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한국 서비스가 차단되는 걸까요?"

혹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 해도, 기자는 명쾌히 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국내의 게임업계 인사나 모든 게이머를 통틀어도 이 질문에 확신에 찬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말이다.

9월 2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은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스팀 심의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스팀 역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에 따라 게임위의 등급분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주선 의원 측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이후, 게이머들 사이에는 수많은 논란이 생겼다. 박주선 의원의 주장 자체에 대한 논리적 비판부터 다른 디지털 마켓 플랫폼에 대한 우려, 또는 스팀의 한국 서비스가 중단될 경우 구입한 게임들의 재산권을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이에 인벤에서는 다소 혼란스럽게 퍼져나가고 있는 이번 박주선 의원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이와 관련된 이면의 화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PART 1. "국내에 게임 유통하면서 등급분류 왜 안 받나?" 박주선 의원 주장


박주선 의원은 게임법 제 21조 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등급분류 대상'에 관한 규정을 스팀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어 게임을 지원하고, 국내에서 발급된 신용카드 등으로 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스팀이 국내에 게임을 유통할 의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박 의원은 등급분류가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게임들은 꼬박꼬박 등급분류를 받고 있지만, 스팀 게임들은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박주선 의원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게임위의 제출 보고서에 따르면 스팀의 공식한글화 서비스 게임 138개 중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은 60개(43.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스팀 게임의 등급분류 도입이 몇 차례 언급된 바 있음에도 지금까지 어떠한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게임위의 직무유기'라고 질타했다.

▲ 국내 유통사를 통해 등급분류 심의를 받고 스팀으로도 출시된 '문명5'

박주선 의원실 보도자료에는 이에 관한 게임위의 입장도 담겨 있다. 게임위 측은 페이스북, 스팀 측과 협의해 등급분류를 취득하고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도록 추진하는 한편, 경찰청과의 공조 등을 통한 법령준수 강제방안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이 부분은 최근 페이스북 게임의 한국 서비스가 결국 차단된 것과 맞물려, 이와 같은 흐름으로 갔을 때 스팀 역시 국내 서비스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또, 첫 번째 보도자료가 배포된 후 박주선 의원 측은 6시간 뒤 또 한 번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두 번째 자료에서는 국내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와 연결, 스팀이 차별적으로 우대받고 있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스팀에 있는 게임들이 해외 국가의 등급분류는 준수하면서도 국내 등급분류는 받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 보도자료의 마지막에는 "국내외 게임업체를 동일한 잣대로 규제할 역량이 부족하거나, 게임 등급분류를 엄격히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서 방치하는 것이라면 그런 규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문장도 담겨 있다.

그리고 하루를 넘긴 어제, 10월 1일에는 세번째 보도자료가 송부되었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게임법의 스팀 적용에 대한 부분이었다. 박 의원 측은 “규제는 기업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입법을 통해 한국 정부가 정하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스팀’의 운영정책이 아닌 한국의 법체계"라고 밝혀 이 주장은 현행 게임법에 의거한 의견임을 분명히 했다.

이 내용을 놓고 각종 게임 커뮤니티 및 게이머들의 SNS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일었다. 박주선 의원을 가리켜 '스팀 파괴자' 혹은 '스팀 학살자'라고 지칭하거나, 반대로 '현실에 맞지 않는 등급분류 심사를 폐지시키고자 하는 평화의 수호자'라고 추켜세우는 의견도 있다.

다만, 박주선 의원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을 함께 제시하지는 않은 바, 그 명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PART 2. 게임물관리위원회와 스팀에 관한 이슈들 - 스팀 게임 심의까지 오게 된 배경


2006년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같은 해 4월 게임법이 입법됐다. 이전까지 등급심사를 맡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질타를 받았고, 사회적으로 게임을 전문적으로 심의할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2006년 10월 3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정식 출범했다. 이후로 국내 서비스되는 모든 게임들은 게임위로부터 심의를 받게 됐다.

게임 심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국내외를 통틀어 무수히 많은 마찰이 있었다. 특히 해외 게임서비스에서는 '사이트 차단'이라는 극처방이 나오기도 했다. 우선, 독일의 이노게임스(InnoGames)가 개발한 웹 게임 '부족전쟁(Tribal War)'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게임법에서는 국내 서비스를 하는 게임은 모두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부족전쟁'도 이 조건에 해당됐다. '부족전쟁'도 스팀과 같은 글로벌 서비스다. 문제는 한국 유저가 많아지자 국내 전용 클라이언트 서버, 한국 도메인을 사용한 한국어 사이트를 갖추고, 한국인 관리자도 채용하면서 발생했다. 게임위는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국내 서비스 의향이 있다고 보았으며, 그럼에도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게임위는 '부족전쟁'의 국내 서비스를 차단한다고 2009년 1월 22일 공표했다.


독일의 게임사 게임포지 AG가 개발한 웹 게임 '오게임(O-game)'도 마찬가지 사례다. '부족전쟁'처럼 '오게임'이 한글을 지원하게 되면서 심의 대상에 올랐다. 게임위는 웹 게임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2007년 11월 28일 오게임의 홈페이지를 차단했다. 이후 홈페이지 도메인을 변경하는 등의 조치를 했으나, 결국 2009년 11월 16일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국내 웹 게임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개인이 비영리적으로 운영하던 웹 게임도 심의 대상이 됐다. 그 중 하나인 '엑스노바'도 게임위의 심의를 거친 결과 사이트 폐쇄라는 결정을 받았다.

스팀에 관한 이야기 역시 이 무렵에 거론된 바 있다. 2010년 9월 3일 '밸브 게임 사이트 차단 검토'의 기사가 보도되고, 스팀 게임에 관한 게임위의 입장이 발표됐다. 국내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서비스를 차단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게임위는 "직접 밸브와 연락했고, 방침이 정해지면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언급은 없었다.

[뉴스] 스팀 서비스 차단? 게임위의 답변 (2010-09-03)

2010년 4월 전병헌 의원이 게임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한다. 애플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와 같은 오픈마켓을 통해 제공되는 게임은 서비스 제공자가 자율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개정안은 이듬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다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접할 수 있는 기초적인 토대가 마련된 셈.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모바일 플랫폼에 한정된 이야기다.


최근 페이스북은 PC 웹을 통한 게임 서비스를 차단했다. PC를 통해 페이스북에 접속한 뒤 게임을 실행하면, '게임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국내에서는 플레이할 수 없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페이스북은 게임 개발의 주체가 아닌 하나의 플랫폼임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스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구실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9월 29일. 박주선 의원이 '해외 기반 게임 서비스 업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결국 스팀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 PART 3. 10년 전 제정된 게임법, '현실과 법의 괴리 상태'


게임법에 명시된 등급분류 관련 내용 중, 국내에서 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 21조(등급분류) ①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당해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기 전에 위원회로부터 당해 게임물의 내용에 관하여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게임물의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하다.

위 조항에 따라, 스팀은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배급하고자 하는 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박주선 의원의 주장이다.

국내에서 스팀 클라이언트를 설치해 접속할 경우, 한국어로 된 UI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Valve_Korea라는 이름으로 트위터를 운영하며 세일 및 각종 이벤트 정보를 한국어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

박주선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스팀이 국내에 게임물을 유통하겠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스팀에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들은 관련법에 따른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어 운영 서비스라든가 한국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 등 박주선 의원이 지적한 근거는 둘째 문제다. 우선 국내에 거주하는 유저가 스팀을 통해 게임을 내려받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이와 관련해 인벤에서는 한 법률 전문가로부터 이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는 "아직 국내에서 스팀에 게임법의 등급 분류를 적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어떤 학설이나 연구도 진행되거나 정리되지 않았던만큼 일단은 개인적인 견해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Q. 게임법 제 21조(등급분류) 1항에 따르면,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이 있을 경우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박주선 의원이 제시한 '공식 한국어화'라는 조건이 '국내 유통 목적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나요?

흔히 일정한 “목적”을 가져야만 성립하는 범죄를 목적범이라고 합니다. 위 조항에서 규정된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할 목적”이라 함은 게임을 개발하여 혼자 즐기는 경우에는 본 조항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팀”의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스팀”의 경우에는 대중에게 유통시킬 목적으로 제공되는 게임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 사안의 쟁점은 밸브의 스팀이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법”)을 준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게임법 제21조 제1항 본문에 따르면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당해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기 전에 위원회로부터 당해 게임물의 내용에 관하여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종래에는 주로 국가별로 퍼블리셔가 정해지고, 국가별 퍼블리셔가 등급심사를 받은 뒤 팩키지 방식으로 게임을 유통했기 때문에 법적용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운로드 방식의 게임유통이 일반화 되었고, 스팀의 경우처럼 한국 유저들이 국경을 넘어 해외 게임사업자가 제공하는 게임을 해외서버에서 직접 다운로드받는 것도 일반화 되었습니다.

현행 게임법에 따르면 등급심사를 받지 않은 게임을 유통하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스팀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게임법을 어느 범위까지 적용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대한민국 형법은 그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속지주의, 속인주의, 보호주의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습니다. 속지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해서 형법을 적용하겠다는 원칙이며(제2조), 속인주의란 내국인의 경우 해외에서 죄를 범한 경우에도 형법을 적용하겠다는 원칙입니다(제3조, 제4조).

또한, 보호주의란 내란죄, 외환죄 등 일정한 범죄의 경우에는 외국인이 외국에서 죄를 범한 경우에도 형법을 적용하고(제5조), 외국에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하여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형법을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말합니다(제6조). 다만, 제6조의 경우에는 행위지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소추 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할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스팀 사례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스팀을 서비스하는 “밸브”는 외국 회사이고, 스팀 서비스와 관련한 서버도 외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지주의나 속인주의로는 밸브를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밸브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게임을 제공하는 이상 보호주의의 적용대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법리적인 문제가 하나 발생하게 되는데, 위에서 본 것처럼 형법 제6조 단서에 의하면 행위지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소추 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할 경우에는 대한민국 형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등급분류가 법률로서 강제되지 않으므로, 행위지를 미국으로 좁게 해석한다면 밸브가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게임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 형법이 적용될 여지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말씀드리자면, “행위지”는 범죄의 결과발생지를 포함하는 개념이고, 스팀에 의해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이 이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장소는 대한민국이므로, 대한민국은 게임법 위반의 결과발생지로서 대한민국 형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게임법과 형법에 따르면 등급분류 받지 않은 게임이 한국에 서비스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터넷은 원래 국경에 의해 제한되는 서비스가 아니고, 대한민국 게이머들은 전세계 모든 사이트에 접속하여 게임을 즐기거나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게임법의 잣대에 따를 경우 등급심사를 받지 않은 전세계 모든 게임들이 불법 게임에 해당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세계 모든 게임사이트를 형사처벌하거나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법을 강제할 업체나 서비스를 한정해야 하고, 아마도 종래 게임물등급위원회 시절부터 이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을 한글화 여부 등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현행법 상으로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게끔 되어있는 모든 게임'은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즉, 이는 스팀을 통해 서비스되는 게임이라도 국내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이상 등급분류를 피할 수는 없다는 뜻이 된다. 현재의 법 상태로는 말이다.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현행 법안에는 스팀이 가지고 있는 플랫폼 상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임법 제 21조(등급분류)의 제 1항에는 위원회의 등급분류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을 4개 호로 규정하고 있다.

게임법 제 21조 제 1항에 따른 예외적용 대상

1.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추천하는 게임대회 또는 전시회 등에 이용, 전시할 목적으로 제작, 배급하는 게임물

2. 교육, 학습, 종교 또는 공익적 홍보활동 등의 용도로 제작, 배급하는 게임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

3. 게임물 개발과정에서 성능, 안전성, 이용자만족도 등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용 게임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상, 기준과 절차 등에 따른 게임물

4. 게임물의 제작주체, 유통과정의 특성 등으로 인하여 위원회를 통한 사전 등급분류가 적절하지 아니한 게임물 중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다만, 제 9항의 기준에 따른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일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예외적용 제 4호에 따른 대통령령

제 11조의 4(자체 등급분류 게임물) 법 제 21조 제 1항 제 4호 본문에 따른 게임물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1.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기간통신사업의 허가를 받은 자가 제공하는 기간통신역무에 의하여 제공될 것.

2. 온라인 오픈마켓 등 전자상거래중개로 제공될 것

3. 이동통신단말기기 또는 이동통신단말기기에 구동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운영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무선인터넷 접속 단말기기에 의하여 제공될 것.
[본조신설 2011. 7. 4]

[관련기사] 전병헌 의원, 오픈마켓 게임물 자율심의 추진 (2010-04-13)
[관련기사] 게임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2011-03-11)

이 중 제 4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게임법이 제정되던 당시에는 없었지만, 2010년 전병헌 의원이 제출한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추가된 부분이다. 이 호에서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요건'들을 보면 '모바일 오픈마켓을 통해 유통되는 게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개정안은 모바일 오픈마켓이라는 플랫폼은 기존까지의 제작, 유통 과정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기저에 깔고 추진됐다. 그리고 현재 시장 상황을 보면, 이러한 온라인 디지털 기반의 유통 채널이 비단 모바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C에서도 이미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팀을 비롯해 EA의 오리진, 유비소프트의 유플레이 등 자체 DRM으로 운영되는 여러 디지털 플랫폼이 글로벌 서비스되고 있고, 이들이 제공하는 DRM을 활용한 험블번들이나 그린맨 게이밍 등의 서비스도 활성화되어 있다. 자체적으로 클라이언트 다운로드를 제공하는 CD프로젝트(CD Projekt)의 고그닷컴(Gog.com) 역시 디지털 방식으로 게임을 유통하는 사례다.

국내에서도 게임 소프트웨어의 리딤 코드(Redeem Code, 온라인 스토어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디지털 상품권이나 쿠폰. 스팀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구입한 게임을 자신의 계정에 활성화시키는 코드를 지칭한다.)를 판매하는 다이렉트게임즈나 플레이코드와 같은 유통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게이머들 사이에서 디지털 형태의 게임 유통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게임법은 디지털 기반의 유통 방식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10여 년 전에 제정됐다. 즉,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디지털 소프트웨어 유통망(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이하 ESD)의 개방성과 배포 과정 등을 고려한 게임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2010년 개정안 발의 당시 전병헌 의원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배경을 거론했다. 관련 조항이 없었던 당시 현행법상으로, 오픈마켓을 통한 게임물은 모두 불법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전병헌 의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현실과 법의 괴리상태'라고 지적하며, 이를 해소해야한다는 취지로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전 의원의 발언에 담긴 맥락은 PC 기반의 ESD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PC 기반의 ESD가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이에 대한 법적인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이 현실과 법의 괴리상태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스팀의 국내 이용자 수는 얼핏 6~7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스팀 게임들의 등급분류에 관한 지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스팀이 이제 섣불리 손대기 어려울 정도의 커다란 비중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스팀의 리딤코드를 기반으로 한 수익모델을 운영하는 업체가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비단 스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ESD 서비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스팀 서비스 전체가 중단되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불협화음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두고두고 반복될 것이다.



■ PART 4. 자율 vs 규제 싸움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처할 규칙을 만들자


박 의원이 주장하는 데 쓰인 근거들은 세계 게임산업의 이해가 빠진 분석이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스팀을 운영하는 기업은 밸브임에도 '스팀 사(社)'라고 기업명을 지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팀으로 대표되는 ESD 시스템이 어떻게 떠오르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명에 대해서도 박 의원은 "NHN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네이버'가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과 같다"고 해명했지만, 네이버는 NHN엔터테인먼트에서 서비스하지 않는데다가 '네이버 사'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현행법으로 해석했을 때 박 의원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틀리지 않는다고 모두 옳은 말은 아니다. 스팀 플랫폼이 가진 특성을 현재 등급분류 규정이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게임이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을 없는 취급하는 셈.

스팀의 등급분류 문제는, 규제냐 자율이냐의 담론이 아니다. 해외 게임을 규제하자거나 국내 게임에게 자율성을 주자는 방향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게임을 넘어 국내 IT산업 전체가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인식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제도 정비까지 여전히 10년 전 시간에 머물러 있다.

스팀이 수많은 게임 선진국가 중 유독 한국의 등급분류에서만 비켜나 있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게임법이 세계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 생각을 전환하면, 스팀은 해외 플랫폼인 것을 넘어 세계 시장을 향한 진출 창구이기도 하다.
위는 스팀 출시가 확정된 국산 인디게임 '아미 앤 스트래티지'

결국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게임법을 개정해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는 것이 해법이다. 지난 3월 개정한 오픈마켓 자율 심의 제도를 좋은 사례로 참조할 수 있겠다. 조금 긴 여정이 되겠지만, 가장 확실하고 합리적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토대를 다지지 않고 박 의원 하나만 비난하며 이대로 넘어간다면, 이런 논쟁은 무한히 반복된다. 더불어 한국 시장도 세계에서 조금씩 소외될 수밖에 없다. 한번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갈수록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스팀은 단지 '해외 플랫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만든 게임도 스팀에 올라갈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게임들이 한 데 모여 통합되는 곳이 스팀을 비롯한 디지털 다운로드 시장이다. 한국의 게임산업진흥법도 여기에 해외 게임이 맞추라고 강요하기보다는 해외 공용으로 쓸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는 방향이 필요하다.

어쩌면 기회다. 문제점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이번 논란은 한국의 게임법을 시대에 맞게 대폭 개선하는 데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정부 부처와 게임계간의 심도 있는 연구를 바로 지금 진행할 때다.


인벤 웹진팀
이종훈(JeeK), 길용찬(Kavo),
송동훈(Ruvv), 이명규(Sawual) 기자