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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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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선박과 국가의 역사 - 2원래 한번에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괜히 길어져서 나누게 되었습니다;
2. 본격적인 대항해시대(15~17세기) 15세기에서 16세기로 넘어갈 무렵, 유럽세계에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키는 두 사건이 있었죠. 하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그당시에는 인도라고 생각했던), 또하나는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입니다. 위의 상징적인 두 사건으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알리며 등장합니다. 포르투갈은 인구가 베네치아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 나라였지만, 오히려 그러기에 바다에 목매었던 국가입니다. 15세기까지는 아프리카에서 노예와 금 무역을 주로하였며 활동범위를 넓히던 중 포르투갈은 결국 인도까지도 진출합니다. 바스코 다 가마 이후 포르투갈은 인도로 끊임없이 진출 하였는데, 한때 홍해에서 이집트와 인도간의 항로를 차단함으로 베네치아의 후추시장 독점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죠. 그러나 곧 투르크가 이집트와 홍해를 장악하면서 베네치아의 투르크를 통한 무역과, 포르투갈의 인도와의 직접적인 무역이 동시에 이루어 지게 됩니다. 아프리카 항로가 상대적으로 멀고 불규칙했음에도 베네치아와 투르크가 끊임없이 전쟁과 휴전을 반복했고 포르투갈은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기때문에 그 무역도 계속 될 수 있었죠. 사실 포르투갈이 후추무역을 크게 성공시킬 수 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가져온 후추를 너무 비싸게 파는 바람에 포르투갈의 후추는 인기가 떨어져 오히려 그 흐름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어쩃든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항을 점령하고 인도양을 장악하는 동시에 나중에는 중국까지도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이후 포르투갈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며 1580년경 에스파냐에 잠시 통합된 이후에는 별다르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에스파냐는 본디 강대국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과 네덜란드와 나폴리를 비롯하여 유럽의 땅 곳곳이 에스파냐의 땅이었죠. 그러면서도 해상에 관심을 가진끝에 신대륙에 진출하면서 역사상 최대의 절정기를 누리게 됩니다. 에스파냐의 힘의 원천은 아메리카였습니다. 피사로와 코르테즈의 남미문명(학살에 이어 전염병에 의해 멸망) 정복 으로도 유명하듯 카리브해 주변의 남미 중미 등지에서 실려오는 금과 은 그리고 각종 상품들은 에스파냐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전까지 통용되던 독일산 은은 이때 아메리카산 은에 밀려났고 그 은의 양이 무척이나 많았던지 유럽에는 인플레이션까지 일어날 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고, 네덜란드를 제압하지못해 독립을 허용하는 등 에스파냐도 서서히 그 번영도 끝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17세기 이후에는 식민지 경쟁에서도 패하면서 역사의 주역의 자리를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16세기에 벌어전 두 가지 유명한 해전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베네치아,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과 투르크의 대결인 레판토 해전, 두번째는 영국의 무적함대 격파입니다. 첫번째 해전은 갤리선들간의 마지막 해전으로 꼽히는 만큼 지중해시대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승리했음에도 그 이후 베네치아는 차례차례 투르크에게 영지를 빼앗기며 지중해의 패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상징적으로는 중세 말 이후 번영하였던 도시국가들의 시대가 영토국가의 시대로 넘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16세기 들어서면서 국가주력사업이었던 중계무역이 쇠퇴했음에도 국내수공업(출판,유리,직물)이 발전하면서 그 기세를 어느정도 이어가지만, 끝내 대양에 진출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로 서서히 몰락하게 됩니다. 투르크는 육상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적들의 힘을 빌려 베네치아를 밀어내고 동지중해를 서서히 장악해 옵니다. 발바롯사, 울구 알리 등이 오스만측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해적들입니다. 하지만 이시기 즈음 이르러서는 지중해시대가 끝나며 그 이후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는 않게 됩니다. 대양을 누비며 식민지를 넓혔던 서유럽국가들에 비하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죠. 두번째 해전은 상징적으로 범선과 함포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는 한편 유럽의 힘의 중심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북해인근국가로 넘어오는 흐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함포는 백병지원용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웠으나 이 해전으로 함포만으로도 적함을 제압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때 큰 공헌을 한 기술이 16세기 초에 나타난 선측포의 포문과 포자체의 발달입니다. 특히 함포의 장전속도가 15분내외의 후장식 함포에서 3분이면 재발사가 가능한 전장식 함포로의 전환은 가장 중요한 발전이었죠 샤락해적이었던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스페인을 격파한 영국은 그 이후 대서양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스페인의 식민지를 하나둘씩 빼앗으며 북미에도 진출하여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대표적인 해양국가가 됩니다. 이후 라이벌로 떠오른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차례로 물리치고 정상의 자리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캐러벨, 카락, 갤리온 등 대항해시대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캐러벨과 카락은 14세기부터 그 이름이 나타나며, 갤리온은 16세기 이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캐러벨은 카락이 표준군함으로서 사용된데 반해, 카락보다 좀더 속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 많이 쓰였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탐험선은 캐러벨이었며, 대표적으로 콜럼버스도 카락을 쓰다가 좀더 빠른 캐러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캐러벨은 삼각돛을 썼으며 배의 길이 대 폭의 비율은 1:4 ~ 1:5였다고 하네요 카락은 이전의 단일돛대의 함선과 이 이후에 나타나는 세 개의 돛대롤 가진 함선의 중간단계의 역할을 한 동시에 함포가 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의 중간단계의 역할을 한 선박입니다. 대온을 보면 그 역사를 거의 맞추어 따르고 있는듯 합니다. (2돛대의 경카,수카 --> 3돛대의 상카,전카,상대카 등) 15세기 초까지는 두개의 돛대를 가진 카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나 15세기 이후부터는 세개의 돛대를 가진 카락이 주로 사용되며, 카락 이후의 범선들도 대부분 세개의 돛대를 가지게 됩니다. 카락은 백병전에 유리하도록 높은 선수, 선미루를 갖게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카락의 길이 대 폭의 비율은 대략 1:2 ~ 1:3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카락도 대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형태를 띄게 되는데 그 함선이 바로 갤리온입니다. 갤리온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포격전을 위해 변형된 카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백병전이 중요하지 않았기때문에 카락에서의 높은 선수루는 낮아지고 대포의 위치는 좀더 뒤로 옮겨갔습니다. 길이 대 폭의 비율도 1:3~1:4 로서 카락에 비해 날렵한 형태를 띄고 있었죠 카락이 실제적으로는 별다른 전투를 치루지 않았던 것에 비해 갤리온은 16세기 말 영국과 에스파냐의 무적함대의 해전(최초의 범선간의 함포전)을 시발점으로 그 이후 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각지에서의 전투의 주역이 됩니다. 에스파냐가 신대륙으로부터 금을 실어 오던 보물선(공격을 받아 침몰된 보물선이 카리브해의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도..)도 갤리온이었습니다. 1588년 일어난 해전을 간단히 살펴보면 영국은 주로 작고 빠른 갤리온이 대다수였던 반면, 에스파냐측은 영국에 비해 대형 함선이 많았고, 백병전을 염두하여 선체가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기동력과 장거리 함포를 이용해 어느정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포전을 펼친끝에 에스파냐를 패퇴시킵니다. 이후 17세기에는 2층, 3층 범선(함포의 배열 층을 의미하는듯)이 건조되기 시작하는데 이 함선들은 전열함의 시대 이전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집니다. 함선의 선미에 화려한 장식들이 나타나는 시기도 이시기라고 합니다. 나오라는 선박은 그 정보가 부족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선박을 지칭하는지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에스파냐에서 사용한 군함으로 일종의 카락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고 하네요 프류트는 네덜란드에서 개발하여 유럽각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경제적인 선박으로 건조비용과 운영비가 싸면서 적은 인원으로도 상당한 양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7세기에 활약했던 선박이라 할 수 있죠. 바스는 주로 물고기와 고래등을 잡아 날랐던 일종의 원양어선이었다고 합니다. 갈레아차는 베네치아에서 개발된 대형 갤리선입니다. 기존의 갤리선과는 달리 대포를 설치하기 위하여 높은 흘수와 높은 선체를 갖고 있는 갤리선입니다. 대포는 주로 함수쪽에 설치가 되어있었으며 레판토해전의 서방측 선봉에서 투르크 해군의 사기를 꺽는 역할을 했다죠. 바로 얼마 뒤 영국과 에스파냐의 해전에서도 에스파냐는 이 갤리선을 쓰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결국엔 중간에 있는 항구에서 멈춰서기는 했지만요 현재 대온에 나오는 갤리스가 이 선박이지만, 대온의 갤리스는 너무 낮고 뻣뻣하게 생겼더군요 제가 아는 지식내에서는 대온에 등장하는 갤리들은 역사적 사실하고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 시대의 어느누구도 대서양을 갤리를 타고 건설 생각은 안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근해, 지중해용 선박이 갤리였죠 대온에서 '파도저항'의 의미가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이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더 나을 수 도 있겠지만요 전열함 프리깃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등장해야할 3을 써야하지만 2에서 너무 무리를 해버려서 조금 귀찮아졌네요.. 아무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항해시대를 좀더 즐겁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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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