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손석희'라고 하면 만명 중 구천 구백 구십 구명은 아나운서 '손석희'를 떠올린다. 그러므로 미리 알려 드리겠다. 프로게이머 손석희 선수의 인터뷰다. 여러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기자와 공군 에이스 시절 선, 후임으로 악연이 깊은 그 손석희 선수다.

이 인터뷰가 나오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다. 해외 활동을 주로 하는 손석희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어 정보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프로게이머 손석희', '손석희 경기', '공군 손석희' 어떤 것으로 검색을 해봐도 아나운서 '손석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검색 사이트에서 만큼은 존재감이 없던' 프로게이머 손석희가 이번 2014 WCS EU 시즌2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언젠가 프로게이머 '손석희'가 아나운서 '손석희'를 제치고 검색 사이트 첫 화면에 등장해 기자들이 편하게 기사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면 손석희 선수가 위험해 졌을지도 모르는 이번 인터뷰는 그가 해외 대회에 참여해야 하는 관계로 다행히(?) 서면으로 진행 되었음을 알려드린다.



Q. 인벤과의 첫 인터뷰다. 평소에 인벤을 잘 알고 있었는지?

디아블로3 와 리그오브 레전드 때문에 인벤을 자주 이용 했었다. 지금은 '변 기자' 때문에 자주 들어가고 있다.


Q. 해외 팀에 입단 한 후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지내나?

2013년 5월에 해외팀에 입단한 이후 유럽으로 옮겨와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해외 프로게임단은 대부분 자율연습이다. 나는 이 생활이 매우 마음에 들고 편하다. 대신 성적이 안나오면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웃음). 프로게이머로서 나름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 6월 드림핵 섬머 우승 이후 1년 간 우승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WCS EU 시즌2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며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Q. WCS EU 시즌2 프리미어 리그 우승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사실 상금은 내가 지금까지 우승한 대회 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야외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들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덤덤했다. 스코어도 일방적이어서 3:0쯤에 우승을 확신했다.


Q. 강현우, 박지수, 강초원를 압도적인 스코어로 제압했다. 어려운 상대들이었는데.

사실 강현우 선수와의 경기가 가장 긴장됐다. 내 WCS EU의 세 번째 대회였는데 2번 연속으로 8강에서 떨어진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현우 선수가 프로토스전을 잘한다. 그래서 특별한 맞춤 빌드를 준비했고 잘 통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박지수 선수는 8강에서 프로토스전을 했다. 그래서 그 경기를 토대로 준비했고, 때마침 박지수 선수가 8강과 비슷하게 플레이해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Q. 강초원 선수는 기자가 아주부에 코치로 있을 때 상당히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0으로 이겼더라.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도 강초원 선수가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첫 세트를 하면서 갑자기 느낌이 왔다. 보통 선수들은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후반을 유도하는 습성이 있는데 강초원 선수가 딱 그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이 점을 이용했다. 초반부터 배를 불리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프로토스전은 개인적으로 첫 세트를 이기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첫 세트 이후 자기 최면을 걸었다. 경기가 잘되더라.


Q. 25,000달러라는 상금을 획득했다. 개인적으로 차를 사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차를 사고 싶지만 나이가 스물다섯이다 보니 아직은 쉽게 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보류다. 통장에 보관할 생각이다(웃음).



Q. 마이 인새니티 팀에서 대우는 잘해주고 있나? 평소 생활이 궁금한데.

생활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성적만 잘 내면 된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한다. 매달 대회가 있기 때문에 준비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뭔가를 할 여유가 없다.

대우는 처음에 팀을 들어올 당시에는 무급이었고, 유럽 기반 대회를 보내주는 게 기본조건이었다. 그리고 약 200~300만원 이상의 상금을 획득하면 얼마 정도의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많지는 않고 생활비 정도였다. 지금은 1년이 지나 재계약을 했고 지금은 내가 가고 싶은 대회는 갈 수 있는 것 같다. 월급도 협회 팀들 정도는 아니지만 받는다.



Q. 보통 외국 생활을 하면 음식 문제가 크다고 하더라. 보통 뭘 먹고 사는지, 입맛에는 맞는지 궁금하다.

우리 팀 같은 경우 아침, 점심은 알아서 먹고 저녁 같은 경우는 팀원 중에 한 명이 요리를 해준다. 보통 라자냐, 스파게티, 카레 등 여러가지 음식을 먹는데 사실 이름을 잘 모르겠다. 빵에 소시지 넣은 그런 것도 있다. 종류는 많지만 맛은 복불복이다.



Q. 현재 팀원들은 몇 명이고 숙소 생활은 어떤가.

현재 팀원들은 15명 정도이고 모두가 프로게이머는 아니다. 클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해가 잘될듯 싶다. 그리고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정지훈, 정우준, 이예훈이 있다. 그리고 나는 팀에서는 굉장히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Q. 외국에 나간 지도 1년이 넘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은지?

한국이 많이 그리웠던 시기는 출국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는 재밌게 지낼 수 있었지만 3개월을 기점으로 점점 힘이 빠지더라. 그래서 3개월 마다 한국으로 돌아가 한 달 정도 머무른다. 휴식도 취하고 연습도 한다.

음식 문제는 힘들다. 숙소가 스위스 베른 인근에 있는데 스위스에는 딱히 한인 마트도 없고 한인 음식점도 잘 없다. 그리고 엄청나게 비싸다. 예를 들면 맥도날드에 가서 세 명이 세트 메뉴를 시키면 5만 원 정도 한다. 라볶이 하나 먹으려면 2만 원을 내야 한다. 그 정도로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래도 음식 외에는 괜찮다. 한국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없어 딱히 그립다거나 하진 않다(웃음).

▲출저 : 손석희 선수 팬카페


Q. 외국 생활도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이제 재밌는 공군 에이스 시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내가 공군에이스 입대를 고민하고 있을 때 프로리그는 5전제에 종족의무 출전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 삼성에는 허영무, 송병구라는 당대 육룡이라 불리던 두 명의 프로토스가 있었고 내가 그들을 제치고 출전해 성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스스로 전략형 게이머라고 생각하는데 프로리그에 가뭄에 콩 나듯이 출전해서는 성장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팀을 옮기거나 게임을 그만두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침 프로게이머 소양교육을 했고 그곳에서 공군에이스의 병사 선발 소식을 듣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당시 동료였던 차명환이 갑자기 자기도 공군에 지원하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래서 차명환을 따라 동반 입대를 지원했는데 갑자기 명환이가 입대를 취소해 버리더라(웃음). 그래서 나 혼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신청했는데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합격했더라면 나는 '병 691기'가 됐겠지(웃음).


Q. 입대 계기는 게이머 출신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이 간다. 공군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처음에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를 배치 받기 전에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공군에이스의 팀원들 대부분이 잘 나가던 선수들이었고 그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냥 군대였지...(웃음)

그리고 내가 어린 나이에 입대하는 바람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웃음). 나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나의 사회성이 보통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나는 삼성에 있을 때 쉬는 시간에 컴퓨터로 만화를 즐겨봤다. 보통 만화를 볼 때 코칭스태프가 지나가면 다른 선수들은 눈치껏 '알트+탭' 신공을 시전하는데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눈치가 좀 없었다(웃음).

어쨌든 공군에서는 실전 경기에 정말 많이 나가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삼성에 있을 때 나는 프로리그에서 슬럼프 없이 일정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경기를 준비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 고참 프로게이머들이 다르게 보인 순간이었다.

한번은 정말 자신이 없어서 2주만 기본기를 닦을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나가서 져도 괜찮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점점 후임이 들어오면서 성적도 나름 좋아졌는데 딱 선수들이 강력해질 때 즘에 해체되더라. 조금 슬펐다.


Q. 그렇다면 기자는 어땠나? 선임의 입장에서 본 후임 변형태는?

처음에 변형태 이병이 후임으로 왔을 때 팬분께서 크레파스와 그림일기 스케치북을 주셨다. 변형태 이병에게 그걸 주고 뭐라도 써보라고 했더니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라고 적더라. 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공군에 오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는다. '나는 이제 이병이다'와 '나는 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

그런데 변형태 이병은 '내가 변형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말을 정말 안 들었다. 그리고 엄청 뺀질거렸다. 그래서 내가 정말 많은 갈굼을 받았다. 그리고 가끔 덩치에 안 맞게 이상한 애교도 부린다.


Q. 한마디 하고 싶은 데 참겠다(웃음). 공군에서 가장 싫었던 선임이 있다면? 그 이유는?

이건 당연히 내 맞선임 아니겠는가. 모든 군필자는 백이면 팔구십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몇 명 더 있고 더 적고 싶지만 적진 않겠다. 후환이 두렵다(웃음).


Q. 지금은 다 잊었나?(손석희는 군 생활 당시 선임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절대 잊지 않는다. 내가 굉장히 쪼잔, 찌질해서 당한 건 절대 잊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웃음).


Q. 지금 미라클 LoL 팀 이성은 감독은 공군에서 어땠나?

이성은 감독은 내 맞후임이었는데 우연히 훈련소에서 봤었다. 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공군 ACE에 정식 입단했을 때 이성은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곳은 지옥이고 처음에 올 때 군기가 든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보낸 편지가 효과가 있었는지 이성은 이병은 자대 배치를 받을 때 직각 보행을 하면서 오더라.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정말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잘 대해서 예쁨 받았던 것 같다. 변형태 이병과는 달랐다(웃음). 그리고 기본적으로 같은 팀에 있던 좋은 형이었고 나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나름 잘해줬고 알아서 잘하더라 좋은 후임이었다. 변형태 이병과는 달랐다(웃음).


Q. 솔직한 이야기 감사하다. 이제 앞으로의 얘기를 해보자. 나이가 이제 20대 중반이다. 앞으로도 게이머 생활을 지속할 것인가?

이 질문을 처음 게이머가 될 때부터 스스로 계속 해왔다. 23세 정도가 되면 군대에 가고 제대를 하면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이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을 때 까지 지속할 것 같다. 너무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경기를 하고 박수가 쏟아지고 환호가 쏟아져서 부스를 뚫고 들어올 때 가끔 전율을 느낀다.


Q. 알겠다. 그렇다면 그 경쟁력이 떨어지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이 질문도 항상 나에게 물어봤지만 결론은 아직 모르겠다. 여러가지 가정은 있지만 뚜렷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대학을 가볼까, 돈을 모아서 카페를 차려볼까, 치킨집을 해볼까?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직은 너무 먼 미래다.


Q. 나와 한 때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선수와 기자로 이렇게 만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솔직히 처음에 (변)형태 형이 기자를 한다고 해서 뜬금 없었다. '형태 형과 기자라는 직업에 1%라도 교점이 존재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경기장에서 봤다. 진짜더라.

솔직히 지금도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뭔가 기자라면 펜을 들고 데스크 앞에서 고심하며 글을 쓸 것 같은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데 형태 형이 펜을 든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Q. 나중에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 프로게이머 출신 e스포츠 기자를 해볼 생각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약간 동경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재밌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가끔 포스트 형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긴 하다. 아무래도 해외 쪽 스타크래프트2 씬에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알겠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100분짜리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나름 한 시간 가량 쉬지 않고 써내려갔는데 항상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굉장히 긴 인터뷰인데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리고 변 기자와의 인터뷰니까 애프터서비스도 하겠다. 질문이나 궁금한 것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답글을 달겠다! 마지막으로 변형태 기자를 잘 봐달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변형태 화이팅(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