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에는 총 다섯 가지의 포지션이 있습니다. 보통 프로게이머들은 랭크 게임에서 자신의 주력 포지션을 제외하고도 두각을 나타내는 라인이 한두 가지는 있죠. 하지만 냉정히 말해 프로 레벨에서는 통할 실력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두 번의 포지션 변경에도 활동 시기마다 프로 레벨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인 변신을 해왔습니다.

이 자체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 하지만,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도 섣불리 하지 못하는 포지션 변경을 팀을 위해 과감히 해낸 희생정신은 더욱 극찬받아 마땅합니다. 거기다 한국 롤 씬에서 경력으로 최고참급에 이른 데뷔 5년 차임에도 기량이 퇴보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해 많은 프로게이머의 귀감이 되는 오늘의 주인공. kt 롤스터의 주장 '스코어' 고동빈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죠.



Q. 반갑습니다. 먼저 팬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올해 25살인 모두가 아시는 롤챔스 1위 팀 kt 롤스터의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입니다(웃음).


Q.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 이전에 카오스란 게임의 전설 중 한 명이었어요. 그 당시에도 많은 포지션을 소화해 올라운더라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롤에서도 처음엔 탑, 두 번째는 원딜, 세 번째로 정글까지 하게 됐는데, 비결이 있나요?

음... 노하우는 잘 모르겠고요. 뭐, 잘 태어난 거 같아요. 재능이죠(웃음). 농담입니다.


Q. 프로 수준으로 세 가지 포지션을 수행해봤는데, 본인에게 그 경험으로 어떤 이점이 있는 것 같나요?

이점을 찾자면, 롤이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점?(웃음) 한 포지션만 계속했으면, 게임에 질려서 프로게이머를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이점으로는... 아무래도 대충 솔랭에서 다른 포지션 가는 것보다 한 라인을 제대로 파봤기에 이해도가 남다르죠. 그런 경험들이 지금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탑 솔러 특유의 마인드에 대해서도 알고, 원거리 딜러가 cs 하나에 목숨을 거는 미련함도 겪어 봤기에 갱킹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죠.


Q. 다른 포지션의 베테랑들은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기량을 유지하거나, 점점 떨어지고 있는 편인데, 본인은 계속 실력이 늘어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최전성기인 것 같은데요. 당연히 노력할 테지만 기량 유지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개인기에서도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메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메타가 바뀌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게임을 하니까 다른 쪽으로 실력 향상이 있는 것 같아요. 팀이 승리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 없는 연구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죠(웃음).


Q. 꾸준한 연습과 지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요. 사실, 마냥 게임이 즐겁던 20대 초반과는 다를 것 같은데, 그럼에도 성실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일 큰 이유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게임이 재밌기 때문이에요. 제 성격상 재미가 없으면 계속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재미가 있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는 거죠. 스크림이나, 대회는 오로지 이기려고 게임을 하거든요. 거기서 패배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죠.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창구로 랭크 게임을 이용해요. 웃고, 즐기면서 게임을 하고 나면 열정이 되살아나죠. 다른 게임은 거의 하지 않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Q. kt 롤스터는 예전부터 운영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흔들렸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도 kt 롤스터하면 '스마트한 운영'이 떠오를 정도죠. 주로 누가 오더를 내리는 편인가요?

과거에는 제가 원거리 딜러다 보니까 다 같이하는 편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메인 오더가 있지 않고, 모두가 오더를 했죠. 보통 자기 라인 상황에 대해 말한 이후, 그 단서들을 취합해 가장 좋은 판단을 내리는 편이었어요. 지금은 저와 (하)승찬이가 주도적으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다른 친구들이 오더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저와 승찬이의 비중이 크다는 말이에요. 승찬이는 게임을 넓게 보는 것에 특화된 것 같아요. 강점이 많은 친구죠.


Q. 예전부터 정글은 항상 중요했지만, 이번 시즌만큼 중요했던 때는 없는 것 같아요. 정글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라인 상황을 보고 갱킹을 갈 것인지, 레벨을 올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큰 줄기에서는 가장 중요하죠. 게임을 이끌어가는 포지션이다 보니, 맵을 넓게 볼 줄 알아야 해요.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현재 메타에서 저는 10점 만점의 정글러죠(웃음). 판단도 정확하고, 맵 리딩도 잘하니까요(웃음).


Q. 베테랑과 신인 정글러 중에서 잘하는 것 같은 선수를 한 명씩 뽑는다면, 누가 잘하는 것 같아요?

베테랑 중에서는 '앰비션' 강찬용 선수가 잘해요. 정글 루트를 잘 짜서 레벨링 속도가 정말 빨라요. 강찬용의 정글 루트를 습득해 재미를 보고 있어요. 강찬용 선수 스타일의 특징은 불필요한 갱킹 거의 없다는 것이에요. 갱킹을 가기 모호한 상황을 잘 구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버리는 시간이 적은 것 같아요.

신인 중에서는 '피넛' 한왕호 선수가 잘해요. 요즘 쟁쟁한 신입 정글러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아직도 정글러 중 슈퍼 루키는 한왕호 선수라고 생각해요.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이 게임을 그르칠 때도 있지만, 역전의 발판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절제하는 법을 배우면 대성할 선수입니다.



Q. 국내 리그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어요. 전설로 남은 SKT T1에게 역스윕을 당한 대회에서도 그렇고... SKT T1이 매번 kt 롤스터의 우승 길을 가로막았던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징크스가 될 것도 같은데요?

SKT T1을 생각하니까 지금 자꾸 헛웃음만 나오는데... 저는 징크스 같은 건 없어요. SKT T1이 잘하는 팀이기에 우리가 항상 져온 것이지, 징크스 때문에 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SKT T1을 만났을 때도 항상 자신감이 있어요. 하루빨리 SKT T1을 꺾어서 탈락시켜버리고 싶어요(웃음).

사실 SKT T1이 최근 몇 번 패배했지만, 폼을 금세 되찾는 팀이잖아요. 그럼에도 ESC 에버와의 경기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 기분이 매우 좋고, 통쾌했어요(웃음). 숙소에서 코치님과 대회를 보고 있었는데요. ESC 에버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끝에 ESC 에버가 2:1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숙소에서 1위 기념 춤판을 벌렸어요(웃음).


Q. SKT T1의 약점이나,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에 대해 연구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SKT T1은 스스로 무너져야 빈틈이 보이는 팀 같아요. 그때를 노려서 이겨야 해요. 억울한 게 폼이 흔들릴 때 다른 팀이 아니라 우리를 만났으면 좋을 텐데, 항상 우리를 만날 때는 잘해서 아쉬워요(웃음).


Q. SKT T1이 ESC 에버에게 패배해 2라운드에서 꽤 유리한 고지를 점했어요. 기대도 안 하다가 1위가 된 기분이 어땠나요?

리그제로 바뀌면서 정규 시즌에 1등을 유지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1등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어요(웃음). SKT T1과 ROX 타이거즈를 상대로 좋은 성과만 거두면 1위를 굳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폼이 어떻든지 간에 ROX 타이거즈와 SKT T1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팀이에요. 그래서 항상 신경이 쓰이죠.



Q. kt 롤스터는 '의적' 진에어 그린윙스와 다르게, 하위권 팀들에게 거의 패배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여기도 비결이 숨어 있나요?

우리보다 전력이 약한 팀들은 이번 메타를 기준으로 그 메타에 좋은 픽들을 몇 가지만 준비해와요. 맞붙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느낌이죠. 한 판을 져도 다음에 어떻게 플레이할지 눈에 보여서, 그 대비책을 쉽게 찾는 것 같아요.


Q. kt 롤스터의 부정할 수 없는 에이스가 됐어요. kt 롤스터의 승리 알고리즘의 시작이 ''스코어' 고동빈이 말렸는가?'로 시작할 정도잖아요. 어깨가 무거울 것 같은데요?

제가 에이스라고 뽑아주시지만, 전혀 부담감이 없어요. 나머지 선수들이 다 잘하기에 부담감이 없어요. 또 저 나름대로 한 번 정상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기억이 있어서, 에이스 자리를 뺏기더라도 전혀 타격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편안히 즐기고 있어요. 인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라서 지금 즐겨야 해요(웃음).

그 kt 롤스터 승리 알고리즘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말하고 싶은데요. 제가 게임이 잘 안 풀려서, 초중반에 힘을 못 쓰다가 아군이 잘 버텨줘서 뒤늦게 풀린 경기도 많거든요. 나머지 친구들이 잘해줘서 내가 회복할 시간을 번 것인데, 이걸 말렸다고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Q. 원거리 딜러 시절 이야기도 한번 해보죠. 라인전에서는 정말 잘했지만, 한타에서는 몸을 사리는 플레이로 '스졸렬'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적이 있었죠. 당시 팀 내 포지션이 '뱅' 배준식과 같은 최후의 보루였던 건가요?

여기에 대해 해명을 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요(웃음). 제가 지금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요. 확실한 것은 저는 그때 당시에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렇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대로 팀의 승리를 위해서 저는 타워 철거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고, 정글러를 탑 미드 쪽으로 많이 써서 그렇게 보였던 거로 생각해요. 한타에서는 완벽했죠! 뭐(웃음).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저는 잘했어요.


Q. 그라가스하면 '스코어' 고동빈인데, 요즘은 꺼내 들지 않고 있어요. 최근 롤챔스에서 그라가스 챔피언 승률이 굉장히 높은 편인데, 왜 꺼내지 않는건가요?

다른 정글보다 그라가스의 성능이 뒤처진다고 생각은 안 했어요. 괜찮은 픽인 걸 알고 있고, 저도 다시 연습하는 중이죠. 사실 연습이 뭐가 필요하겠어요(웃음). 농담이고, 사실 저의 그라가스 승률은 50%도 안 돼요. 그래서 픽하기 좀 꺼려지는 것 같아요. 제가 자신이 없는 건 아닌데, 그라가스를 골랐을 때 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픽이 우리 팀에 더 좋은 게 아니겠어요? 상대가 그라가스를 픽해도 제가 이길 자신도 있고요. 워낙 잘 아니까요(웃음).


Q. 이번 시즌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일단 2라운드 초반에 강팀들과 많이 붙어요. 그 팀들을 상대로 많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저도 편하게 결승전에 미리 가 있고 싶어요. SKT T1이 좀 아래에서 시작해서 올라오다가 다른 팀을 만나서 떨어졌으면 좋겠어요(웃음). 이제는 다른 팀과 결승전을 해서 우승을 한번 하고 싶네요. 만약, SKT T1이 올라와도 우리가 결승에 진출한다면 롤드컵은 확정이니까 긴장하지 않고, 최선의 플레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예요.


Q. 5년 차에 접어든 프로게이머로서 은퇴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프로게이머로 기억되고 싶나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고동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아 그 꾸준히 잘했던 선수?"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남자라면 가야 할 곳이 있잖아요. 그전까지 폼을 유지하고 싶네요. 군대가 없었다면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을 텐데 아쉽네요(웃음).


Q. 과거 동료인 '마파' 원상연, '류' 류상욱처럼 해외 리그에 진출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롤드컵이 끝나야 이적 시장이 열리잖아요. 그때까지는 아무런 생각 없이 kt 롤스터의 고동빈으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 좋은 제의가 오면 한번 가보고 싶긴 해요.


Q. 이번 시즌 일정에 대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대회가 주 6일이라서 힘들어요. 쉬는 날이 있어야 랭크 게임을 통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챔피언도 준비할 수 있거든요. 대회 메타의 변화는 패치의 영향도 있지만, 충분한 연습 시간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랭크 게임에서 이 챔피언이 좋다고 말이 나와도 대회가 금방금방 다가오고, 패치도 생각보다 자주 돼서 연구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미 성능이 좋다고 검증된 챔피언 위주로 쓰죠.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Q. 최근 킨드레드를 주력으로 삼고 있어요. 엘리스와 렉사이의 승률이 더 높은 편인데, 어떤 이점을 보고 킨드레드를 선택한 건가요?

킨드레드를 쓰는 것도 준비 시간이 짧은 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매일매일 다른 것 같아요. 어느 때는 렉사이와 엘리스가 좋은 것 같다가도, 다음 날은 킨드레드가 좋아 보여요(웃음). 준비 시간이 짧으니까 스크림 성적을 보고 좋은 챔피언을 뽑을 수밖에 없죠. 킨드레드가 스크림 성적이 좋아서 그날 썼던 것 같아요.

또 상대의 스타일에 맞춰 픽을 어느 정도 바꾸기도 해요. 진에어 그린윙스를 상대로는 장기전이 펼쳐질 확률이 높으니까 오브젝트 컨트롤과 후반 캐리력이 뛰어난 킨드레드를 선택했어요.


Q. 진에어 그린윙스와 초장기전 끝에 승리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마이크 문제 때문에 셋팅 시간이 정말 길었어요. 방송을 시작하고 90분가량 지연이 됐던 거로 아는데, 저희는 그전부터 준비하고 있어서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체력이 고갈돼서 힘들었어요. 게임 안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준비 중에 말을 많이 해서 힘들었죠.

이기고 나니까 새벽 1시였던 것 같은데, 솔직히 승리의 기쁨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회식을 가서도 다른 때와 다르게 말이 별로 없었고, 고기에만 집중했어요(웃음). 다들 빨리 쉬고 싶어서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들어갔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팬들이 역시 섬머의 kt 롤스터라고 기대를 많이 해주시는데요.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분이 kt 롤스터는 '스코어' 원맨팀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해요. 다른 친구들도 정말 잘하는데,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kt 롤스터의 승리 알고리즘'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게 잡힌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잘하기 때문에 리그 1위를 차지한 거로 생각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저를 보듯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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