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도 어느덧 4강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SKT의 경기력은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받으나 그 믿음 속에서도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는 것은, LCK에서는 이제 SKT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살아남은 다른 강자들의 전력은 미스테리한 까닭일 것입니다.

SKT의 주장 '페이커' 이상혁은 스크림을 시작한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향을 못 찾고,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는 모습. 인터뷰도 마찬가지였죠. 상대보다는 그저 자신의 부진만을 경계하고, 잘 하는 것을 잘 하도록 연습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마인드. 정규 시즌 때와 다름없는 정석적인 대답에, 듣는 기자가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이 신기한 기분입니다.

낮 스크림을 마친 후 몇 시간의 자유 시간, 짧은 시간을 내 페이커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롤드컵보다는 자신과 과거-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게 된 대화. 페이커가 좋아하던 토마토 주스가 없음에 아쉬움을 느끼며,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기분은 좀 어떤가요? 오늘(현지 기준 29일)부터 다시 스크림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오늘 기분은 그냥저냥이에요. 이제부터 시작이죠. 이제 이번 주 동안 연습해서 G2와 만날텐데, 그 남은 기간동안 정말 더 잘해져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유럽 생활도 꽤 됐네요. 컨디션은 좀 어떤가요?

이번에 8강전이 이른 시간에 치러져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피곤했어요. 이젠 적응해서 피곤하지 않아요.


롤드컵에 처음 온 팀원들도 있는데, 베테랑으로서 적응에 도움도 주고 그랬나요?

타지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들도 있는데, 지금으로선 다들 잘 생활해주고 있어요. 감독님께서 도움을 많이 주셔서, 제가 덧붙여 뭔가 해주기보단 저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바빠서 유럽은 못 둘러봤겠어요. 식사는 괜찮나요?

둘러볼 시간은 없었어요. 연습 때문에 호텔에 주로 있었죠. 식사는 저희가 한식 위주로 먹고 있는데,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먹는 것에 불편함은 크게 없어요.


오늘 김치찌개는 별로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언제나 맛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비행기도 오래 탔을텐데, 책은 좀 가져왔나요?

대여섯 권 정도 가져왔어요. 지금까지는 두 권밖에 못 읽었고, 세 권째 읽고 있긴 해요.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쉬운 책들도 있고 해서, 조금씩 틈을 내서 읽고 있어요.


롤드컵 이야기로 넘어가면, 팬들은 LCK에 한 팀만이 남은 것에 대해 압박을 좀 느끼기도 해요. SKT가 강력하긴 하지만, 그래도 진출했던 세 팀 중 한 팀만 남은 것이니까요. 본인은 SKT가 LCK를 대표하며 남게 된 것에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사실 LCK 대표가 한 팀밖에 없다는 것에 신경쓰진 않아요. 어쨌든 제 목표는 LCK가 우승하는 것이 아닌, SKT가 우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압박감은 느끼지 않고 있어요.


다음 상대로 G2를 만날텐데요. 바로 지난 번, 담원과 G2 경기를 보니 특별히 자극을 받은 게 있었나요?

예전 G2를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른 기분은 아니에요. 그래도 G2를 다시 만난다니까, 또 지긴 싫어서 더 열심히 연습하게 돼요.


페이커도 벌써 7년차 프로 게이머죠. 어떤 팬들은 아무래도 이제부터 롤드컵을 더 우승할 기회가 신인 때처럼 많이 남진 않은 것을 염려하기도 해요. 페이커는 과거에 비해 가끔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가 있나요?

조급함을 가지진 않아요. 물론 전보다 기회가 더 많진 않겠지만, 지금도 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죠. 앞으로 제가 하기 나름이라 생각하고 있고, 조급함을 안 느끼려 해요. 제가 계속 더 잘하면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니까 말이죠.


시간이 흐르고 과거 신인에서 이제는 주장이라는 무게도 지고 있죠. 기분이 점점 달라질 것 같아요. 게임 플레이 역시 본인의 슈퍼 캐리 이상으로 팀 캐리에 더 기여하는 것도 보이고 말이죠.

제가 방향을 스스로 그렇게 바꾼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메타가 그렇게 바꾼 거죠. 저희 팀원들이 지금 다 잘 하고 있고, 저는 지금의 메타가 미드 라인에서 팀원들을 돕기 좋은 메타라,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하고 있어요.


어린 신인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자신. 무엇이 가장 달라져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금의 저는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해왔어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실패하지 않는 법'을 전보다 더 알게 되었죠. '노련함'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확실히 생겼어요. 신인 시절엔 자신감과 패기만 넘쳤던 것에 비해, 지금은 더 차분해졌어요. 마치 1인칭으로 모든 것을 보기보단, 3인칭으로 시야를 넓혀 보는 기분으로요.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경기 중에는 신인이었던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자신있게 플레이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기려고 하는 마음은 언제나 달라지지 않죠.


그러고보니 지난 8강전에서 했던 기자 컨퍼런스에서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테디'의 옆구리를 툭 쳐서 자세를 고쳐주던데, 기자들 사이에서 '페이커의 세심한 팀원 관리'로 오르내리기도 했어요. 보통 그런 부분에서도 팀원들을 관리하기도 하나요?

(웃음) 사실 관리보다는, 장난 친 거에요. 군기를 잡은 건 아니에요. 그 당시 인터뷰 중에 담원과 G2의 1경기가 시작되었는데, 테디가 그 쪽에 신경을 쓰길래 '보지 말고 인터뷰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툭 친 거에요.


그 때 페이커의 인터뷰 답변도 달라진 게 보였어요. 본인이 스스로 '역체' 타이틀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화끈하게 대답했었죠. 그런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았던 과거보다는 훨씬 더 자신감있는 대답으로 느껴졌어요. 마음이 좀 달라진 것인가요?

제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에요. 제 커리어가 달라졌기 때문에 대답이 바뀐 것이죠. 걸맞은 커리어가 되었고, 객관적으로 대답했어요.


차세대 '역체'가 되려면 실력 말고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프로 세계에서는 결과가 중요해요. 결과로 남는 커리어. 아무리 잘한다 해도 결과가 좋아야 해요.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프로로서의 자질이죠. '프로는 프로답게'가 중요해요. '프로답다'는 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자세와 같지 않을까 해요.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그 기준이 맞을 것이고, 제가 덧붙일 건 없어요.


어느덧 100회의 국제대회 승리를 기록했죠. 방송 인터뷰에선 '듣고보니 그리 많지 않은 거 같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의 숫자가 되어야 많은 것 같을까요?

많이 한 건가요...?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승밖에 없어서, 몇 승인지 몇 킬인지 그런 기록까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요.


이제 페이커의 최대 목표는 뭔가요?

당장은 우승이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원하는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잘 실천하는 게 제 목표에요. 뭐라 해야할까...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하는 것이죠.


만일 더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운다면, 프로 내내 계속되는 우승일까요?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제가 원하는 만큼 설정하는 기준치를 제가 스스로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더 많은 우승도 따라올 수 있는 거겠죠.


문득 궁금해졌어요. 정말 모든 꿈과 목표를 이루고나서의 페이커는 어떻게 될까요? 왠지 책을 더 많이 보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도 상상되네요.

프로 이후의 삶은 천천히 계획해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할 수 있겠죠. 저는 열린 마음으로 어느 방향이든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이진 않고, 생각만 하는거죠.


다음 경기에 많은 관심이 모여있어요. 곧 또 연습을 하러 가야 할테니, 마지막으로 각오 부탁합니다.

이제 롤드컵도 일정이 많이 지났어요. 남은 일정이 많이 없는데, 꼭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남은 기간동안 저는 최선을 다 할 거에요. 이번 G2전을 굉장히 이기고 싶은데, 열심히 해서 꼭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경계하는 건 저희 팀 뿐이에요. 저희의 플레이를 잘 가다듬으면, 그렇게 잘 된다면 이기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