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4박 5일의 일정으로 혼자 교토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간 교토를 여러 번 갔지만, 혼자 간 것은 이때가 유일했습니다. 

전날 공항의 캡슐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부리나케 움직여 정오 무렵에 교토역에 도착, 숙소 카운터에 캐리어를 맡겨 놓으니 딱 12시 반이었습니다. 첫날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첫날의 일정은 "히가시혼간지 - 쇼세이엔 - 치사쿠인 - 요겐인 - 산주산겐도 - 귀무덤"의 순서였습니다


1. 히가시혼간지 (東本願寺, Higashihonganji)


오사카성에 가면 이곳이 옛 혼간지의 터였음을 알려주는 비석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토에 혼간지가 있는, 그것도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西本願寺)라는 두개의 혼간지가 있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전국시대, 장기간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와 싸우던 혼간지 세력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게 항복합니다. 신장의 야망 6편인 천상기에 보면, 기마철포 병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스즈키 시게히데가 이 혼간지 세력의 대표적인 무장입니다. 항복 얼마 후 우연찮게 불이 나서 혼간지가 타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에 의해 사망합니다.

이때 권력을 잡은 사람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인데, 바로 이곳에 오사카성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교토에서는 혼간지가 세워집니다. 이때의 혼간지는 하나였고 지금의 니시혼간지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권력을 잡은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이때 혼간지에서 주지의 아들 둘이 서로 절의 권력을 두고 싸우게 되고, 에도 막부는 히가시혼간지를 설립하게 해서 결국 지금의 니시혼간지, 히가시혼간지라는 두개의 혼간지가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히가시혼간지에 가면 내부의 안내문들이 모두 히가시혼간지로 되어 있는데, 니시혼간지에 가면 본인들이 진짜 혼간지라고 말하듯이 니시(西)가 빠진 혼간지(本願寺)로만 안내문들이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했던 게임인 신장의 야망에서 등장했던 사찰 세력이기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히가시혼간지라는 절 자체는 크고 웅장한 편인데, 그게 다입니다. 다른 많은 절들에 비해 딱히 특징으로 내세울만한 건 그다지 없긴 했습니다.  만일 일행이 있었다면 들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쇼세이엔 (渉成園)


히가시 혼간지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정원입니다. 아마 과거에 히가시 혼간지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을 자랑했던 시절에는 히가시혼간지의 부속 정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치사쿠인 (혹은 지샤쿠인, 智積院)


꽤 괜찮은 사찰과 정원입니다. 교토를 여러 번 여행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사찰과 정원, 그리고 역사적 유적지 때문이라 이런 곳들을 찾아서 방문하는 게 꽤 즐겁습니다.























4. 요겐인 (養源院)


아자이 3자매의 첫째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이 낳은 3명의 딸)인 요도도노가 자기의 아버지를 위해 만든 절입니다. 요도도노는, 아버지를 외삼촌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잃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새아빠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첩실이 되어 아들을 하나 낳는데 이 아들이 유일한 후계자 히데요리입니다.

요도도노의 동생 중 한명인 스겐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며느리가 되었고 이후 2대 쇼군의 정실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도도노의 아들이자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와 '스겐인의 딸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는 서로 결혼합니다. 이종사촌간 결혼인 셈이죠. 여기에 더해 한때 히데요시의 여동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두번째 정실 부인(물론 자녀는 없었습니다)이기도 했습니다. 

간혹 일본 역사 특히 전국 시대 관련 자료를 찾아볼 때 짜증났던 것이 두개 있는데, 첫번째로 이름이 자주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얼마 안되는 한정된 한자를 돌려쓰기 때문에 헷갈린다는 것이며 두번째로 혼인 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한국 사람이 처음 접하면 X족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 요겐인에 들를 생각이 없었는데, 산주산겐도로 걸어가는 길에 붙어있던 안내문에 요도도노가 아버지를 위해 세웠다는 문구를 보고 잠깐 들르게 되었습니다.














5. 산주산겐도 (三十三間堂)


여기는 추천할만한 곳입니다. 경내에 들어가 입장권을 끊고 건물 안에 들어가면, 사람 크기의 1천기의 천수관음상이 도열한 곳을 쭉 한바퀴 돌면서 볼 수 있습니다. 보는 순간 경건함과 불심이 저절로 솟구칠 정도로 웅장하고 멋있습니다. 아쉽게도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 강력 추천할만한 곳입니다.














6. 귀무덤 (耳塚 or 鼻塚)


한국과 관련된 교토의 유적들 중 하나이며 산주산겐도에서 수백미터만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한테는 슬픔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죠.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조선 사람들을 죽이고 코를 잘라 가져와서 묻은 곳인데, 귀무덤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관리 상태도 좀 그저그런 편인 것 같습니다.

짜증나는 것은 그 앞에 있는 도요쿠니 신사 (豊国神社)입니다. 이 도요쿠니 신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스트인 신사니까요. 귀무덤이 있는 곳 바로 앞에 도요쿠니 신사를 건설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열받는 포인트입니다.








이렇게 1일차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다음날인 2일차에는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하는 관계로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