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20살은 어땠나요? 갓 성인이 되어 인생의 새 장이 열리는 설렘의 시기, 기존의 것이 새롭게 보이고 새로운 것이 낡아 보이는 혼란의 시기, 본격적으로 학업과 취업의 갈림길에 서는 선택의 시기. 복잡하디 복잡한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올해 20살이 된 '울산' 임수훈은 철권 프로게이머로서의 1년을 보냈습니다.

철권7로 진행되는 국제 e스포츠 대회 '철권 월드 투어(이하 TWT)'가 어느덧 3년 차를 맞이했죠. '울산' 임수훈은 페이트 e스포츠의 후원을 받으며 전 세계 TWT 대회를 누비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인공을 정하는 '2019 TWT 그랜드 파이널'에서 '울산' 임수훈은 숱한 고비를 넘어 준우승의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이에 인벤은 방콕에서 갓 귀국한 '울산' 임수훈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래보다 형들과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덕분일까요? '울산' 임수훈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신중하고 성숙한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Q. 독자분들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페이트 e스포츠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 '울산' 임수훈입니다.


Q. 2019년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네요. '울산' 선수에게 2019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프로게임단의 후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 활동을 개시한 1년이었네요. 예전과 달리 도전 정신과 책임감이 생겼고 조금은 어른스러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또 올해 출국을 20번은 넘게 한 것 같은데, 이게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프로게이머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요(웃음).


Q. 이번 TWT 파이널에서 준우승을 달성한 소감을 들려주세요.

솔직히 우승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준우승도 값진 결과라 생각해 만족하고 있어요. 철권 프로게이머로서의 제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대회라고 생각해요. 이번 준우승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TWT에서 입상하고 싶고, 매년 그랜드 파이널에도 진출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우승한 '치쿠린' 선수에게 축하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Q. 조별 예선에서 A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개인적으로 A조가 '죽음의 조'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조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피가 끓어 오르더라고요. A조에 이미 '아슬란'이 있었는데,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맘으로 저지르고 본 거예요.


Q. 3승 0패로 A조 1위를 코앞에 뒀는데, 마지막 패배와 '무릎' 선수의 막판 뒤집기로 A조 2위가 됐어요. 결과가 상당히 아쉬웠을 것 같은데요.

그때 잠깐 A조를 선택한 걸 후회했어요(웃음). 3승 0패까지 잘 해놓고 결과는 8강 패자조행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노로마'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집중력이 떨어져 패배한 것, '섀도우'와의 대결에서 콤보 실수로 한 세트를 내준 것 모두 제 잘못이죠. 결국 뿌린 대로 거둔 거예요. 그나저나 '무릎' 선수의 선전을 보며 정말 감탄했어요. "어떻게 저걸 올라오지? 역시 '무릎'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Q. 본인 경기 외에 조별 예선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D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로하이' 선수와 '어웨이스 허니' 선수의 8강 패자조 자리를 둔 마지막 대결이요. 그랜드 파이널에서 '로하이' 선수와 붙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는데, 극적 레이지 아츠로 정말 멋지게 올라왔잖아요. 아마 그 역전승이 올해 철권 e스포츠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요?


Q. 8강 패자조에서 '로하이'-'더블'-'아나킨' 등 전 세계 강자를 연달아 꺾고 최종진출전까지 올라갔어요.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로하이'라는 고비를 2:1로 넘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이 잘 됐어요. 물론 '더블'-'아나킨' 선수 모두 쉽지 않았는데, 프레임을 무시해가며 과감하게 플레이한 게 잘 먹혔어요. 두 선수의 멘탈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모두 이길 수 있었죠.


Q. 이후 '무릎'까지 3:0으로 잡고 최종 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런 성적을 예상했나요?

연승을 하다 보면 흐름을 타게 되잖아요. 누가 와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죠. 그런데 '무릎' 선수의 스티브를 예측하고 준비했는데 폴이 나오더라구요. 1라운드를 내주고 정신을 차린 다음 다시 과감한 플레이로 전환해서 이길 수 있었어요. 사실 세트스코어 3:0 승리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경기가 생각보다 잘 풀린 거죠.


Q. 그렇게 어렵게 진출한 결승에선 '치쿠린'에게 0:3으로 패배했습니다. 결승에서 '치쿠린'의 아쿠마를 처음 상대한 거로 아는데요.

'치쿠린' 선수가 개인 방송에서 아쿠마 연습하는 걸 보긴 봤는데, 직접 맞붙은 건 처음이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치쿠린' 선수의 아쿠마 숙련도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돼서 걱정을 안 했어요. 만약 아쿠마가 나오더라도 먼저 1세트를 따낸다면 흐름을 타서 우승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실수가 많이 나왔고, 맘이 급해지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네요.

또 아쿠마 대 카즈미가 정말 힘든 매치업인데 왜 마지막까지 카즈미를 썼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현지 인터뷰에서 카즈미로 아쿠마를 이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승패를 떠나 카즈미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어요. 저를 이 큰 무대의 결승까지 올라오게 해준 캐릭터였으니까요.


Q. '치쿠린'이 우승 후 인터뷰에서 '울산'과의 승부를 위해 아쿠마를 연습했다고 밝혔는데요. '치쿠린'과의 리벤지 매치를 대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

이번엔 정말 완벽하게 당했어요. '치쿠린' 선수가 아쿠마를 잘 쓰기도 했는데, 제 플레이 자체를 잘 파악하고 파해한 느낌이에요. 그래도 다음에 만날 땐 간류를 비롯해 새 캐릭터도 나오고, 밸런스 패치도 이뤄질 테니 서로의 무기를 예측할 수 없겠죠. '치쿠린' 선수를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아직 없어 보이고,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해 연습해야겠네요.

그리고 '치쿠린' 선수와는 워낙 친한데, 이번 결승으로 더 돈독해졌어요. 다른 나라 선수지만 자주 연습하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요. 이번 그랜드 파이널에선 '치쿠린' 선수가 아쿠마를 비롯해 준비를 정말 잘 해와서 패배했는데요. 다음 대회에서 만난다면 꼭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Q. 이번 그랜드 파이널에선 일본 선수들이 선전했고, 올해 돌풍을 일으킨 파키스탄 선수들은 부진했는데요. 이 결과에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보나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봐요. 첫 번째는 일본 팬분들의 응원인데요. 현장 응원은 선수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데, 일본 선수들을 향한 응원이 특히 대단했어요. 정말 많은 일본 팬분들이 방콕 현장을 찾았고, 일본 선수들은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플레이한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일본 선수들의 특징이에요. 일본 선수들은 저마다 개성이 정말 강한데, TWT 그랜드 파이널이라는 큰 무대에서 제대로 극대화됐다고 봐요. 우승한 '치쿠린' 선수도 대단했지만, 저는 이번 대회에서 '노비' 선수의 심리전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은 파키스탄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조금씩 파악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선수들이 어느 정도 상대법을 알게 된 거죠. 또 파키스탄 선수들이 질 때마다 현장에서 환호성이 나왔는데, 이에 부담을 굉장히 많이 느끼고 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봐요.


Q. 그렇다면 '울산' 선수는 파키스탄 선수들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파키스탄 선수들의 실력은 확실해요. 한국-일본과 더불어 세계 정상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죠. 다만 처음에 '아슬란'이 깜짝 등장해 대회를 휩쓸었을 땐 마치 무적의, 꺾을 수 없는 존재로 보였는데요. 그래도 양지에 나온 파키스탄 선수들과 꾸준히 대결하고 연습해보니 한국 선수들이 결코 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키스탄 선수들은 더 이상 숨겨진 철권 왕이 아닌 좋은 경쟁 상대에요. 또 파키스탄의 등장으로 한국, 일본, 파키스탄 선수들의 자존심 대결에 불이 붙은 것 같아 재밌어요. 같은 국가 선수들끼리 협심도 깊어지는 상황이라, 파키스탄 선수들의 선전을 굉장히 바람직하게 보고 있어요.


Q. TWT 파이널 종료 후 공개된 신캐릭터 3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로이와 파쿰람 때문에 철권 유저분들의 의견이 크게 갈린 거로 아는데, 전 긍정적으로 봐요.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철권만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2명이나 더 나온 거잖아요. 또 고유의 시스템이 추가되기도 했고요. 이런 새로운 컨텐츠들이 철권을 더 섬세하고 계속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된다고 봐요. 밸런스 문제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지금 당장에도 OP인 아쿠마가 있잖아요(웃음).

그리고 간류는 TTT2 당시 제 주력 캐릭터였기에 성능이 좋게 나온다면 대회에서도 사용할 의향이 있어요. 리로이와 파쿰람도 당연히 플레이해볼 예정이에요.


Q. 올해 도조급 대회 우승은 3번인데 마스터급 대회는 배틀 아레나 우승 말고 고순위를 기록하지 못했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주변 형들이 제 멘탈이 약하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저도 인정해요(웃음). 제 장단점이 흐름을 타면 정말 잘 하는데, 흐름을 타지 못했을 때 그걸 멘탈로 극복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연전을 치를 때 한 번 말리면 곧잘 패배했어요. 그래도 올해 다수의 대회에서 경험을 쌓으며 안정을 찾았고, 성적도 점점 오르고 있어요. 특히 이번 준우승으로 멘탈 케어 방법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봐요.

형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로하이'-'랑추'-'체리베리망고' 선수를 비롯해 정말 많은 철권 프로게이머 분들이 절 항상 챙겨주세요. 제가 아직 어른스럽지 못하다 보니 실수가 많은데요. 철권에 대한 것 말고도 사회적인 부분에서 잘 다잡아주는 형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Q. 지난 인터뷰에선 학생과 프로게이머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는데요. 지금 '울산' 선수의 생각은 어떤가요?

지금은 확실히 프로게이머 쪽에 무게가 실린 상태에요. 철권 e스포츠에 대한 주목도가 예전보다 확실히 높아졌고, 상금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어요. 와중에 저는 이 판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쌓았다고 생각하고, 성적도 잘 나오고, 스폰서도 있는 상태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계속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요. 철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프로게이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본인에게 철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평범했던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보물 같은 게임이죠. 중학생 시절 철권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땐 이게 제 직업이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 되돌아봐도 정말 열심히, 후회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해온 것 같아요. 기존 철권 프로게이머 분들의 팬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철권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Q. 이제 인터뷰를 마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프로게이머는 응원해주는 팬분들 덕분에 존재하고, 더 힘내서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더 성장하고 패기 있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또 제 선택을 말리지 않은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이번 TWT 파이널 준우승으로 꽤 많은 상금을 받게 됐는데, 부모님께 처음으로 효도한 것 같아 기쁘네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제가 대회에 출전하거나 입상할 때마다 나이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요. '나이에 비해서 잘한다'라는 평가보다 그냥 '철권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웃음). 제 이야기가 철권에 입문하고 싶은 유저분들께 좋은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해요. 철권을 사랑하고 잘하는 데 나이는 전혀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