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줄곧 메이플을 즐겨했던 사람임.

코디 하는 걸 좋아해서 15년 동안 육성 쪽도 하긴 했지만, 사실 코디 쪽을 더 즐겨했고 몇 년 전부터는 육성도 더욱 열심히 하기 시작했음.

지금의 메이플이 재밌어졌다는 것도 인정함.
유입 허들도 낮아졌고, 편의성이나 난이도 등등 훨씬 체계적으로 바뀌었음.

전체적인 UI 창들, 전투력 시스템, 스케쥴러 같은 것들도 당연히 그렇고, 유입이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바뀐 것들이 가시성도 좋고 편리성도 좋아서 무조건 쾌적하다고 생각함.

그런데 나는 많이 허전했음.

게임이 너무 ‘친절’해졌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메이플을 즐겨했던 이유들 중 가장 큰 핵심은 디렉터의 **‘방치’**였던 것 같음.

물론 말로만 들으면 개소리 같을 거임.

디렉터와의 소통창구란 개념이 거의 아예 없다시피 했고, 개발자들이 만들어 둔 게임 안에서 보스 클리어, 주보, 사냥 같은 정식 루트를 따라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

그냥 각자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즐겼음.

누군가는 마을에 가만히 서 있었고,
누군가는 자유시장에서 장사를 했고,
누군가는 코디를 했고,
누군가는 파티를 구해서 사냥을 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직접 부딪혀가며 공략을 찾아냈음.

게임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끊임없이 알려주지 않았음.

그래서 우리는 게임 안에서 스스로 뭔가를 찾았던 것 같음.

캐릭터를 눌렀을 때 하얗고 작은 캐릭터 창이 뜨던 시절,
리프레나 커닝시티에 모여 놀던 시절,
오르비스 정거장에서 파티 맺고 크발 잡던 시절.

로미오와 줄리엣, 피라미드를 하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같이 전우애를 느끼며 깨던 시절.

공략하기 어려운 컨텐츠도 많았고 정보도 많지 않아서, 직접 찾고 직접 해결하려고 했던 시절.

자유시장에서 부엉이 키던 그 시절.

뽀송 꽃잎이 출시되지 않던 시절,
염색 기능이 없던 시절,
커믹이나 커렌 1, 2개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며 생각하던 시절.

스카우터 키며 남들 스공 염탐하던 시절.

와일드헌터 키우면서 제규어 포획하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것 아닌 것들이었는데, 이상하게 그게 좋았음.

게임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던 것 같음.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 찾아봤고,
편의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을 찾아다녔고,
게임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만들어냈음.

그리고 나는 아마 그걸 사랑했던 것 같음.

과거 디렉터들의 ‘간섭’이 없던, 말 그대로 ‘방치’된 게임.

그게 내가 사랑했던 메이플이었던 것 같음.

물론 지금의 메이플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도 알고 있음.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앎.

김창섭 디렉터를 욕하는 것도 아님.

오히려 내가 그리워하던 시절의 메이플에서는 지금처럼 유입이 될 환경도 아니었고, RPG 게임의 성장과 앞으로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변화가 최선의 선택들이었던 것 같음.

누군가는 나의 말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음.

지금의 메이플이 훨씬 편하고, 훨씬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예전의 불편함을 굳이 그리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임.

그것도 이해함.

그냥 내 15년은 그랬음.

내가 메이플을 좋아했던 이유를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화려한 보스도 아니었고, 높은 전투력도 아니었고, 효율적인 성장 루트도 아니었던 것 같음.

그저 게임 안에 내가 마음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고,
정답을 몰라도 됐고,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됐고,
게임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지 않아도 됐음.

그저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됐음.

그래서인지 지금의 메이플을 보면 분명 더 좋은 게임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내가 알던 메이플의 향은 나지 않는 것 같음.

더 좋아졌는데, 더 멀어졌음.

아마 이 글을 쓰는 것도 사실 맘이 아파서 끄적여보는 거 같음.

단지 내가 15년이 넘는 내 유년시절을 모두 함께 했던 세월의 메이플의 향이 이젠 더 이상 나질 않아서, 내가 떠나겠다 맘을 먹음.

그리고 오늘,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없어져 본 적이 없던 메이플을 삭제함.

그동안 수없이 캐릭터를 만들고 지우고, 접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음.

게임 하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내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를 닫는 기분이었음.

내가 그 시절의 메이플을 정말 좋아했고,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이 행복했으니까.

앞으로의 메이플도 더 성장하고 흥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떠나지만,
어쩌면 언젠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문득 그 시절의 메이플이 생각날 것 같음.

그때 내가 기억하는 건 아마 지금의 편리한 메이플이 아니라,

불편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 ‘방치’된 메이플일 것 같음.

내 유년 시절을 행복하고 아늑하게 해줘서 고마웠다.

15년 동안 함께해줘서 고마웠고,
내가 어렸을 때의 수많은 기억들 속에 있어줘서 고마웠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