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시대에 형성한 '탱크 집단 돌격' 전략은 그 후의 소련 탱크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위 스탈린 시대의 탱크 진공 전략이라는 것은, 곧 1940년대 T-34-76, T-34-85와 KV-1, IS-1로 구성한 탱크 집단(탱크 부대의 기본 단위가 사단이었고, 돌격의 기본 단위는 군단이었다.) 돌격책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생산한 T-34계열 전차는 방어력, 전투력 면에서 독일 전차와 전혀 겨룰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약하였지만, 기동력이 훨씬 뛰어나고 석유 공급선이 안정하였기 때문에 장거리 기습이 가능하였다. 이와 더불어, T-34계열 전차는 주조 부품을 대량 사용하였기 때문에 생산주기가 짧았고, 생산 효율도 높았다.(탱크 샌산 효율을 평가하는 단위는 공시이다. 소위 공시라는 것은, 한 명의 생산자가 한 대 탱크의 모든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이 끝날때 까지,필요한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량의 저질, 고속 탱크로 독일의 고질, 저속 탱크를 소모하는 전략이 점차 형성하게 되었다. 그 뒤로, 스탈린이 IS-3형 탱크를 개발함으로써 베를린에서 무장력을 과시하였다. 그 결과, 2차 대전 후 서방 및 미국은 탱크 발전에 집중하기 시작하였고 기존 독일의 전차 기술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거나 스스로의 탱크 발전 기술을 양성하였다. 하지만 프랑스나 영국 및 미국이 중형 전체에 집착하고 있었음과 달리, 소련은 T-54를 기반으로 하는 중형 전차 발전 전략을 확보하였다. 이는 당시 소련 탱크 돌격 전략을 여실히 보여주는 탱크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T 계열 탱크는 54년 식 탱크의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전략 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디자인한 T-54형 탱크는 1955년에 처음으로 일부 장갑 사단에 보급되었고, 시비리아 동토 지대, 중앙 아시아 사막,동유럽 산림 지대 등 곳에서 악고한 측정을 받게 되고 T-54A형(즉, 57년 식) 탱크를 완성하였다. 57년 식은 과도형 탱크로 문제가 많았는데, 여러 번 수정을 거쳐 결코 54년식 탱크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62년 식 탱크를 디자인 하였다.

 

여기서 소련 탱크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중국의 소련 전차 모방기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1953년 스탈린의 죽음과 더불어, 중국과 소련은 냉각기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는 당시 소련 볼쉐비크 영도자인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에 대한 원한으로 인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 및 영웅숭배를 없애기 위하여, 스탈린 시대의 모든 정책 및 모든 조약을 폐지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모택동-스탈린의 '중-소 우호 조약' 폐지도 이에 기인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하에서, 소련은 1954~1956년에 T-54식의 설계도면, 생산기술을 중국에 넘겨주었고, 또한 중국 탱크 생산 공장 건설을 지원하였지만, 1956년부터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고, 당시 실은 준공한 탱크 공장이 없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중국은 1956~1959년 사이에 탱크 공장을 점차 완선하고, 기존에 얻은 T-54형 탱크 도면을 바탕으로 탱크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곧 59년 식 탱크이다.

 

59년식 탱크는 소련 54년식 탱크를 완전히 코피 한 것이라고 하여도 무방 할 것이다. 단지, 당시 중국 탱크 공장의 생산 기술에 한해, 많은 부품이 간소화 되었고, 또한 중국의 실제에 맞게 일부 부품을 개조하였을 뿐이다. 예컨대, 소련식 엔진은 소련의 디젤을 대상으로 디자인 한 것이므로, 중국의 디젤을 사용하였을 때 기동력이 떨어지고 엔진 손상도 많았다. 따라서 당시에 생산한 59년식 탱크의 발동기는 중국의 원유 성분에 따라 다시 디자인 한 것이지만, 실은 중국의 석유 성분에 맞게 부분 부품을 개조한 것이다. 또한 중국의 철강 제련법도 소련과 달랐기 때문에 59년 식 탱크에 사용된 철강의 각도 및 두께도 약간씩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 T-54 탱크와 59년 식 탱크를 자세히 비교 해보면, 어딘가 약간씩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만, 도대체 어디가 다른지는 말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소련 T-54 탱크와 중국 59년 식 탱크의 가장 큰 구별점이라면, 우선 포탑의 모양이 다르고, 두 번쨰는 포탑 위에 장착한 기관총이 달랐다.

 

59년 식 탱크의 포탑은 T-54 탱크보다 약간 더 높고, 모양도 더 둥글하다. 이는 소련 T-54 탱크의 포탑 결함이 너무나 뚜렸하였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자만, 당시 소련이 전차병을 모집할 때 체구 및 높이에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T-54 탱크 포탑의 내부 공간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중국에서 생산한 T-54 탱크(곧 59년 식 탱크)는 포탑을 확대함으로써 승무원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1959년 식 탱크가 생산 된 후, 중국은 점차 기존의 T-34-85형 탱크와 소량 장비한 IS-2 탱크를 폐기하고 59년 식 탱크의 생산에 몰두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IS-3형 탱크를 대치하기 위한 110 탱크 계획을 비롯한 중형 전차 발전 계획을 폐기하고 59년 식 탱크를 바탕으로 하는 59년식 전차 계열을 발전하였다. 이 때로부터 1960년 까지 59년식 전차를 바탕으로 하는 통신 중계 전차, 지휘차, 장갑차, 전차 구원 전차, 기계화 적업 전차, 참호 궐진 전차 등 여러 종류의 전차를 발전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나가야 하는 것은 1969년 중국과 소련이 지금의 흑룡강 지역의 진보도(흑룡강 위에 '보물 많은 섬'이라는 자그마한 섬이다.)에서 벌어진 '진보도 사건'다. 사건 당시, 중국은 이미 소련의 SSK 소총을 카피한 56-1식 반자동 소총을 대량으로 장비하였고, AK-47을 기반으로 하는 56-1식 자동 소총을 대량으로 장비하였으며, 59년식 탱크도 장비하였다. 한 마디로, 당시의 중국 해방군과 소련 홍군 보병 소대의 장비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 장비한 59년식 탱크에 비해, 소련은 이미 T-54의 엄그레이드형인 T-62A를 장비하였고, 진보도에 최신형인 T-62A-SD형 탱크를 파견하였다. 물론, 이는 실제 전쟁가치보다 정치가치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한심한 것은, 당시 아무르강(흑룡강) 얼음이 얇았기 때문에 얼음 위에 있었던 T-62-SD형 전차 한 대가 그만 강물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 한심 한 것은, 소련 군대는 다른 탱크가 강물에 빠질까봐, 모든 탱크를 철수시키고, 스스로 건져낼 수 없으니 중국 군대로 건져낼 수 없다고 판단하여, 탱크 지원을 잃은 보병 부대도 철수하였다. 즉, 강물에 빠진 이 최신형 탱크 주변에 아무런 경계 병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날 밤, 중국 군대는 인부를 파견하여 억지로 이 탱크를 건져내고 급히 후송시켰다. 이는 중국 군대가 진보도에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이라고 하겠다.

 

사실이 어떻게 도었는지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1969년에 중국은 1959년식 탱크를 업그레이드 시킨 1969년 식 탱크를 출시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또한 소련 T-62A-SD형 탱크 위에 있었던 전자 부품을 거의 모두 장착하였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당시로 보면, T-54형 탱크나 T-62A-SD형 탱크는 모두 세계 탱크의 최고 수준을 대표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자체 생산한 59년식 탱크 및 69년 식 탱크는 과연 소련의 T-54형나 T-62A-SD탱크를 어느 정도로 코피하였는지 알 수 없겠지만, 1980년대 이라크가 소련에서 구입한 T-54형 탱크를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중국에서 대량의 1959년 탱크를 구입하였으며, 기존 소련에서 구입하려고 하는 T-62형 탱크를 포기하고, 중국에서 대량으로 1969형 및 1979형 탱크를 구입한 사실로 부터 미루어 보면, 기존 모델을 바탕으로 다시 디자인 하였거나, 기존 소련 모델의 기능과 거의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1980~1990년대에 이어진 '이-이 8년 전쟁'(이라크-이란)에서, 미국 탱크를 주로 장비한 이란과 소련식 및 중국식 탱크를 주로 장비한 이라크 사이의 5차례 탱크전에서, 중국 탱크와 소련 탱크의 훼손량은 거의 대등하였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당시 중국에서 이라크 위해 생산한 59년식 및 69년식, 79년 식 탱크는 모두 사막지대이라는 환경요소를 감안하고 엔진을 다시 개조하였기때문에 고장율이 소련 탱크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전쟁 당시 및 1988~1991년까지 이라크는 다시 1979년 식 탱크를 대량 구입하였다.

 

대개 1959년 식 탱크 및 59년식 탱크의 강화형 1969년식 탱크는 모두 소련의 T-54와 T-62형 탱크의 기초 상에서 카피하거나 약간씩 수정을 하여 생산된 탱크이다. 59년 식 탱크의 생산은 1990년 전반까지 이어졌고, 중국 해방군에 가장 많이 장비된 탱크인데, 실제 장비한 탱크 수량이 15000을 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59년 식과 69년 식 탱크의 외관은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장비한 탱크 중에서 1959년 식 탱크가 차지한 퍼센트는 아무로 모른다.

 

1979년 식 탱크는 외모가 기존 모델과 거의 같았지만, 엔진부, 포탑, 전차포 및 자동수송기 등 설비는 당시 유럽과 미국의 탱크 기술을 많이 참조하였기 때문에, 1979년 식 탱크는 기존의 59년 식 혹은 69년 식 탱크의 업그레이드 형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동시대 소련의 T-72 탱크 와도 전혀 다랐기 때문에 소련 탱크를 바탕으로 디자인 한 탱크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1979년 탱크 부터는 자주 설계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로 중국은 재차 T-72 형 탱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탱크를 디자인 하거나, 미국의 정부와 같이 탱크 발전 계획을 펴내기도 하였으나 이는 모두 자아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기술 인입일 뿐, 소련 또는 미국의 탱크를 카피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해당하는 것이 곧, 89형 실험 탱크, 2000형 실험 탱크,2002형 실험 탱크와 정식으로 입대한 96년 식 탱크, 96년식 A형 및 B형 탱크, 99년 식 탱크, 99년 식 sep 탱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1963년에 또한 63형 수륙 탱크를 장비하기 시작하였는데, 수룍 탱크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