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난사 참사 책임을 집권 여당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이 비디오 게임에 돌렸다. 범행의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인우월주의와 민주당이 제기한 트럼프 책임론, 인종차별에는 입을 다물었다.

▲ CNN 뉴스 中

지난 주말 미 국경 도시인 텍사스주 엘패소 대형 쇼핑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21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는 AK 소총과 귀마개를 착용하고 총기를 발포해 계획범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격 사건으로 최소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용의자가 총기를 연발이 아닌 단발로 두고 시민을 겨냥하고 범행을 저지르며 증오 범죄에도 무게가 쏠리고 있다.

그레그 앨런 엘패소 경찰 시장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이 히스패닉(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을 향한 증오 범죄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찰은 크루시어스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발표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위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 방송국 NBC는 그가 극단적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커뮤니티 8chan에 올린 글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글은 지난 3월 51명의 사망자를 낸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 작성자는 히스패닉을 '타깃'으로 명명하며 자신을 히스패닉 침공을 막는 보호자라고 주장했다. 또한, 백인 우월주의 음모론인 '대전환'을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 측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며 총기 규제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 후보인 앨패소 출신의 베토 오루크는 총기 규제 주장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인정한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일갈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묵인한다'며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반면 공화당에서는 잇따른 총격 사건 이유를 비디오 게임에 돌렸다.

공화당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는 폭스 & 프랜즈와의 인터뷰에서 용의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언문이 게임 '콜 오브 듀티'를 참조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폭스 뉴스에 출연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 대표는 '나는 다른 사람들을 쏘는 게임이 미래 세대에 문제가 된다고 줄곧 생각해왔다'라며 기존의 연구들로 이를 관찰했다고 주장했다. 단 이들은 총기 규제를 에둘러 비판하는 한편 백인 우월주의나 인종 차별,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 폭스 뉴스에 출연해 비디오 게임의 유해성을 언급하는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소수 집단과 이민자에 대한 독설을 서슴지 않아 왔다. 그는 대통령 선거 당시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은 강간범으로 표현하고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똥통'같은 나라라고 비유한 바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색인종 여성 의원에게는 '당신들의 본국으로 돌아가 그쪽 나라를 고치는 게 어떠냐'라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에 미국의 게임 전문 매체들은 총기 난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와 정치인이 게임에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하다며 비난했다.


한편, 미국 고위 정치인이 총기 난사 사건의 이유를 게임으로 돌린 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켄터키주에서 발생한 15세 학생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열린 '학교 안전 대책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디오 게임의 유해성을 지목했다. 공화당의 로버트 나르돌릴로는 게임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개발사가 책임을 지도록 17세 이상 이용가 게임인 'M 등급' 이상 게임물에 추가 부가세를 매기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