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 리프트를 처음 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당시 체험해 본 게임은 '둠3'였는데, 신기하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구매 욕구를 부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어지러웠다. 까짓 멀미, 꾸준히 FPS를 즐기며 저항력을 키워왔다고 생각한게 다 헛수고였다. 아니, 모니터를 빠져나와 가상현실로 번진 문명의 이기를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게 맞겠다.

1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난 오큘러스 리프트는 외형부터 꽤나 변해 있었다. 검은색 절연 테이프로 칭칭 휘감은 투박한 모양새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대신 제법 그럴듯한 플라스틱 바디가 나를 반겼다. 물론, 처음 선보일 당시 그들이 공개한 완성 도안에 비한다면야 아직은 부족하다. 이제 '못 봐줄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바뀐 것은 외형 뿐만이 아니었다. 내실도 튼튼하다. 반고리관에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던 멀미 현상도 높아진 해상도 덕분에 대폭 완화됐다.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강화된 현실성과 맞물려 긍정적인 효과를 내려 노력했다는 데는 합격점을 줄 만 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신종 하드웨어라는 기준에서 보면, 매체 노출이 많은 편이었다. 브랜든 이리브 대표는 사실 한국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장 방문이 잦았고, 서동일 한국지사장은 발로 뛰는 마케팅의 표본이었다. 그럼에도 흥미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발전적인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왔기 때문이다.

지스타에서 확인한 최신 빌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일 먼저 체험한 게임은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2'. 신묘한 게임성으로 세간의 화제를 뿌린 그 게임. 최적의 조작감을 위한 핸들 모양 패드까지 준비 완료.

오큘러스 리프트는 몰입감을 위해 마련된 여러 서포터들과 최적의 시너지를 내는 데 성공했다. '호큰'을 플레이할 당시에도 느꼈던 게 이것이었다. FPS에도 쓸만하지만, 오큘러스 리프트의 진정한 장기는 무언가를 탑승했을 때 전해지는 현장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B2B에는 공포 게임 '나인스톤즈'가 추가로 배치되었지만, 진짜 트럭 운전수로 빙의시켜주는 그 느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공포 게임은 이미 무서울 만한 걸 더 무섭게 해 주는 정도였다. '유로트럭 시뮬레이터2'는 리얼한 트럭 게임을 넘어 길보드 뽕짝에 오징어땅콩이 절로 생각나게 만드는 그런 수준이었고.




현장에서 확인한 오큘러스의 장기는 게임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신무기 'VR 시네마'도 체험할 수 있었다.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모습을 가상현실로 그대로 재현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감도 뛰어났다. 마우스로 자신이 앉고 싶은 좌석을 클릭해 영화를 보는 각도까지 조절 가능했다. 즉, 맨 앞자리 오른쪽 구석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싫게 만드는 그 기분까지 구현했다. 세팅을 도와주던 오큘러스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각 렌즈마다 영상을 따로 쏘기에, 현존하는 3D 영화보다도 더욱 뛰어난 잔상 억제율을 보여준다고.

체험을 마치고 B2B관을 떠날 무렵 서동일 이사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큘러스는 닌텐도가 Wii를 선보일 때 그랬던 것처럼 '오큘러스 리프트'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퍼스트파티 라인업을 구상 중이다. 또, 아예 자체적인 게임 개발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참신한 발상과 젊은 인력으로 구성된 팀, 여기에 장르 창시자 '존 카멕'이 함께하고 있으니 아예 허황된 말은 아닐 듯 싶다.

비록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이 점령한 한국 게임시장이지만, 이렇듯 대담한 도전은 언제든 환영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체험기 직전에 진행된 기자석 인터뷰 주요내용을 싣는다. 그들이 바라보는 비전이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 좌 - 서동일 오큘러스 한국지사장, 우 - 브랜든 이리브 오큘러스 대표


우선 개발 진행도부터 묻고 싶다.

개발자킷은 현재 전세계 35,000개 이상 판매됐다. 지스타를 놓고 보면, B2C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예전 버전에 비해 해상도를 강화한 최신 버전이며, B2B에 있는 제품은 이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프로토타입이 있다. 이 기능들은 아마 수개월 내 출시될 정식 소비자 버전에 포함될 예정이다.

그리고 개발진이 요즘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반응속도 개선이다. 실제 동작과 화면이 움직이는 데는 약 50mm 세컨드의 차이가 있는데, 이걸 15mm 세컨드까지 줄일 계획이다.


새롭게 추가되었다는 기능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나.

정확히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이 자리에서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방금 말한 것처럼 현재는 반응속도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구현하고자 하는 VR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소비자가 구매 욕구를 느낄 만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에 수정이 필요하다. 몇 개월 후에는 지금 밝히지 못한 부분을 시원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큘러스 리프트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어떤게 있는지 알려달라.

우리 제품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수백가지가 된다. 물론 현재는 대부분 인디 개발사 작품 위주다. 최근 내부적으로 진행한 VR잼에서 수백 개의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라인업 강화에 탄력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일단 알려진 것만 밝히자면, 밸브의 '팀포트리스2'나 '하프라이프2' 정도가 있겠다. 또 '아이레이싱'이라고 온라인 기반의 레이싱 게임도 제작 중이다. 또, B2C관에 배치된 '유로트럭 시뮬레이터2'도 오큘러스 리프트에 최적화된 대표적인 게임이다. 'share.oculus.com'으로 접속하면 40~50개 정도 숫자의 오큘러스 게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브 VR'같은 빅 사이즈 타이틀도 출시할 계획이다.


풀HD 개발자 버전도 공개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계획은 있다. 또, 새로운 버전의 개발자 킷은 정식 소비자 버전 출시 직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버전을 출시하는 이유는 개발자들이 자기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맞춰 빠르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아, 물론 아직 정확한 출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추후 한국에서의 구체적인 사업 전략을 듣고 싶다.

오큘러스 코리아에는 현재 4명의 직원이 있다. 모두 재택 근무자들이다. 한국 시장을 겨냥한 사업 전략을 말하자면, 가장 핵심 포인트를 PC 게임으로 잡고 있다고 전하겠다.

아시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의 입지는 콘솔보다도 우위에 있다. 한국 게임들이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뜻이다. 한국 게임에 오큘러스 리프트가 성공적으로 동화된다면, 자연스럽게 동남아시아 시장도 진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한국 게임들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기에 세계적 트랜드에도 부합한다. 즉, 장기적으로 보면, 전세계 유저들을 VR 세상에 접속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게 바로 한국 시장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며 최대한 빠른 런칭을 시도하려는 이유다.


PC 시장을 바라본다고 했지만, 한국은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예전에 오큘러스 리프트가 모바일 디바이스도 지원한다고 알린 바 있는데, 한국 시장도 이 계획에 포함되는 것인가?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오큘러스의 CTO로 재직 중인 '존 카멕'이 굉장한 관심을 보이는 분야다. 또, 연간 안드로이드 플랫폼 기반의 스마트폰이 5천만 대, 6천만 대 가까이 출하되고 있을 정도로 성장 속도도 빠르다. 즉, 오큘러스 리프트가 PC 뿐만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아직 PC만큼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플랫폼에 오큘러스를 접목하는 데는 많은 부분에서 창의적인 도전을 요구로 한다. 지원 계획은 확실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한국 시장은 iOS보다 안드로이드 시장이 월등히 크다. 때문에 전자부문 대기업들의 노하우도 안드로이드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업들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