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어즈 김태곤 PD

게임은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프로듀서의 색깔을 내기 어려운 미디어 중 하나다. 그래픽, 사운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개성 강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색깔로 만들기 때문에 한가지 색깔을 바란다는 것도 애초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김태곤 PD의 게임은 놀랍게도 늘 한결같은 색깔을 냈다. 임진록, 군주, 거상, 아틀란티카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스펙트럼을 쌓아나갔음에도 정치, 사회, 경제 시스템을 아우르는 김태곤식 색깔은 언제나 유효했다.

차기작 ‘삼국지를 품다’도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김태곤스러운 작품이다. 원래 비주얼에 무게를 두지 않은 개발자로 유명했지만, 이번엔 범용엔진으로 유명한 유니티 3D 엔진으로 갈아타면서 아예 실용 노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꽃미남 꽃미녀 캐릭터는 둘째치고 키 작고 큰 귀 달린 예쁜 캐릭터도 한 번 나올 때도 됐건만 삼국지로 소재를 잡으면서 시작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역사’를 이야기한다.

임진록, 군주, 거상에서 한국사를 아틀란티카에서 세계사를 말했듯 이번엔 ‘삼국지를 품다’를 통해 삼국지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는다. 물오른 정치, 사회, 경제 시스템을 토대로 아틀란티카에서 축적된 턴제 ‘전투’ 시스템까지 합쳐 김태곤 색깔의 완전판을 내놓는다. 이제 20년 이상 게임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살아온 김태곤은 '삼국지를 품다'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인벤은 직접 김태곤 PD에게 그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니티3D엔진으로 만드는 국산 게임 중 최초로 오픈하는 게임이 아닌가 싶다.

김태곤 PD: 다른 회사에서도 유니티 3D엔진으로 많은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초라는 것이 좋은 의미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록적인 의미의 최초보다는 유저가 인식하는 게임에서 최초가 되고 싶다.


유니티 엔진이 요즘 개발 쪽의 이슈긴 하다. 최근 스마트 디바이스에 특화된 유니티 3.2버전도 나와 범용성이 증가했다. 직접 사용해보니 어떤가?

김태곤 PD: 상당히 개발하기 편한 엔진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소스를 통합하기 전에 결과물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프로그램이나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시행착오가 많이 줄었다. 문제는 디버깅이 어렵다는 것인데 아직 유니티를 활용해 제작한 대규모 MMORPG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겪는 어려움일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유니티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공개된 게임 대부분이 캐주얼 게임이더라. 아마 대규모 MMORPG 부분에서는 ‘삼국지를 품다’가 첫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때문에 유니티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유니티 직원이 찾아와서 근무도 같이 하고 있다. 버그를 찾으면 알려주기 때문에 엔진과 게임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아이패드에서 '삼국지를 품다'를 실행하는 김태곤 PD



웹게임 시장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삼국지는 항상 단골소재라 식상하다는 의견도 많다.

김태곤 PD: 맞는 말이다. 시장조사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삼국지 관련 웹게임이 많긴 많더라(웃음). 특히 아시아권에서 게임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일본, 중국의 인기 콘텐츠가 삼국지니 게임만 나오면 ‘또 삼국지야?’라고 할 정도로 체감지수가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국지는 삼국지 본질을 다룬 게임보다는 외적인 껍데기만 다룬 게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관우, 장비와 같은 유명인물이 나온다고 해서 다 삼국지 게임이 아니다. 그 인물들로 하여금 이루어지는 사건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코에이의 삼국지게임을 온라인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개발하고 있다. 삼국지 소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처럼 RPG적인 느낌에 무게를 더 두고 개발하고 있다.



체험버전을 직접 해보니 게임 내 컷신의 비중이 상당하더라.

김태곤 PD: 현재 준비 중인 컷신만 1,000편 정도 된다. 소설 삼국지에 벌어지는 주요한 사건과 장면을 컷신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작업량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특별히 컷신에 힘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김태곤 PD: 드라마 제작하는 PD를 다시 봤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게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웃음).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아 만족할만한 퍼포먼스를 내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현재는 시네마팀과 사운드팀을 정비해 안정적인 속도가 나오고 있다.

'삼국지를 품다'의 컷신은 영상을 위한 영상이 아니라 게임데이터를 재활용해서 보여준다. 정보도 최대한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사도 3줄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자막처럼 폰트 크기나 색깔도 고려했고 영상에서도 대사와 영상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구도를 짰다. 또, 로딩화면이나 씬 전환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반복학습하게 끔 있게 제작했다. 요컨대, 단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이 ‘삼국지를 품다’의 목표다.


▲영화 감상하듯 즐길 수 있는 것이 '삼국지를 품다'의 목표다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온라인게임은 콘솔게임과 달리 콘텐츠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김태곤 PD: 콘텐츠에 소모속도를 맞추기 위해 게임 내에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퀘스트인데 삼국지를 품다에서 퀘스트는 1회성 퀘스트가 아니라 총 5단계의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다. 한번만 클리어해도 상관없지만 도전할 의지가 있다면 난이도에 맞춰서 공략할 수 있다. 당연히 보상도 좋아지고 높은 난이도에서 얻어지는 장수도 따로 존재한다.

또 하나는 바로 유저들이 만드는 스토리텔링이다. 아무리 많은 물량을 쏟아 부어도 개발사가 만드는 콘텐츠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유저들이 스스로 삼국지 내에서 역사를 쓰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강요만할 게 아니라 그만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일반적인 웹게임의 장점을 흡수했다.



웹게임의 장점을 흡수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김태곤 PD: '삼국지를 품다'는 기본적으로 장수(영웅) 중심의 MMORPG다. 초기에는 장수가 적어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수십명, 백명 단위로 장수가 모이면 일일이 컨트롤하는데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웹게임의 장점을 흡수했다는 말은 일반적인 시간제 베이스의 웹게임처럼 장수에게 정찰이나 침략 등 명령을 수행하고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영지가 중심이 된 시뮬레이션 성향의 콘텐츠로 들어간다.


▲메인 콘텐츠는 역시 턴제 전략이다



▲내정모드에서 웹게임의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외 어떤 콘텐츠가 있는지와 향후 어떤 콘텐츠가 포함되는지 듣고 싶다.

김태곤 PD: 삼국지 전체 이야기 중 10개가 1막으로 구성된다. 현재 4개월 단위로 새로운 막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 삼국지 메인스토리 외에 서비 스토리 위주의 다른 콘텐츠도 준비했다. 향후에는 PVP 중심의 무술대회 콘텐츠가 추가되고 아직 기획중이긴 하지만 천하를 통일하는 시뮬레이션 요소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온라인게임은 오래될수록 클라이언트 용량이 점점 증가한다. '삼국지를 품다'는 3D 웹게임인데 업데이트로 인한 웹 트래픽 문제라든지 과부화 문제는 없나?

김태곤 PD: 클라이언트 기반의 온라인 게임은 유저가 다운로드 받아서 컴퓨터에 설치하는 과정을 거친다. '삼국지를 품다'는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 데이터를 압축해서 서버에 두고 있다 유저가 특정 장소로 가면 그 장소에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받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개발팀에서 고생이 많은데 한번에 많은 용량을 받으면 게임 플레이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잘게 쪼개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개인적으로 전략 웹게임이 힘든 이유가 병력싸움에서 지게 되면 다시 재기할때가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침략하는 것도 그렇지만 방어할때도 마찬가지다.

김태곤 PD: 맞는 말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10,000 명을 몰고가다 싸움에서 지면 0명이 된다. 침략 당했는데 방어에 실패해도 마찬가지다. 재기할 수 있는 인프라가 날아가기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다. 그래서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부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가령 1,000명의 병사로 전투를 벌인다고 했을때 전투에서 지면 그 중 일부는 부상을 입는다는 설정이다. 부상자들은 내정에서 의료에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고 죽은 병사는 다시 징병해 복구하면 된다. 유저들은 그 시간동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콘텐츠를 즐기면 된다.


▲플랫폼의 벽이 사라진다.
PC는 물론 아이폰, 아이패드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삼국지를 품다'의 강점


작년 지스타에서도 시연버전이 나왔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는 테스트라도 돌입할 줄 알았다.

김태곤 PD: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데 유저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빨리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게임을 내놓는 것이다. 개발팀도 참 고생을 많이 하는데 책임자가 해야할 중요한 덕목은 편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정신이 중요하다. 내가 재미 없으면 유저들도 재미없다.

'삼국지를품다' 개발 프로세스는 1단계에선 게임이 작동하기 까지 최소한의 구성만 만들어 놓고 2단계에서 콘텐츠의 양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을 한다. 삼국지를 품다가 빨리 출시되지 못한 것도 2단계 작업이 만족할만큼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기간이 길어지면 회사에서도 부담이 되는데 이부분은 엔도어즈의 경영진과도 합의가 있었고 넥슨에서도 충분히 이해를 해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유저들은 언제쯤 게임을 만나 볼 수 있나?

김태곤 PD: 작년 지스타에서 올해 게임을 서비스하겠다고 말했다가 개발 일정이 딜레이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버렸다(웃음). 하지만 내년엔 반드시 나온다. 내년 상반기 중 오픈베타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