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팀의 리빌딩과 전력 강화로 한층 치열해진 2020 LCK 스프링 스플릿이 3부 능선을 넘은 현재 불의의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두 팀이 있다. 바로 샌드박스 게이밍과 kt 롤스터다.

2020 LCK를 앞두고 샌드박스 게이밍은 작은 리빌딩을, kt 롤스터는 전면 리빌딩을 진행했다. 팬들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두 팀 모두 지금까지의 결과는 썩 좋지 않은 편이며, 어쩌면 승강전으로 향할지도 모르는 하위권 순위 경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난 23일, 각각 담원게이밍과 아프리카 프릭스를 꺾은 그들의 경기력에선 반등을 향한 일말의 희망이 보였다.


샌드박스 게이밍
흔들린 승리 공식, 밴픽 다양성으로 채워야

샌드박스 게이밍이 이정도로 부진할 거라고 누가 감히 예측할 수 있었을까. 2019년 LCK에 전격 합류해 두 번의 정규 시즌에서 각각 4위, 3위를 기록하며 담원게이밍과 함께 챌린저스의 돌풍을 거둔 강팀이다. 그러나 올해의 샌드박스 게이밍에겐 예전과 같은 묵직함이 보이지 않는다.


샌드박스 게이밍의 힘은 단연 상체에서 나온다. 대개의 경기에서 '서밋'-'온플릭'의 쌍끌이와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도브' 김재연의 기량이 돋보인다. 그러나 오더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고스트' 장용준이 팀을 떠나며 봇 듀오가 바뀌자 전반적인 팀의 힘 자체가 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메인 오더가 가능한 베테랑 서포터 '고릴라' 강범현이 합류하긴 했지만, '고스트'-'조커'의 호흡과 묘한 캐리력을 보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20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샌드박스 게이밍은 첫 경기 상대였던 APK 프린스에게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지만, 드래곤X-그리핀-한화생명e스포츠-아프리카 프릭스에게 내리 4연패를 당했다. 어김없이 바뀌어버린 메타와 길어진 경기 시간 속에 샌드박스 게이밍이 자랑했던 승리 공식은 더이상 통히지 않았다. 거듭된 패배 속에 설상가상으로 개인 기량까지 떨어진 듯했다.

그러나 샌드박스 게이밍은 지난 담원게이밍전에서 한층 유연해진 밴픽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1세트의 '도브' 오른과 2세트에 등장한 '서밋' 박우태의 소라카는 샌드박스 게이밍의 변화 의지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1세트 밴픽 단계서 담원게이밍은 현 메타 최고의 OP로 꼽히는 오른을 밴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샌드박스 게이밍은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오른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샌드박스 게이밍은 보란 듯이 첫 번째 픽으로 오른을 가져가 '도브'에게 넘겼다. 중역을 맡은 '도브'는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오른 플레이에 완전히 숙련된 모습은 아니었으나 특유의 센스를 발휘하며 최전방에서 팀의 승리를 지휘했다.

2세트에선 '서밋'이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서밋'은 여지껏 시그니처 챔피언인 아트록스를 비롯해 제이스, 레넥톤, 사일러스 등 본인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챔피언을 선호했다. 이러한 그가 담원게이밍이 전혀 염두에 않았던 탑 소라카를 선택한 것이다. 경기는 결국 '온플릭' 김장겸의 올라프와 '도브'의 캐리로 종료됐으나, 팀원들을 보조하는 데 최선을 다한 '서밋'도 승리의 큰 지분을 차지했다.

오랜만에 승리의 맛을 본 샌드박스 게이밍은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 한층 넓어진 챔피언 폭과 유연한 밴픽,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신선한 플레이 스타일을 통해 상대를 흔든다면 더 많은 승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이 아직 충분히 남은 상황이기에 앞으로 더 발전할 샌드박스 게이밍의 경기력에 기대를 걸어 본다.


kt 롤스터
에이스의 부재, 노련함으로 극복하라

kt 롤스터만큼 다사다난한 팀이 또 있을까. 늘 상위권을 유지했던 전통의 강호에서 2017년 '슈퍼팀'을 결성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세 시즌 동안 우승에 실패했고, 2018 LCK 섬머에서 힙겹게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나 이어진 2019년엔 창단 이래 첫 승강전행이라는 최악의 실패를 맛봤다.

이에 kt 롤스터는 2020년을 앞두고 선수-코치진 전원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가장 먼저 강동훈 감독을 비롯해 최승민 코치, 최천주 코치, 일명 '강동훈 사단'을 전격 영입하며 변화를 꾀했다. 새롭게 태어날 kt 롤스터의 첫 선수는 '에이밍' 김하람이었고, 곧이어 '투신' 박종익이 합류하며 하체가 빠르게 완성됐다. 이후 꾸준히 발품을 팔아 영입한 '소환'-'레이'-'보노'-'말랑'-'쿠로'의 합류를 동시 발표하며 현재의 로스터를 완성했다.


대대적인 수술에도 불구하고 kt 롤스터의 앞길은 험난했다.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개막 후 1, 2경기 상대였던 젠지와 드래곤X에게 1세트를 따낸 후 2, 3세트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2연패로 시작한 kt 롤스터는 승리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했다. 이어진 T1과 담원게이밍, APK 프린스와의 연전에서 모두 0:2 완패를 당하며 5연패를 기록했고, 유일한 무승 팀이 되며 끝내 중간 순위 꼴찌로 추락했다.

연패를 거듭한 kt 롤스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에이스의 부재였다. '기인' 김기인이나 '테디' 박진성, '비디디' 곽보성, '쵸비' 정지훈 등 현재 상위권을 기록 중인 각 팀의 에이스를 떠올려 보자. 초반부터 영리한 플레이 메이킹으로 경기를 이끌어가거나, 상성을 무시하는 안정적인 라인전 능력과 후반 화력으로 캐리를 책임진다. 그들은 팀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며, 실제로 종종 판 자체를 뒤집기도 한다.

kt 롤스터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선수가 없다. '소환'-'레이' 모두 캐리형 탑 라이너라기엔 경쟁력이 부족하고, '쿠로' 이서행 역시 흐름을 주도하는 에이스라기보단 안정적인 운영이 강점인 선수다. '투신'은 슬럼프가 온 듯한 저조한 기량을 보이며 전 팀에서 인상적인 공격성을 뽐냈던 '보노'-'말랑', '에이밍' 역시 별다른 활로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보인 kt 롤스터의 저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투신'을 비롯해 모든 선수가 전반적으로 상승한 기량을 뽐낸 가운데, 1세트에선 봇 라인을 위주로 한 적극적인 운영이 돋보였다. 상대 역시 베테랑으로 가득한 아프리카 프릭스였으나 kt 롤스터의 속도와 힘이 한 수 위였다. kt 롤스터는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아프리카 프릭스를 몰아치며 32분 만에 킬 스코어 23:3의 압승을 거뒀다.

3세트에서도 kt 롤스터의 강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전수전을 겪은 선수들의 경험은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플라이' 송용준의 소라카가 탑으로 올라오며 완전히 무너진 탑 라인의 균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효율적인 스노우볼을 굴렸다. 우위를 확신한 kt 롤스터는 거침없이 바론을 두드리며 한타를 유도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대승을 거둔 kt 롤스터가 그대로 경기를 끝내며 대망의 첫 승을 신고했다.

현재 kt 롤스터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베테랑들의 개인 기량 고점은 한참 높은 곳에 있으며, 팀 호흡을 더욱 맞추고 특유의 노련함을 발휘한다면 남은 경기에서 순항을 이어갈 수 있다. 특히, 포텐셜이 확실한 '에이밍'이 기복 없는 에이스로 자리 잡아 후반을 든든하게 책임진다면 kt 롤스터는 훨씬 더 매서운 팀이 될 것이다.

리빌딩을 앞두고 명문 e스포츠 게임단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밝힌 kt 롤스터다. 이에 작년과 같은 승강전행이라는 치욕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올해 kt 롤스터의 봄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