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는 bbq 올리버스. 그들의 전신은 ESC 에버입니다. 그때 당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던 미드 라이너가 있었죠. 지금은 중국 LPL의 I MAY에서 활약 중인 '아테나' 강하운입니다.

그는 ESC 에버가 KeSPA 컵에서 세미 프로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우승을 한 직후에 중국 진출을 발표했죠. 그랬던 만큼 '아테나'를 응원하던 많은 팬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EDG를 거쳐 현재 손대영 감독과 I MAY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아테나'는 롤드컵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룬 선수가 됐죠. 하지만 그는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면서 다음 시즌에는 진정한 팀의 에이스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본격적인 LPL 섬머 스플릿이 시작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아테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중국 2년 차가 된 '아테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Q. bbq 올리버스의 전신인 ESC 에버 소속 당시, 중국 진출 소식을 전했어요. KeSPA 컵에서 우승 직후에 이적을 선언해서 많은 팬이 놀랐는데요?

프로게이머로서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ESC 에버가 승강전에서 아쉽게 떨어진 다음이었죠. 저는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출전하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게 됐잖아요. 그래서 중국의 EDG로 이적했어요.


Q. 많은 팀에서 '아테나'를 원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중국의 EDG를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이번 시즌에는 아니었지만, 당시 중국에서 EDG가 가장 강력한 팀이었죠. 그리고 저에게 이적을 제의할 때 금액부터 바로 제시를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에 EDG를 선택했어요. 제가 목표로 삼았던 롤드컵 진출을 이루기에도 좋고, 현실적인 문제도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팀이라고 판단했죠.


Q. EDG에 있다가 I MAY로 팀을 옮겼죠. 그 다음에 첫 정규 시즌은 어땠나요?

I MAY 팀원들과 함께 발전하면서 경기에 임했어요. 제가 EDG 소속일 때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적이 확정됐을 때 솔직히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제가 EDG로 이적하자마자 RNG에게 패배했었죠. 사장님께서 '극대노' 모드가 되셨어요. 저는 '폰' 허원석 선수가 계속 출전하는 걸 보면서 최대한 연습에만 집중했죠. 그렇게 아무 것도 못하다가 I MAY로 이적하게 돼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그런 마인드가 잘 통했는지(웃음) 꿈에 그리던 롤드컵에 진출했죠. 사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요?

그래도 저는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I MAY가 지난 섬머 시즌에 3위를 했거든요. 지역 대표 선발전에서 한 번만 승리하면 롤드컵 확정이라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Q. 손대영 감독은 '우리가 롤드컵에 간 건 행운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말을 하던걸요?

저는 잘했어요(웃음). 충분히 1인분 이상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롤드컵이 시작하자마자 메타가 바뀌더라고요. 제가 잘하는 챔피언들이 대회 픽에서 없어졌어요. 당시 신드라랑 카시오페아가 주로 등장하는 메타가 주를 이뤘는데, 그쪽에 대한 연습이 하나도 안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당황했죠.


Q. 그럼 현지에서 연습할 때 많이 힘들었겠어요.

음... 신드라는 과감하게 버리고 카시오페아만 하기로 했어요(웃음).


Q. 그렇지 않아도 연습이 힘들었는데 조 편성도 강팀들 사이에 들어가게 됐죠. 기분이 어땠나요?

왠지 바로 탈락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준비하면 SKT T1 말고 Cloud 9이랑 플래쉬 울브즈와는 해볼 만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Q. 당시 손대영 감독의 허를 찌르는 용병술이 주목을 받았어요. 플래쉬 울브즈전에서 깜짝 정글러로 활약했는데요?

'로드' 윤한길 선수가 제재를 받아서 기존 정글러였던 '어보이드리스' 선수가 서포터로 가고, 제가 정글러 포지션에서 경기에 임했죠. 그때 EDG랑 스크림을 했는데, 제가 미드에도 가보고 정글로도 가보면서 연습을 진행했어요. 제가 정글러로 연습했던 건 딱 한 번이었어요. 원래 제가 그냥 미드로 가는 거였는데, 경기 당일에 갑자기 정글러로 바뀌었어요.



Q. 연습을 거의 못했던 것 치고는 그 경기에서 정말 잘했어요. 심지어 이겼고요.

플래쉬 울브즈가 정말 잘하더라고요. 정글러와 서포터가 같이 다니면서 시야를 꽉 잡아서 힘들었죠. 거의 일방적으로 맞았던 기억밖에 없네요(웃음). 평소 정글 리 신은 몇 번 해봤던 만큼 숙련도 면에서 나름 자신있었고 경기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롤드컵 경기가 정말 어렵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이겨서 기분 좋았죠.


Q.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롤드컵이 끝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일단 정말 출전하고 싶었던 롤드컵 무대를 밟아봤기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여러 감정이 많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조가 처음 발표됐을 땐 암울했어요. 그래도 미국에 처음 가보는 거라 신났죠. 물론, 일정 때문에 여행을 다니진 못했어요. 그리고 저희가 Cloud 9전에서 이겼으면 8강에 올라갈 수 있었거든요. 그 기회를 잡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고요.


Q. 죽음의 조에서 직접 강팀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프로게이머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당시엔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때 많은 것을 배운것 같기는 한데 아직 발현이 안된 느낌이에요. 제 몸 어딘가에 잘 저장되어 있겠죠?


Q. 그때 저장됐던 것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걸까요? 이번 LPL 스프링 스플릿에서 꽤 준수한 개인 기량을 선보였던 걸로 기억해요.

스프링 스플릿에는 솔직히 망했어요. 제가 항상 LPL 미드 라이너 KDA 순위에서 최상위권이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출전한 선수들 기준으로 보면 6위 정도더라고요. 팀 성적도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워요. 처음에 2연승을 했다가 명절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계속 패배했거든요. 멘탈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Q. 어느덧 중국에 진출한 지 2년 차가 됐어요. LPL에는 강력한 미드 라이너가 많죠. 대표적으로 '루키' 송의진과 '스카웃' 이예찬, '시예'와 '샤오후' 등이 있어요. 실제로 대회에서 여러 번 만나보니 어떤가요?

중국인 선수들 중에도 잘하는 미드 라이너가 있지만, 사실 지금 LPL에는 잘하는 한국인 미드 라이너도 정말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누가 정글러와 더 잘 맞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니 어려움이 있죠. I MAY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정글러가 저한테 뭐라고 말했는데 제가 못 알아 듣는다거나... 그러면 정글러가 막 삐쳐요(웃음). 당연히 제가 콜을 했는데 정글러가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중국어를 그리 잘하지 못해서 정글러와 둘이서 세세한 콜을 주고받지 못해요. 음... 아마 그 친구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웃음). '로드' 선수가 중국말을 잘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세세한 콜을 하고 싶으면 통역을 해달라고 해요. 한타와 같은 긴박한 순간에는 다 아는 단어로 서로 외치는 편이죠. "AD! AD! AP! AP!" 이렇게요. 다같이 소리질러서 정신이 없어요. 좋게 말하면 적극적이라는 거고, 솔직히 표현하면 뒤가 없다는 말이죠(웃음).


Q. 이번 스플릿에 많이 아쉬웠다곤 하지만, 여전히 I MAY의 에이스라고 불릴 만한 경기력을 보여준 것 같은데, 본인 생각은 어떤가요?

에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거든요. 섬머 스플릿에는 에이스가 될 예정입니다. 그때는 롤드컵 진출과 직접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잘해야만 하고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번 섬머 때 5위였나, 6위 안에만 들면 지역 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어요. 그래도 지역 대표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곧장 롤드컵에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죠.


Q.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네요. 다음 스플릿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주세요.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롤드컵에 가자!'거든요. 이걸 현실화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제가 LCK에서 뛴 적이 없어서 저를 잘 모르실 수도 같지만, I MAY라는 팀과 '아테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사진 : 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