야 하니까 힘들었을 거에요. 그걸 맞춰가는 과정이 스크림이었어요.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정말 잘 따라와 줬어요.



Q. 오랜만에 밴픽을 맡으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제가 LoL 씬에서 감독 경력이 가장 오래된 것 같아요. 7~8년 정도 됐거든요. 그 기간 중에서 가장 변덕쟁이 같은 패치가 이번 스프링 스플릿이었어요. 라이엇게임즈가 해가 바뀔 때마다 게임에 정말 큰 변화를 주잖아요. 이번에는 패치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템이나 오브젝트 패치로 게임 양상이 정말 달라졌거든요. 시야석이 없어지거나, 대형 오브젝트가 먹을수록 강해지고. 개편된 마스터리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진행된 패치도 잔잔하면서 여파가 컸죠.

패치가 이뤄지면 가장 힘든 건 결국 게임단이에요. 준비 과정이 정말 복잡했어요. 힘들었죠.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래서 재미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LoL이라는 게임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고요. 몇 년간 같은 게임을 하면 당연히 재미없잖아요. 라이트 유저들은 힘들기도 하겠지만, 이런 변화가 없으면 게임은 결국 고립된다고 생각해요.


Q.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린다랑' 허만흥 선수를 중심으로 상체의 눈부신 성장이 가장 큰 이슈였죠.

2017 시즌이 끝나고 만흥이가 정말 많이 힘들어했어요. 성격상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해서 더 힘들었을 거에요. 보통 선수들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해외 진출을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끝났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마음을 잡아주려고 노력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힘들다는 LCK의 탑 라이너로서 더 열심히 해보자고 했죠.

제 입장에서는 만흥이의 마음도 이해가 됐어요. 아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만흥이가 원래 미드라이너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거든요. 제가 지켜봤을 때 순간이동 활용을 정말 잘하길래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죠. 그런데 저희 생각만큼 빠르게 포텐이 터지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샤이' 박상면 선수의 존재가 조력자 역할은 분명 됐겠지만, 주전 경쟁에 대한 압박으로도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2018 시즌이 되면서 탑 라인에 전력을 보강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만흥이가 얼마나 열심히 꾸준히 하는 선수인지 직접 곁에서 봐서 알기 때문에 잘 될거라고 믿었어요.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포텐이 터졌죠.



Q. 많은 호평을 들은 '라바' 김태훈 선수는 지난해 여름에 '미키' 손영민 선수의 대체자로 급작스럽게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어떤 점을 보고 '라바' 선수를 기용하셨나요?

'라바'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비디디' 곽보성 선수를 봤을 때랑 비슷했죠. 좀 거친 '비디디'라는 느낌?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잘해요. 또, '라바'가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이 있어요.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죠. 처음 입단했을 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피드백을 통해 보완하면서 정말 잘 성장해줬어요.


Q. 감독님 입장에서 이번 스프링 스플릿에서 가장 아쉬웠던 경기를 꼽자면요?

많죠. 넥서스를 치다가 역전당한 콩두 몬스터전이나 역전패한 MVP전 1세트... 패한 경기는 대부분 아깝게 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킹존 드래곤X와의 경기에서도 역전당했던 게 아쉬웠죠. 아쉬움은 정말 크지만, 그만큼 우리 선수들한테 경험치로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섬머 스플릿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겠죠.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마지막 경기는 아쉬움이나 억울함보다는 시즌 중에 1승을 더 했으면 됐던 거라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아직 섬머 스플릿이 남았기도 하고요. 한상용 감독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데, 상용이가 끝나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입장이어도 죽기 살기로 했을 거에요. 승부의 세계는 원래 그런 거잖아요. 서로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죠. 그래도 끝나고 소고기는 사줬어요(웃음).

좀 다른 아쉬움을 꼽자면, '성환' 윤성환 선수에요. 저는 이번 시즌 숨은 MVP가 성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잘한 거에 비해 주목을 많이 못 받았죠. 패한 경기에서 MVP급 활약을 했던 적도 정말 많아요. 역전만 당하지 않았어도 이건 성환이가 MVP를 받았을 것 같은 그런 경기요. 성환이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정글러에요. 항상 열심히 하는 친구인데, 저는 더 열심히 해서 더 잘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아쉽게 포스트 시즌을 놓친 만큼 섬머 스플릿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한 거 없이 부담감만 커졌네요(웃음). 관심이라는 게 좋지만 부담이 따라와요. 선수들은 그 부담을 많이 안 느꼈으면 좋겠어요. 과하게 이야기하면 롤드컵(LoL 월드 챔피언십)에 가고 싶고, 최소 대표 선발전 상위권까지 올라가고 싶어요. LCK 결승에 가지 못해도 롤드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래서 LCK 우승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대표 선발전을 통해서라도 롤드컵에 가고 싶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해외 무대는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요.



Q. 강현종 감독님은 어떻게 보면 LoL 씬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최초로 형제 팀을 만들기도 했고, 식스맨 체제를 게임단에 적용하기도 했죠.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하는 건가요?

많은 e스포츠 관계자가 꿈꾸는 게 결국 e스포츠의 스포츠화잖아요. 저도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한 거예요. 게임단 시스템도 스포츠화 되어야죠. 스포츠의 눈으로 바라보면 정말 당연한 일들이에요. 백업 선수가 없는 스포츠는 없어요. 저 스스로도 게임단 감독이기보다는 스포츠 감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어요


Q.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도 있나요?

최근에는 전지훈련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LoL 판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실력이 좋다 보니까 해외 게임단들이 종종 부트갬프를 오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해외로 나가서 해외 팀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너무 이 안에서만 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선수들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넓은 곳으로 나가서 외국 선수들과 교류했으면 해요.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고요.

꿈이라면, 클럽 하우스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연습실뿐만 아니라 식당, 휴게실, 헬스장 같은 선수들의 편의와 건강을 위한 시설이 모여있는 클럽 하우스요. 해외 팀이 오면 대여해서 이용할 수도 있고. 선수들이 좋은 환경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Q. 오랜 기간 동안 감독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한 명을 뽑기가 정말 어렵네요. 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무한상사처럼 내가 벤처 회사를 꾸린다면 사원으로 누구를 뽑을까 하는 상상이요. 홍보 영업 파트에는 '클템', '래퍼드' 복한규, '빠른별' 정민성 이쪽이 잘 맞고, 말단 사원으로는 '스페이스' 선호산, '린다랑',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잘 어울릴 거에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친구들이요. 간부가 조금 애매한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코치들 정도가 맡아주면 회사가 어떻게든 굴러가지 않을까요(웃음). 선수 중에는 '건웅' 장건웅이나 '샤이', '앰비션' 강찬용도 간부랑 잘 맞겠네요.



Q. 그렇다면 LoL 프로게이머로서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실력은 당연히 기본이고요.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좋다고 생각해요. 팀원이나 코칭스태프와 소통할 줄 아는 선수요. 게이머 중에 본인의 의사를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친구가 드물어요. 그래서 저는 '클템'이나 (권)상윤이가 정말 좋은 선수라고 느끼는 게, 이 둘은 다른 선수들과 대화를 해서 무언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LoL은 팀 단위 게임이잖아요. 그래서 팀원들 간에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게 무척 중요해요.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고요.

두 번째는 성실함이요. 예전에 함께 했던 '스페이스'가 말을 진짜 못하거든요. 근데 정말 성실해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의지도 정말 강하고요. 그런 덕목도 정말 중요하죠. 지금은 만흥이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Q. 강현종 감독님 하면 언제나 덕장이라는 이미지가 참 강하잖아요. 마지막으로 e스포츠 판에서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질문하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세웠던 커리어나 기록은 사실 다 깨졌어요. 남은 건 가장 오래된 감독이라는 것과 승격강등전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죠. 자랑할 것도 못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은 감독이 되고 싶어요. e스포츠의 뿌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죠. 좋은 선수를 많이 발굴하고, 그 선수들이 잘 돼서 다음 e스포츠를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